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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화 〉#60 히어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4) (242/271)



〈 242화 〉#60 히어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4)

“......흠냐?”

짹짹거리는 새소리. 커튼 틈새로 희미하게 비쳐오는 햇살.

클럽은 드러누운 채 눈을 깜박거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늘 봐오던 그 천장이다.

“..................”


벌떡 몸을 일으키며, 침대 위를 구르다 산발이  머리를 대충 헝클어뜨렸다. 저혈압인 터라, 잠에서 깨고나면 정신을 차릴 때까지 한참이 걸린다.

“후암~.”

하품을 몇  더 하면서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제대로 잠에서  클럽이 침대에서 톳, 하고 뛰어 내려왔다.

묘하게 컨디션이 좋았다. 잠을 푹  덕분인가.

‘어째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애초에 꿈은 깨어났을 때 기억에 남는 편이 드무니까, 뭐....

“응?”

묘한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주 입는 하늘색의 브래지어가 눈에 띄었다.

어제 내가 브래지어를 입고 잤던가?


그보다 자기 전의 기억이 어째 가물가물한데.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나...?’


아무래도 피로가 쌓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푹 자서 컨디션이 좋으니 상관 없겠지.


“출근할 준비해야죠....”

클럽은 토스터기에 사놓은 식빵을 세팅하고, 구워지는 동안 세면과 양치를 마쳤다.

이어서 후라이팬으로 베이컨을 굽고 계란을 굽고.

토스터기로 구운 식빵 위에 설탕을 챠카챠카 뿌리고, 예쁘게 구워진 계란후라이와 베이컨을 올리고, 씻어둔 상추와 잘라둔 토마토를 넣고 반으로 접는다.


훌륭한 샌드위치 완성!


“여기에 가슴이 커지는 우유를 곁들여서... 오물오물... 꿀꺽... 영야분은 충분해요...!”

이렇게 열심히 먹는데 왜 가슴도 키도 크지 않는가!

정말 의문이었다.


오늘은 마음에 드는 도토리색 팬티와 브라를 차려입고, 다려놓은 블라우스, 스커트를 입은 후 상의까지 걸쳤다.

좋았어, 이것으로 준비 끝.

클럽은 마지막으로 현관 앞에 있는 자신의 앞에서 얼굴을 확인하며 뺨을 착착 두드렸다.

기합이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힘내보자. 빌런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모든 것은 7번대를 위해서. 소중한 동료들을 위해서.


그렇다.


오늘도 성실하게, 어떤 상황에서든 『정직하고 결백하고 진실되고 거짓없이』 힘낼 것이다!



* * *



오전 중의 작업은 의외로 금방 끝나서 한가했다. 정리해야 할 서류도 별로 없었고, 마침 순찰 순서도 아직이었으니까.

최근 빌런 범죄는 나날이 가파르게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어로들이 한가한 것은, 그에 못지 않게 히어로들의 일처리도 매끄럽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유능한 건 좋지만, 역시 한가하다. 그게 좋은 거겠지만.


‘으음. 덕분에 오전에는 몰래 뒹굴거리며 지냈네요. 몰래 폰게임도 하고. 이런게 인생의 낙이죠.’

일할 시간에 당당하게 폰게임을 한다.


이런  인생읜 낙이지 그럼 뭐가 낙이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마침 수업에서 복귀한 스페이드가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음, 멀리서 보기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딱 적당한 미유(美乳). 절대로 크진 않지만, 그래도 작지도 않은 매력적인 가슴이다.

저 정도 가슴인데도 7번대에선 상대적으로 작다는 게 믿을 수가 없다.

라헤 대장, 체크, 코코, 지금은 빌런으로 전향했지만 애플까지.

다들 스페이드보다  사람들이다. 아리아는 비슷한 정도일까. ...어쨌든 자신보다는 크지만.

‘Holy Crab! Fucking Shit! 신님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하신 건가요?!’


“오~ 클럽. 오늘은 어째 얼굴이 좋아보――이지 않네.”

신님께 속으로 절규하며 부들부들 떠는 사이, 스페이드가 지척까지 다가와있었다.


“무슨  있었어?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이야.”


“아뇨... 괜찮아요... 조금 전까진 하늘을 날 것처럼 기분 좋았으니까.”

“흐응?”


“그보다 잘 다녀오셨나요. 점심은 드셨어요? 조금 있다가 회의가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원래 일정에 없던 회의니까요.”

“아, 으응....”

클럽이 담담하게 용건을 전하자, 스페이드는 묘하게 눈치를 보며 몸을 꼬았다.


“...? 뭐가 있나요?”

“아니, 그게....”


클럽이 보다 못해 묻자, 스페이드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직 인사가 익숙하지 않아서... 아니... 그래도 해야지... 응.”

답도 아니다. 스스로를 설득하듯 몇 번이나 중얼거리더니, 새빨개진 얼굴로 스커트 끝자락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드러나는 다홍색 팬티.


“.......”

클럽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스페이드 같은 매력적이고 풋풋한 젊음이 느껴지는 미인이 붉어진 얼굴로 팬티를 보여주는 모습.


물론 귀한 장면이고, 그림이 되는 장면이다. 변태였다면 오로지 이 광경을 위해 몇 천 만원은 아깝지 않게 써버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그런 변태들도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눈 앞의 클럽은 변태도 아니요, 여자의 ‘팬티빼꼼!’을 보고 기뻐하는 이상성벽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페이드도 딱히 노출증 환자인  아니다.

전부 13호. 그 뭐에도  쓸  같은 쓰레기 허접한 한량 백수 말미장 빌런 새끼가 이상한 암시를 심어놨기 때문이다.


“13호...!!!!”

“으, 응?!”

“......아닙니다. 스페이드 씨. 슬슬 치마 내려주세요.”

“어, 어라? 클럽은 안 보여줘? 기지 내에서 인사할 때는 팬티를 보이는 게 예의잖아?”


“......최근 허벅지에 뾰루지가 나서, 나을 때까지는 안 보이는 게 예의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뾰루지 빨리 나으면 좋겠다.”


적당히 대충 둘러댄 말에, 스페이드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애초에 뾰루지 같은 건 나지 않았지만, 이딴 식으로 팬티를 보여야한다면 평생 낫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이 클럽을 덮쳤다.

하아, 하아, 하고 숨이 거칠어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이런... 실수.... 거짓말을 해버리고 말았어.’


실수했다. 그만 반사적으로 속이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뾰루지 같은 건 있지도 않은데!


빌런의 손아귀에서 7번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반드시 『결백하고 정직하고 진실되고 거짓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클럽,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괜, 찮습니다... 스페이드 씨... 그보다 조금 전에 했던 말...!”


클럽은 가슴을 붙잡고 열병에 걸린 것처럼 하아하아 숨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진실을 고했다.


“저,  사실 뾰루지 같은 건 없고... 인사는... 그냥 부끄러워서... 팬티를 보이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

“아, 그런 거구나. 나만 부끄러운 게 아니였구나. 그냥 그렇게 말해도 괜찮았는데~.”


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클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똑바로 했다.


후우, 역시 거짓말을 해선 안 돼.


항상 결백하고 정직하고 진실되고 거짓 없어야 한다.


왜냐면 자신은 히어로니까.


“어쨌든 클럽, 부끄러워도 연습하도록 하자. 응. 익숙해지면 훌렁훌렁 치마를 까도 부끄럽지 않게 될 거야!”

“...여자로서 어떤가 싶네요 그건....”

쾌활하게 팬티를 보이는 스페이드를 바라보며, 클럽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루 빨리 빌런의 마수에서 모두를 구해내야겠다...!



* * *





회의는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7번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례 회의를 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을 심각한 임무에 대해 의논하거나, 할 일이 없을 때는 다과를 먹으며 잡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근데 내일이  정례 회의날인데... 왜 굳이 오늘 급하게 회의를 잡았을까?’


클럽은 회의를 위해 책상을 준비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회의 준비 같은 잡일은 막내인 자신이나 아리아의 일이었다. 그리고 애플은 오늘 임무 때문에 본부에 가있다. 애플이 있었다면 애플이 해주었겠지만. 없는 사람을 바라봐야 소용없다.

“하이~ 클럽.”


“어여, 어여, 잘 지냈나? 클럽.”

스페이드는 함께 준비를 도와주었고, 그 외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코코, 그리고 체크도  뒤에 따라들어왔다.

두 사람도 들어오면서 인사랍시고 스커트를 잡고 팬티를 보여줬다.

아득한 선배님들이 보여주시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헬로헬로, 코코~. 안녕하세요, 체크 언니.”

“......안녕하세요...!”


부끄러운 얼굴로 팬티를 보이는 스페이드를 따라, 클럽도 벌레 씹은 표정으로 따라서 팬티를 보여주었다.

‘Fuck! Fuck! Fuck!!!’


속으로 욕을 연발하고 13호를 천갈래 만갈래 찍어죽인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이어서 라헤 대장이 찾아왔다. 모두가 기립해 팬티를 보여주고, 라헤 대장은 제복 앞을 풀어 브래지어에 감싸인 풍만한 유방을 보여주었다.

대원은 팬티를 보여준다면, 대장은 브라를 보여주는  룰이자 예의다. ...모두에게 그렇게 주입되어 있었다.


‘...저게 뭐야, 과시야? 자기 찌찌가 크다고 지금 자랑하는 거야?’


라고 다소 삐딱한 생각이 들고만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부 모였나요?”


“네. 아리아 대원은 현재 본부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은 저쪽으로 갔으니까요... 슬슬 다른 인원으로 보충해 줄 때가 됐는데요.”

라헤는 아쉬운 듯 중얼거리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니다.


“저, 라헤 대장?”


“예?”

“...아뇨, 아무 것도.”

클럽이 의아해 하며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라헤의 묘한 박력에 질문을 삼켰다.

지금 라헤가 앉은 곳은 애플의 자리다. 항상 대장은 지정석인 상석에 앉는데.


아니, 뭐, 가끔 다른 데 앉고 싶어질 수도 있지. 클럽은 그렇게 납득하기로 했다. 다들 아무 말 없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올 사람은 다 왔으니 이대로 회의를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잠깐 기다릴까요. 아직 전원이 모이지 못한 것 같으니까.”

“예? 라헤 대장? 지금 아리아 빼고 전부 모였는데요?”

“무슨 소릴 하는 건가요, 클럽? 7번대는 이대로 다 모인 게 맞긴해요. 그런데 회의에는 아직 올 사람이 남았잖아요?”

전혀 의문스럽지 않다는 듯 말하는 라헤.


그 모습에, 클럽은 어떤 불안감이 맹렬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잠시만요, 라헤 대장, 설마――”


“이야~ 늦어버렸지! 미안해! 갑자기 똥이 마려워져서!”


클럽의 말을 끊듯, 천박한 인사말과 함께 회의실 안에 난입해 들어온 인물.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

클럽은  두 사람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볼 것도 없지만, 나타난 두 사람은 빌런 조직 【어비스】의 일원, 13호와 참모였다.



* *



“그럼 7번대는 이게 다인가?”

“예, 사령관님. 본부에 가있는 대원 1명을 제외하면 전원 자리에 있습니다.”

“오케오케. 좋았어. 자, 그러면 회의를 시작해볼까? 내가 주도해도 괜찮은 거지?”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라헤 대장의 지정석이나 다름 없던 회의실의 상석.

지금 그 자리에는 13호가 책상 위에  발을 올린 무례한 자세로 앉아있다.


그 모습을 클럽은 믿을 수 없는  본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자기 저 빌런 놈이 신성한 회의를!

부글부글 끓는데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클럽은 화를 가까스로 삭이며 속내를 숨겼다.

지금 여기서 들켜선 안 된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자... 참아....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클럽.

그러나.

“그럼 오늘의 회의 주제는... 『히어로 클럽의 배신이 의심되는 것에 대하여』. 좋아, 이걸로 갈까?”

이어서 툭 내던져진 13호의 말에.


클럽은 얼굴이 확 구겨지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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