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60 히어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3)
【어비스】에서의 할 일을 마친 클럽은, 도망치듯 아지트에서 나왔다. 그대로 남아있었다간 새로운 최면 암시라도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13호 씨는 그대로 못 일어난 모양이에요.’
말 한 마디로 그렇게 깊이 잠들어버리다니.
참모는 13호에게 얼마나 강한 세뇌를 걸어둔 걸까?
‘...전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긴 했는데.’
여자가 되고는 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미지의 생물이다.
뭐하는 인간이야 정말.
‘그런데 왜 저렇게 13호를 따르는 거지...?’
13호가 힘을 잃고 나서도 헌신적으로 몸을 바쳐 섬기고.
여자가 되어서는 스스로 13호를 유혹하고.
...진짜 뭐하는 인간이지. 두개골을 갈라 뇌를 꺼내 연구해보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히어로 기지에 도착했다.
이 길도 이제는 익숙해졌구나...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갔다 할 정도가 되었네.
“클럽~ 왔어~?”
“어라, 코코 씨.”
기지에 도착하니, 현관에 서있던 코코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맞아주었다.
클럽은 허겁지겁 코코에게 달려갔다.
“여기서 뭐 하고 계셨나요?”
“뭘 하긴, 클럽을 기다렸지~.”
“엣.”
“고생했을 거 아냐. 혹시 참모나 13호한테 뭔가 당한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고. ...뭐, 분위기를 보니까 이상한 짓은 안 당한 모양이네.”
코코는 눈을 가늘게 뜨고 클럽을 위아래로 살폈다.
성격이 잘 맞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는, 클럽을 친동생마냥 각별히 신경 써주는 일이 많았다. 클럽은 조금 감동했다.
물론 그 뿐만이 아니라, 클럽은 지금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유일한 패기도 하다.
【어비스】의 손에 7번대가 완전히 지배당하길 근 몇 달.
아리아나 체크, 스페이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대장인 라헤마저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생각 자체가 뿌리채 뽑힌 것 같았다.
히어로가 빌런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데, 모두가 그게 당연한 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잘못 됐다.
그렇게 말하는 코코도 지금 세뇌 아래에 있지만.
세뇌의 틈새를 찔러서 어찌어찌 어느 정도 자유는 누릴 수 있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건 다른 멤버들과 똑같았다.
클럽만이.
세뇌의 여파가 약해져가는 클럽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클럽이 당하면 우리 7번대는 진짜 끝장이야.”
“예... 책임이 막중하네요.”
“겁먹었어?”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저는 히어로니까요.”
“든든하네. 전부 맡기게 되어서 미안.”
코코가 칭찬하듯 키가 자기보다 머리 반 개는 작은 클럽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는데, 우우웅- 하고 주머니가 울렸다.
“전화가 왔네...? 올라가, 클럽. 나는 통화하고 갈 테니까. 오늘 하루 수고했어~.”
“네, 코코 씨. 좋은 밤 되세요.”
인사를 마친 클럽은 코코를 뒤에 남기고 숙소 층으로 올라갔다. 오늘도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피곤하다....
쏴아아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물이, 클럽의 새하얗고 싱그런 피부에 닿아 흘러 떨어지거나 튕겨나갔다.
나신의 클럽은 가지런한 흑발을 공들여 씻으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피곤하네요.’
체력적인 문제라기 보단, 정신적인 문제다.
역시 자신의 작은 어깨에, 7번대를 책임지는 일은 너무 무겁다.
클럽은 7번대에서 아리아 다음으로 어린 멤버다. 대학생이면서 겸업하고 있는 스페이드와 달리 풀타임으로 일하곤 있지만, 그래도 역시 경험도 연륜도 부족하다.
‘스페이드 씨는 중학생 때부터 히어로 일을 했다죠.’
클럽은 각성자 전용 시설에서 학습하고 훈련받으며 성인이 됨과 동시에 히어로가 되었다.
그러나 스페이드는 어떤 사건에 휘말린 것을 계기로 재능이 발견되어, 중학생 때부터 빈번하게 히어로 일에 한 발 걸쳤다고 들었다.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아리아는 뭔지 모르겠는데 가끔 체크 씨보다 대단한 관록 같은 게 보인달까... 인생 몇 회차 같은 느낌이 들고요. 능력 때문인가?’
애초에 【지휘부】 소속이기도 한 아리아와 비교하는 것도 그렇다.
현장직과 사무직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로치면 전무와 평사원...?
“아니, 생각이 이상한 데로 빠졌네요. Fuck.”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데.
어쨌든 문제는, 그 유능한 사람들이 전부 13호의 마수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독니에 물려서 꼼짝달싹 못하고 굴복한 상태다.
이대로 평생 13호의 노리개로 살아가야만하다니...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그도 그럴게, 13호는 빌런이고, 그녀들은 히어로니까.
이런 관계에 미래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유일하게 독니가 빠진 자신이... 해야만 한다. 모두를 구해야 한다.
모두를 속이는 한이 있어도, 최대최악의 거짓말쟁이가 되더라도, 오물을 뒤집어 쓰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모두를 구할 것이다.
쏴아아아아아아――
샤워기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그 물이 기분이 좋아, 클럽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려워.’
【어비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서인걸까.
어쩐지 거기가 간질간질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클럽은, 샤워기 호스를 손으로 들고 아래로 가져갔다. 민감한 보지균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호스를 가랑이 아래에서 뒤집어 사타구니로 향했다.
분수처럼 위로 쏟아지는 여러갈래의 물줄기.
그녀의 민감하고 소중한 곳을 향해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안마기 정도의 딱 좋은 자극.
클럽은 붉어진 얼굴로, 달콤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좋아... 아냐... 기분 좋지 않아... 이런 야한 거....’
이 정도로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민감한 곳을 자극당할수록, 13호와 참모의 손길이 기억나서... 그때의 기뻐했던 감각이 흘러 들어와서... 아아... 이 이상 떠올려버리면....
“읏....”
클럽은 화들짝 놀라며 샤워기를 떼었다.
“......크, 큰일날 뻔했네요... Fuck.”
만약 그대로 떠올렸으면, 기껏 풀려가던 세뇌가 코알라처럼 도로 달라붙을 뻔했다.
끄응.
클럽은 마지막으로 몸 전체를 헹군 후, 욕실 밖으로 나왔다.
* * *
“푸하~.”
목욕을 마치고 나온 후, 클럽은 팬티 한 장과 머리에 수건만 두른 채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을 한 잔 꺼내 마셨다.
인터넷 통판을 통해 구입한 『지방이 가슴으로 가는 우유』!
클럽은 매일 아침과 밤으로 한 잔씩 마시고 있다. 두 잔 이상 마시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하니, 계량컵까지 이용해 세심하게 조절하며 마신다.
비싼 돈 주고 산 거니까, 분명 이번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저번에 산 『지니고 있기만 해도 가슴이 커지는 돌』이라던가!
소문이 자자한 『가슴이 커지는 체조법』이라던가!
『가슴이 커지는 법』이란 책에 딸려온 『가슴이 커지는 크림』이라던가!
전부 효과가 없었지만, 분명 이번에는 있을 것이다. 분명히!
믿는 자에게 복이 오리니!
오오오오!!
“...Fuck, 제발 좀 커져라.”
클럽은 신경질적이게 자신의 납작한 가슴을 차박차박 두들겼다. ...응. 역시 레몬 정도는 있다. 껍질은 아니라 이 말씀이야.
“.............................뭐해?”
“꺄아아악?!”
별안간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클럽이 허를 찔린 토끼처럼 침대 위로 뿅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고양이처럼 네 발로 엎드린 채 경계했다.
“어머나. 놀라게 해버렸넹~.”
“어, 어라...? 코코 씨...?”
갑작스런 불청객.
그 정체는 코코였다.
왜 갑자기 여기에 코코 씨가? 아니, 그보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래?
“근데 클럽, 방이라곤 해도 브라는 해야지~.”
“엇, 아니, 그게... 압박이 적으면 가슴이 커지지 않을까 싶어서....”
“흐응? 잘 맞는 브라를 쓰면 오히려 모양이 잡히면서 더 커진다던데~.”
“진짜요?! God Damn! 내 가슴이 작은 건 브라를 안 차고 자서 그랬던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그렇다고 할까.”
코코가 여유롭게 웃었다.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어봤더니, 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그냥 열고 들어왔다는 모양이다.
응......?
내 프라이버시는...?
“아하하, 우리 사이에 뭘~.”
“...코코 씨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서 왜 왔는데요? 아, 코코 씨도 우유 한 잔 마실래요?”
“우유는 됐어~. 그리고 여기 온 이유는 말이지, 참모 님이 부탁하신 게 있어서~.”
“마시기만 해도 가슴이 커진다는 우유인데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아니면 가슴이 큰 사람의 여유인 건가――네?”
방금, 뭐라고 했지?
참모라고 하지 않았나?
우유를 냉장고에 집어넣던 클럽이, 말의 진의를 파악하듯 의아해하며 돌아보았다.
“야앗~★”
그러자 어느샌가 바로 뒤까지 다가 온 코코가, 클럽의 입을 뭔가로 덮었다.
뭔가에 적셔져 축축한 손수건. 익숙한 달콤한 향기.
이건... 이것은...!
“......!”
“저런, 잠시만 가만히 있자, 클럽?”
사지를 꼼짝 못하게 구속하는 관절기에 걸려, 제대로 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코코는 체크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제압형 체술에 능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클럽의 저항이 약해졌다.
눈에서 차츰 빛이 사라지고, 저항하려고 휘젓던 손이 툭 떨어졌다.
코코는 그런 클럽의 상태를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자 손수건을 떼었다.
“......참모 님. 끝났습니다.”
그리고는 여느 세뇌당한 히어로들과 다르지 않은 몽롱한 눈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으로 어느 빌런에게 연락했다.
* * *
‘..........................................어라.’
클럽은 묘한 감각 속에 둘러 쌓여있었다.
둥실둥실 떠 있는 듯한 감각이 기분 좋았다.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느낌이다.
아아, 기분 좋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떠있고 싶다.
이대로면 정말 어디까지든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개방감, 이 자유.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였다.
‘......으윽?!’
갑자기 몸에 찾아오는 묵직한 무게감.
마치 날개를 잃고 하늘에서 저 무저갱 같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감각.
무겁다무겁다무겁다무겁다무겁다무겁다무겁다무겁다.
무겁고, 무섭다.
‘싫어... 싫어... 풀어줘... 날고 싶어...!’
――날고 싶나요?
순간, 머릿속에 그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가느다란 미성(美聲)의, 어딘지 유려하고,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
――가벼워지고 싶나요?
착각이 아니다 같은 목소리다.
클럽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게 해주세요. 가벼워지고 싶어요. 필사적으로 애원한다.
――행복해지고 싶나요?
새로운 질문. 당연하다. 행복해지고 싶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다시 한 번 묻지. 행복해지고 싶어?
목소리가 바뀌었다. 조금 전보다 훨씬 굵은 남자의 목소리. 이것도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다.
분명, 13호라는 이름의, 어느 허접한 빌런의 목소리와 비슷한 것 같은.
――그렇다면.......
가느다란 미성과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들려왔다. 마치 메아리 같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떠올리려하면 마치 붙잡은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르륵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이 목소리대로 따르면 분명 행복해질 것 같았다.
계속, 계속 이대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뭐든, 뭐든 할게요.... 맞아요... 당신들의 말이 옳아요... 당신들의 말대로만 따르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