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59 그건 그 순진한 화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1)
흐... 읏... 으읏....
어느 아틀리에를 연상케 하는 방 안.
여성의 억누른 교성이 울려퍼지고 있다.
교성의 주인공은 목 언저리까지 오는 웨이브 진 흑발의 여성으로, 한 손으론 눈앞에 있는 아이패드 위에 전용 펜을 놀리고, 한 손으론 속옷 위로 은밀한 부분을 문지르며 애타는 마음을 달래고 있다.
반짝 빛나는 화면 위에는, 그녀가 펜을 움직일 때마다 유려한 선이 그려져 나갔다.
4번대의 에이스이자, 종종 대장 대리를 맡는 화가 히어로 메이벨.
평소에 벨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일할 때나 평시에나 전통복장을 입는 그녀지만, 지금만큼은 선이 드러나지 않는 낙낙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쩌다가 공짜로 얻게 된 티셔츠로,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이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되는 밤의 작업 때 종종 입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필할 것이, 티셔츠 아래에 하의라고 할만한 건 푸른 윤곽선의 흰 팬티밖에는 없었다.
바지도, 스커트도 입지 않고 있다!
어차피 이 시간, 이 방에 있는 한 누군가에게 보일 일도 없고, 그렇기에 알몸이나 속옷차림으로만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게 해서 낙낙한 티셔츠 아래로 빼꼼히 드러난 팬티와, 팬티를 따라 드러나는 음부의 실루엣 위로, 메이벨은 놀고 있는 손가락을 놀려 펜의 움직임에 맞춰 끈질기게 자극하고 문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앗... 흐읏... 읏...!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러면서도 거의 흐트러지지 않는 손으로 모니터에 그림을 그려갔다.
그리고 있는 것은 얇은 선의 일러스트.
주 단위 연재는 히어로 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포기했지만, 외주나 취미용 일러스트 정도는 꾸준히 그려서 올리고 있었다.
지금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이건 본계정이 아닌 뒷계정에 올리는 그림이다.
살짝, 아니, 조금 많이 야한 일러스트.
일러스트의 주인공은, 자신을 똑 본뜬 여성.
메이벨은 몽롱한 눈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자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으으... 읏... 후...우.......”
그녀도 자위 정도는 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이었다. 해봐야 한 달에 한 번. 주기가 짧으면 2주에 한 번.
하지만 최근 빈도가 심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더니, 사흘에 한 번, 그 다음엔 이틀에 한 번... 이제는 하루에 두 번은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분명....
‘13호 그 놈을 만나고 나서부터랑께....’
그 녀석을 만나고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과거 큰 상처를 입고서, 응급조치로 13호에게 어느 약을 주입 당했다.
총에 맞아 뚫린 상처가 한순간에 나아버릴 정도로 파격적인 약이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13호의 체액을 몸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저번에 그 놈이랑 만난 게... 일주일 전....’
13호가 찾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피했다. 여러모로 불편한 기분이라.
‘부작용이 심해져 가....’
체액을 섭취하지 않는 부작용.
마치 발작처럼 몸 안 쪽이 간질간질해지고, 몸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꼭 죄이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위로해주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는....
한마디로 발정해버린달까.
“으으읏~~!”
메이벨이 고개를 숙이며 파르르 떨었다. 가버린 것이다.
조금 전에 절정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하아....”
한숨과 함께, 미완성의 그림을 빠르게 완성시켰다.
저장해서 뒷계정용 폴더에 넣고 나니, 최근 사이 급격하게 늘어난 폴더의 내용물이 착잡했다. 전부 야한 일러스트다.
...축축하게 젖은 속옷이 기분 나쁘다.
메이벨은 허탈한 표정으로, 펜을 든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부족해....”
* * *
“야, 13호.”
“응?”
“이거.”
아이들이 더욱 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근처 PC방의 컴퓨터에 중요한 순간 마우스가 먹통이 되어버리는 바이러스를 심어놓을 계획을 짜고 있는데, 도로시가 내게 얇은 책을 던졌다.
자세히 보니 명품백 카탈로그였다.
“이게 뭔데?”
“보면 몰라? 카탈로그잖아.”
“아니, 이걸 왜 주냐고.”
“하, 눈치가 없네.”
도로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 낼 모레 생일이야.”
“어, 진짜? 축하해. 아, 축하해줄게.”
“너 같은 놈 축하는 필요 없거든?”
그럼 왜 말한 건데?
대화의 캐치볼이 좀 이상하다. 아니면 이 여자의 머리가 이상하거나.
“축하는 필요 없는데, 선물은 준비해.”
“.......”
“카탈로그에 내가 원하는 선물에 동그라미 쳐놨으니까. 알아들었지?”
떨떠름한 기분이다. 선물이란 건 마음을 전하는 거니까, 역시 열심히 고민한 끝에 주는 거면 뭐든지 좋은 게 아닐까.
“그딴 게 어딨어.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주는 쪽이 오히려 민폐야. 치우기도 애매하고 버리기도 애매하고. 네 선물이라면 마음 편하게 버리겠지만.”
“야.”
“그리고 이렇게라도 안 하면 또 이상한 거 살 거 아냐 멍청아!”
도로시는 언짢은 눈으로 그런 나를 노려봤다.
“작년에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면서 그 꽃으로 치장된 전위예술 같은 괴상한 백 사줬던 거, 아직도 안 잊었거든. 가격은 쓸데없이 더럽게 비싸고! 하필 사도 그딴 걸 사냐... 정말...!”
“여자들은 꽃무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꽃무늬도 아니고 꽃 그 자체였잖아. 넌 센스가 궤멸적으로 없으니까 나중에 여친 선물 줄 거면 꼭 물어보고 사라.”
그 정도냐. 슬픈 일이다.
하긴, 예전에 여동생한테도 똑같은 소릴 들었더랬지. 새겨듣도록 하자.
그런데 도로시 생일 선물로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오는 문어항아리』를 사놨는데 어떡하지.
......
꽤 비싸게 산 거니까 기뻐해주겠지. 생일날 새벽에 몰래 방 앞에 놔두도록하자.
“그런데 어디 나가?”
“응? 4번대 가려고.”
“그래. 4번대, 4번대라....”
도로시는 다크서클이 내려온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실 그 여자는 아직 안 돌아왔대?”
“그런가봐.”
“......그 여자는 조심해, 13호.”
“응? 딱히 문제될 건 없는데.”
실은 가끔 만나긴 하지만 분위기는 좋다. 소피아 때는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딱히 걱정할 건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더니 도로시가 지긋지긋한 눈으로 노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여자는. 알겠어? 여자는 누구나 독사를 100마리쯤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생각하란 말야.”
“독사를....”
“그래. 언제 어디서 독니에 물릴지 모르니까 조심해 멍청아. 넌 자기편이라 생각하면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비슷한 지적을 소피아한테서도 들었었지.
으음... 말한대로 조심하도록 할까.
최대한 빨리 틈을 노려서 세뇌하던가 해야겠다.
“그런데 그 여자는 세뇌 안 시켜? 메이벨이었나.”
“그게 말이지, 잘 안 먹혀.”
“응?”
“그때 주입한 포션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약도 도구도 잘 안 먹혀.”
지금은 포션의 부작용인 발작 때문인지 정상적인 사고능력이 잔뜩 흐트러진 모양이라 내게 반항하거나 적대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든 세뇌가 먹히지 않은 지금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상태다.
“애플을 데려가면 되잖아? 도구도 필요 없이 반짝 세뇌.”
“그걸 아니까 저쪽에서 엄청 경계한다고.”
생각도 방법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정타가 필요하다.
세뇌 없이 확실하게 떨어뜨릴 방법이.
그렇게 고민하는데, 등 뒤에서 또각, 하는 발소리가 울렸다. 도로시가 눈을 크게 떴다.
“어머나, 13호. 심심해서 와봤는데 어디 가?”
“어.......”
들어본 적 있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마녀 같은 차림새에 컬이 들어간 긴 흑발의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재밌는 얘기를 하는 것 같네. 벨 얘기면 나도 좀 껴주라?”
히어로협회 4번대의 대장, 실이 아지트에 와 있었다.
* * *
――두근, 두근, 하고 가슴이 뛰는 게 느껴졌다.
메이벨의 일상은 바쁘다.
기본적인 히어로 활동을 제외하고서도, 은퇴를 생각해 자주 자리를 비우는 대장의 업무를 나눠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취미생활까지 생각하면 역시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어젯밤에도 『그거』 한다고 또 늦게 잤고.’
지금 떠올려보니 그냥 죽고 싶어졌다. 그런 저속한 행위를 밤 늦은 시간까지 계속 하고 말았으니까.
덕분에 다크서클이 생긴 게 아닐까 신경 쓰였다. 늦잠은 피부의 적이다. 메이벨은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슬슬 그 문디한테 찾아가봐야 될 것 같긴 한데....’
메이벨 쪽에서 피하긴 했지만, 이 이상 피했다가는 정말 몸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도 심장이 뛰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다.
‘13호를 피할 수는 없어. 그러면 최소한 이쪽이 리드할 방법을 생각을 해봐야....’
그렇게 생각하며 산더미 같은 서류를 들고 행정실 문을 콰당! 열자.
“아, 아앗... 13호님...! 그만...해주세요...!”
“흐음. 프로그램으로 육체를 조작하니까 웬만한 건 다 되는 구나. 지금은 손을 만지는 데도 클리토리스를 만지는 기분이라 이거지?”
“네, 네헥... 클리토리스랑 신경이 연결된 것 같은... 후, 후끼익~!”
“유두는 절정 스위치고.”
“흐야... 네... 지금 설정은... 왼쪽 유두는 절정 온(on)이고... 오른쪽 유두는 오프(off)... 예요... 오프 상태에선 절정 못해요....”
“다른 기능은?”
“겨, 겨드랑이를 쓸어올리는 것으로 감도를 올리거나 내릴 수 있어요....”
“그렇군, 시험해볼까?”
“후아응~~~~!”
책상 위에서 가슴을 칠칠찮게 드러낸 채, 엔데가 13호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꺼지랑께! 좀!”
메이벨은 13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쫓아냈다.
이 뻔뻔한 빌런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기지에 쳐들어와서 4번대의 히어로들을 농락하고 있다.
신성한 히어로의 집무실에서, 감히 말 뼈다귀 같은 빌런자식이 당당하게 들어와 야한 짓을 해대니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었다.
“베, 벨....”
“엔데 이 가시나야! 닌 조용히 있그라! 그보다 이놈 여기 들어놓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당께!”
“그, 그치만 난 13호님의 명령에 거스를 수 없는 걸....”
“~~~~~~~~~~~!?”
발그레한 채 몸을 배배 꼬는 엔데의 모습에, 메이벨은 열불이 뻗쳐 벽을 쾅쾅 두드렸다.
13호는 재미있는 광경을 본다는 듯이 그런 그녀를 히죽이죽 바라보았다.
“벨도 슬슬 솔직해지라니까? 나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잖아?”
“닥치랑께!”
메이벨의 손이 13호의 멱살을 콱 붙든다.
“난! 부작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니랑 엮이는 것 뿐이랑께! 니는 단순한 약! 진통제! 느그는 약 따위한테 이상한 맘 품고도 허나?!”
“그래그래, 알았어. 갈게, 가면 되잖아. 이러다 진짜로 체포해갈까봐 무섭네.”
“체포도 아니고, 요로코롬 문제만 없었으면 느그는 이 자리에서 뒈졌을 것이여!”
“그래그래. 알겠다고. 그 전에――”
13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메이벨의 머리 뒤에 손을 올리고 끌어당겼다.
“!?”
살짝 벌어진 입이, 13호의 입과 겹쳐졌다. 깜짝 놀라는 입을 밀려들어오는 혀가 비집어 열고, 잇몸과 볼을 핥았다.
입 안에 타액이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
꿀꺽.
메이벨은 안에 흘러들어온 타액을 반사적으로 삼켰다. 그리곤 상기된 뺨으로, 눈물이 살짝 맺힌 눈을 꼭 감고 13호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우음... 추릅... 13호...!”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밀어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몸은 그녀의 의지를 벗어나 멋대로 13호를 요구하듯 움직이고 있다.
마치 뱀처럼 빨아내듯 추접한 소리를 내며, 13호에게서 타액을 받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혀를 얽어간다.
아아, 어떡하지... 얼굴... 발정해 있는 게 티나진 않겠지...?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지만, 부풀어 오르는 욕정이 이성을 꾸깃꾸깃 접어버렸다.
농후한 키스. 그리고 먼저 고개를 뗀 것은, 의외로 13호였다.
“아.......”
메이벨이 아쉬운 듯한 소리를 냈다.
“좋아. 약 전해주러 온 거니까. 이제 충분하지?”
“........”
“벨?”
“...그래. 충분... 하당께.”
어쩐지 영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는 메이벨.
그런 메이벨의 귓가에, 13호가 속삭였다.
“『그때』, 기분 좋았지?”
“!?”
“이제 타액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텐데.”
“!?!!”
“원한다면, 언제든 해줄 수 있어. 뭣하면 지금 할까? 혼자가 부끄러우면 엔데도 껴서?”
“!?!!!!??!”
마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메이벨은 가녀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나 곧 버들가지 같은 눈썹을 사납게 오므리고, 눈을 부릅 떴다.
자신은 7번대의 호락호락한 히어로들과는 다르다.
그, 그, 그, 그런 파렴치한 짓을, 짐승마냥 언제 어디서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해대는 그 여자들이랑은...!
“퍼뜩 꺼져버리랑께! 이 파렴치한!”
“알겠어, 알겠어.”
13호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는, 여유롭게 떠나가려했다.
그러다 마침 생각났는지 이 쪽을 살짝 돌아봤다.
“저기, 너네 대장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
“모른당께. 벌써 못 본지 일주일은 됐어야. 그건 왜?”
“아냐, 아무 것도.”
“...? 이상한 녀석....”
그 말을 끝으로 정말 더 일이 없다는 듯 미련없이 떠나갔다.
“......끄응...!”
뒤에 남겨진 메이벨은 안절부절하며 손가락을 꼬았다.
그 눈은 뭔가를 바라듯이, 혹은 뭔가를 원망하듯이 멀어져가는 13호의 등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