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57 소피아 함락(4)
“하, 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피아......!”
소피아는 탁자에 놓여있던 노트를 집어들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바닥에 주저앉은 13호를 노려보았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
하등한 수컷 같으니!
“무방비하게 제 노트와 펜을 이런데에 두다뇨... 그 멍청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어요.”
“......역시 거짓말이었냐, 항복한다는 것도, 몸도 마음도 나한테 바친다는 것도.”
“당연하지! 누가 당신 같은 하등한 수컷한테!”
소피아가 앙칼지게 외쳤다. 굴욕을 느꼈던 조금 전까지의 행위에 소피아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지만, 분노는 빠른 속도로 수그러들었다.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 반격의 시간이니까.
“하긴. 애초부터 그렇게 쉬운 여자일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흥. 상당히 여유롭네요, 당신.”
“이봐, 소피아. 지금이라도 그거 내려놓고 나한테 굴복하겠다고 맹세하면 용서해줄게. 안 그러면 용서고 뭐고 없다?”
기이하게도, 소피아가 다시 그녀의 ‘무기’를 들었음에도 13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 마력이 남아 있는 걸까.
확실히 13호의 능력은 정면에서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눈 앞에서 직접 보고서 확신했다.
“용서.....? 당신,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본데... 이대로 제가 도망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소피아의 능력은 애초에 치고박고 싸우는데에 적합하지 않다. 13호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신의 능력을 풀로 전개하면 도망 정도는 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한국의 히어로협회, 아이우스에도 협력을 요청해 13호를 습격하면 된다.
아무리 13호여도, 작정하고 밀려오는 히어로들은 감당해내지 못하겠지!
“스페이드의 기억으로 다 봤습니다! 당신들의 수법도! 아지트도! 약점도! 인원도! 7번대와의 관계도! 전부 다! 물적인 증거까지 다 있어요! ...당신이야말로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시죠...!”
소피아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노트를 보고, 펜을 고쳐들었다.
13호가 달려들기 전에 뭐라도 써낸다면, 자신의 승리다.
“너, 진짜 후회할 텐데.”
13호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들렸지만, 무시했다.
후회는 무슨. 여기서 포기하고 평생 노예로 사는 것 이상으로 최악인 일이 어디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소피아였으나, 다음 순간 눈을 크게 뜬 채 얼어붙어버렸다.
“어......?”
펼쳐진 노트에는, 이미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뭐라도 쓰기 위한 백지를 찾아서 그냥 넘겨버리려 했지만, 쓰여진 내용이 신경 쓰였다. 자신의 글씨긴 한데, 이런 내용을 쓴 기억이 없었다.
【거짓말은 죄입니다. 저, 소피아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온 몸의 성감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죄에는 벌이 필요합니다. 저, 소피아는 죄를 지으면 용서 받기 전까지 절정할 수 없습니다. 쾌감은 높아지지만, 절정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순수한 대결이라면 거절하지 않습니다. 저, 소피아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지나친 프라이드는 죄입니다. 저, 소피아는 핸디캡으로 온 몸이 성감대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입은 보지처럼, 유두는 클리토리스처럼 느껴집니다.】
【아이우스의 커맨더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집니다. 저, 소피아는 패배할 시 모든 것을 내놓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키스는 마음을 여는 수단입니다. 저, 소피아는 키스를 하면 몸도 마음도 활짝 열려버립니다.】
소피아의 이마에, 또르륵, 식음땀이 흘러내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느껴졌다.
“마, 말도... 말도... 안 돼....”
빼곡하게 적힌 내용을 빠르게 훑고, 페이지를 넘겼다. 마찬가지로 같은 종류의 내용물이 자신의 글씨체로 잔뜩 늘어서 있다.
13호는 태연자약하게 일어나, 소피아를 향해 선뜻 다가왔다.
“세뇌는 말이야, 일단 익숙한 습관이나 약점을 파고드는 게 정석이라더라고.”
“습...관....”
소피아는 늘 글을 쓰면서 지내고 있다. 막 잠에서 깬 비몽사몽 한 때에도, 깔끔하고 흐트러짐 없게, 필요한 내용을 적어내려간다.
“세뇌약을 먹인 네게 이것저것 쓰게 시켰는데... 노골적인 건 쓰는 걸 거부하더라고. 노예계약서라던가, 그런 건 어떻게 해도 안 됐어.”
그 말대로, 노트에 적힌 내용물 중 지나치게 노골적인 내용은 의도적으로 피한게 보였다.
거기다 어렴풋하게 납득할만한 인과(因果) 또한 만족하는 내용들이다. 정정당당하지 못하면 페널티가 있다거나... 어떤 결과가 오기 전에 반드시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힘들었다고? 트랜스 상태에서도 납득이 안 가는 건 절대로 적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네가 허용하는 범위를 야금야금 찾아가면서 그만큼이나 적은 거야. 나도 참 대단했지~.”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 네 페이지... 더 많아... 얼마나 쓴 거야....
인과가 맞지 않는 노골적인 내용을 피하면서, 이만큼이나 적을 수 있었다니.
“아냐... 아냐! 그래... 이딴 거, 지워버리면... 전부 취소해버리면!”
그래봐야 자신의 능력이다. 종이를 찢어버려도 좋고, 단 한 문장, 【상기한 내용은 무효입니다】라는 말만 적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소피아가 겨우 찾아낸 페이지의 끝에 그렇게 적었더니, 그녀가 쓴 글씨가 곧바로 뭉개져 버렸다.
대신 페이지의 끝자락에 적혀있던 글자가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게 보였다.
【상기한 내용은 쌍방의 동의가 있지 않으면 수정할 수 없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효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딸그락.
털썩―
소피아는 손에서 펜을 떨어뜨리며, 바닥에 힘 없이 주저앉았다.
빛을 잃은 그녀의 눈이, 팔랑팔랑 넘겨지는 노트의 내용물을 반사적으로 읽어내려갔다.
【저, 소피아는―】
【저, 소피아는―】
【저, 소피아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자신의 손으로 쓴, 자신을 옭아매는 문장들.
도망은 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하면 페널티.
정정당당.
져버리면 모든 건 13호에게.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게 말했잖아, 소피아. 후회할 거라고.”
“......13호...!”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13호를 올려다보며 이를 가는 소피아의 팔을, 13호가 다시 침대로 잡아 끌었다.
* * *
“이것 놔......! 13호... 13호오오오...!!”
소피아는 필사적으로 뿌리치려 했지만, 양 팔을 붙잡힌 소피아는 도저히 13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눕혀진 채, 목 언저리를 할짝할짝 핥아대는 13호의 혀에 소피아는 분한 듯 고개를 돌렸다.
고작해야 목덜미가 핥아진 것인데, 하등한 남자에게 손목을 잡혀졌는데,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단순히 약이나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온 몸이 성감대가....
――거짓말을 하면....
“소피아. 나는 마음이 아주아주 아파. 나는 널 믿어주고 싶었는데, 네 몸도 마음도 다 바쳤다고 했을 때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걸 용서해주고 기쁨을 주고 싶었는데... 전부 거짓말이었다니.”
“지랄하지마, 쓰레기 같은 남자...!”
연극조로 슬퍼하는 척을 하는 13호에게, 소피아가 분한 듯 외쳤다.
“애초부터 내가 항복할 거라곤 생각 안 했잖아요...! 굳이 내가 절대 납득 안 할 만한 요구를 해서,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한 거잖아요!”
그 계략에 홀라당 넘어가 버린 소피아는, 13호가 의도한 대로 반복해서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마다 늘어난 성감은, 자각한 지금 13호의 손이 닿는 것만으로 미쳐버릴 것처럼 몸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설명할 수고는 덜겠네.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큿......!”
늘어난 성감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13호가 자신의 거짓말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3호는 자지를 소피아의 음부에 맞추면서, 유혹하듯 속삭였다.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봐, 소피아. 네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나한테 몸도 마음도 바치겠다고, 영원히 내 육인형이 되겠다고 맹세하면, 넌 그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고, 바라는 대로 갈 수도 있어. ...뭐, 얼마나 버틸지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할까.”
“장난――”
하지마, 라고 외치려 한 소피아 였지만.
쯔걱......!
“하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질벽을 가르고 들어온, 단 한 번의 찌르기에 그녀의 의식이 갈가리 찢어졌다.
일찍이 13호는 7번대의 히어로 클럽을 굴복시키기 위해, 속임수 같은 형식으로 감도를 100배 넘게 끌어올린 적이 있었다.
다만 세뇌를 이용한 감도증가에는 한계가 있어서, 실질적인 수치로 계산하자면 실제론 100배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까지 밖에는 늘어나지 못했다.
굳이 세뇌에 의존하지 않고 약이나 도로시의 개조기술을 이용해 감도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피아의 경우는, 자신의 문장의 내용을 현실로 만드는 【트루 스토리】로 인해 정확한 수치만큼 감도가 늘어나고 있으니... 평범한 정신으로는 견디지 못할 쾌감이 덮쳐오고 있을 것이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그 결과라는 듯.
안쪽 깊숙한 곳을 찔러 들어오는, 단단한 남자의 상징. 몸 안에 밀쳐 날뛰는 저릿함에, 소피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벌어진 입을 닫을 줄을 몰랐다.
안 돼.
안 돼.
안 돼애...... 단 한 번의 찌르기로... 이 모양이야...!
“흐아... 안 돼... 이런 거... 못 버텨......!”
“흐음.”
쯔억...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13호가 무심하게 허리를 왕복시키자, 소피아가 기성을 지르며 이를 악물었다.
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
13호가 허리를 움직이며, 집요하게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음탕한 액으로 젖은 소피아의 보지는, 13호의 육괴가 출입할 때마다 환영하듯 옴죽옴죽 달라붙었다.
하아앗... 앗... 읏... 흐이잇...!
앙 다문 입술에서는 뜨거운 한숨과 흐트러진 신음이 새어나왔고, 흰 눈처럼 새하얗고 매끄러운 육체와 탄력 있는 과실 같은 양 가슴이 울 듯이 떨렸다.
13호는 그조차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듯, 떨리는 가슴의 정점에 선 돌기를 혀끝으로 굴리며, 그 가운데 패인 곳을 혀끝으로 자극했다.
마치 클리토리스처럼 느껴지는 유두에 13호의 혀가 닿자, 소피아는 머릿속이 저릿저릿하게 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나 당하고 있는데도... 전혀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소피아, 키스할까?”
“아, 안 돼요... 안 돼... 키스는... 안 돼애...!”
“그럼 해야지.”
“우읍......!?”
13호는 거절하는 소피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이 닿는 것만으로, 소피아는 번개같이 전해지는 쾌감에 무심코 허리를 들었다.
지금 소피아는 입이 보지처럼 느껴질뿐더러, 키스라는 행위 자체가 그녀의 문을 여는 특별한 것이 되어있다.
【키스는 마음을 여는 수단입니다. 저, 소피아는 키스를 하면 몸도 마음도 활짝 열려버립니다.】
소피아는 자신이 쓴 문장의 힘이 자신을 비집어 가르고 여는 게 느껴졌다.
이미 두 팔을 13호에게 붙잡혀 꼼짝 못 하는 상태, 거기에 이어서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이성의 둑이, 이 순간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벌레 표본처럼, 그녀의 몸도 마음도 13호의 앞에서 활짝 벌려진 채 꼼짝달싹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 여파는, 바로 다음 찌르기에 곧바로 밀려들어왔다.
“아, 아아아아아아앗......! 하아아앗...!!!”
어떻게든 쾌감을 줄여보고자 가까스로 컨트롤하던 소피아였지만, 그조차도 할 수 없게 된 채 고스란히 13호의 육괴를 맞이하니, 노도와도 같은 쾌락이 밀려온 것이다.
찌걱, 찌걱, 쩍, 척―
흐이이잇...! 아아아앗...!
가드가 뚫려버린 채, 13호의 피스톤질이 계속되었다.
접합부에서는 애액이 홍수처럼 흘러나와, 시트에 웅덩이를 짓고 있었다. 자궁 입구는 오래 전에 내려와, 13호의 귀두 끝에 닿고 있었다.
쭉 뻗은 그녀의 다리는 13호의 허리를 꼭 죄고 단단히 얽어매고 있었지만, 자신을 좀 먹는 쾌감에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소피아는 그런 걸 깨달을 여유조차 없었다.
이제 더는 구속도 필요 없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13호는 소피아의 손목을 놓고 흔들리는 그녀의 유방을 끈질기게 주무르고, 유두를 통통 두드리기까지 했다.
가슴에서, 질에서 몰려오는 쾌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마그마와 같은 뜨거운 쾌락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그녀의 몸을 태울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피아는 절정을 맞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