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57 소피아 함락(1)
쏴아아――
밖은 치적치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심의 어느 고급스런 호텔방에서, 클로에는 창 밖을 바라보며 떨어져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피아님은 언제 돌아오시려나.’
그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땐, 소피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그녀 나름대로 13호를 붙잡기 위해 움직인 거겠지.
우수하며 뛰어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부하인 클로에와 타마라가 알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재깍재깍, 그녀가 명령을 내릴 때 지시한 장소에 있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게 바로 소피아의 부하된 자로서 필요한 소양이다.
인간이 신의 뜻을 알 수 없듯.
부하인 클로에가 소피아의 뜻을 알 수 없다.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렇긴 한데, 소피아님도 은근히 허당끼가 있어서.’
하기사.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그게 꼭 그대로 받아들여지리란 법은 없지만.
‘솔직히 대단한 사람이지 소피아님은. 그렇게 유능한 사람은 아이우스에서도 별로 못 봤어.’
그 뛰어난 일처리 능력, 일견 오만해보이지만 자신감 넘치는 사교술, 늘 더 앞을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정진하는 자세, 무엇보다 그녀가 바라는 이상을 향한 ‘최단거리’를 바로바로 도출해낸다.
대단한 사람.
동경의 대상.
그녀를 맹신하는 것은 【트루 스토리】 때문이라 해도, 그래도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더라도 소피아가 유능한 여자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사소한 부분에 실수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그녀라도 완벽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곁에서 줄곧 보아왔던 클로에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회의날에 소중히 가지고 다니던 펜을 놓고 오는 바람에 회의 내내 좌불안석이 되었던 적도 있었고. 저혈압이라 가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깨우는 데 힘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사람 의외로 귀여운 부분도 있고.’
혼자서는 밥도 못해먹고, 영국의 인기 마스코트 캐릭터 푸아를 좋아해서 관련 캐릭터 상품을 얻기 위해선 밤을 새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이벤트만 있으면 펜레터를 보내는 귀여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해.’
부하인 자신들에게 명확한 선을 그으려고 하는 한편, 일이 없을 때면 무슨 일은 없는지, 잘 지내는지 스리슬슬 신경 써주고.
자신에게 고민이 있을 때면 신경 안 쓴다는 표정으로 끝까지 들어주고, 오래 고민하고 그녀 나름의 성심성의를 담은 대답을 들려주고.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따뜻한 차와 다과를 곁들이며 함께 바깥을 바라보기도 했다.
‘소피아님, 잘 하고 계시려나.’
클로에는 치적치적 비가 내리는 바깥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렇게 걱정하는 클로에의 마음은, 단순히 【트루 스토리】로 만들어졌을 뿐인 감정은 아닐 터다.
* * *
철컹! 철컹!
“쯧.....! 쓸데없이 튼튼한 걸...!”
【어비스】의 아지트, 그 고문실 안.
기절한 채 이곳까지 끌려온 소피아가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각 침대의 모서리에서 이어진 구속구에 두 팔 두 다리가 구속되어 있었다.
구속구의 사슬에 여유가 조금 있어 가까스로 팔꿈치나 무릎을 구부릴 정도는 되지만, 그뿐이다. 사지가 활짝 펼쳐진 자세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마력까지 이용해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마력을 사용한 신체강화는 그녀의 특기가 아니다.
‘으... 계속 이곳에 있다간....’
코 끝에 달콤한 향기가 돌고 있었다.
아마도 세뇌향. 이 향기 때문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약이나 심리조작 등에 대항하기 위한 대처법 정도는 배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100% 영향을 차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소피아가 낑낑 거리고 있자니.
끼이익- 하고 고문실의 문이 열렸다.
“오, 일어났어?”
뻔뻔한 빌런의 얼굴에, 소피아는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신...! 절 이런 곳에 구속하다니, 이런 짓을 하고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전 아이우스의 하이커맨더예요! 유능한 여자 소피아라고요!”
“뭐 어때, 빌런인데.”
13호는 소피아의 외침을 심플하게 일축하고,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태연한 모습에 소피아는 더욱 더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정말 쓸 게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네? 스페이드나 라헤라면 그 정도 구속구 힘으로 뜯어버렸을 텐데.”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야만스런 여자들이랑 같은 취급하지 마세요.”
“과연, 지성 있는 여자라는 거네.”
13호는 소피아의 곁에 다가와, 빙글빙글 웃으면서 그녀의 모습을 감상했다.
“지성 있는 여자는 육체도 음란하기 짝이 없구만. 덕분에 눈이 아주 즐거워.”
“크으으......!”
지금 소피아는 새하얀 육체를 내비친 반나체 상태다.
그녀가 입고 있던 정장 상의와 타이트스커트, 그리고 골반까지 오던 팬티스타킹은 벗겨져 누워있는 그녀의 옆에 대충 던져져 있었다.
남은 건 끈으로 묶는 타입인,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작은 면적의 검은 팬티, 그리고 팬티와 같은 종류의 검은 브래지어 뿐이다.
팬티 아래로 쭉 뻗어나온 길고 새하얀 다리는 눈부셨고, 브래지어에 감싸인 탐스런 유방이 그녀의 분노에 맞추듯 부르르 떨리는 모습도 상당한 절경이었다.
그 위로 보이는 단정한 얼굴은 굴욕으로 일그러졌으며, 기가 세어 보이는 보석 같은 녹색 눈동자는 13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가 아무리 분노한다 해도, 두 팔 두 다리를 꼼짝달싹 못하는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세뇌향 때문에 어지러워... 하지만 사고(思考)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세뇌향은 여전히 공기 중에 감돌고 있었다. 13호는 아마 항생제 같은 걸 먹어둔 모양인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지만.
“자, 일단 어디부터 벗겨볼까요. 가슴 쪽이 좋아 팬티 쪽이 좋아?”
“무, 무슨 소린가요! 누가 그런 걸 허락할 거 같아요?!”
“비싸보이는 속옷은 정말 보는 것만으로 즐겁네. 스페이드는 아직 이런 속옷은 무린가? ...좋아, 일단 브래지어부터.”
“저리 비켜...! 손 떼...!!”
소피아는 목소리를 떨며, 눈을 치뜨며 13호에게 말했다.
옆에서 보면 분노를 이기지 못해 격정에 떠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머릿속은 차갑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냉정한 시선으로 13호를 훑어보고 있었다.
‘탈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해.’
소피아는 유능한 여자이며, 실패를 용납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아무리 유능해도 실수는 하는 법이고, 실패도 하는 법이다.
진정 유능한 사람은 실패에서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다.
‘일단은 세뇌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던가....’
이 부분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아무리 봐도 여기는 적의 아지트. 세뇌약이 떨어질 것 같으면 보충하면 된다. 본인이 지치면 소피아를 이곳에 방치하고 쉬러 갔다 와도 된다.
생각하는 사이, 13호의 손이 능숙하게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이 남자, 후크를 푸는 손이 쓸데없이 능숙한 게 짜증난다. 심지어 후크가 등 뒤에 가려져 있는데.
여성 경험이 적은 남자는 브래지어를 벗기는 데도 고생하는 게 보통이다.
‘역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방심을 유도하는 쪽...이려나요.’
“오오... 이게 아이우스의 히어로님의 가슴....”
“읏... 보지 마...!”
13호는 감탄하며 드러난 소피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 가볍게 주물렀다.
모양이 조금도 무너지지 않은 G컵의 가슴이, 13호의 손에 희롱당한다.
‘13호의 세뇌술은 주로 정사(情事)를 이용해.... 증가하는 성욕으로 사고능력을 빼앗고, 반복되는 절정으로 의식에 틈새를 만드는... 고작해야 이런 허접한 남자의 테크닉에 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반대로 말하면, 성욕에 휩쓸리지 않는다면, 흔들림 없이 의식을 유지한다면 세뇌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뇌당한척만 하면 돼.... 진짜로 세뇌당하지만 않으면 돼....’
13호의 손이 소피아의 팬티로 향하려다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손을 거뒀다. 대신 고문실 한쪽에 잔뜩 놓여있던 투명한 병을 가지고 왔다.
“그건......?”
“엄청 즐거워지는 약.”
13호가 후후 웃으며 대답하더니, 병의 뚜껑을 열고 소피아의 몸 위에서 천천히 기울였다.
주르륵-
투명한 젤 같은 액체가, 백옥 같은 그녀의 피부 위로 흘러 떨어져내렸다. 쇄골부터 시작해서, 가슴골과 유방 위에 떨어져내리고, 이어서 배를 타고 음부를 가린 팬티까지 적셨다.
“히잇... 아...!”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오싹오싹했다.
“그러면 아이우스의 유능하신 히어로님께서는, 얼마나 버티는지 한번 해볼까? 중간에 항복하면 얼마든지 보내주도록 할게. 그 때는 내 노예가 되어줘야겠지만.”
병 안이 텅텅 비고 나자, 13호는 소피아의 위에 부어진 젤을 손으로 세심하게 펴바르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의 기분 좋음에, 그리고 이 수상한 젤의 영향인지 민감해지기 시작한 몸의 반응에 소피아는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유방 끝의 돌기가 차츰 단단해지며 뽈록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분명 팬티아래의 음핵도 마찬가지로 발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읏... 손 떼세요...! 저는 절대 지지 않습니다...! 히어로인 제가... 당신 따위... 빌런 따위에게는 절대로...!! 하웃...!”
‘적당히 버티다가 지는 척을 하는 거야...! 너무 빨리 항복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 끌어도 안 돼... 적당히, 눈치 싸움이다 소피아! 이 멍청한 빌런을 속이는 거야!’
소피아는 속으로 13호를 비웃으며, 희대의 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 * *
흐으으으... 아읏....
하아... 하앗...!
벌써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30분일지도 모르고, 1시간 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몇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어때, 소피아. 대한의 빌런의 테크닉도 나쁘지 않지?”
“흐읏... 으......! 테, 테크닉은 무스은... 으읏... 그, 그만 좀...!!!”
소피아가 치를 떨 듯 이를 갈았다.
13호의 손에 들린 붓이, 소피아의 유두와 배꼽을 간질간질 휘젓는 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젤을 소피아의 온 몸 구석구석, 발가락 사이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펴바른 13호는, 그 뒤로 줄곧 감질나는 애무를 계속해대기 시작했다.
로터를 사용해도 배꼽과 목 언저리 부근에서 진동하게 한다던가, 허벅지나 손바닥을 마사지하듯이 주무른다던가, 귓구멍에 바람을 훅훅 불어넣는다던가, 지금처럼 붓으로 애매한 자극을 준다던가.
거론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자극이지만, 문제는 온몸에 발려진 그 수상한 액 때문인지 이처럼 애를 태우는 애매한 자극에도 견딜 수 없는 관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 나 소피아가... 고작해야 붓 같은 것으로...! 13호, 죽여버리겠어... 용서할 수 없어...!’
사락- 사락-
흐으... 읏....
이 감질나는 자극도 열 받지만, 무엇보다 ‘적당히 항복한다’를 노리는 소피아에게 이건 너무 약했다.
13호가 납득할만한 적당한 순간에 항복하지 않으면, 의심하는 그는 계속해서 세뇌를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그런 일은 피해야한다.
다시 시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한 타이밍에 항복 선언, 혹은 세뇌당한 척을 해야만 한다.
이 정도 자극에 항복하는 건 역시 의심 받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간질이던 붓장난이 멈췄다. 대신 소피아의 얼굴 앞에 생수병이 가까이 다가왔다.
“자, 소피아. 잠시 휴식이다. 물 마셔.”
“으웁....”
꼴깍, 꼴깍.
13호는 탈수증상을 염려한 것인지, 이렇게 중간중간 소피아에게 물을 마시게 해줬다.
감질나는 자극을 버티기도 지치는 소피아에게 있어서 수분보충은 고마웠다.
‘하지만 조금....’
주는 물을 안 마실 수도 없어서, 거의 억지로 목에 넘기면서도, 소피아는 어렴풋이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계속 물을 마시면....
“충분히 마셨으면 다시 시작할까. 이번에 겨드랑이를 공략해봐야지...♪”
“아... 시, 13호!”
“응?”
다시 붓을 들어올리는 13호를, 소피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제지했다.
“그, 그거 그만하면... 안 될까요...?”
“네가 그런 걸 말할 입장이야? 소피아 넌 단순한 포로인데?”
“부... 부탁할게요... 부탁드립니다... 그, 그만해주세요....”
소피아는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애원하기로 했다.
가능한 처량해 보이도록, 여유가 없어보이도록 연기한다.
그래, 이건 연기니까. 부끄러울 것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 남자를 비웃어 줄 그 때 전부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더, 더는 못 버텨요... 13호... 13호님... 부탁할게...요....”
소피아의 연기에, 13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나 싶더니, 검지만 쑤욱 내밀어 소피아의 유두를 살짝 밀었다.
충혈할 듯 단단하게 선 유두가, 13호의 손가락에 꾸욱 눌려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하응...!”
그 자극에, 소피아는 저도 모르게 비음을 흘렸다.
13호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더니, 아직 남아있는, 질척하게 젖은 소피아의 아랫속옷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