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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화 〉#56 빌런조차 한 수 접어 줄, 최악의 히어로(2) (221/271)



〈 221화 〉#56 빌런조차 한 수 접어 줄, 최악의 히어로(2)

클로에와 타마라. 두 사람은 어린시절부터 소피아의 능력에 묶여, 소피아의 노예와도 같은 부하가 되었다.

그리고 소피아가 시키는 대로, 여기저기에 그 몸을 굴리면서 살아왔다.


때로는 전투요원으로, 때로는 접대를 위한 공물로, 때로는 그녀의 즐거움을 위한 노리개로.


어렸던 시절부터, 이제 막 성인이 된 지금까지, 쭈우욱.

 앳된 외모에 비해 봉사가 지나치게 능숙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용당해도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둘은, 그녀의 출세를 위한 아주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겠지.


...그럼  애들의 인생은?


“아아, 그렇네요. 스페이드  아이는  예뻤죠. 이 일이 끝나고 나면 그 아이도 데려가서 저를 위해 몸을 굴리게 해야겠네요. 동양인 취미인 사람도 있으니까요.  아이도 제게 충성을 바치고 살면, 행복하겠죠.”

“......그만.”

“아... 그러고보면 당신, 그 아이한테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쓰던 것 같던데... 그렇네요. 거래는 어떨까요?”


소피아로서는 13호가 필요했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만능】의 열쇠다.


수첩을 꺼내더니, 그대로 몇가지를 빠르게 적고 찌익 찢어내 13호의 눈 앞에 들이대었다.

맨 위에는 ‘노예서약서’라고 적혀있었다.

【트루 스토리】의 응용 중 하나다. 스스로 이 서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13호의 모든 것은 이 종잇조각에 구속된다. 원하는 게 있다면 이 서약서에 얼마든지 추가로 기입할 수 있다.


“제게 동의하고 여기에 사인하는 거죠. 그러면 스페이드,  아이를 당신에게 드릴게요. 아, 그냥 드리지는 않는다고요? 당신의 입맛대로 제가 ‘설정’을 추가해드릴게요. 섹스를 잘하는 편이 좋은가요? 풋풋한 연심을 가진 소녀로 설정해드릴 수도 있어요. 후후, 원한다면 가슴 크기를 늘려드릴 수도 있어요. 아, 혹시 어린아이 취향? 【만능】만 손에 넣는다면, 그 아이를 어린애로 바꿔드릴 수도 있는데. 평생 어린 모습으로 고정시켜드려요?”


“그만하라고.”

“부족한가요? 아, 아니면 라헤는 어때요? 제가 보기에도 꽤 괜찮더라고요. 어차피 이번에  손에 의해 실각 될 여자예요. 당신에게 드리죠. 당신의 세뇌를 제 능력으로 보조해주면, 당신의 입맛대로의 여자로 만들  있다니까요? 어때요? 탐나나요?”

“......그만하라고, 난 분명히 말했다.”


13호의 으르렁거리는 말투에, 소피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됐어. 애초에 그런 요구를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멍청한 수컷들은 단순한 도구일 뿐.  인권 같은 걸 생각해 줄 생각도 없었고, 배려를 해 줄 생각도 없었다.

소피아는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과 주사기를 꺼냈다.

도로시의 세뇌약이다.

그녀의 능력과 이 세뇌약은 아주 잘 맞을 것 같았다. 13호는 세뇌가 풀릴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차근차근 세뇌심도를 높여갔지만, 소피아라면 세뇌약과 【트루 스토리】를 조합해 단번에 완벽한 노예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자고 일어나면, 제 충실한 노예가 되어있겠네요. 걱정 마세요. 이 소피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거예요. 한평생 영광으로 알도록 하세요.”

소피아는 고혹적이게 웃으며, 13호의 목에 세뇌약이 담긴 주사기를 가져갔다.

이대로 세뇌약을 주입하고 나면 끝이다.


평범하게 세뇌약 뿐이라면 그나마 실낱 같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피아의 능력이 있는 지금 이걸 맞고나면 더 이상 가망이 없었다.

혈관을 타고 침투한 세뇌약이, 【트루 스토리】를 발동시킬 인과의 인(因)을 채우고 13호를 꼭두각시 노예로 만든다는 결과(結果)를 만들어 낼 것이다.


소피아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클로에도 타마라도 당해버렸다지만, 결국 【어비스】는 끝장냈으며 7번대의 약점을 쥐었고, 이제 이 13호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면 자신의 완전승리다.


소피아의 손에 의해, 주사기의 끝이 13호의 목을 꾸욱 찌르고.


뚜욱―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어?”

째깍,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당들에게도 악당의 미학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뭐야.”

13호는 지금껏   없는 눈으로 소피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빌런연합이라지만, 도가 지나치게 선을 넘는 놈들은 다같이 몰려서 후드려 패.”


“뭐냐고.”


차가운 목소리가 소피아를 몰아붙였다.

“...빌런인 내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았는데――넌 선을 좀 씨게 넘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뭐야... 이 시계 소리는?!”

소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13호의 가슴 언저리에 떠오른 것은, 푸른 시계판 같은 희미한 빛의 띠.


그 위에 떠오른 시침과 분침이 계속해서 뒤로 돌아갔다.

시간을 되감고 있는 동안에는, 대상에게 간섭불가. 이게 주사기가 부러진 원인이다.


그리고 시간을 되감는  끝에는.

우드득- 뚜둑-!


“아... 너무 세게 묶여서 피가 안 통했다니까?”


13호가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단순히 완력만으로’ 너무나도 쉽게 끊어버리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 아아...!”

단순히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터무니 없는 위압감.

흘러넘치는 마력의 압박.

소피아는 그 압박감에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뒷걸음질 치더니――단숨에 뒤로 돌아 도망쳤다.



* * *


그건 단순한 우연이었다.


13호가 4번대의 대장 실을 만났던 것은.

――‘실 대장은 놀러 갔당께. 여긴 읎어.’

언젠가 그녀를 만나러 4번대 기지에도 갔었지만 여행을 떠났다는 말 때문에 만나길 포기하고 돌아왔었다.

그러다가 만나게  게, 어젯밤.


예고도 없고 전조도 없이 그냥 말 그대로 떡! 하니 찾아왔다. 심심해서 찾아왔다고.

그래서 아이우스의 소피아라는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더니, 너나 조심하라면서 ‘선물’을 주고 갔다.

“혹시 모르니까. 우후후후. 쓰면 쓰는대로 나중에 대가를 받을 테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있는 비장의 카드.

라헤 때도 사용했던 일시적인 【시간 되돌리기】.

언제든지 임의로 발동할 수 있도록, 그녀는 13호에게 마법을 걸어주고 키스로 그녀의 마력을 살짝 불어넣어주었다.

실은 한번 공동전선을 짜서 싸우긴 했지만 딱히 세뇌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호의를 보여주는 건지  수가 없어 13호로서는 가능한 사용을 자제하려 했다. 무슨 장난을 쳤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면 도로, 목숨을 걸더라도 도박을 해보고 싶었다.

 앞에서 실실 웃는 저 고운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만 있다면, 간도 쓸개도 다 내줘도 좋을 것 같았다.



* * *



“(무, 뭐, 뭐, 뭐야 저건?!)”

소피아는 당황해 그녀의 모국어로 외쳤다.

이런 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어째서 저 남자한테 마력이, 능력이 되돌아온 거냐고!

“스페이드! 스페이드! 어딨어?! 당장 이리 오세요! 와서 저 남자를 막아!”


달려나가면서 외치자, 소피아의 지시대로 안쪽의 방에서 대기하던 스페이드가 눈을 크게 뜨며 밖으로 나왔다.

“13호를 막으세요! 당장!”


남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다니, 굴욕이다.


‘도망은 가지 않아요...!’

소피아가 다급하게 달려가는 곳은 옥상. 스페이드가 13호를 막아주는 사이, 그녀는 이 개인주택 옥상의 테라스에서 13호를 상대할 준비를 할 생각이다.

그녀의 능력으로는 준비 없이 정면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준비만 된다면, 13호라도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래... 최강이라던 그 능력, 언제 한번 직접  손으로 찍어눌러보고 싶었어.’

완벽하지는 않다고 해도, 소피아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고작해야  야만스런 동쪽 나라의 빌런 따위, 준비만 제대로 되면 분명하게 이길  있다!

소피아는 이빨을 까드득 깨물며, 서둘러 옥상으로 달려올라갔다.



* * *



‘저렇게 망설임 없이 도망칠 줄은 몰랐네.’

소피아의 행동에 13호도 나름 당황하고 있었다.

오만한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자면 설마 도망치겠어,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뭔가 생각이 있는 눈치였어.’


머리가 비상한 여자라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되돌아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저울질 하고 망설임 없이 승산이 있어 보이는 판단을 내린 거겠지.

13호는 방 밖으로 나왔다. 걸음걸이가 살짝 위태롭다.

과거로 돌아간 육체와 현재의 정신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이래저래 어질어질했다.


“13호...!”


“오, 스페이드. 잘 있었어? 방금 보긴 했지만.”

복도 저편에서 스페이드가 눈썹을 치켜세운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양손에도, 몸 주변에도 타오르는 듯한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벌써 전투태세다.


한쪽 손에는 평소에는 쓰지 않던 단검이 들려있었다. 예리한 칼날은, 그녀의 괴력이 더해져 개조된 인체마저도 뼈째로 갈라버릴 수 ㅇㅆ다.


“스페이드, 비켜.  여자 쫓으러 가야 돼.”

“닥쳐, 13호. 너는 용서 못해. 차라리 잘 됐어. 소피아님은 생포하라고 했지만, 이 참에 죽여버릴 거야.”

“스페이드. 다시 말할게. 비켜.”


“못 비켜.  비켜. 누가 네 말 따위 들을까봐?!”


13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스페이드. 나 말이야, 지금 진심으로 빡쳤어.”

우우웅-!

마력이 담긴 13호의 목소리에, 공기가 떨렸다.

스페이드의 기억 속에는 없는, 처음으로 보는 13호의 격정적인 표정에 엉겁결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 분노가 향하는 곳은 자신이 아니었지만.


“...지금 내 빡침의 8할은  때문이야, 스페이드.”

“......? 뭐?”

“너는, 히어로 스페이드는, 그런 일로 우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라고.”

13호는 일전, 스페이드를 데리고 나가 사과한 적이 있었다.

빌런과 히어로 사이라고는 하나, 심한 짓을 해서 미안하다고. 입장 상 그만둘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거기에 대해, 스페이드는 당당하게 반론했다.

――‘착각하지마. 네가 무슨 짓을 하건, 어떤 최악의 짓거릴 하건 못 견딜 정도로 약한 내가 아니니까!’


――‘난 빌런에게 패배한 히어로일 뿐이야. 어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든지! 패배했어도 나는 7번대의 A급 히어로 스페이드니까, 절대 지지 않을 거거든! 얼마든지 괴롭혀 봐!  열심히 발버둥치고 도망치고 빠져나가서, 언젠가 반드시 너희들을 잡아들이고, 당당하게 복수해줄 테니까!’


애초에 빌런과 히어로 사이.


어차피 서로 죽고 죽이는 상대다. 상대방에게 어떤 심한 짓을 당해도 할 말이 없고, 서로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다. 그래야 한다. 그런 각오도 없으면서 빌런이니 히어로니 자처해선 안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흔들림 없이, 조금의 절망도 없이, 자신의 사죄에 그렇게 당당하게 반론해줬던 스페이드의 말에, 13호는 크게 안도했었다.

스페이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굳은 심지는, 세뇌의 영향조차 이겨내고 13호를 구타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13호는 특별히 스페이드를 더 놀렸던 것 같다.

적이라곤 하지만, 스페이드의 그 굳건한 심지는 13호의 눈에도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놀려먹을 맛 있는 히어로였다.


그런데 그런 히어로를.

“소피아 그 여자는 선을 넘었어.”


멋대로 기억을 주무르고, 비극의 히로인으로 만들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지지 않겠다고, 흔들림 없이 13호를 노려보던 맑은 눈을, 혐오와 증오와 슬픔으로 더럽혔다.

스페이드라는 여자를 부정했다.


유치하고 진부하지만――그녀의 긍지를 더럽혔다.

“그 여자는 절대 용서 못 해.”

소피아는 악당의 미학이 부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페이드를 다치게  것으로 모자라, 절대로 건드리면   것마저 건드렸다.


도를 넘었다.

“그러니까 당장 비켜, 스페이드!!!”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바닥과 벽이 흔들렸다.

도대체 저 빌런이 왜 화를 내는 걸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분노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스페이드는 그조차도 알지 못한 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안에 있는 마력을 활활 불태우며, 스페이드가 13호를 향해 바위 조차 부수는 붉은 탄환이 되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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