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54 그것은 마치 공명의 함정처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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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화 〉#54 그것은 마치 공명의 함정처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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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화 〉#54 그것은 마치 공명의 함정처럼(2)
“아 빨리 보여줘. 나도 바빠.”
“......진심이야?”
“난 태어나서 거짓말을 해본적이 한 번도 없는 남자야. 내 사전에 거짓말은 없다. 오키?”
스페이드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험악하게 쳐다봤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보여줘, 허벅지. 저번의 그 멍 사라졌는지 보게.”
“이... 씨이이...!”
“응? 스페이드, 뭔가 불만인가보다? 네가 누구인지 잊었나봐? 뭣하면 이 자리에서 노예선언을 복창하게 해줄까? 요즘 너무 느슨했지?”
“크, 으으으으...!”
눈을 꼭 감고 분을 가라앉히듯 심호흡 하는 스페이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럼에도 마지 못한 듯 스커트 자락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군청색을 기조로 한, 어두운 색감의 히어로 제복 스커트가, 스페이드의 손을 따라 하늘하늘 들어올려졌다.
스륵-
새하얗고 매끈한, 그러면서도 건강해 보이는 허벅지가 드러났다. 보는 것만으로 먹음직스러운, 탐스러운 허벅지.
나는 몸을 숙여 자세히 관찰했다.
“음... 멍자국이 좀 더 위였던 것 같은데.”
“거기, 맞거든...!”
“아냐, 아냐. 더 위였어. 스커트 더 올려.”
“으으으으...!”
스커트 양 쪽을 붙잡은 손이, 더 위로 올라갔다. 곧 있으면 속옷이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나는 턱을 톡톡 두드리며 그것을 바라보다가,
“더 올려. 더.”
“...?! 이 이상 올리면...!”
“흐음... 아무래도 내가 너무 느슨하게 대해줬나 보네.”
날카로운 눈으로 스페이드를 올려다보자, 눈이 마주친 스페이드가 몸을 움찔 떨었다.
“스페이드. 말해 봐. 넌 나의, 뭐였지?”
입을 꼭 다문 스페이드. 스커트를 쥔 양손도, 꽉 다문 입술 끝도 바들바들 떨렸지만, 결국 거스르지 못한 듯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저... 는... 빌런 13호님께 패배한... 꼴사나운... 히어로이며... 13호님의... 크윽... 노예...입니다... 13호님께 충성을 다하는... 음란한... 암캐... 13호님을 만족시켜드릴... 한심한... 노리개...입니다....”
세뇌한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스페이드는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읏... 제...... 몸도 마음도... 13호님의 것... 주인님의... 것입니다....”
솔직히 스페이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여자는 이래서 놀리는 맛이 있다.
‘뭐, 내가 능력을 잃었을 적에 이 여자한테 무자비하게 얻어맞기도 했고 말이지... 이 정도 괴롭히는 건 괜찮겠지. 응.’
“자, 스페이드. 네 주인님께서 명령하신다. 스커트를 더 들어 올려. 더 높이. 훤히 보이게. 애초에 노예 주제에 뭘 가릴 필요도 없잖아.”
“으...... 알겠... 습니다...!”
스페이드는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스커트를 더욱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새하얀 허벅지 위로, 얇은 천의 다홍색 팬티가 슬쩍 드러났다.
“평소에 보던 것보다, 색기가 있는 팬티네.”
“으....”
“솔직히 말해줄래? 왜 이 팬티를 입은 거야? 무슨 생각으로?”
“......13호님께서... 색기 있는 속옷을... 입으라고... 하셔서....”
“그것 뿐?”
“혹시... 13호님께서... 그럴 마음이... 있으실까봐.... 그냥... 혹시나 해서....”
그러니까, 무슨 일로든 보여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다는 거구만.
“음란한 여자네, 스페이드는.”
“아니... 으... 네... 음란한 일을 당하는 거... 기대했습니다....”
팬티 끝이 살짝 젖어있다. 후우~ 하고 숨을 불어주자, 양 쪽 허벅지가 움찔 떨리는 게 보였다.
손을 들어 팬티 너머로 스페이드의 음부를 가볍게 문질러주자, “하웃”하고 스페이드가 허리를 굽혔다.
그 촉감을 조금 더 즐긴 후, 몸을 일으켰다.
짝!
“아....”
스페이드의 눈 앞에서 손뼉을 치자, 스페이드는 그제야 주박이 풀린 듯 스커트를 놓고 자유를 되찾았다.
“응. 문제 없는 거 같네.”
“변태 자식...! 죽어버려...!!”
“안심해, 스페이드. 네 복수는 꼭 내가 해줄테니까.”
“네가 내 원수라고! 복수해 줄 거면 지금 당장 혀 깨물고 뒈져버려 변태야악~~~!!!”
“워워, 진정해, 스페이드. 괜찮아. 보여 줄 생각으로 입은 속옷이었잖아?”
그 뒤로 주먹으로 매섭게 퍽퍽 얻어맞았다. 보여 줄 생각으로 입었다면서 왜 화를 내는 거지? 여자란 역시 이해가 안 되는 생물이야.
어쨌든 내일은 클로에와 타마라가 【사이코】를 덮칠 예정이다.
그리고 나도 그때를 노려 클로에를 덮칠 생각이다.
소피아의 보조를 받았다곤 하더라도, 어쨌든 클로에는 그 스페이드를 쓰러뜨린 강력한 각성자지만... 요 며칠 타마라를 철저하게 세뇌했으니, 허를 찌른다면 승산은 있다.
‘그런데 뭔가 좀... 불안한 기분이 드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참모랑도 상의해볼까.
* * *
I시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빌런 조직 【사이코】의 아지트.
이들은 원래 평범한 조폭 그룹이었다. 주먹깨나 쓴다고 해봐야 결국 일반인의 범주.
그들이 빌런 조직으로 불리게 된지는 이제 겨우 2~3년 밖에 되지 않았다.
각성자라고 하는 규격 외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에 관련된 기술들이 뒷세계에 암암리에 흘러들었다.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인체의 강화개조.
각성자들에게서 추출한 ‘마력’이라고 하는 새로운 소재를, 특수가공한 인체에 주입하면 기이한 변화가 생긴다――이게 바로 강화개조의 기초였다.
시술자의 취향, 그리고 피시술자의 요청에 따라 어느 정도의 어레인지는 들어가지만, 기본적인 베이스는 똑같다.
뒷세계의 인간들이면 너도 나도 개조수술을 받아 강해지니, 빌런 조직 【사이코】도 마찬가지로 강화개조를 받았다. 개조수술을 받으면 히어로들의 집중 표적이 되어버리지만, 어차피 그대로 살았어도 뒷세계에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약하면, 얕보이면 도태되는 세계니까.
――형님... 다시 태어난 것 같슴다.
――우와아아아아! 이게 강화개조...! 마력의 힘...!
처음 개조수술을 받았을 때, 그 때의 그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온 몸에 흐르는 고양감.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능감.
100kg의 덤벨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릴 수 있고, 날아오는 칼날을 눈으로 보고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반사신경이 올랐다. 감옥 같은데 갇히더라도 쇠창살을 양쪽으로 잡아당겨 찌부러뜨리고 빠져나올 수 있다.
일반인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짭새도 두렵지 않다. 돈도 여자도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긁어낼 수 있다.
그렇게 새로 얻은 힘에 도취 될 때마다, 몽글몽글, 가슴 속에 불쾌한 생각이 솟아올랐다.
돈을 주고, 억지로 수술해, 본디 허락되지 않은 마력을 집어넣은 것으로 이런 힘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 마력이 그냥 주어지는 각성자들은?
――마음껏 그 힘을 휘둘러 우리 같은 쓰레기들을 잡아들이는 히어로들은?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진 혜택을, 옆에서 찔끔 훔쳐 쓰는 정도로 이만한 힘.
그렇다면 원래 각성자들의 힘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만약 정상적인 각성자였다면, 어떤 힘을 가졌을까.
――불공평해.
세상은 불공평하다.
세상은 불공정하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그래서 【사이코】는, 【사이코】의 보스 최태갈은 히어로를 혐오했다. 원망했다. 질투했다.
몰래 훔쳐받은 혜택만으로도 이만한 전능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다니는 히어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고.
히어로들의 눈에, 자신들 빌런은 어떻게 비칠까 하고.
자신들 빌런들을 쳐다보는 히어로들은, 무슨 기분일까하고.
――분명 벌레 이하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
――아니, 재주 좋은 원숭이 정도로는 봐주려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최태갈은 질투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여, 언니.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어떻게 보게 됐네~?”
“【사이코】의 보스....”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카락, 그리고 어딘지 기사처럼 늠름한 분위기.
일전 스페이드가 붙잡혔던 조잡한 건물의 지하룸.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찾아온 클로에는,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빌런 조직의 보스를 쳐다봤다.
딱히 그가 예의 없이 행동했다거나, 담배를 핀다거나, 혹은 지저분한 몰골이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클로에로서는 남자, 특히 빌런이란 족속은 전부 혐오스럽게 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무슨 볼일이죠? 그쪽에서 우릴 먼저 불렀다고 들었는데요. 우린 한가하지 않습니다.”
“아아, 별건 아니야. 그냥 재밌는 게 있어서. 혼자 듣긴 아까워서 좀 공유할까 싶은?”
미리 비치해 둔 의자에 느긋하게 앉은 최태갈은 클로에의 날카로운 시선을 능청스레 흘려넘기고, 옆의 부하에게 손짓했다.
검은 정장차림의 부하는, 최태갈의 손짓에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재생기기...?’
단순한 음악플레이어로 보이는 그것을 남자가 조작하자, 깔끔한 기계음성이 룸 안에 울려퍼졌다. 녹음 파일인 모양이었다.
[――당신들은 히어로 스페이드의 발을 묶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
흘러나온 목소리는 클로에의 것이었다. 스페이드를 꾀어내기 전에 나눴던 교섭 내용을 녹음한 모양이다.
클로에는 곧게 선 채 덤덤하게 녹음의 내용을 들었다.
“뭐, 이쯤이면 대충 알겠지?”
최태갈이 다시 손짓하자, 부하는 플레이어를 다시 조작해 재생을 멈췄다.
“이야, 히어로 언니, 고것도 국제연합이니 아이우스니 하는 곳의 주웅~요하신 분들이 빌런이랑 손잡는 내용인데... 요거요거, 좀 더 조심하셨어야지~. 여기에 영상까지 준비해뒀으니, 솔직히 발뺌은 못할겨~. 저기, 히어로 언니. 이 증거품이 히어로협회로 날아가면, 어떻게 되실랑가? 자네들 목은 남아나려나? 응? 궁금한데?”
클로에의 눈이 최태갈을 차갑게 노려봤지만, 【사이코】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는 듯 히죽이죽 웃었다.
“아, 쓸데없는 생각은 말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홈에 있는 부하가 이 녹음자료를 여기저기에 보내버릴테니~.”
“......원하는 게 뭐죠?”
“얘기가 빨라서 마음에 드는구만. 뭐, 뭔가 주겠다면 안 받는 건 또 예의가 아니겠제~.”
껄렁거리는 태도로 일어난 최태갈이, 클로에에게 다가갔다.
욕망에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흔들림 없이 선 클로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녀의 봉긋 솟아오른, 제복에 가려진 탐스런 융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뭐, 그냥 언니가 우리랑 조~금만 놀아주고, 저번에 그 히어로... 스페이드였나? 그 히어로도 불러주면――”
퍽!
“컥......?”
“형님?!” “이 년이?!”
클로에를 향해 손을 뻗던 최태갈의 몸이, 갑작스레 푹 꺾였다.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불현듯 나타난 망치가, 최태갈의 명치를 훅 때린 것이다.
“......Fucking worthless yocky(빌어먹을 하찮은 쓰레기들이).”
클로에는 밀려오는 불쾌함을 감출 생각도 없이, 최태갈의 몸을 발로 세게 걷어차 쓰러뜨렸다.
【사이코】의 조직원들이 서둘러 품에서 총을 꺼내 들고, 클로에를 덮치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손을 쓰는 것보다 빨리, 클로에가 한 손을 가로로 휘둘렀다.
동시에.
푸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북-!
“끄아아아아악...!”
“으억... 형...니임...!”
분수처럼 솟구치는 붉은 선혈과 고통스런 비명소리.
아무 것도 없을 허공에, 은으로 된 칼날이 나타나 남자들의 등을 찌르고 목을 베어냈다.
서늘한 느낌에 가까스로 피해낸 사람, 혹은 급소를 간신히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총인원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최태갈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얘, 얘들아!! 뭐, 뭐야... 야! 미쳤어?! 녹음파일 보내버린다고! 너네가 무사할 것 같아?!”
“쓸데없는 걱정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겠습니다만.”
클로에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메일은 「보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그런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클로에는 여전히 쓰러져있는 【사이코】의 보스를 오만하게 내려보았다.
【빌런조직 사이코는 주제도 모르고 아이우스를 협박하려 했지만, 미련한 그들은 아무 것도 못 하고, 철저하게 유린당했습니다.】
어쩐지 그런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알고 있었어. 근데 우리가 조금도 대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렇게 우리가 우스워 보였어?”
“아, 아아아아아...!”
“조금 전 그걸로 일격에 죽었으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클로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측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남아있는 놈들은,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거든.”
클로에가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지옥과도 같은 유린극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