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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화 〉#53 히어로 타마라는 빌런도 남자도 우습게 보였다(1) (209/271)



〈 209화 〉#53 히어로 타마라는 빌런도 남자도 우습게 보였다(1)

“아우~~~ 클로에  년은 진짜 마음에  들어! 정말! 흥이다!”


보브컷의 밝은 머리카락. 동글동글한 얼굴형이 앳된 인상을 주는 외국인.


타마라는 무슨 일인지 격하게 노하며 씩씩거렸다. 제멋대로인 그녀가 화를 내는 일이야 딱히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동안 기분이 좋아보였던 한국에서는 처음이었다.


“정말... 나는 샐러드는 찍먹판데!! 클로에  년 말도 없이 그냥 드레싱을 부어버리다니, 말도  돼!! 물어보기라도 해야할 거 아냐!!”

화가 나서 쾅쾅 발을 구르는 타마라.


그녀는 딱히 상대를 가리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클로에와는 묘하게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지금처럼 샐러드를 드레싱에 찍어먹냐 부어먹냐 하는 일도 있었으며, 그 외에도 남자 취향이 겹쳐서 싸울 때도 있었다. 물론 남자친구로서가 아니라 딜도 대용의 여흥거리용 남자 말이지만.

‘그런 주제에 혼자 깨끗한 척 다하고, 뭔가 얘기하면 나 혼자만 나쁜년으로 알겠어 진짜!’


일하는데 있어서는 불만 없다. 함께 일해온 세월이 있으니 상대방의 능력은 인정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인지 평소 생활할 때, 자꾸만 부딪치는 일이 생긴다.

클로에는 자유분방한 타마라를 지적하면서 혼내고.

타마라는 클로에에게 선비질 그만하라면 역겨워한다.


대충 그런 식으로 둘 사이에선 싸움이 끊이질 않는 편이다.

“쯔읏... 적당히 반반한 남자라도 잡아서 놀까...?”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기억조작으로 머리를 만져주면 가지고 노는 거야 손쉽다. 대충 적당히 장난감 대신으로 가지고 놀다가 다시 기억을 돌려놓고 버려두면 되겠지.

――‘Idiot(멍청이). 그렇게 생각 없이 능력을 사용하다간 언제  번 크게 데일 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남자 하나 제 것으로 못 만드는 년.’


“으웃... 클로에에에...!”

언젠가 클로에가 핀잔주었던 말이 불현듯 되살아나자, 타마라는 주먹을 꽉 쥐며 분노했다. 정말이지, 언젠가 선비인  하는 뻔뻔한 얼굴을 수세미로 콱콱 문질러주고  것이다.

‘어쨌든 기분이 팍 식었어.’

이미 몸은 사람들이 가득한 번화가까지 왔지만,  식어버린 기분으로는 뭔가 쓸데없는 짓을  기분도 들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던 타마라는, “아”하고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 * *




“13호님, 전화 왔습니다.”


“오? 어라, 지금 기름 앞에 있어서  그런데. 누구야?”

“모르는 번호입니다만... 오늘 저녁은 튀김인가요. 제가 하겠습니다, 전화 받으시죠.”


“아, 응.”


참모가 모르는 번호라.


빌런이 되고 나서 맺게 된 인간관계는 대부분 참모도 알고 있다. 그보다 말길을  상대가 알고보면 히어로측의 스파이였다...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참모 쪽이 알아서 철저하게 조사해 주는 만큼, 내 지인에 대해서는 참모가 더 잘 안다.


그런데 참모도 모르는 번호라고?

뭘까, 장난전화나 보이스피싱?

‘이 번호는....’


그런데 막상 화면을 보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분명....


화면을 슬라이드 해 전화를 받았다.

[안녕~ 타마라인데, 잠깐 시간 돼?]

발랄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 *





타마라는 번화가의 건물에 등을 댄 채,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다.

떠올리는 기억은 얼마 전, 경찰서에서의 일.

――‘후후후후후, 설마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양~.’

――‘어때어때? 지금 기분은? 더러워? 부끄러워? 절망이야? 후회돼? 아아, 좋은 표정이양...!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그런 얼굴 보여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정말 운이 좋게도, 단순히 정보수집을 위한 잠입임무 중에 타겟인 13호와 손쉽게 접촉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에 13호의 기억을 읽어들이는 것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7번대에 대한 것까지 전부 알게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13호의 기억을 【편집】하기도 했다.


다만 타마라의 능력도 이래저래 제약은 있다.

첫째, 마력을 가진 상대의 기억에 간섭하기는 어렵다.

둘째, 읽으려는 기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마찬가지로 【편집】할 기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외에도 능력으로 만들어 낸 홀로그램은 저장매체로 기록을 남길 수 없다든지, 기억 속에 위화감을 느껴버리면 【덮어씌운】 기억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던지....

‘편리한 능력이긴 한데, 제약이 너무 많아.’

이런 것만 없었다면 이미 세계의 정점에 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적당히 설렁설렁 살려는 타마라에게 있어선 딱 좋은 핸디캡이라고 봐도 좋겠지.

‘어쨌든 기억을 읽는데만도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어. 【편집】할 시간이 부족했지... 갑자기 너무 기억을 많이 바꾸면 위화감을 느끼고 능력이 풀려버릴 수도 있었어.’

어떻게든 13호와의 시간을 늘려야 했으며, 동시에 위화감도 없애기 위해 짜낸 타마라가 짜낸 고육지책.

――‘등신 같은 13호, 이제부터  기억을 조금만 손 볼게에~.’

――‘별 거 아니야. 내가 너한테 세뇌당했다...는 기억을 심어줄테니까.’

――‘이 감옥에서 만난 나를, 너는 오히려 반격해서 쓰러트리고 세뇌하는  성공해.’

――‘하지만 아직 세뇌는 얕아. 그러니까 세뇌를 더 깊게 하려면, 너는 가능한 내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안돼~. 나는 멋지고 의지가 되고  말은 모두 들어주는 그런 남자가 아니면 따르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세뇌가 풀려버려~. 알겠징?’


...대충 그런 느낌으로.


지금 13호는 타마라를 세뇌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 터다.


멍청하게도.

“호구에 등신 같은 남자....”


타마라는 입술을 할짝 핥으며 중얼거렸다.


“늦어요!”

“......바로 달려온 건데.”


타마라가 역 앞에서 기다리길 한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씩씩거리며 13호가 찾아왔다.

‘으음. 급하게 나온 것 치곤 센스는... 아니네. 그저 그런가.’


타마라는 13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딱히 남자로서 매력적이냐 아니냐를 따지자면 일단 타마라의 취향은 아니다.

타마라로서는 좀 더 와일드한 편이 취향이기도 하고, 애초에 13호란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의 마음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세뇌 같은 것으로 여자들을 홀리는 거겠지.


한심한 남자 같으니.


“타마라?”

“아.”


이런. 너무 노골적이게 쳐다봤나.


13호의 시선에 의문과 의심이 섞인게 보였다. 갑자기 불려나왔으니 그럴 수 있지.


“아~ 그게, 13호님을 잊어버릴  같아서 불렀어요~★”

“그래?”


“네~에. 13호님을 잊을 것 같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셨잖아용~ 그쵸~?”

“어라, 내가 그랬던가...?”

“그랬어요, 그랬어요. 분~명히 그랬어용!”

13호는 머리를 긁으며 의아해했지만, 그래도 타마라의 말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저 군데~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 먹구 시퍼여~.”


“.......”

13호는  없이 지갑을 살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게 보였다.


“아, 저기, 타마라. 굳이 비싼데가 아니더라도 괜찮은 가게를 내가 아는――”


“어라아... 13호님은 멋지고 의지가 되는 남자였을텐데... 앗, 아...! 머리가... 어라...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은....”


“역시 비싼 레스토랑을 가야지. 응. 비싼 곳은 비싼 값을 하니까. 이 먼 한국까지 왔는데 싸구려 고깃집 같은데는 어울리지 않아.”

설마 이 꽃다운 아가씨를 데리고 냄새 풀풀 나는 고깃집에 데려가려 했던 걸까?


진짜 어디까지 마음에 안 들게 하는 거야,  남자는.


* *



『다 합쳐서 ■■■■■■원 되겠습니다.』

『하, 할부로――』

『어머나, 13호님. 멋지고 의지되는 남자니까 일시불로 확, 하고 하시는 거죠?』

『......일시불로 해주세요.』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으음~” 타마라는 상쾌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쭈욱 기지개를 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센스였다고 생각한다.


건물 최상층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라 야경도 나쁘지 않다. 먹는 내내 안절부절 못하던 13호의 얼굴을 보는 것도 나름 웃겨서 재밌었다. TV의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이랄까.


“식사 한 번에... 내 일주일... 음....”


“우와~ 역시 13호님은 의지가 되네여~! 저 너무 맛있어서 날아가 버릴  같아요옹~.”

“......아, 응. 그렇지. 헤헤....”


13호의 입가가 뻣뻣하게 경련했다. 눈가가 울 것처럼 변했다.

그 표정이 타마라의 안에 뭔지 모를 것을 자극했다.


가학심이라고 해야할까.


 괴롭혀주고 싶다.


원래는 적당한 선에서 대충 끊고, 어딘가로 끌고 들어가 기억을 추가로 편집해 줄 생각이었지만, 조금만 더 즐기기로 했다.

“아, 나 방탈출인가 해보고 싶어여~!”

“어, 저기. 더치로.”

“우와~ 제일 비싼 코스로오~! 13호님이 내시는 거죵~?”

“.......”

“꺄하하하! 13호님 최고오~!”

기뻐하며 달려드는 타마라를 막지 못하고, 13호는 우는 표정으로 지갑을  수 밖에 없었다.


방탈출 카페는 고르고 고른 끝에 런던 배경의, 셜록 홈즈 테마의 것으로 골랐다. 영국 출신인 타마라로서 어딘지 모르게 향수가 느껴진 것이다.

‘방탈출은 처음인걸~.’

보드게임은 좋아하지만 방탈출은 처음이었다. 방탈출을 고른건 단순히 근처에 보였던 것 중 제일 비싸보였기 때문이다.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여기서 13호로부터 의외의 일면을 찾아냈다.

놀랐다고 해도 좋다.

『이 탐정의 조사표를 보면 신발사이즈가 11인 사람은 키가 6피트고 신발사이즈가 12인 사람은 키가 6.3 피트지만 헐리우드 출신이며 6.1 피트인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 아니라는 데... 내 생각에 이거 조사한 탐정은 병신이 분명해. 이런 걸 왜 조사하는 거지?』

『찾았어! 타마라! 찾았어! 그림 뒤에 비밀 금고가 있어! 비밀번호만 찾으면... 근데 비밀번호가 뭐지?』

『살려줘!! 열어줘!!! 이거 진짜 어렵다고!!! 이게 뭔데 세시간이나 해?!』


.......


‘왜 이렇게 멍청한 등신한테 7번대가 당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만해도  것 같은 표정으로 따라들어와 놓고, 이제는 타마라는 잊어버린 듯이 탈출게임에 전념하고 있고.

결국 타마라의 재치로 아슬아슬하게 탈출에 성공하자, 어린애처럼 뛸 듯이 기뻐하던 13호의 모습도 타마라를 질리게 하는  한몫했다.

아니, 그래도 볼만하긴 했다. 우스운 광대를 보는 것 같았고.

“아이스크림 먹을래?”


“사주는 거죵~?”

“......더치는....”

“앗, 아... 머리가... 뭔가 기억이   같은....”

“살게. 산다고. 내가 산다 그래!”

“이야~♪ 역시 13호님은 의지가 되는 멋진 남자네요옹~. 13호님이 없으면 저 살 수 없을 거예요~.”


13호의 가슴에 대고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아양을 떨어주자, 13호의 얼굴이 금세 풀어지며 스스로 아이스크림을 사다 바쳤다.

정말이지 남자란 것들은 바보들 뿐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세상을  가진 것처럼 굴고.


그렇게 오만하고 건방지게 굴던 나중에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에 잠긴 표정이... 정말 참을  없이 맛있다.


13호는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자신이 철저하게 세뇌했다고 생각한 여자가, 알고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로 농락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자신의 손으로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을 가져다 바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아아... 안 되는데... 소피아님이 손대시기 전에 망가뜨리면 곤란해...!’

상상만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입안에 도는 군침을, 풍성한 토핑이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달래려니, 13호가 물었다.

“타마라, 요즘 아이우스는 어때?”


13호의 눈빛이 약간 변한 느낌이 들었다.

“7번대의 스페이드라는 히어로가 있는데, 이번에 너네 아이우스한테서 뭔가 요청을 받았다가  일이 났다더라고. 혹시 【어비스】에 관련된 뭔가가 있는 거야?”


13호는 자신을 세뇌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지금까지 돈을 쓴 것도 어디까지나 세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니까.


세뇌한 자신을 통해 아이우스의 정보를 캐내려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제 슬슬 끝낼 땐가.’


충분히 놀았으니 이 쯤에서 기억을 지워버리고 【편집】해버릴까.

타마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번화가 근처라 그런지, 아직 사람이 많이 지나다녔다.


‘...이 시간인데도 아직 사람이 많네.’

어딘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곳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되겠지.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줄 만한 일도 아니니까.

‘딱히 우리의 정보를  이유는 없어.’


아무 일도 없다고, 【어비스】에는 한동안 손 댈일 없다고 거짓말을 해도 좋다.


타마라는 대충 얼버무릴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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