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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화 〉#52 히어로 인 더 트랩(HERO in the trap)(4) (208/271)



〈 208화 〉#52 히어로 인 더 트랩(HERO in the trap)(4)

“저... 는....”

소피아가 됐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던 클로에는 놓치지 않고 녹음하기 위해 마이크를 스페이드의 입에 더 가까이 가져왔다.


두서도 없으며, 여전히 계속되는 소리에 이리저리 튀는 목소리. 하지만 그 내용은 확실하게 녹음이 되었다.

소녀의 고백이 끝나자, 소피아는 마사지기를 떼고 잘했다는 듯 스페이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자, 그럼 마지막 단계입니다, 스페이드... 이것만 끝나면 돌려보내 드릴게요.”


“아... 무엇을....”

“별거 아니랍니다. ――당신의 기억을 조금, 주무를 뿐.”


“얏호~★ 그럼 내 차례란 말이죠~?”

줄곧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타마라가, 통통 발을 구르며 가까이 다가왔다.

“우후후,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괜찮아, 힘 쭈욱~ 빼고!”


타마라가 스페이드의 머리에 손을 대자, 홀로그램 같은 영상이 그 앞에 나타났다.


이건 스페이드의 기억.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


 중 압도적일 정도로 많은 용량을 차지하는, 13호의 모습들.

“이것 참....”


소피아는  내용을 보며 탄식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았다.

이것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눈앞에 만들어진 홀로그램은 카메라 같은 저장매체에 남질 않는다. 그래서 실질적인 증거물을 반들기 위해 조금 전 같은 귀찮은 짓을 해야했던 것이고.


“내... 기억...!”

“우후후, 원래 너 같은 고랭크 히어로는 맘대로 보기 어렵지만~ 마력도 전부 쥐어짜이고 텅텅 빈 지금이면 저항도 못하겠네~ 불쌍해~.”

“그만... 안 돼... 보지 마앗...!”

철그렁! 철컹!

쇠사슬 때문에 아무리 저항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스페이드는 비통하게 외쳤지만, 기억은 여전히 아이우스의 세 사람의 눈앞에 흘러갔다.

수치스러움, 혹은 분노 때문인지 스페이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좋아요, 타마라. 제가 말한대로 【편집】해주세요.”

“예이~!”

“아아아... 으으...!!”


기운찬 외침과 함께, 타마라는 명령대로 스페이드의 기억을 손 봤다. 오랜 시간을 들일 수 있다면 인격을 바꿀 만큼 【편집】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동이 틀 시간이다.

필요최소한만큼의 기억을 조정한 후, 타마라가 손을 떼자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 같은 영상도 사라졌다.

동시에 스페이드를 구속하던 사슬도 사라져, 그녀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기억을 변조한 영향인지, 눈은 뜨고 있지만 눈가에 초점은 없다.


이제 나머지는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보내고, 미끼를 무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수고했어요... 그럼 나머진 부탁할게요, 스페이드.”

소피아는 뺨에 살짝 남은 눈물자국을 핥았다. 짭짤하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미로운 맛이 났다.


* * *




‘여긴......?’

눈을 뜨고 나니, 익숙한 방의 천장이 보였다. 푹신한 이불의 감촉이 기분 좋다. 피곤한 몸에 스며드는 따스함에, 스페이드는 이불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몸을 비볐다.


...악몽을 꿨던 것 같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라... 뭐하다 잠들었더라....’

“우, 우와앗... 벌써 한낮...!”


눈을 깜박깜박 감았다 뜨며 몸을 일으켰다.

어제... 그러니까....

――‘라헤 대자~앙, 나 맞고 왔어여....’

.......

‘쪼, 쪽팔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잠입임무에 나섰다가, 자신의 부주의로 들키는 바람에 잔뜩 쫓기고... 보통의 빌런이라 생각했더니 의외로 상대하기 버거워서, 중간에 붙잡히기도 하고 이리저리 고전한 끝에 가까스로 도망쳤다. ...분명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반절 이상은 때려눕혔고, 빌런조직 【사이코】의 멤버 명단도 입수했다.


거래 상대는 못 알아냈지만, 그나마 충분한 성과라고 해도 좋겠지.


“.......”

어쩐지 아이우스의 사람들을 본 것 같은 기분도... 드는 데....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만났을 리는 없으니, 착각이려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침대에서 내려올 때였다.

그제서야 방에 있는 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딘지 익숙한 실루엣의 남자가, 자신의 옷장을 열어보고 있다.

이불 아래의 자신이 나신이라는 사실도.


“킁... 역시 오늘 같은 날에는 귀여워 보이는 타입이... 하지만 내 취향은 좀  어른스러운게... 아니, 얘는 무슨 중학생이야?  죄 이런 속옷 밖에 없어?  더 뭐랄까....”


“......너 뭐하냐, 13호?”


“응? 일어났어?”


옷장을 뒤지던 13호가 돌아봤다. 역시 틀리지 않았다. 속옷서랍이 활짝 열려있어.

“다쳤다고 들어서 걱정했잖아. 넌 누가 뭐래도 내 소중한 노예인걸. 걱정돼서 오는 게 당연하지.”


“.......”


“걱정하지 마, 누워있어. 움직이기도 힘들까  특별히 신경 써주는 거니까. 금방 어울리는 속옷 골라줄 테니까. 이 오빠만 믿으셔.”

“.......”

이 놈은 뇌가 없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거야? 상식이 없나? 악당이라 이런 걸까? 변태라 그런 거야?

“..................숙녀 방에....”


“응?”


“함부로 들어오지 마 변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전혀 다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몸놀림으로 다가 온 스페이드, 그 묵직한 철권에 얻어맞은 13호의 몸이 ㄱ자로 푹 꺾였다.




“......걱정돼서  건데....”


“빌런이 히어로 걱정하지 마. 그보다 병문안 와서 남의 옷장 뒤지지마. 그보다 히어로 기지에 쳐들어오지 마!”

“참모랑 상의해서 아무한테도  들키게  건데.”


“상! 식! 이란걸~~~~!!! 아우우우우우~~~~!!!!”


스페이드는 머리를 벅벅 헝클어뜨리며 괴성을 질렀다. 여러모로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그야 13호는 속옷만이 아니라 알몸도 여러모로 보였고, 이제와서 좀 보인다고 부끄럽다거나 그런 건 아닐 것 같지만....

‘뭐랄까, 섬세한 소녀의 마음이 이러면 안 된다고 외치는 기분인걸....’

조금쯤 여자답게 대해줘도 되지 않아?

왜 그렇게 무신경하게 구는 건데.

스페이드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하아아아아....”

정말이지 답답하다.


시원하게 패죽여버리고 싶지만, 이상하게 그럴 마음을 먹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세뇌라는 거겠지.

안 그래도 임무 실패에다 빌런한테 얻어맞고 오고, 이래저래 기분이 가라앉아있는데.

“스페이드?”


“응?”

“팔 내밀어 봐.”

“갑자기 왜――”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손을, 13호가 조심스레 쥐어 올렸다.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어... 그래도 어제 맞으면서 꽤 많은 상처가 났던 것 같은데....

“도로시의 약을 썼어. 메이벨한테 쓴 거 보다는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너희가 쓰는 것보다는 훨씬 효력이 좋을걸?”

“아....”

“여자애 몸에 상처 나는 건  좋으니까. ...무식하게 센 주제에, 어딜 가서 맞고 다니는 거야 넌.”

13호는 꼼꼼하게 스페이드의 몸을 살폈다.


......흥. 빌런 따위한테 걱정 받을 처지는 아닌걸.

“앗... 잠깐만... 어디까지 보려는...!”


“가만히 있어.”

“으읏....”

팔을 넘어 이불을 걷어내려는 13호에게 반항하려 했지만, 어쩐지 그 말에 거역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과 수치 때문에라도 생리적으로 몸을 보이는 데 거부감이 들었지만, 13호가 보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그 시선이 그런 본능을 이겨낼 정도로 의외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녀석, 걱정해주는 거야?’

빌런 주제에.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내치기 어렵잖아.

이건 세뇌 때문일까...? 스스로도  수가 없다.

13호는 찬찬히 스페이드의 몸을 살펴봤다.  시선에 스페이드는 몸을 움찔 떨었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기는 아직 멍이 안 사라졌네....”

그렇게 말하며 쓰다듬은 곳은 스페이드의 허벅지.


새하얀 피부에, 시퍼런 멍이 남아있었다.

“좀 세게 맞았었나... 봐.”

“......알루미늄 배트로?”

“어... 응. 어떻게 알았어?”

“......그냥, 빌런이니까.”

빌런들이면 자주 쓰는 걸까. 어쩐지 그런 이미지가 있다. 보는 것만으로 아는 구나.

스페이드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어?”

“아니, 너랑 어쩐지 안 어울려서.”

“......그런게 웃긴가... 이상한 녀석.”


13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스페이드의 허벅지에 난 푸른 멍자국을 쓰다듬더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낼름 핥았다.

“흐앙?! 야, 뭐하는....”


스페이드는 반사적으로 13호의 머리를 밀어내려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13호는 천천히, 세심하게 상처  스페이드의 멍자국을 핥았다. 허벅지에 닿는  미묘한 감각에, 뜨거운 듯, 보드라운 듯, 따뜻한 듯, 기묘한 듯, 새콤달콤한 이상한 기분에 오싹함을 느꼈다.

“아, 아... 잠시만... 그만해 봐...  이래...!”

스페이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3호는 집요하게, 낼름낼름 스페이드의 허벅지를 핥아갔다.


그러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빌런 조직 【사이코】랬지, 이 짓 한거.”


스페이드는 숨을 헛들이켰다.


13호 녀석,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째, 뭐랄까....


“화, 났어...?”

“.......”

그럴 리가.

빌런 주제에, 거기다 사람을 노예니 육변기니  그런 취급하는 쓰레기 자식이, 히어로인 자신을 걱정할 리가 있나.


.......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됐어, 떨어져 임마. 남의 허벅지를 언제까지 핥아댈 거야?”

“꾸엑.”


“아이 진짜...! 침투성이잖아! 더러워! 어쩔 거냐고!”


“이런. 핥아서 깨끗하게 해줄게.”


“더 더러워지잖아! 멍청아! 뇌에 우동사리만 쳐들었냐!!”

얼굴을 콱콱 짓밟힌 13호는 어쩔  없다는 듯 떨어졌다. 복수라는 듯이 떨어지기 전에  모양 좋은 가슴을 두어번 주물러줬더니, 더 힘을 내서 펄펄 날뛰는 스페이드.

“쯧, 식당에 스태미나 보충용 환자식 만들어놨으니까 먹고! 그리고 도로시 특제 포션으로 많이 나아지긴 했을테지만, 안쪽도 엉망진창으로 다쳤었으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꺼졋!”

“아이 진짜...! 걱정되서 하는 말이라고 멍청아!  간다!”


13호는 서둘러 문을 쾅! 닫았다.

그러나 잠시 뒤 끼이익... 하고 다시 열린다.


“아 빨리 꺼지라고!”

“진짜 걱정하는 사람한테 말을... 마지막 한마디만 더 하고 가자!”

“뭐, 뭔데....”


13호의 진지한 얼굴에 스페이드는 무심코 침을 삼켰다.

13호는 살짝 열린 문 틈새로, 스페이드를 검지로 가리켰다.

“좀 색기 있는 속옷 좀 사입어라... 잘 모르겠으면 다음에  때 좀 괜찮은 거로 선물해줄 테니까――”

“꺼졋!!!”

쾅!


13호가 서둘러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문짝에 스페이드가 온 힘을 다해 던진 베개가 격돌했다.

침대 위에서 씩씩거리는 스페이드.

진짜 섬세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새끼! 여자 마음도 모르는 병신!

마음속으로 있는 대로 13호를 욕하던 스페이드는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빌런한테 조금 얻어맞거나 한 음울한 기억은 어째 기억 한 편으로 사라져버렸다.





* * *




[볼일은  보셨습니까?]

“그래, 스페이드는 직접 살펴봤고, 이제 돌아갈 거야.”

히어로 기지에서 몰래 나온 13호는 통신용 단말기로 참모에게 상황을 알렸다.

일단 미행이나 감시에는 신경 쓰긴 했지만, 최대한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고 기지에서 멀어져간다.


아무래도 아이우스의 목적은 빌런 조직 【어비스】와 7번대의 유착 관계를,  실상을 붙잡으려는 것 같다.


더 정확하게는 빌런 조직의 ‘누군가’와 7번대의 라헤가 접촉하는 장면을 바라는 모양이다.

단순한 말단 히어로보다는 대장급 히어로와 빌런 사이에 스캔들이 생기는 편이 좀 더 임팩트가 강할 테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라헤에게 악감정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스페이드를 습격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우스는... 소피아는 분명 또 일을 벌일 게 분명하다.


“일단 【사이코】 녀석들의 아지트랑... 알아둘  있는 건 전부 조사해둬. 일단 급한 것부터 끝내고 손 좀 봐줄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13호로선 드물게 분을 내는 표정으로 말했다.

최근엔 분을 낼 일이 몇 번 있었던  같지만, 아무튼.

“적당히 지켜 볼 셈이었는데  되겠어.”

【사이코】와 스페이드의 건은 몰래 조작하고 있던 감시 드론을 통해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소피아의 부하가 스페이드를 제압하고 납치해 간 것도, 전부.

소피아는 지금 모든 상황이 자신의 손 위에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3호나 【어비스】의 인원들이 자신의 계획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없다고, 그런 식으로 낙관하고 있겠지.

“빌런 조직이 우습게 보이나 본데... 그 여자는, 진짜로 쓴맛을 보여줘야겠어.”


[반할  같습니다, 13호님. 부디 뜻대로 하시지요. 보스에게도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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