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52 히어로 인 더 트랩(HERO in the trap)(3)
‘괜찮으려나요, 스페이드.’
히어로협회 본부.
갑작스런 호출에 별수 없이 오게 된 라헤는, 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걱정했다.
아이우스의 소피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목적이 도저히 보이지 않으니 갑갑하다.
‘걱정 되네.... 역시 누구라도 한 명 붙여놓는 게 좋았을까....’
다시 회의실로 향했다. 밤새 진행될 예정인 회의는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 * *
빌런 조직 【사이코】가 애용하며, 이번에 스페이드가 잠입해 들어 온 거래처 건물, 그 지하.
외부와 단절된 폐쇄된 룸 안에서, 무자비한 폭력의 소리와 가냘픈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퍼억- 퍽!
으윽... 아...!
“에라 이 썩을 년이!”
퍼억!
“아악...!”
알루미늄 배트가, 가죽 슈트로 감싸인 스페이드의 복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스페이드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 아이우스의 음모에 빠진 스페이드는, 클로에의 일격에 단숨에 무력화되었다.
마력을 통한 강렬한 일격에, 간신히 기절은 면한 스페이드였지만 뭔가가 방해하듯 사지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일격에 무력화 된 스페이드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한다’... 그런 시나리오 니까요.”
클로에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스페이드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꼼짝 못 하는 스페이드를 가만히 둘 【사이코】의 보스가 아니었다.
――‘이 놈들아, 그 년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아!’
――‘예, 형님!’
부하 두 사람이 양쪽 옆에서 스페이드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보스인 남자는 근처에 굴러다니던 알루미늄 배트로 스페이드를 힘껏 후려패고 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퍼억!
“아윽...!”
“하아, 하아, 더럽게 튼튼하네, 이 년.”
스페이드의 허벅지를 때린 알루미늄 배트가 ㄱ자로 구부러졌다.
사지는 무슨 영문인지 클로에에게 당한 뒤로 저릿저릿해서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력을 이용한 강화는 가능했다. 배트가 날아오는 대로, 스페이드는 한순간 마력을 집중해 방어력을 높인 것이다.
“하, 거 참 이쁜 얼굴이긴 한데 말여....”
“...놔, 손대지 마, 쓰레기야.”
“하하, 이거 괴롭히는 맛이 나는 년이네. 지금 상황 안 보이냐? 눈 안 깔아? 앙?!”
윽박지르는 남자의 눈을, 스페이드의 붉은 눈이 고요하게 노려보았다.
스페이드는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건만, 알 수 없는 압력에 짓눌려 보스인 남자는 일순 입을 다물었다.
스페이드는 그런 남자를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똥꼬다리야... 아까 그렇게 벌벌 떨더니, 지리진 않았어?”
남자의 얼굴이 크게 씰룩이더니, 손을 뻗어 스페이드의 머리를 콱 붙잡고 억지로 들어올렸다.
“하, 하하...! 이 년이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나 보네?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도와줄 사람 한 명 없는 상황에서 붙잡히고, 너 하나 사라져도 쥐도새도 모를텐데?”
“익...! 놔!”
“그래그래. 야, 다음 거 내놔봐. 어디 네년이 먼저 지치나, 내가 먼저 지치나 해보자. 응?”
남자는 흉흉하게 웃으며 부하가 넘겨 준 각목을 손에 들었다.
퍼억- 뻑!
빠아악!
그 뒤로도 난폭한 구타가 계속되었다.
“우... 아...!”
아무리 마력으로 방어력을 올린다해도, 데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충격이 몰려올 때마다, 한계치까지 짜냈던 마력도 차츰 깎여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미 부러진 배트나 각목의 숫자만 열일곱.
미처 다 막아내지 못한 충격에, 드러나 있는 스페이드의 다리에도 내출혈이 일어나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뭐냐, X년이, 벌써 지쳤나 봐? 응? 아까처럼 뭔가 말이나 좀 해보지?”
“.......”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퍼억!
“카흑...!”
남자가 스페이드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자, 스페이드가 크게 숨을 토해냈다. 침과 위액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슬슬 다 까였나 보네, 씨X년. 야, 이제 놔.”
남자의 지시대로, 스페이드 팔을 붙들고 일으켜세웠던 빌런들이 손을 놨다. 스페이드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털썩 떨어져내렸다.
“으....”
스페이드의 몸은 여전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거기다 축적되어 온 폭력과 구타의 데미지가, 더더욱 스페이드를 옭아맸다.
본래라면 스페이드는 이런 어중간한 빌런들에게 당할 히어로는 아니다.
그러나 마치 【히어로 스페이드는 속수무책으로 빌런들의 폭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라는 듯, 모든 상황이 스페이드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그러게 왜 여길 혼자 와. 응? 계집이면 계집답게 얌전히 집 안에나 있을 것이지.”
【사이코】의 보스는 발치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스페이드를, 몸에 착 달라붙는 에나멜 슈트 아래로 보이는 여성스런 굴곡,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고통에 일그러졌지만, 그럼에도 시선을 끄는 예쁘장한 외모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남자는 스페이드의 앞에 쪼그려 앉아, 억지로 스페이드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기대해도 좋아, 이 년아. 고거고거 생긴 것도 반반하겠다... 아주 기분 좋아서 저세상 가버릴 때까지 가지고 놀아줄 테니까. 응? 알겠지?”
“.......”
“......너, 왜 아직 그런 눈이냐?”
비열한 남자의 미소를 앞에 두고도, 스페이드의 굳센 시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퉤, 하고 스페이드가 뱉은 침이, 남자의 얼굴에 묻었다.
“...그럼 너 같은 한심이 앞에 두고... 무서워 지리기라도 하리? 븅신아.”
배시시 웃는 스페이드. 남자는 스페이드의 얼굴을 놓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이 년이!”
뻑! 콰직! 콱! 퍼억!
그대로 스페이드를 난폭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이 남자 또한 다른 빌런들과 같이 개조수술을 받았다. 본래의 스페이드에게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그래도 충분히 탈인간으로 강화된 각력으로 걷어차니, 마력이 깎여나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스페이드로서는 하나하나가 묵직한 충격이 되어 고통스럽게 했다.
“아읏... 윽... 그만....”
“적당히, 슬슬, 기란 말이다, 히어로!!!!”
뻐-억! 콰르르르륵...!
“커흑...! 콜록, 콜록...!”
복부를 세게 차인 스페이드의 몸이, 몇 미터나 굴러가, 근처의 파이프 더미에 격돌했다. 굴러떨어진 파이프 몇 개가 쓰러진 스페이드를 가격했다.
“하아... 아직 안 끝났어!”
씩씩거리며 스페이드에게 다가간 【사이코】의 보스는, 마지막이라는 듯 스페이드의 얼굴을 향해 발을 날렸다.
턱-.
그러나 그 발은 중간에 끼어든 다른 누군가의 발에 가로막혔다.
“거기까지.”
“이건, 뭔――아, 하하하....”
누군가, 하고 봤더니 끼어든 건 다름 아닌 클로에였다.
【사이코】의 전원을 쓰러뜨린 스페이드를 아무렇지 않게 일격에 무력화시킨 무시무시한 히어로. 동시에 스페이드를 유인해 습격하도록 자신들을 사주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제 충분합니다. 데려가겠습니다.”
“아, 저기, 조금만 더 있다가는 안 될까요? 그게, 아직 본 때를 못 보여줬는데....”
“Yucky(역하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들 목을 따지 않고 가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텐데?”
“그, 그렇죠... 그렇죠오~!”
굽신굽신 거리며 거리를 벌리는 남자를 클로에는 흥, 하고 깔보듯 노려보더니, 정신을 반쯤 잃은 스페이드를 어깨에 반쯤 들쳐메고 룸에서 빠져나갔다.
“......아, 진짜 개 아깝네....”
남자는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목숨을 건진데다 아이우스의 소피아로부터 모종의 보수는 받게 되었지만, 역시 조금 아까운 마음은 남았다.
‘보니까 질척질척한 세력 싸움 같은데... 잘하면 약점 잡아서 쥐고 흔들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저 여자도....’
남자는 욕망에 찬 눈을 번들거리며, 떠나가는 클로에의 뒤를, 걸음을 내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봉긋한 엉덩이를 탐욕스럽게 주시했다.
* * *
소피아가 써내려가고, 클로에가 그토록 반복해서 말하던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에도 적히지 않았으며, 스페이드도, 클로에도, 이 자리에 있던 【사이코】 중 누구 하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한가지 있었다.
어느샌가 외부인이 출입금지 된 이 룸에 몰래 숨어들어와 들어와, 널브러진 쇳더미 사이에 숨은 소형 드론.
그 드론의 아래에 장착 된 카메라가, 이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담고 있었음을, 누구 하나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 * *
아아... 아아아아앗...!
우우우우웅- 하는 기계음과, 쾌락을 견디는 신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미안해요, 스페이드. 난폭하게 대했죠. 그러게 순순히 따라왔으면 좋았을 것을.”
클로에가 꼼짝도 못하던 스페이드를 운반해 온 곳은, 어느 비싸보이는 고급 호텔이었다.
그 최상층의 한 방, 스페이드는 두 팔 두 다리가 사슬에 구속된 채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사슬은 클로에가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허공에 사슬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소피아는 사슬에 묶여 꼼짝 못 하는 스페이드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것만으로 스페이드는 “아아...”하고 달콤한 숨을 허덕였다.
지금 스페이드는 착 달라붙던 상의의 앞이 벌어져있고, 입고 있던 반바지도 벗겨진 상태다. 속옷도 마찬가지로 벗겨져, 지금은 상의 한 벌만 입고 있다.
그리고 소피아는 그런 스페이드의 음순에 끝이 둥근 전동마사지기를 들이 댄 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 읏...! 당신들...! 흐앗...!”
사타구니 사이의 새하얗고 탄력 있는 살주름에, 소피아가 마사지기를 꾸욱 들이대자 뭔가 말하려던 스페이드의 목소리가 대번에 흐트러졌다.
“후후, 이렇게 느껴버리다니 귀엽네... 그보다 이렇게 민감한 걸 보니... 자주 하나 본데? 자위 얼마나 해요?”
“아아아앗... 잠깐만... 민감... 흐이익...!”
“제대로 대답해주세요?”
“아흐읏... 히이잇...!!!”
덜컹! 견디지 못한 스페이드의 허리가 크게 튕겼다. 보지에서는 음란한 액이 뚝, 뚝, 떨어져내려 바닥을 더럽혔다.
“하앗... 아... 하아아....”
“지나칠 정도로 칠칠맞은 몸이네... 단순히 자위를 좀 많이 하는 걸로 되는 게 아닐 텐데....”
“자, 자위, 자위, 시끄러워... 당신들... 아이우스... 무슨 꿍꿍이얏...!”
“어머나, 어머나. 쓸데 없이 뭘 알려드나요.”
소피아는 요염하게 웃으며, 상의가 벌려져 드러난 스페이드의 모양 좋은 가슴을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민감해진 몸은 그 자극만으로도 안쪽의 욕망의 불길을 활활 불태웠다.
그 반응을 의아하게 여기던 소피아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요염하게 웃어보였다.
“스페이드, 당신... 13호랑은 무슨 관계인가요?”
“――뭐?”
스페이드는 눈을 깜박깜박 감았다 떴다. 일순 심장이 콱 붙잡힌 것 같았다.
어디까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무, 무슨 소리야... 히어로인 내가 빌런이랑 뭔 관계가 있다고....”
“어머나, 그런 소릴 내뱉는 건 요입일까?”
“히응?!”
소피아는 잠깐 떼어놓았던 마사지기를, 다시 스페이드의 보지균열에 가져다 댔다. 척추를 꿰뚫는 오싹한 감각에, 스페이드의 몸이 퍼득 뛰었다.
“아하하하, 당신, 거짓말 정말 못하네요. 생긴 것도 내 취향이고, 내 것으로 해야지~.”
“으읏... 그만... 아냐... 아니라고... 시, 13호 따위...!”
“혹시, 좋아한다던가...?”
“그건 진짜 말도 안 되지~~~!!!!!”
철컹, 철그렁! 스페이드는 사슬을 끊어버릴 기세로 소피아에게 덤벼들려했다.
지나친 반응에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소피아가 스페이드의 보지에 댄 마사지기를 꾸욱 밀자 "하으응..."하고 스페이드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스페이드. 여차하다면 모를까, 굳이 이거 언론이나 협회 쪽에 알릴 생각은 없으니까. 누가 누굴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간섭하는 것도 멋 없는 짓이잖아요?”
“흐으윽...! 아, 아니라고... 누가... 그런 놈...을...!”
“다만 그래요. 일단 그 빌런조직 【어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제가 원하는 건 손에 넣을 수 없거든요. ...뭐, 덧붙여서 7번대도 가지고 싶어졌을 뿐이지만.”
소피아는 탐욕스러운 여자다.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자기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못 말릴 정도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
그러나 그런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멈춰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아니야... 나는... 7번대는... 빌런 따위와....”
“그래요, 그래요, 그 13호 씨가 여길 이렇게 자극해줬던가요? 한 번 떠올려볼래요? 어떻게 만져줬었지? 어떻게 여길 기쁘게해줬어? 응? 자~ 자~ 생각하는 시간~”
“아아... 앗, 히...!”
마치 벌꿀이 떨어지는 듯, 달콤하게 들려오는 소피아의 목소리가, 제대로 된 판단능력을 잃은 스페이드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오늘의 그녀는 확실히 이상했다.
소피아의 손짓 하나하나에 이 정도로 느껴버리고, 뇌가 노골노골 녹아버릴 것 같다니.
“자, 스페이드. 떠올려보는 거예요. 그와의 기억을. 당신의 기억을... 【소피아님의 손에 쾌락의 늪에 빠진 히어로는, 순순히 모든 일을 자백한다】... 그게 ‘시나리오’니까요.”
따닥, 딱, 하는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버티려는 스페이드를 보며, 소피아도 조금은 놀랐다.
‘제 시나리오에 이 정도로 저항하다니....’
더욱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괜찮아요, 스페이드. 당신은 그대로 히어로로서 있을 수 있어요. 단순히 제 것이 될 뿐이에요. 그러니 스페이드, 말해봐요. 자.”
소피아는 달콤하게 속삭이며, 스페이드의 모양 좋은 가슴, 그 정점에 선 돌기를 손가락 끝으로 빙글 돌리며 희롱했다..
스페이드는 의식이 일순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아... 저... 는....”
스페이드가 천천히, 참회하듯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