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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화 〉#48 그 빌런과 그 경찰은 서로 조우한다(2) (196/271)



〈 196화 〉#48 그 빌런과 그 경찰은 서로 조우한다(2)

그 날은 정말이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연일 이어지던 바쁜 시기가 지나고, 오랜만의 여유로운 휴일에 친구의 소개로 미팅이 잡혀서 한껏 들떴건만, 아침부터 바닥을 구른다거나 상대측에서 ‘경찰제복으로 와주시면 좋을텐데’ 같은 어쩐지 수상한 요구가 있다거나....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더니 사고가 일어났는지 교통정체로 어이없을 정도로 늦어버린 건도 있고, 결국 버스에서 내려 달려 가려했더니 계단에서 떨어지려는 아이가 있어 몸을 던져 구하다 흝투성이가 되고, 힐 굽은 부러져버리고....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다고 생각했서, 결국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골목길에 숨어서 훌쩍이고 있었다.


최악, 최악.


불행하다, 불행해.


이래서야 평생 남자친구도 못 사귀겠지. 신님이 나한테 허락해주지 않는 걸거야. 싫어요~~~~ 신님 미워~~~~.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불만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는데.

――‘조금만 도와드리게 해주실래요?’

갑자기 만나게  그 남자의 얼굴에, 목소리에.

그 순간 모든 불만도, 불평도, 마음마저도 단숨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 * *

남자는 자신을 써틴, 이라고 소개했다.

 영어, 중2병, 하고 생각도 했지만,

“직장에서 별명으로만 부르니까 이쪽이 편하네요.”


라고 하니 어쩐지 납득이 되었다.


써틴은 한초령의 부탁대로, 그녀를 가까운 곳의  매장까지 부축해주었다.


초면인 사이에 안아 드는 건 논외고, 등에 업자니 짧은 치마가 신경 쓰이고, 그렇게 해서 서로 허리에 손을 두르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걷기가 불편한 것보다 번화가를 너덜너덜한 차림새로 홀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신경 쓰였던 초령에게는 나란히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나... 이게 남자... 뭔가 탄탄하고... 여자랑은 전혀 달라....’


써틴의 손이 허리를 두른다거나, 그 품에 기댄다거나... 남자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초령에게는 그 정도만으로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떨리고, 얼굴을 발갛게 달아 올랐으며, 트레이드마크인 축 늘어진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물론 대련하거나  때 남자와 접촉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때는 그 때에 맞춘 스위치가 들어가니 지금 같은 알콩달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으으으으... 안 돼... 아무리 초조하다곤 해도 이제 겨우 만난 초면의 사이, 거기다 이렇게 친절한 남자면 여자친구 정도는 있겠지...? 바, 반지는 없으니 결혼은 안 했을 것 같지만...  외에도 이것저것 따질 건 많아. 헤픈 여자가 되어선 안 돼, 한초령...!’


그렇게 초령은 가까스로 스스로의 마음을 추슬렀다.


번화가인 만큼 옷매장은 많았다. 적당한 곳을 들어가, 간단히 신을 굽이 낮은 구두와 함께 무난한 옷을 사서 입었다.


다만 계산을 끝냈을 때는 이미 약속시간에는 지나치게 늦어있어서, 친구에게는 사과의 말과 함께 오늘은 못 가겠다고 연락할 수 밖에 없었지만.


친구에게선,

[안 오길 잘했어. 오지마.]


라면서 날아온 사진이  장.


여자 측은 간호사복, 스튜어디스복, 군복에다 고딕 풍...  외에 남자 측에선 프로레슬링 복면에 군복, 록가수 같은 차림새까지.


순간 코스프레 회장인  알았다. 그러고보니까 경찰제복 입고 와달라고 했었지. 이게 미팅이라니, 무슨 지옥도람.

“잘 어울리네요.”

“아... 감사합니다 써틴 씨. 정말 어째야하나 싶었는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저기, 뭔가 답례라도....”

“아뇨, 괜찮아요. 그냥 곤란해 보여서 지나치기 어려웠을 뿐이니까. 아이를 구하려다 그렇게 된 거라면서요.”


써틴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멋진 분이시네요. 아이를 위해서 몸을 던지시다니.”


“머, 멋진... 흐에....”


“그보다 미팅 쪽은 어떻게 됐나요? 지금부터 가도  늦겠어요? 어서 가야 되는 거 아닌가요?”

칭찬의 말에 얼굴을 붉히던 초령의 표정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괜찮아요. 그쪽은  가게 되었다고 연락했으니까. 이제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네요.”

조금 전에 보내준 사진 덕에 미팅에 대한 마음도  식었다.

귀중한 비번을 이렇게 허망하게 날리게  건 슬프지만, 그래도 지옥도 한복판에 던져진 것보다는 낫다. 좋은 남자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괜찮은 추억이  것 같고.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 연락처를 남겨드릴테니 다음번에 기회되시면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게 해주세요. 명함이... 아아, 없네... 저, 번호를 알려주시면 제가 그쪽으로 전화를――”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 번에 또 연락하고자 하는 흑심이 없었다곤   수 없었다.
그리고  앞의 남자, 써틴 씨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그럼 영화 좀 같이 봐주실래요?”


그렇게 제안했다.


“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혼자 보기는 좀 그래서... 그냥 돌아가실 거라면, 어때요?”

고마운 제안이다. 꽃다운 처녀의 귀중한 휴일을 외로이 쓸쓸이 맥주 한캔과 보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알겠습니다, 라고 답하기 전에, 써틴 쪽에서 윙크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새로 산 옷도 예쁜데, 그냥 돌아가는 건 아깝잖아요?”

그 말에, 초령은 심장 한가운데가 포옹! 하고 꿰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어머,  남자... 선수야...!



* * *

“또..... 새로운 여자....”


그리고  모든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인물이 한 명.


7번대의 히어로 아리아는 도로 반대편에서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능력인 【예지】로 13호가 누군가와의 접촉이 있을 거란 사실을 수신하고, 서둘러 달려와보니 이꼴이다.


아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얼마나 늘어나든 신경 안 쓰겠다고 하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저 여자는....”

눈꼬리가 축 처진 미인과 함께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리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살짝, 아니, 화르르륵- 질투의 불길이 마음  깊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 * *



영화는 노래가 무척이나 좋은 어느 애니메이션이었다.


남자가 좋아할 만한 영화면 유혈이 난무하는 무시무시한 범죄 스릴러 같은게 아닐까 각오했었지만, 초령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기자기한 그래픽,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BGM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집에서  번 더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관에서, 남자와 함께 커다란 하나의 팝콘을 함께 먹는다는, 신선한 경험도 무척이나 좋았다.


항상 중간 사이즈의 팝콘 하나를 껴안고 홀로 우걱우걱 먹어대던 초령에게 있어서는  경험이라고 해도 좋았다.

중간에 실수로 컵이 바뀌어서, 서로 간접키스를 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얼굴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주, 중학생도 아니고~~~!! 이 정도로 부끄러워해서는... 그치만, 그치마안...!!’


중간부터는 영화 내용에 전혀 집중을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저것도  상관 없을 정도로 즐겼다.

끝났을 때는 화장이 지워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펑펑 울었다.


“재, 재밌었죠~~~~~~~?!”


“그치!!!”

“곰이 사람으로 변할 때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아하하, 저는 그 때 BGM이 웅장해서 깜짝 놀랐네요. 초령 씨도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에요.”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거리도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오늘  봤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네요. 초령  덕분이에요.”


“후후, 저야말로 감사한 걸요. 써틴 씨 덕분에 이렇게 보게 되어서 좋았네요~.”


맞장구를 치면서도,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제 헤어져야 될 시간인가....

그렇게 생각하자니, 써틴 쪽에서 새롭게 제안했다.


“시간도 적당한데, 같이 식사라도 하실래요?”


어느샌가 시간이 이렇게 지나있었다. 영화 시간이 되기까지 근처의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 덕분일까.


“네!”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초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써틴의 ‘마침 좋은 곳이 있어’라는 말에 오게  곳은 세련된 비어펍.

바 정도로 어두컴컴한 느낌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주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가벼운 분위기의 술집이었다.

“그럼, 오늘의 만남에 건배를.”


“예~이.”

쨍- 하고 유리로 된 맥주잔이 서로 맞부딪쳤다.

맥주와 함께 시킨 것은 식사로서 배를 채울 수 있는 해물탕과 소소한 사이드메뉴. 먹기 부담스러운 튀김보단 훨씬 마음에 들었다.

“되게 괜찮은 가게네요~. 써틴 씨는 이런 가게를 알고 있구나~.”

“이런 걸 잘 아는 친구가 있어서. 구석에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잘  와요. 그래서 너무 붐비지도 않고 딱 좋다고 할까.”


“좋네요~. 뭔가 있기에 되게 편한 분위기라~.”

“초령 씨는 성격도 좋고 미인이니까 친구들이나 남자친구랑 이런 곳 많이 다닐 것 같은데요.”


“에~이. 말씀만이라도 고마우셔라. 아쉽지만 일도 바쁘고, 같이 다닐만한 남자도 없어요. 여자애들이랑 다니는 데는 항상 똑같은 가게고.”


맥주라고는 해도 술이 들어가니 조금씩 알딸딸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껏 긴장하고 있던 입이 풀리고, 그나마 편하게 대화가 되었다.


“흐윽... 일하는 데서도 저보다 어린 부하들은 막 서내 연애를 하고 그런단 말이죠~ 저는 정말이지 슬퍼서... 슬퍼서~~~!”


“크으...! 그 마음 알아요! 나는 연애 쪽에 전혀 연이 없는데, 저보다 어린 애들은 여봐란 듯이 알콩달콩하고!”


“흐아아아앙~~ 써틴 씨 마음이 맞네요오~~~~!”

 뒤로도 한참을 얘기했던 것 같다. 이래저래 취향도  맞고. 조금 전에 봤던 영화에 대한 얘기도 하고.

아아.

이렇게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얘기하는 시간은 즐거운 거구나.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취한 것일까, 어느샌가 모든  멀어지고, 몽롱한 시야 속에 즐겁게 말을 잇는 써틴 씨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좀 더 함께 있고 싶다.


좀 더 함께 대화하고 싶다. 좀 더 웃고 싶다.


이 마음은.


아마도....


“........................좋아해요.”


눈치채고 봤을 때는, 무심코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잠시 경직. 그리고 스스로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채고 나서는,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술기운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머뭇머뭇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데.

“네? 방금 뭐라고?”

써틴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다행이다! 써틴 씨는 듣지 못한 것 같아!

“아, 아뇨! 이거, 새우가 너무 맛있어서요! 좋아한다구요!”

“해물을 좋아하시나보네요.”


“아하하하~.”

초령은 웃으며 얼버무렸다. 다행이다, 이런 식으로 고백이라니, 뭐랄까, 마음의 준비도 안 됐고... 아무도 못 알아 챘겠지... 휴우.....


『방금 고백했지?』

『좋아한다고 했어.』

『좋아한다고 했네.』

『남자 놈 뒈져라.』


당황한 초령은 주변의 테이블에서 두런두런 그런 얘길 하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비어펍에서의 시간을 가지고, 그제서야 두 사람은 헤어졌다.



* * *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나름 만족하며 휘적휘적 아지트를 향한 귀로에 올라있었다.


떠오르는 것은 축처진 눈꼬리의 미인.


한초령이라는 이름도 예쁘고, 나긋나긋한 성격의 미인이라는 것도 주변엔 없으니까 신선하고 좋다. 생각해보면 주변에 있는 여자라곤 드잡이질을 하거나 틱틱거리거나 어쨌든 나보다 훨씬 세고 무서운 여자들 밖에 없으니까.

‘어차피 일반인이니까 더 이상 엮일 일은 없겠지만.’


빌런이 평범한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까 한 때의 추억,  때의 즐거운 시간으로 끝내자.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오빠.”

“허억?!”

어둠 속에서.

기습하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밖에 없다.

“아, 아리아?”

“......즐거우셨나요.”


아리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지그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느 때처럼 졸린 것처럼 보이는 눈인데, 뭔가 굉장할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진다.

어라... 내가 뭐 잘못했나....


“어, 응... 괜찮은 휴일이었네....”


“처음보는 여자랑, 즐겁게 영화도 보시고 좋았겠네요.”

“너, 봤...?!”


순간 멱살을 붙잡혀, 끌어당겨졌다.


그리고는 마치 자그마한 햄스터처럼 아리아가 품에 파고들어, 내 목덜미를 아득 깨물었다.


어, 어...?!

“아, 저기, 아리아? 아, 아픈데...!”

“까득...!”


“아윽...?!”

아리아의 자그마한 입이, 가지런한 이빨이 더욱  파고들었다. 아, 아파아아~~~~?!
이쪽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버둥거리자, 조금 후에야 아리아는  목을 해방시켜주었다.

“오빠가 얼마나 많은 여자를 만나든 상관은 없지만, 저를 잊어버렸다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오빠님.”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든 이빨 자국을 핥는 아리아. 달콤한 향기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자극이 취한 머리를 빙글빙글 휘젓는다.

경동맥에, 언제든 끊어버릴 수 있다는 듯 아리아의 송곳니가 닿았다.

“오빠의 손으로 세뇌한, 오빠님의 노예니까... 좀 더 사랑해주세요... 사랑해요, 오빠님...♥”

“그, 그래....”


오싹한 기분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아리아가 떨어졌다.

“요즘 저에 대해 소홀하신 것 같아서, 어필해봤어요.”

“어필 수준이 아닌데....”

“애교라고 봐주세요. 귀여운 여자애는 뭘 해도 용서해야되는 법이에요.”

보통 자기 입으로 귀엽다고 하나?

...귀엽지만, 제길!


“세뇌  한 여자한테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기쁘겠지만... 세뇌해서 만들어진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아쉽네. 복에 겨운 말이겠다만.”

“.......”


내 중얼거림에, 어쩐지 아리아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리아는 어딘지 불만스런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오빠를 미행한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였는데요.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응? 무사라니? 왜?”


“역시 전혀 몰랐나보네요.”

아리아는 안 되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가 오늘 만난 상대는――”

* * *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째서, 어째서 전화번호 하나 남겨두지 않은 거야 나느은~~~~~!!!!”


그리고 다음 날.


어제의 꿈 같은 기억으로 제대로 잠들지도 못해 퀭한 눈을 한 한초령은, 자신에게 할당된 테이블 위에 엎어진  주먹을 쾅쾅 휘두르고 있다.

오늘은 또 무슨 기행이람~ 이라면서 주변의 부하들은 못 본척 하고 지나친다.

‘우우... 꽤 괜찮은 남자였는데... 물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솔직히 돈은 내가 벌어도 돼! 그렇게 성격 좋고 마음도 맞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이럴 수가...! 어떡하지, 경찰로서의 직권을 남용해서라도 그 남자를 찾을까? 3일 밤낮동안 CCTV를 확인하거나 지명수배를 하거나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경찰로서 해선 안 될 생각을 하면서도,  어렴풋이 드는 생각도 있었다.


‘써틴... 어디선가 자주 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아마 어젯밤 미련을 가지지 않고 번호 교환마저 잊은 것도, 그런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되게 자주 본 기분이고, 이렇게 헤어지더라도 또 만날 것 같다... 그런 느낌 적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디서 봤던 걸까.

되게 친숙한데.

연예인인가?


‘으음~ TV는 그다지 보는 편도 아니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딱, 하고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고민하는 와중에 자신의 스마트폰이 부우웅- 진동했다. 체크로부터 연락이다. 부탁했던 【어비스】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왔으니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얏호~!”

서둘러 나가, 체크가 기다리는 라운지로 나갔다.

“일단 경찰과 공유 허락을 받은 자료만 가지고 왔데이. 데이터 자료는 여기 USB에. 니한테 있는 시큐리티 권한이면 열람 가능할거래이.”

“고마워~.”

“...어째, 얼굴이 디게 좋아보인데이?”


“있지있지, 어제 엄~청 좋은 남자를 만났거든! 운명의 남자!”


말하고 보니 갑자기 금방 또 슬퍼졌다.


“우... 번호 교환을 했어야 했는데...  만날 수 있을까... 체크으... 찾아줘어....  능력 같은 걸로 파파팍....”

“각성자가 만능인 줄 아나, 가시나가...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니 걱정 마래이. 니 남자운 없는 거야 잘 알고 있으니께.”


“너무해?!”


오랜 시절 봐온 친구로서 잘 안다. 이 친구, 한초령이라는 여자는 남자운이 절망적으로 없다. 좋아하게 된 남자가 세다리를 걸치는 쓰레기였다거나,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는 스토커라던가 범죄자 같은 어딘가 비정상적인 놈들이라거나.


“으으으으으~~~ 나도 알지만~~~ 그러니까 이번 만남이 소중했단 말이야~~~!”

“...마, 그게 무슨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 그렇다면 응원한데이.”

“흐윽... 고마워....”


울먹이며 말하고 있지만, 한초령은 그 사이에도 고속으로 종이를 팔락팔락 넘기며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다.


대화 중에도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지 않는 유능한 여자다.


뭐, 남자가 달라붙기 어려운 것도, 그녀가 지나치게 유능하기 때문도 있다.


‘그도 그럴게,  가시나는――’


“어......?”


별안간 한초령의 안색이 변했다.


“...? 와 그러노?”


“.......”

대답은 없다. 응시하고 있는 건 체크가 제공한 어비스의 자료.

그 중 한 페이지. 주요 구성원 중 13호라는 인물,  사진에 시선이  박혔다.


맙소사. 말도 안 돼.

“이, 남자는...!”


아아, 그렇다. 익숙할만도 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을 만도 하다.


써틴의 얼굴이 페이지에 실려있다. 13호라는 이름으로.

아아, 하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빌런. 그것도 지명수배  정도로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그녀의 적이었다.


“흐윽... 신님... 나한테 왜 이래요....”

한초령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늘어진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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