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막간 어느 후일담 & 어느 빌런과 어느 보스의 어떤 사정 & 이야기는 진행한다
――‘나는... 모든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전능】의 능력자를 만들려 했어.’
【어비스】의 라운지.
나는 소파에 앉아, 곰곰이 닥터... 토리가 했던 말을 반추해보고 있었다.
각성자.
【전능】의 능력자.
뭐랄까, 너무 꿈 같아서 실감이 안 나는 얘기다.
‘...무슨 소원이든지 이룰 수 있다라....’
만약에 정말 그런 능력자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리고 내 소원을 뭐든 들어준다면... 나는 어떤 소원을 빌까.
“13호? 거기서 뭐해?”
“보스?”
마침 라운지에 들어온 보스가 날 발견한 모양이다. 옆집이라도 가듯 슬리퍼를 차박차박 끌며 다가오는 보스의 손에는 보리차 음료수가 들려있었다.
“뭐야, 뭐라도 보는 줄 알았더니 그냥 앉아있었네? 진짜 뭐하고 있었어?”
“그냥, 한가하길래 좀 앉아있었습니다. 생각도 좀 하면서.”
“뭐? 13호 네가 생각도 해?”
“......무슨 의미신지?”
“13호가 생각이라니, 뇌를 어딘가 빼놓고 다니는 줄 알았지. 바보잖아.”
“하.”
“아, 그런 건가! 또 뭔가 야한 생각을 하는 거지! 내 봉긋하고 여성스런 몸을 생각하면서 자위라도 하고 있는 거지? 에이~ 너무 예쁘고 완벽한 것도 문제라니까~ 이렇게나 남자를 홀려서 시도 때도 없이 발정시키다니, 이거이거.”
“.......”
“응? 왜? 뭘 꼬라봐? 콱. 눈 안 깔아?”
...오늘 보스가 왜 이러지.
아니, 평소에도 나사가 하나쯤 빠진 기분이 들긴 하는데.
“보스, 그보다 좀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응? 뭔데?”
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 복장은 도대체 어찌된 것인지요.”
척, 손가락을 내밀어 가리킨다.
그도 그럴게 지금도 꼴깍꼴깍 차가운 보리차를 들이키는 보스는,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다소곳한 느낌의 속옷만을 입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지금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온 신경을 시각에 집중하고 있다.
차가운 보리차 병에 맺혀진 물방울이 똑똑 흘러 떨어져, 비스듬하게 누운 보스의 매끈한 배를 타고, 우묵한 배꼽으로 흘러내리는 광경을, 나는 꿀꺽 침을 삼키벼 지켜보고 있다.
“음... 더워서?”
“가을 날씬데....”
“왜. 불만 있어?”
“아뇨, 별로.”
내 눈도 즐거우니 나쁘지 않다.
굳이 지적해서 두껍게 입어주는 것도 실망스럽다.
.......
아냐. 그렇지 않다. 악마의 유혹에 져서는 안 된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보스!”
“우왓?!”
“저는 보스를 그렇게 버릇없는 아이로 키운 적이 없습니다!!”
“아니, 누가 누굴 키웠는데?!”
이건 큰일이다. 보스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남자한테나 속옷을 보여주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치녀가 되어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보스가 진정으로 마음으로 정한 상대라면 몰라도, 그 외의 돼지 같은 남자 새끼들이 보스의 저 매끈한 허벅지며 손가락을 꾸욱 찔러넣고 싶은 저 배꼽 같은 걸 본다고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대놓고 드러내면 에로함이 없다고요!! 보일 듯 말 듯, 살짝슬쩍 보이는 것에서, 혹은 부끄러워하며 보여주는 것에서 진정한 에로스가 발생하는 법입니다 보스!! 당장 옷을 입으세요! 제 옷을 입으세요!”
“갸아앗?! 벗지 마?!”
서둘러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더니, 발로 콱 차여버렸다.
“흐, 흥! 내 요염한 자태에 해롱해롱해서 덮치려들다니... 변태 녀석! 13호! 에잇! 에잇!”
“아악! 악! 그만! 보스! 거긴 약해요!”
어떡하지, 밟히는 데도 행복하다.
참모의 마조변태력이 내게도 전해져버렸나?
아니, 하지만 속옷차림의 미인이 맨발로 밟아주는데, 기분 좋은 것도 당연한 거 아니야?
거기다 발이 콱콱 내리 꽂힐때마다, 속옷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사타구니의 주름이랄까, 이 상황에도 에로스를 느끼는 법이구나.
“하지만 용납할 수 없습니다, 보스.”
“엇?”
나는 나를 내리밟는 보스의 발을 덥석 붙잡으며 일어섰다.
발이 붙잡혀올려진 보스는 소파에 쓰러지듯 기대며, 당황스러운 듯 눈을 깜박깜박 치떴다.
“참모나 닥터도 여자가 되어버리고, 아무리 여기에 남자가 저 밖에 안 남았다고는 해도 공공연한 장소에서 그런 차림새가 되어버리다니, 이 13호, 부하로서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아, 아니야... 하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라, 빨아놓은 옷이 없어서 그래....”
“더 문제지 않습니까! 제발 청소랑 빨래 좀 하라고요!”
“후에엥... 왜, 왜 13호가 안 해주는 건데!”
“요 며칠 바빴다고요! 자다 깨어났더니 일주일이 지나있었는걸!”
“일주일 동안 잤어?! 아니, 그보다 참모랑 이런 저런 짓 하는 거 다 봤거든?!”
“...참모랑?”
그건 무슨 말일까. 확실히 이 일주일의 기억이 좀 애매하긴 했는데.
참모랑 뭔가 있었던걸까....
“아무튼 13호가 나빴어! 나를 냅두고! 청소도 빨래도 안 해주고! 밥은 참모나 애플이 돌아가면서 해줬지만! 시켜 먹기도 했지만!”
“보스 너무 글러먹었어요! 집안일 좀 하세요! 쓰레기 분리하는 법은 아십니까?!”
“에에잇! 나는 보스인걸! 보스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13호가 해줘! 해줘어어어어어~~~~~~!!!”
“보스는 어른스러울 때랑 유치할 때의 갭이 너무 커요....”
어쨌든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지.
“보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하자, 보스의 훤히 드러난 가녀린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제가 분명 말했을 텐데요. 이제 슬슬 방청소 정도는 하자고.”
“흐, 흥...! 난 보스인데, 부하의 말 따윌 들을 것 같아?”
“후, 안 되겠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군요.”
“뭐, 뭘 하려고....”
“당연하지 않습니까?”
보스는 이미 대답을 알겠다는 듯, 침을 꼴깍 삼켰다.
“징계입니다. 거기 소파 등받이에 기대서 엉덩이를 이쪽으로 향하세요.”
아아... 흐읏... 아아아아앗...!
보스는 덜덜 떨면서도,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내게 엉덩이를 향해주었다.
나는 그런 보스의 속옷을 허벅지까지 끌어내리고, 마침 가지고 있던 마사지기를 보스의 음순에 꾸욱 누르며 괴롭히고 있다.
“보스, 그렇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으읏... 크흣...?! 어, 어쩔 수 없는걸...!”
“하아, 그렇게 자꾸 팔다리를 휘저으시면... 안 되겠네요. 보스, 도구가 없으니까 보스의 능력으로 멈춰주시죠.”
“에...?”
“해주세요. 진지한 징계를 위해서입니다.”
“아, 아....”
보스는 여전히 보지에 닿아 진동하는 마사지기에 정신이 쏙 빠진 건지, 몽롱한 표정으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구, 【구속하라】... 아앗... 몸이 안 움직여....”
보스의 【언령】과 함께, 빛의 고리 같은게 보스의 손목과 발목에 나타나 소파에 고정해버렸다. 보스는 소파 위에서 내게 엉덩이를 내민 채,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좋습니다, 보스.”
나는 씨익 웃고, 이미 눅진해진 보스의 보지를 괴롭히길 계속했다.
“흐아앙... 아앗... 히그으으으으윽... 어, 어째서... 그런 걸 가지고 다니는 거야... 변태야...!”
“변태라니, 이건 신성한 징계입니다, 보스. 저 자신은 야한 생각 따윈 털끝만큼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전쟁터에 총을 놓고 가는 사람이 없듯, 저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 최소한의 도구를 상비하고 다닙니다.”
“으으으으으으으응~~~!!! 흐으으윽... 읏...! 무, 무기인 거야...?”
“그런 것보다 보스입니다. 오늘에야말로 보스의 못된 버릇을 뜯어고쳐야겠습니다.”
“히야아아아아앙...?! 크, 클리토리스으......!! 거긴, 거긴 민감해앳...!!!”
보스는 절정했는지 허리를 크게 튕겼다. 뚝, 뚝, 소파 시트 위에 보스의 투명한 애액이 군침이 흐르듯 보지에서 방울져 떨어져내렸다.
“아, 아우웃...?! 시, 13호...? 갔어! 나 갔다고...! 흐구으으읏...?!”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게 징계인 걸요, 보스. ...그보다 벌써 가다니, 많이 야해지셨네요, 보스.”
“으흐으으으읏...!! 아, 아냐... 그런 거... 히그으응...!!”
마사지기의 진동에 견디지 못하고 실룩이는 엉덩이가, 비틀어지는 허리가 마치 이쪽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핥으면 달콤한 맛이 날 것 같은 부드러운 살결.
나는 더욱 깊이 마사지기를 보스의 소중한 살주름 사이에 밀어붙였다. 보스가 “아아...!”하는 허덕임과 함께, 허리를 휘꺽 꺾었다.
집요하게 보스의 보지를 괴롭히고, 수차례 절정시킨다. 탈수를 걱정해 조금 전까지 마시고 있던 보리차를 입으로 옮겨주면서, 수분 보충도 충분히 해줬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그 얼굴이 완전히 쾌락으로 노곤노곤 녹아버렸다.
“자, 보스. 잘못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아아... 잘못했어여... 잘못... 히으윽...! 저는 못된 아이입니다....”
눈물과 함께 애원하는 보스의 보지에서 마사지기를 떼었다.
보스의 아래에는 그녀가 흘린 애액이며 체액으로 흥건한 웅덩이가 만들어져있다. 보지는 달콤한 페로몬을 풍기며, 눅진눅진하게 젖어있었다.
“아, 아아....”
“좋습니다, 보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이제부터 방청소는――”
“끝...이야?”
보스가 이쪽을 돌아봤다.
안심하는 표정이라기 보다는,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 더해서 이쪽을 책망하는 듯한 눈길.
아아, 과연.
“이런... 이걸 바라신 겁니까?”
내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키자, 보스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 못된 아이니까... 좀 더... 징계해 줘야... 되지 않을까...?”
보스는 유혹하듯 허벅지를 조심스레 비볐다.
이런 걸 보고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아... 좋습니다. 보스. 하지만 징계인데, 보스는 기뻐하는 것 같네요.”
“아, 아냐... 아냐아냐. 전혀 기쁘지 않아... 징계인걸... 잘못했으면 징계를 받아야 하는 거고....”
그런 말을, 그렇게 기대하는 얼굴로 하셔도.
나는 큭큭 웃으며, 바지를 내려 단단하게 선 자지를 꺼냈다. 그대로 보스의 가는 허리를 붙잡고, 보지를 정확히 노려――단숨에 찔러넣었다.
“흐으으으으응...!!!!!”
쯔적... 하고 눅진눅진한 살단지를 가르며 육봉이 깊숙이 침입한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보지를 범하는데도, 보스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나는 그만 징계인 것도 잊고 그런 보스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깨물며, 열심히 그 몸을 범해갔다.
* * *
“하앗... 하아....”
“이제 좀 진정이 되셨습니까, 보스.”
보스는 국부를 노출한 채로, 땀투성이가 되어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신음을 흘리고 있다.
음부에서는 보스의 애액과 내가 쏟은 정액이 뒤섞인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다시 흥분할 것 같았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맞은편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지친 듯 숨을 하아, 하아, 들이내쉬며 축 늘어진 보스를, 지켜보던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입을 열었다.
“...보스, 설마 싶지만, 일부러 그런 차림으로 나타난 건 아니겠죠.”
흠칫, 보스의 몸이 떨렸다.
“서, 설마... 그럴 리가... 하하....”
“그렇겠죠. 보스가 징계를 받고 싶어서 일부러 못난 꼴로 제게 찾아왔다... 그런 음란하고 음탕하고 야한 사람일 리가 없죠, 보스는.”
“으, 음탕....”
“만약 보스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저는 실망해서 더 크고 엄청나고 심각한 징계를 해드렸을 겁니다.”
“어, 엄청난... 꿀꺽....”
보스가 흘끔흘끔 내 눈치를 보는 것을, 나는 못 알아챈 듯 무시했다.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 이상 아무 말도 없었고, 누군가 자리를 떠나는 일도 없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건 아니지만, 먼저 입을 연 건 내 쪽이었다.
“...........보스. 요술램프 있지 않습니까.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어...? 응. 램프의 요정 말이지? 지니였나?”
“네... 뭐든 상관 없습니다만...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한다면 보스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00개로 늘린다거나 그런 건 예외지?”
“네. 100개든 1000개든 얼마든지 비시지요.”
“뭐야, 완전 쩔어.”
보스는 이제는 구속이 해제된 다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귀찮아. 안 빌래.”
“......허.”
“아, 나 지금 뒷내용이 엄청 궁금한 BL물이 있거든? 그 작가를 지하실에 가둬놓고 24시간 내내 글을 쓰게 한다거나... 아니, 그래선 창작에 방해가... 그럼 미래에 나올 완결편까지 전편 지금 당장 보게해달라고 하거나!”
“.......”
“아! 아니면 내 방을 청소해주고 밥도 제때제때 해주면서 불평 안 하는 시녀를 만들어달라거나!”
“보스, 무슨 소원이든 된다니까요?”
나는 정정하듯 말했다.
“보스의 가족을 되살리는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 물음에, 보스가 조용해졌다.
“그 외의 과거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면?”
보스의 가족은 보스를 제외하고 전부 죽었다.
【어비스】의 재력이 애초에 보스에게서 나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보스는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금품을 노린 빌런들에게 부모가 살해당했으며, 각성한 동생은 폭주하다가 히어로에게 죽었고, 보스 본인은 능력을 노린 연구원들에게 몇 번이나 습격당하고 끌려갈 뻔했었다.
부조리. 불합리. 불행.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있던 과거를, 소원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보스가 그것을 바란다면, 나는 기꺼이 닥터가 말한 【전능】의 능력자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전세계 모든 인구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지금 이하의 더는 없을 최악의 악당이 되더라도 토리에게 협력해 【전능】의 능력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시 이어진 무거운 침묵 속에서, 보스는 나를 흘끔 보더니, 소파에서 내려와 총총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에잇.”
내 무릎 위에, 털썩 앉았다.
“보스?”
“꼭 안아줘, 13호.”
팔을 잡아당기기에, 보스의 뜻대로 보스를 품에 안았다.
품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자그마한 몸집. 가녀린 어깨.
보스는 감촉을 즐기듯 내 팔뚝에 고양이처럼 볼을 비볐다.
“그런 소원은 빌지 않아, 13호.”
“하지만.”
“13호도 나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13호의 앞에 그런 요술램프가 나타나면, 과거를 바꿀 거야?”
“.......”
“그게 아니면... 그래, 지금은 능력을 못 쓰는 상태잖아. 능력을 다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건?”
잠시 생각해보고.
고개를 저었다.
“왜?”
보스가 다시 물었다.
“.......”
대답이 없는 모습에, 보스는 히힛 웃었다.
그리고는 내 품에 자그마한 머리를 포옥 기댔다.
“13호와 같은 이유일 거야.”
“같은 이유라면.”
“나는 지금이 충분히 행복해.”
보스는 눈을 감은 채 음미하듯 말했다.
“13호가 있고, 참모가 있고, 도로시도 있고. 히어로 애들도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즐거워. 새로 만난 토리도 은근 재밌는 아이고. 내일은 또 어떤 소설을 읽을까 기대하는 것도 즐거워. 물론 우여곡절도 많고, 앞으로 슬픈 일도 많을 테고. 힘든 일도 많을 테지만... 소원 같은 걸 빌어서 해결하기에는, 재미가 없잖아.”
“재미입니까.”
“응. 중요해 그거.”
“그렇다면 만약 그 중 한 명이라도 잃는다면 어떻습니까?”
“잃어?”
“참모나 도로시가 사라진다면... 예를 들어 결혼으로 떠나가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슬프겠지. 그리고 울거야. 하지만 되살려달라고는 안해.”
보스는 즉시 대답했다.
“...그럼 제가 사라진다면요? 예를 들어... 임무 수행 중에 죽는다거나.”
“13호가?”
“네.”
“짖궂은 질문이네.”
“죄송합니다.”
“그래도 딱히 소원은 빌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습니까. 조금 아쉽네요. 전 보스에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거군요....”
보스는 내 품 안에서 몸을 돌려, 나와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어딘지 슬프게 웃었다.
“――만약 13호가 죽는다면.”
“나도 너와 함께 죽을 거니까.”
그러니까 소원 같은 건 필요 없어, 보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할 말이 없는데.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한숨만 내쉬었다.
“...오늘 저녁엔 외식이나 할까요. 곱창이나 먹죠.”
“꺄아~ 곱창 너무 좋아~ 최고급 곱창집으로 예약해 둬, 13호!”
어린애 같이 웃으며 폴짝 뛰어내리고는 빙글빙글 돌며 기쁨의 춤을 추는 보스를, 나는 쓰게 웃으며 지켜봤다.
【소원을 이루는 능력】이니 【전능】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이미 원하는 건 다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언젠가 보스가 죽는다면.
나도 보스를 따라 죽어야지.
그런 삶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생이 될 것 같다.
* * *
한국, I시의 공항.
“어머나, 여기가 한국?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한테서 품위가 느껴지질 않는걸.”
공항에서 나와, 실망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컬이 들어간 풍성한 금발머리의 백인 여성. 머리에는 흰 베레모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소피아님. 오래전부터 미개한 야만인의 피가 섞인 저급한 인간들이니까요. 심지어 신인류에 대한 취급조차 뒤떨어지는, 미래가 없는 한심스런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보좌하는, 쿨한 인상의 남색 단발머리의 여성이 그런 그녀를 달래듯, 어조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가지 편견이 섞인 의견이었지만.
“어휴, 일이라곤 하지만 이런 곳에 오게 되다니 실망을 금치 못하겠네. 마중 온 사람과는 연락이 되었나요, 클로에?”
“네.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어서 가죠.”
소피아라고 불린 금발의 여성이 앞서 나아가고, 클로에라 불린 단발머리 여성이 그 뒤를 쫓았다.
“흐음... 이런 나라에 저희가 그토록 바라는 【전능】의 단서가 있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질 않네요 정말... 어디에 있으려나....”
그렇게.
빌런이 모르는 곳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