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45 히어로는 공부중(1)
“오, 스페이드 양. 공부하시는 건가요?”
“어라, 참모?”
빌런 조직 【어비스】의 아지트, 그 카페테리아.
인원수는 적다지만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춰진 아지트의 한 룸 안에서, 두 사람은 딱 마주쳤다.
테이블 위에 각종 전공서적들과 노트북을 늘어뜨리고 반쯤 죽어가고 있던 스페이드는 참모에게 까닥 목을 끄덕여 반응해주었다.
“책이 많군요. 그러고보니 대학생이셨나요.”
“그렇지... 기말기간이라 죽을 것 같아. 이번에는 빠진 일이 많았어서 시험이랑 리포트로 보충해야되니까....”
따라가지 못한 수업진도도 알아서 독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엔 【어비스】며 【시궁쥐】며 애플이며 닥터의 일로 하도 정신이 없어서 학업에 지장이 크다.
Y여대는 나름 명문대니만큼 수업 수준도 높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스페이드로서는 조금 버거웠다. 덕분에 순찰 등의 일도 클럽이며 다른 대원들에게 대타를 부탁하고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있는 처지다.
“고생이 많군요.”
“고생이 많지... 반은 13호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차분하게 공부하고 싶어도, 뭐만 하면 불러내서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는 그 녀석 때문에 이래저래 힘들다.
세뇌만 아니었으면 전신의 관절을 반대로 돌린 다음 돌을 묶어서 동해 바다에 던져버렸을 텐데.
“뭐, 어쨌든... 13호님 못 보셧나요? 최근 보기가 힘드네요.”
“바쁜가 보지... 난 못 봤어.”
스페이드는 눈 밑에 거뭇하게 기미를 그린 채, 참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 왜 그렇게 보시나요?”
“아니... 너, 그 몸으로 불편하지 않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대?”
스페이드가 지적한 대로, 참모는 여전히 여체화된 상태다.
어깨까지 오는 반짝이는 은발, 가녀린 팔과 어깨, 살집이 부족하지만, 그런 부분은 커버할만큼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배어나오는 여성스러움은 본래 여자인 스페이드조차 압도할 정도다.
누군가 그런말을 했던가.
남자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여성스러움은, 실제 여자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요리며 청소며 깔끔하고 차분한 성격 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스럽다 생각하는 일면은 의외로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참모도 그런 걸까.
7번대, 나아가 히어로협회는 주요 인원이 여성들로 이루어진 집단이고, 스페이드 자신도 여중, 여고에 이어 대학교도 여대를 다니고 있다.
여자들만 있는 환경일수록 여성스러움은 더더욱 가뭄 상태가 된다. 여성의 수와 여성스러움은 반비례한다.
그러니까... 여자가 된 참모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고운 이목구비.
반짝이는 은발에, 살짝 풍겨오는 꽃내음.
풋풋하지만 자연스럽게 살랑이는 손짓 발짓.
부드럽고 온유한 목소리와 말투.
마치 요정 같은 자태.
이게 뭐야.
저거 지금 나 유혹하는 거지?
“어... 스페이드 양? 괜찮나요?”
“핫...! 지금 순간 여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할뻔했어....”
“무슨 의민지 모르겠지만, 피곤해서 그런가 보네요... 좀 쉬면서 하세요.”
참모는 어른스럽게 웃고는 사락사락 꽃내음을 남기고 떠나갔다.
저래놓고 요리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변태긴 하지만), 똑똑하기까지 한 거지.
완벽하잖아.
여자로서 주눅이 들거 같아....
스페이드는 침울한 표정으로 눈 앞에 펼쳐놓은 노트에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갔어, 13호. 나와.”
“땡큐, 스페이드.”
테이블 아래서 엉금엉금 기어나온 것은, 참모가 찾고 있던 13호다.
참모를 멀찍이서 발견한 13호는 어쩌지저쩌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런데에 숨어버린 것이다.
“좋은 구경도 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네!”
상큼한 얼굴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하길래 발등을 콱 즈려밟아주었다. 세뇌 암시가 걸려있긴 하다지만, 이 정도 응징은 다소 허용이 되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 피해? 동료잖아.”
스페이드는 노트 위에 사각사각 연필을 놀리며 물었다.
“그게 좀 복잡하달까.... 여자가 되니까 상대하기 거북하달까....”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제에.”
“......솔직히, 위험해.”
위험?
스페이드는 노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고개만을 갸웃 기울였다.
13호는 떨떠름하게 설명했다.
“지금의 참모는, 솔직히... 상상했었던 것 이상으로, 괜찮은 외모가 되었잖아?”
“그렇지... 아니, 괜찮다 정도가 아니라, 너무 예쁘잖아....”
조금 불평하는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질투심이 배어나와버렸나....
13호는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참모, 완전히 내 취향의 한가운데를 뙀! 하고 저격했거든?”
“.....................하?”
“취저라고! 취향저격! 내 이상형! 요리도 잘하고 똑똑하고 헌신적이고 나만을 신뢰해주는 데다가 반짝반짝하고, 몸짓 하나 손짓 하나 목소리에 말투까지 내가 꿈에 그리던 이상의 신부, 하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을 바라봐야지’ 하고 포기했던 여성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단 말이야!!”
“...........”
뭐라는 거야, 이 바보는.
스페이드는 아득한 눈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진짜로 반할 것 같아서 위험해. 안 돼. 큰일이야.”
“...그렇게 좋으면 사귀면 되잖아.”
“그건 싫어! 싫다고! 참모만은 안 돼! 진짜로! 그랬다간 진짜 소중한 뭔가가 파탄나 버릴 것 같은 기분이야!”
호들갑을 떠는 13호를 옆에 두고, 스페이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랄까, 영 석연찮다.
그토록 자기들을 욕망대로 안고 범했던 주제에.
그래놓고서 이상형은 지금의 참모라고 말하는 거라던가, 참모라면 반할 거 같다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뭔데, 라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모여서 안쪽에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목구멍 아래에 시커먼 타르액이 뭉친 기분이 들었다.
“...멍청이.”
“응?”
“아무 것도 아냐.”
에에잇! 난 지금 왜 이상한 생각이나 하는 거람! 스페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버렸다.
13호는 가증스럽고 미워해야할 악당이다. 꽃다운 나잇대의 처녀들을 내키는 대로 범했으며, 지금도 절찬리 ‘세뇌’라는 야비한 것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옭아매는, 한심한 쓰레기 빌런인 것이다.
그런 녀석이 누굴 좋아하든 누구한테 무슨 생각을 품든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않아야 한다!
진짜로!
나는 히어로니까!
“참모는 갔으니까 빨리 꺼져. 집중 안 돼.”
스페이드는 곁에 둔 박카스를 쭉 들이키며 말했다. 목소리가 그만 냉정하게 착 가라앉아 버리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응? 스페이드, 혹시 화났어?”
“안 났어. 빨리 꺼져. 훠이, 훠이.”
“뭐, 가긴 갈 텐데....”
13호는 스페이드의 어깨너머로 슬쩍 노트를 보더니, 손가락을 내밀어 어느 한곳을 콕 집었다.
“이거 이렇게 계산하는 거 아니야. 너, 이거 기초도 제대로 모르고 있지?”
“?!”
스페이드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선형대수학>. 경제학을 전공으로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필수과목 중 하나다.
다만 숫자나 계산에 약하기도 한데다, 무엇보다 초반 강의를 몇 번 빼먹었더니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덕분에 중간고사 점수도 처참했다.
“어, 어... 알아? 이거?”
“펜 줘봐.”
13호가 멋대로 펜을 뺏어들고 슥슥 적어나갔다. 유려한 글씨체로 수식이 하나하나 채워지며, 매끄럽게 답이 나왔다. 책과 비교해보니 답도 맞다.
“그 외에는... 아, 이 과목 듣는 구나? 기말은 시험으로 봐? 레포트? 레포트라고? 딱 좋네. 나 관련 주제로 A+ 받은 레포트가 있는데――”
“어, 어... 어?”
13호는 늘어선 전공서적이나, 노트북에 띄워놓은 미완성 레포트를 보고는 하나하나 가르치듯 말해줬다.
담담하게 설명하는 목소리는 허세 같은 게 아니라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듯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엿보였다.
스페이드는 참지 못하고 탕!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섰다.
“너, 너, 너, 너 뭐야?! 왜 이렇게 잘 알아?!”
“응......? 저번에 문제도 대신 풀어주고 그랬었던 것 같은데...?”
어라... 그러고 보니 그랬던 적도 있었지.
그거 우연이 아니었던 걸까.
“나도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했거든. 이 분야에선 선배야.”
“.....어느 대학?”
마지못한 듯 13호가 이름을 댄 대학은,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대학이었다.
“너......설마 싶은데, 엘리트였어...? 네가...?”
“나에 대한 평가가 너무한데.”
“말도 안 돼... 이런 쓰레기가 엘리트라니... 세상은 불공평해... 멸망해라 지구....”
“그 정도로 충격받을 일이냐....”
13호는 조금 서운했다.
나름 지성으로 철철 넘쳐흐르는 스마트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나 시험 같은 건 잘 보는 성격이거든. 예상문제 같은 걸 집으면 9할은 맞고... 뭐, 그런 건데. 어때, 스페이드. 좀 도와줄까?”
스페이드는 빌런 13호를 믿지 않는다.
13호는 그녀의 적이고, 지긋지긋한 악연이며, 백만번 물어죽여도 시원찮을 원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하도 많은 일이 있어 학업을 소홀히 했다는 압박감, 그리고 시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 며칠 동안 제대로 휴식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계까지 마모된 정신력 등, 잔뜩 몰려있던 스페이드는 사고능력이 극한까지 떨어져 있었다.
즉.
“부, 부탁합니다...! 제발 이 불쌍한 중생에게 가르침을......!”
“오냐, 나만 믿거라, 스페이드... 네게 길을 알려주마....”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덥석.
13호를 믿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리석은 것!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오늘밤부터 과외 같은 식으로 하자. 저녁 먹고... 9시쯤. 내 방으로 와.”
“알겠어! 그렇게 할게! 잘 부탁해!”
“응. 맡겨줘. 그리고 공부하기 전에 좀 쉬다 오고.”
“그렇게 해야겠다! 자러 가야지!”
들뜬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스페이드는 전공책과 노트북을 안고 당장 날 듯이 뛰어나갔다.
피로에 찌들었던 얼굴에 햇빛과 광명이 비추고 있었다.
13호는 그런 스페이드를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배웅했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금방 씨익- 음흉함을 똘똘 뭉친 표정으로 바뀌었다.
* * *
『스페이드, 스페이드.』
『응...?』
『저녁부터는, 내가 네 선생님이 되는거지?』
『응... 그렇지... 그래요....』
『학생은 선생님의 말을 듣는 거지?』
『네.......』
『그렇다면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지 않도록 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명령을 하건, 너는 순순히 듣고, 따라야 해.』
『그런....』
『모든 건 네 학점을 위해서야. 좋은 학점을 위해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지 마.』
『네...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 좋아... 그대로 10번 복창하도록 해, 스페이드....』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말을....』
『잘 하고 있어, 스페이드... 선생님의 말을 절대적... 선생님의 말은 모든 것... 마음에 새겨두도록 해...』
* * *
몽실몽실, 둥실둥실.
뭔가 이상한 기분...
그래도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라, 이대로 푹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페이드, 스페이드?”
몽롱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마치 수면 위로 떠오르듯, 내 의식이 돌아왔다.
깜박깜박.
눈을 감았다뜨자, 낯선 방의 모습이 보였다.
아, 여기는....
“스페이드, 아직 피곤한 거야?”
“아, 어... 13호?”
어라, 왜 여기에 13호가 있지?
열심히 기억을 떠올려보자 차츰차츰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맞다. 기말에 치여서, 낮에 13호에게 과외해달라고 부탁했었지.
그 뒤로 푹 쉰 다음, 저녁식사를 하고(참모가 해준), 그리고 간단하게 예습을 하고 13호의 방으로 왔다.
그 뒤로는....
“네가 가르쳐달라고 했으면서 와서 졸면 어떡해?”
아무래도 공부를 시작하기 직전에, 그만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식사 전에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아... 미안. 아무래도 며칠을 밤을 샜더니 피로가 다 안 가셨나봐.”
“그럼 쉴까?”
“아니. 해줘. 이제 안 졸게.”
시간이 없다. 하루도 아깝다. 단호하게 말하자, 13호는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빌런한테 가르침을 받는 건 그렇다 치고, 13호에겐 득이 될 것도 없을 텐데.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그럼 일단 네가 약한 선형대수부터 해볼까.”
“좋아.”
“그 전에 일단 스페이드.”
13호는 탁탁, 자기 허벅지 위를 두드렸다.
“여기 올라타.”
..............뭐?
“가르치려면 최대한 붙어있는 편이 편해. 이상한 생각은 전혀 없어.”
그런 걸까?
아니, 오늘 13호는 선생님이다.
학생은 선생님의 뜻에 맞춰야지. 이건 단순히 교육에 필요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럼... 실례할게.”
나는 내 작은 엉덩이를, 13호의 허벅지 위에 얹었다.
허벅지 사이로, 내 그곳이 13호의 다리에 맞닿는다.
응... 뭔가 이상한 기분....
“일단 처음부터 가르쳐줄게. 네가 어디부터 모르는지 모르니까. 집중해서 잘 들어.”
13호가 진지한 얼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삿된 마음 같은 걸 가지는 게 실례라는 기분이 들어, 어쩐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집중해서 13호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13호의 가르침은 귀에 쏙쏙 들어와서,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은 전부 습득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멀었다며 13호한테 핀잔을 들었지만.
“너... 잘 가르친다....”
놀랍다.
“아직 멀었는데 뭘 다 배운 것처럼.”
그렇게 말하니 마음이 아프다. 공부하면 할수록 배워야할게 더 늘어나는 기분이야.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집중하려는데,
주물.
“햐앗?!”
갑자기 가슴을 주무르는 감촉에, 나는 얼떨결에 이상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뭐, 뭐하는 거야?!”
“쉿... 집중해. 공부에 필요해서 하는 거니까.”
“이 변태짓이 무슨 공부에... 필... 요....”
“이런 식으로 집중력을 높이는 훈련을 하는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동요하지 않고, 언제 어느 때라도 집중할 수 있도록.”
그게 정말일까?
아니, 의심해선 안 된다.
지금 13호는 선생님이니까... 학생은 선생님의 말에 따를 의무가 있고... 응....
아니, 그치만... 가슴을 주무르는 손이 너무 음란하지 않아...?
“응... 시, 13호....”
“집중해, 스페이드. 그리고 이 시간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러.”
“서, 선생님... 저기...!”
13호가 가슴을 주무르는 손은 여전했다.
원래 성격대로면 한방 먹여줬을 테지만...! 지금은 선생님이고... 으아아....
“스페이드, 난 지금 네 공부를 도와주러 온 건데? 계속 그렇게 산만하면 못 가르친다?”
“후응... 읏... 지, 집중할게... 집중할게요....”
나는 필사적으로 눈 앞에 놓인 책과, 13호가 조목조목 가르치는 내용을 암기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무시하려하면 할수록, 내 가슴을 주무르는 존재감은 점점 커져갔다. 어느샌가 가볍게 입은 블라우스의 단추도 끌러져, 13호의 손이 내 가슴을 직접 주무르고 있었다.
“여, 여기서 미지수... x1은... 아....”
예고도 없이 유두를 꼬집히는 바람에, 그만 달콤한 허덕임이 입에서 흘러나오고 말았다.
공부중인데, 집중해야하는데.
나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입으로 틀어막았다.
13호는 그런 나를 비난하듯 내려보았다.
“이 정도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떡해. 아직 제대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야.”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지만... 나는 13호를 살짝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대충 기초는 다 가르쳤다며, 나는 13호가 직접 만든 응용문제를 몇 개 풀게 되었다. 다행히 이해가 잘 된 덕분에 난이도가 있는 응용문제인데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나마 지도에서 해방된 13호는, 이제는 양손을 사용해 내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은 더욱 적극적으로, 남아있는 다른 한 손은 내 반바지 아래로 손을 넣어, 팬티 위로 비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미 속옷 아래에 감춰진 유두는 단단하게 발기해있을 것이다.
아... 아앙....
거길... 그렇게 만지면....
13호의 손이 내 비부를 문지를 때마다 노트 위에 글을 쓰던 손이 흐트러졌다. 같은 계산식을 몇 번이고 다시 써가며, 나는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햐앗?!”
유륜을 쓰다듬어지는 것과 동시에, 팬티 너머로 민감한 새싹을 비벼지자, 내 몸은 13호의 품에서 퍼득 뛰었다.
“스페이드? 힘내. 거의 다 풀었어. 이것만 풀면 끝이야.”
“흐읏... 으...... 이, 이것... 만...!”
나는 13호의 집요한 희롱을 견뎌내며, 가까스로 마지막 문제를 풀 수 있었다. 13호는 노트를 들고 찬찬히 확인하더니, “정답”이라던가 “참 잘했네” 같은 말을 해주었다.
기쁘다. 칭찬을 받은 것도, 답이 없어보이던 학업에 진척이 생긴 것도.
나는 노트를 덮고, 13호의 허벅지 위에서 내려왔다. 여러모로 자세가 불편했어서, 조금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 13호 선생님. 그럼, 이쯤에서――”
이만 가볼게, 라고 말하려 했을 때.
“무슨 소리야, 아직 한참 남았는데, 스페이드.”
13호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한 손으로는 일부가 불룩 솟아오른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키고 있다.
“이쪽의 공부도 해야지. 그러기 위한 선생님이잖아.”
“아.......”
어라, 그쪽의 공부라고 한다면....
“이쪽 공부도 해야지, 스페이드?”
13호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13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자, 나는 마치 영혼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
...............
.....................................................
“아, 응. 그렇지.”
그렇, 네.
맞아. 아직 배울게 많다.
“자, 스페이드. 그럼 공부를 계속해볼까.”
“잘 부탁해... 선생님.”
바지 지퍼를 지익 내리는 13호를 보며, 그의 사타구니를 내려보며, 나는 무심코 꿀꺽,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