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42 그리고 빌런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고 합니다(임시)(2)
본래 계획되어 있던 세시간 뒤가 아니라, 물리법칙이며 이것도 저것도 전부 씹어먹고 불쑥 튀어나온 라헤.
말하자면 터무니 없는 이상사태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능력 【전뇌의 주인】으로 이 빌딩의 온 감시시스템을 줄곧 확인하고 있던 애플이었다.
마치 폭풍 같은 기세로 통로를 달려오는 라헤의 앞을, 묵직하게 끌어내린 격벽으로 막아버렸다.
닥터가 히어로의 능력으로도 부수기 어려울 거라고 한 격벽이니 어느 정도 시간은 끌어줄 수 있으리라.
“무, 무, 무, 무슨 일이래?! 세시간 뒤에 나오는 거 아니었어?! 그보다 실 지금 당하지 않았냐?!”
“대, 대, 대, 대장님이 화났다아~~~~!”
“맙소사... 진짜 디질거 같데이.”
“Fuck... 진짜 겁나 미친 듯이 무서워서 덜덜 떨리는 데 어떡하죠.”
“13호 오빠! 죽기 전에 마지막 교미를...!”
“안 됩니다 서방님! 마지막 교미는 하다못해 이 몸을 사용해 주세요!”
꺼내든 단말기의 화상으로 사태를 파악한 나는 당황하며 외치고, 서둘러 돌아온 실험실도 완전히 아비규환에 휩싸여있다. 특히나 7번대의 히어로들이 더욱 더.
라헤의 두려움을 몸소 눈 앞에서 봐왔던 만큼 공포가 큰 거겠지.
“...다행이다. 실 대장, 죽지는 않은 모양이랑께.”
그나마 침착한 메이벨이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완전히 무력화 된 실을, 라헤는 복도 한쪽에 쓰레기처럼 던져놓고 간 것이다.
쿵!!!!
별안간 들려온 무거운 폭음에, 모두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화상 너머, 최상층으로 올라오는 길을 가로막은 격벽이 흉악하게 찌그러진 것이다.
다시 한 번 쿵!!!! 하는 소리.
그리고 울룩불룩한 흔적이 또 하나 생겨났다. 그런 게 수 차례 반복되고 있다. 예전에 본 괴수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던 것 같다.
부수고 있어?!
“13호!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는 3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13호.”
스페이드가 의견을 묻고, 도로시가 담담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턱을 매만졌다.
“저기, 여기 있는 전원이 달려들면 이길 수 있을까?”
“10할의 확률로 전멸당할걸.”
“9할도 아니고, 10할이야?”
“응. 100% 완벽하게. 대장은 우리가 떼거지로 달라붙어도 절~~~대 못 이겨.”
“하, 스페이드, 뭔가 짜증나. 그러니까 팬티 내놔.”
“에?”
“아니아니, 손수건. 응. 손수건이 필요해. 그니까 내놔.”
“이, 이런 상황...에. 응, 뭐, 상관 없...지만?”
“빨리!”
“네헥!”
스페이드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스커트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서둘러 팬티를 끌어내렸다. 머뭇머뭇 내밀어진 건 다홍색과 흰색의 스트라이프 속옷. 나는 고맙게 받아들어, 킁킁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야, 스페이드.”
“응?”
“여기서 살아남으면, 색기 있는 속옷을 선물해줄게. 너 색기 있는 속옷이 너무 적잖아.”
“남이사?! 쓸데 없는 배려거든?!”
“아냐아냐. 속옷만으로 여성은 본래의 두 배에 가까운 매력을 끌어낼 수....”
“Fuck! 멍청이들! 지금 벽이 부서지기 직전이거든요?!”
지나치게 가공한 현실에 살짝 도피해버렸던 정신이 돌아왔다.
어쨌든.
지금 전력이 되는 인원들로 대장급...이자 치트 캐릭터인 라헤는 막을 수가 없다.
지혜를 빌리고 싶어도, 책략가인 참모는 여전히 잠들어 있다.
“다, 닥터를 앞에 세우면 멈추지 않을까?!”
“여자로 변한 닥터를 알아 볼까?”
“......아.”
만약 못 알아본다면, 도망칠 틈도 없이 전원 살육당하려나.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줄곧 조용히 있던 엔데가 손을 들었다.
* * *
쿵! 쿵!! 쿠구우우웅!
세찬 마력을 모은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특수합금으로 된 격벽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일그러졌다. 금이 가고 뒤틀려지던 격벽은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 같았지만,
우지지지지지지지지직!
그러한 격벽보다도 빨리, 격벽을 고정하고 있던 이음매와 천장쪽이 먼저 무너져내렸다.
“닥터... 판판군....”
머리가 아팠다. 어질어질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아니, 뭔가가 생각을 막고 있는 듯, 머리 안쪽을 멋대로 어지럽혀진 듯한 기분에 라헤는 깊은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에 입력된, 지켜야 할 대상과 본능이 호소하는 소중한 판다인형을 입에 담으며, 라헤는 거침 없이 무너진 격벽을 넘어 닥터가 있을 최상층으로 나아갔다.
계단을 올라가자, 닥터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왔다! 빨리 닥터를 안쪽으로!』
복도 저편에서 들려온 건 13호의 목소리. 그리고 13호를 포함한 옛 부하들이 밧줄로 꽁꽁 묶은 닥터를 끌고 가는 게 보였다. 복도의 막다른 곳에서 꺾어, 금방 그 모습이 사라졌다.
라헤는 바닥을 박차고, 단숨에 뛰어나갔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드럼통처럼 생긴 로봇이나 벽에서 튀어나온 기계팔이 달려드는 라헤를 요격하고자 마구잡이로 총이며 레이저를 쏴댔지만, 어느 것 하나 라헤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탓, 타닥!
복도의 벽을 박차고, 속도를 전혀 죽이지 않은 채 코너에서 방향을 꺾었다. 저 멀리서 13호는 닥터를 끌고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억에 맞다면 공간이 좀 있는 소강당이 있는 장소다. 농성이라도 할 생각일까.
“저기 있...다.”
무미무시한 기세로 복도를 단번에 주파, 단단하게 닫힌 문이었지만, 라헤는 평범하게 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는 듯 단번에 차서 날려버렸다.
당황한 기색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13호, 그리고 그 외의 전원 당장에라도 그녀를 덮치려는 듯 긴장하는 게 보였다.
13호는 밧줄로 꽁꽁 묶인 닥터를 끌어당겨, 그 목 언저리에 칼을 대었다.
“윽......! 잠깐만! 라헤! 닥터가 인질로 있다! 순순히 말을 들――”
어, 라고 말하기도 전에.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내던져진 라헤의 검이 13호의 미간을 꿰뚫었다.
“.......”
라헤의 눈썹이 꿈찔, 움직였다.
“이, 이런... 대장! 진정하세요!”
“그래요,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라헤를 설득하려는 듯 모두가 필사적으로 외치는 가운데, 라헤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더니,
“.......”
입을 꾹 다문채, 손을 가볍게 저었다.
촤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
그녀의 손짓을 따라 꽃처럼 피어난 얼음수정이, 소강당 안을 가득 메운다. 얼음 수정은 그녀를 필사적으로 설득하려던 옛 부하들도, 미간에 검이 박힌 채 쓰러진 13호도, 꽁꽁 묶인 닥터마저도 가두거나 날카로운 끝으로 꿰뚫어버렸다.
그리고 얼음수정에 갖힌 모두는.
천천히, 신기루처럼 그 모습이 사라지거나, 형태가 무너져 먹물처럼 변해버렸다.
“...들켰습니까.”
빠직, 빠직!
얼음을 깨부수고 천천히 걸어 나온 것은, 라헤를 향해 총구를 들이민 엔데였다.
엔데는 닥터의 바이러스로 인해 라헤와 같이 닥터의 수족이 되었지만, 13호가 비밀코드를 댄 것으로 지금은 13호를 명령권자이자 비호의 대상으로 설정한 상태다. 즉, 13호의 편이다.
‘코코의 【미라쥬】와 메이벨의 간이 골렘... 목소리까지 재현이 되는군요.’
“엔데. 당신은 닥터의 적입니까.”
아마도 복도 저편에선 유인에 성공한 13호네들이 부랴부랴 도망치고 있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쫓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저는 닥터의 적이 아닙니다.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라헤의 안에 그녀는 적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천칭자리>의 제약은 여러 가지지만, 그녀가 적으로 간주할 대상은 스위치를 넣듯 휙휙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상대가 ‘정의’인지 아닌지 그녀의 잣대로 판별하는 건 오만하다는 걸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 안에 있는 인식으로는, 닥터는 정의이자 히어로의 높으신 분이며, 엔데는 같은 히어로의 동료다. 그리고 13호를 포함해, 옛 부하들과 실까지도, 전부 빌런으로 인식되고 있다.
“당신은 분명 히어로일텐데, 어째서 빌런들을 도와주신 거죠.”
“빌런을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잠깐, 대화를 하고 싶어서.”
“대화.”
라헤는 앵무새처럼 엔데가 입에 담은 단어를 따라 말했다.
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13호가 아닌, 동료인 엔데의 말이라면 닿는 모양이다.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고 인식한 엔데는 마저 입을 열었다.
“네, 닥터의 명령입니다. 이제 그만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닥터... 명령....”
“닥터는 13호 분들게 투항했습니다. 이 이상 싸울 이유는 없다고――”
“닥터가... 누구였죠?”
“?”
엔데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닥, 터... 닥터... 어라... 머리가 아파....”
닥터라는 인물에 대해.
분명 그는 자신의 상관이고, ‘정의’의 편이라서.
그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고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닥터라는 인물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닥터는 누구였지. 왜 닥터가 정의의 편인 걸까.
가슴 안 쪽이 술렁였다. 적으로 인식한 상대를 따라 이곳까지 왔는데,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온통 뒤죽박죽. 토할 것 같다. 뭐지.
머리에 손을 올린 라헤가, 비척비척 몸을 돌렸다. 그 앞을 엔데가 서둘러 달려와 가로막았다.
“어디가시나요! 멈추세요!”
“......적을... 배제해야합니다....”
“닥터의 명령이!”
“적을 배제하는 것 외의 명령은 없었어요, 엔데....”
“아니, 아닙니다! 멈추세요! 닥터의 명령입니다!”
“시끄러워!!!!!”
"아욱?!"
거친 고함소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마력.
거칠게 휘둘러진 라헤의 팔에, 가슴팍을 얻어맞은 엔데의 몸이 붕- 떠 강당의 한쪽 벽에 처박혔다.
“적은, 적은 배제합니다... 닥터도, 판판군도 지키... 아니, 뭐지... 아냐... 그래도... 배제...!”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어둡다. 결론이 나지 않아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헤집고 홀로 중얼거리던 라헤는, 쓸데 없는 잡념을 끊어버리고 도망치려는 13호를 추격하기 위해 떨어진 검을 도로 줍고 달려나가려했다.
“...?”
그러나 강당을 나서려던 라헤의 팔을, 어디선가 사출된 앵커와 그 뒤에 딸려온 와이어가 재빠르게 칭칭 휘감았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팔을 휘감은 와이어를 타고 흐르는 무시무시한 고압전류에, 라헤의 몸이 경직됐다.
와이어의 다른 한쪽 끝. 라헤에 의해 벽에 사납게 처박혔던 엔데가, 와이어를 사출한 팔을 앞으로 내민 채 끼기긱, 기계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낼 수 없습니다. 보내지 않습니다. 모든 건, 명령을 위해.”
“끄,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으...!”
험악한 표정으로 신음성을 흘리는 라헤. 로봇처럼 무감정한 표정으로 선언하는 엔데.
빌딩 최상층의 소강당 안에서, 두 사람이 대치했다.
* * *
“찾았다! 실이야! 우와, 상처봐 이거. 괜찮나? 죽은 거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랑께! 울 대장은 이 정도로 절대 안죽는당께! 침바르면 나을껴!”
“그, 그래?! 그럼 내가 핥으면 돼?”
“닥쳐! 허락할 것 같냐, 멍충이! 내가 핥을 거랑께!”
“Fuck... 둘 다 진정 좀 해요.”
엔데가 자청해서 라헤를 유인해준 덕분에, 코코의 능력으로 모습을 숨기고 숨어있던 우리는 무사히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감시카메라 화상으로 보았듯, 복도 한 편에 쓰레기처럼 널부러져 있는 실을 끌어안았다. 의식이 있긴 한 듯, “으....”하는 신음을 흘린다. 힘없이 늘어진 고개가, 목덜미로 이어지는 가는 선이 처량해 보일 지경이라, 마음이 괜스레 다급해졌다.
그래도 죽이지 않고 그냥 버려두고 간 것은, 라헤의 안에 일말의 브레이크가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일 시간도 아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업으랑께, 13호! 실 대장이 지금 저 여자한테 대항할 유일한 카드니깐!”
“에, 엔데로 어떻게 안 되려나... <천칭자리>의 치트 능력은 엔데 한테는 적용 안 될 거라며.”
“빙신! <천칭자리>의 능력이 없어도, 대장급이란 건 기본 스펙이 다르당께!”
“맞데이, 13호. 라헤 대장의 얼음 마법도, 검술이며 경험치도 엔데 정도의 히어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래이.”
그렇다고 누군가 엔데를 도우려고 해도, 오히려 라헤를 강해지게 만들 뿐이다. 그녀가 ‘악’으로 인식한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녀는 더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같은 대장인 실조차 이렇게 너덜너덜하게 당해버렸다. 그녀가 깨어난다고 해도 승산이 생길까.
“서방님! 엔데 씨가 라헤 대장님과 교전중이에요! 오래는 못 버틸 것 같아요!”
“설득도 실패했나 보네....”
“도청장치를 통해 들어보니, 라헤 대장님은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보여요. 역시 세뇌장치가 억지로 부서지는 바람에 폭주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확실히, 근처에 망가진 세뇌용 헤드기어가 굴러다니고 있다. 실체를 가진 라헤의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 세뇌장치가 억지로 벗겨진 바람에, 지금의 라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저걸 진짜 어떻게 하냐... 도망칠 수 있을까....”
“절대 못 도망칠걸....”
내 한탄에, 스페이드가 체념하듯 말했다. 일단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기 위해,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 * *
건물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삼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의 풍경이 훤히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한다....’
어울리지 않게 평온한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13호는 이를 악물고 생각에 잠겼다. 인원이 많아 빡빡한 엘리베이터 안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은 채 침묵에 잠겨있었다.
<천칭자리>.
밸런스.
조건에 맞는 상대라면, ‘절대로 지지 않는’ 능력.
아무리 많은 인원을 데려와도, 아무리 강한 사람이 맞서더라도, 라헤는 그에 지지 않게 더더욱 강해질 뿐이다.
7번대의 대장이자 온건한 히어로였던 라헤는 빌런이 아닌 중립에 있는 인물과 같은 히어로인 부하들을 이용하는 것으로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닥터의 세뇌로 인해, 닥터측을 제외한 전원을 적으로 보고 있는 지금의 라헤는, 어떻게 붙잡으면 될까.
적이고 아군이고 상관없이 마구 공격하는 그녀를.
저렇게 엉망진창이면서도 자신이 ‘정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를.
어떻게 제압할 수 있을까.
“십...삼호....”
흘러내려가는 야경, 가까워지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니, 문득 등에 엎고 있던 실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실?! 깨어났구나? 괜찮아?”
“응... 지근거리에서 마력이 터져서... 좀 충격을 받은 것 뿐이야....”
그보다, 라며 실은 힘없이 말을 이었다.
“방법이... 있어. 어떻게든 할....”
실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진짜?!”
“응... 나도, 들은 거고... 마력도 간당간당하지만... 아마도....”
그건 낭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13호가 실을 재촉하려던 그 때,
“말도 안 돼!?”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경악한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 울려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엘리베이터의 한쪽 벽, 바깥을 향한다.
투명한 벽 너머로 보이는, 빌딩의 외벽.
그곳에선.
―――――――――!
무시무시한 기세로, 엘리베이터를 쫓듯이 외벽을 밟고 수직으로 달려내려오는 라헤가 있었다.
라헤가 거칠게 짓밟고 지나간 창문이며 난간이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저런 괴물 같으니!
나름 빠른 속도로 강하하고 있는 엘리베이터와 수평이 되는 위치까지 다가온 라헤가,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푸른 불꽃 같은 마력에 휩싸인 주먹이 죄인을 내리치는 철퇴와 같이 휘둘러졌다.
다음 순간, 13호네가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그 벽면이, 통로가... 그 모든 것이 얼어버리고, 내부는 꽃처럼 피어난 얼음수정으로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