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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화 〉#41 동생분은 화가 났습니다(3) (175/271)



〈 175화 〉#41 동생분은 화가 났습니다(3)

“도대체 여기선 무슨 실험을 하는 거야... 국가는 이런 놈을 그냥 두고 뭘하는 거지?”

“이런 놈들이 있으니 히어로들이 눈에 불을 키고 일하는 거랑께.”

툴툴거리며 계단을 기어올라가려니, 먼저 올라선 메이벨이 한심하다는 듯 내뱉었다.


『아르르르르르릉! 왈!』


계단아래에서는 각종 동물을 얼기설기 얽어만든 듯한, 기워낸 자국 투성이 기묘한 짐승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키메라라고 하는 걸까. 매드 사이언티스트다운 작품에 나는 소름이 돋는  느꼈다.


메이벨이 벽에 대고 손에 든 커다란 붓을 휘두르자, 푸른 물감이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았다. 간신히 내가 그녀의 옆을 지나치자, 단순한 물감처럼 보이던 푸른빛이 실체가 있는 파도가 되어 계단 아래로 밀려내려갔다.

촤아아아아아-!


아르르르르르르릉-!

쫓아올라오던 키메라들이, 메이벨이 불러낸 파도에 휩쓸려 내려갔다. 나는 지참해온 가방을 뒤적여 손바닥의 절반 정도 크기의 폭탄을 꺼내, 키메라들이 휩쓸린 계단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폭발.

자그마한 폭탄이지만, 한  터진 폭탄은 새로운 폭발을 일으키며 연쇄적으로 터져나갔다. 과연 그 도로시의 특제 폭탄. 깔끔하게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일소할 시간은 없으나,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키메라들의 동요하는 기척이 전해져왔다.


“가차 없그랴.”


“죽지는 않아. 기절하는 정도로 끝날걸.”

“아, 그러셔.”


메이벨은 쌀쌀맞게 말하고는 앞서 나아갔다. 닥터가 주로 있다는 실험실은 이 빌딩의 최상층에 있다. 나름 고층빌딩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  다리로  높이를 걸어올라가려니 이래저래 피로가 눈에 보이는 느낌이다. 닥터 녀석도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는지, 자꾸만 이상한 실험체나 로봇 같은 것을 보내는 바람에 더 그렇다.

“...아, 왔당께.”

“이번엔  뭐가 온 거야. 키메라? 총 쏘는 드럼통?”

“엔데.”

“응?”


“엔데가 왔당께.”

고개를 들어 계단 위를 보았다.

계단 너머, 다음 층.

히어로 제복을 입은, 감정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 무뚝뚝한 얼굴의 여자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엔데. 4번대의 히어로이자, 바이러스로 인해 닥터의 손에 넘어간 메이벨의 동료.

“안녕하신가요, 엔데라고 합니다. 닥터에게 해가 되는 침입자들을 배제하겠습니다.”

“역시 널 따라오길 잘했당께. 감이 맞았어.”

철컥, 총구로 변한 엔데의 팔이 이쪽을 향하고, 메이벨은 그에 응하듯 붓을 꺼내들고 주변에 가볍게 휘둘렀다. 먹물로 이루어진 막이  사이에 벽처럼 세워졌다.


탕! 타탕!


발포음. 하지만 총알은 먹물에 가로막혀 이쪽엔 닿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내가 어떻게 할테니까, 닌 다른 계단 찾아서 어여 가보랑께!”

“예이예이.”

메이벨의 말에 등을 떠밀려, 나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복도 저편으로 떠나갔다.

* * *




“【Freeze】!”


닥터가 있는 최상층의 바로 아래.

복도 저편에서 탄환처럼 쏘아져오는 라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실이 소리 높여 외쳤다.


동시에 라헤의 몸이 우뚝 멈춰섰다.


그녀의 능력을 이용한 국소적인 시간조작. 지정한 대상과 그 주변 시간의 흐름을 조작해, 범위 밖의 사람이 보기에는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느리게 만든다.

대략 그 차이는 원래 시간의 1000분의 1.

이 경우 상대방의 시간을 조작하는 정도의 마력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마력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비스의 아지트에 보내진 폭탄을 막은 것도 이 능력이다.

“――――――!”

“아이, 참.”


그러나, 쨍강, 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을 라헤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소적인 시간동결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느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라헤처럼, 1000분의 1의 속도에 반응할 수 있으며, 실의 능력에 저항할 수 있는 마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뿌리칠  있다.

“웃...!”


잠깐의 시간벌이도 되지 못하고 지척까지 다가온 라헤의 날카로운 찌르기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실이 다급하게 홀스터에서 꺼낸 새까만 권총과 라헤의 검이 부딪쳤다. 궤도가 틀어진 덕분에 검은 가까스로 목을 비껴갔다.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에 닿았던 권총에 서리가 꼈다. 라헤의 특기인 얼음 마법. 안쪽에 얼음이 생겨버렸다면 이 권총은  수가 없다. 짇혀드는 라헤의 검을 권총의 부리로 한 번 더 튕겨내면서, 실은 몸을 빙글 돌리며 뒤로 돌아섰다.

“【Freeze】!”


다시 한 번 마력을 부어넣어, 새로운 현상을 일으킨다.

외친 키워드는 같지만, 결과는 다르다.

조금 전과 같은 국소적인 시간조작이 아닌,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의 시간이 완전히 멈췄다.


단순히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게 아닌, 완전한 【시간동결(時間凍結)】.


라헤를 포함한 모든 것이, 공기가, 바람이, 소리가, 모든 것이 얼어붙은  멈춰섰다.


“후우...!”

실은 스커트를 들추고, 이미 총을 꺼내는 바람에 비어버린 왼쪽이 아닌 오른쪽 홀스터에서 새로운 권총을 꺼내 들었다.


잘만 맞으면 죽지는 않는다. 빌런들을 상대하기 위해 어떻게 쏴야 상대가 죽는지를 잘 아는 그녀는, 반대로 어떻게 쏘면 상대가 치사에 이르지 않으며 무력화되는지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춘 현장 속, 유일하게 움직이는 그녀는, 그럼에도 누구에게 쫓기듯 자세조차 제대로 잡지 않은 채 팔을 내밀어, 총을 쏘려했다.

그러나 그 직후.

구불텅-하고.

시야가, 라헤를 둘러싼 공간이 이질적이게 구부러졌다.


“――아아, 정말! 치트라니까 저거!”

불평하는 실의 눈앞에서, 여전히 멈춰 있는 시야 속에서 그런 사실이며 사상 따위 엿이나 먹으라는 듯 공간도 시간도 찢어버리며 라헤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을 멈추는 실의 능력에 대항해, 시간과 공간마저 구부러뜨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열량을 지닌 마력이 그녀를 구속에서 풀어낸 것이다.


 정도가 되면 원리나 상식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그녀가 패배하지 않도록, 세계 그 자체마저 입맛대로 비틀어버리는 것이다.


얼어붙을 것 같은 새하얀 검신이 실을 양단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리쳐졌다. 아직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실로서는 도저히 피할  없는, 회피 불가의 일격.

“【더블】!”


까-앙!

그러나 내리쳐진 라헤의 검은 허무하게 바닥을 긁었을 뿐, 두동강났어야 할 실은 마치 신기루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뒤로 뛰어서 피해낸 것이지만.

“아우, 이건 몸이 아파서 쓰기 싫은데....”

틀림 없는 불가피의 일격이었지만, 실은 피해냈다.


 한순간, 자신의 몸의 시간을 ‘조작’해 원래보다 2배의 속도로 움직였다. 단순한 신체강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2배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회피까지 이어진 것이다.

“......”

라헤는 말 없이, 그런 실을 향해 다시금 쇄도해 검을 휘둘렀다.

실은 견제를 위해 총을 쏘면서도, 금세  앞에 육박한 라헤의 검을 능숙하게 피해내며, 라헤와 맞붙었다. 위험할 것 같은 순간, 혹은 상대를 맞잡을  있을 것 같은 절호조의 타이밍에는, 조금 전과 같은 【더블】을 십분 활용했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 채-앵!

무시무시한 기세로, 두 대장은 시간조차 넘나드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 * *

“엔데 녀석... 저 녀석을 왜 그냥 보낸거야?!”


닥터는 화면을 분한 듯이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분산해서 오는 적은 상당히 성가셔서, 이곳을 보고 저곳을 보고, 그에 맞춰 지시를 내리려니 이래저래 효율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자신은 천재이긴 하지만, 과학자지 책략가는 아니다.

아니,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역시... 고작해야 저 13호라는 한심한 범인(凡人)을 상대하는 것 뿐이고.


‘라헤는 실을 상대하기 위해 이쪽에 배치해야 했고, 엔데는 메이벨이라는 히어로를 막아주고 있어. 외측 계단으로 올라온 두 명은 무슨 계획인지는 몰라도 더 이상 위로 올라올 생각은 없어 보이고, 정면에서 들어온  녀석은 밀려드는 실험체들에게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

정리해놓고 보면, 이제와서 위협이 되는  자유롭게 새로운 계단을 찾아 올라오고 있는 13호뿐이다.


‘......? 7명?’

화상에 비친 인물들은 일곱명 뿐. 분명 엔데의 보고대로면 침입자는 여덟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누군가의 저격 때문에 화상이 몇  나갔으니까 그 쪽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어떤가요, 닥터님.”

“...너, 그건 어디서 꺼내온 거야.”


“저쪽 선반에 있었습니다. 닥터는 짠 거 좋아하십니까.”

옆에 다가온 참모가 칩과자를 와작와작 씹었다. 세뇌 상태인데도 정말이지 자유롭다. 일이 일단락되면 당장에라도 인격을 지우는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큰일이 난 거 같은데.”

“됐어. 어차피 이제 남은 건 13호뿐이니까. 이 정도는 내가 직접 만든 파수 프로그램이면 충분히 제압가능해. 그리고 여기 최상층까지 오려면 승인된 카드키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돼. 힘으로 문을 뜯어 부술 수 있는 능력자들은 아래층에 발이 묶여있고. ...나는 이곳에서 농성하면서 라헤가 한명한명 잡아들이는  기다리면 돼.”


닥터는 라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4번대의 대장도 선전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라헤에게는 당해낼  없다. 애초에 그런 법칙인 것이다, 그녀의 능력은.

그리고 닥터의 자신만만한 계획을 들은 참모는,


“흐응. 근데 이미 망한  같습니다, 닥터님.”


“뭐...?”

“거기 화상이  개 나가지 않았습니까.”

참모는 봉지를 뒤집어 남아있던 칩을 마저 입에 털어넣었다.


“애플을 데려왔어야합니다. 끝났네요.”

“――뭐?”

“뭔가 사전 정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닥터님의 설비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이렇게 핀포인트로 노려져서야 의미가 없고... 아쉬울 뿐일 따름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소릴하는 거야.


닥터는 똑같은 의문을 되풀이했다. 참모가 무슨 의도로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은 천재인 닥터로서는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므로, 딱히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제대로 생각하고 말한 건지도 의심스럽고.

――세뇌 때문에 사고가 안정되지 않은 건가.


그렇게 대충 흘려넘기기로했다.

“됐어, 어차피 어떻게 해도, 여기까진 못 올라와... 힘으로 부술 수도 없는 문이고, 응.”

문 앞까지 와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손가락 빨고 있는 그를, 다른 인원들을 전부 때려눕힌 라헤에게 끌고오도록 시킨다... 응. 그렇게 하면 된다. 완벽한 시나리오다.


닥터는 헥헥거리며 새로운 계단을 찾아 이곳을 향해 달려 올라오고 있는 13호를 붙잡기 위해, 또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그 옆에선 참모가 기름기가 남아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할짝할짝 핥고 있었다.



* * *

“하아, 하아, 후... 운동은 나름 열심히하고 있다마는....”


진짜 너무 높은 게 문제다. 이럴  알았으면 스페이드의 마력을  받아올  그랬다.


섹스를 이용해 마력을 전달받을 수는 있지만,  번에 여러명의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렇게 해서 받아들인 마력은 오래가지 않아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스페이드의 마력이 있다면 신체강화로 이런 계단 단숨에 올라가버리겠지만, 그녀를 범한 게 며칠 전이었으므로 그녀의 마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원래의 능력만 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번 일도, 번거로운 작전을 생각해낼 필요 없이 정면으로 부딪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이라니까.

뭐가 되었든 힘이 있는 자는 세상을 살기 편한법이다. 그게 지능이 되었든, 재력이 되었든, 단순한 힘이 되었든지 말이다.


그리고 힘이 없는 지금은 어쩔 수 있나, 고생해야지.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고민해서 상대를 속여넘길 속임수를 짜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보다 그 녀석, 잘했겠지? 스스로 자신이 유능하다고 입에 달고 사는 여자니까――’

사사삭-


“이번엔 벌레냐....”

커다란 거미 같은 형태의 벌레형 로봇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는 가방에서 새로운 도구를 꺼냈다.

.

발신기 주변에 다가오는 기계는 모조리 오작동을 일으키며 고장을 내는, 도로시의 발명품을 앞에 들고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가까이 다가오던 로봇들이 스파크를 튀기고 연기를 내며 저혼자 스러져갔다.

이제 곧, 닥터와 도로시, 그리고 참모가 있을 최상층이다.

'어떻게 놀려줘야 속을 벅벅 긁을  있을까.'

나는 닥터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놀려야 닥터의 화를 돋울지 열심히 고민하며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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