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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화 〉#40 그리고 폭발한다(2) (172/271)



〈 172화 〉#40 그리고 폭발한다(2)

파-앙! 파-앙! 팡-!

하읏...! 흐으으으읏...!


빌런 【어비스】의 한 복도.

연달아서 이어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소음의 근원은 벽에 손을 짚은 채 둔부를 내밀고 있는, 이 빌런조직의 보스와 그 부하인 13호다.


“보스. 저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파-앙!


“흐으윽...!”

“어리광은 부릴 수 있습니다. 청소를 못할 수도 있고, 요리를 하려다 주방을 태워먹을 수도 있죠.”


파-앙!

“히읏...!”

“하지만 보스는 보스니까요. 모범이 되지 못한다면, 마음이 아프지만 보스의 1등 부하로서,  조직의 선봉장으로서 그런 보스를 꾸짖지 않으면 안 되겠죠.”


파-앙! 파-앙!


“~~~~~~~~...!”

13호의 팔이 연달아 크게 휘둘러지고, 그 손바닥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이올렛의 엉덩이를 두드린다.

 뻗은, 스타킹에 감싸인 고운 다리 위에 육체의 곡선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타이트스커트 위로 때리는 것뿐인데, 바이올렛은 소리가 날 때마다 참을  없다는 몸을 꼬며 신음을 흘리고 있다.

이 상태로도 얼굴이 흐물흐물 풀어지는데, 맨살위로 맞게 되면 어떻게 될지.


“괜찮으신가요, 보스? 혹시 너무 아팠나요?”


“아, 아냐... 괜찮아... 응. 난 보스니까...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참을 수 있어....”

그보다, 더 세게 때려줘.

더, 심한 벌을 내려줘....

‘아, 아냐. 이건 체벌이니까. 그렇고 그런 게 아니니까....’


바이올렛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전력으로 밀어내기 위해 애썼다. 어째선지 13호의 손바닥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마다, 엉덩이에 짜릿짜릿한 아픔이 올라올 때마다 기분이 점점, 점점 더 좋아져서... 이상해질 것 같았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이것도... 세뇌... 때문이겠지?’


실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다 봤다. 13호가 온갖 파렴치한 요구를 하며 세뇌했던 장면도,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풀어지려던 얼굴이 굳어지고 이가 바드득 갈렸다.

13호, 이 괘씸한 녀석!

감히 보스를!

상사한테!

이상한 짓이나 하고 말야!


“보스? 갑자기 조용해지셨네요.”

파-앙!


“꺄으으으으응?!”

분노를 불태우려던 바이올렛의 얼굴이, 또 다시 이어진 타격에 단숨에 풀어져버렸다.


느껴졌다. 자신의 거기가,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곳이 촉촉이 젖어가고 있는 게.

아, 아아아아... 엉덩이를 맞으면서 느껴버린다니... 터무니 없는 변태잖아....

“보스? 설마 싶지만, 체벌에 다른 의미를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다, 다른 의미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무, 무슨 소릴 하는 거람...!”

“흐응....”


13호는 조금 전까지 잠시 휴식이라는 듯, 지금껏 격렬하게 때리던 바이올렛의 엉덩이를 천 위로 가볍게 문지르듯 주물렀다. 바이올렛이 허벅지를 꼬물꼬물 움직였다.

“그렇습니다. 설마설마 보스가 야한 생각으로 체벌을 바랄 리가 없죠. 보스는 단지 모범을 보이려고 하시는 것 뿐인데.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으응. 그렇지... 응. 모범을 보이기 위해, 부끄러움을 참고 네게 부탁하는 것 뿐이야. 잘 알잖아.”

바이올렛은 자신감 없이, 웅얼웅얼 거렸다.


‘아니, 아니야. 이건 세뇌 때문이야. 세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금 초조한 기분이 드는 거지...!’

“그럼 계속가겠습니다.”

다시  번 13호의 손이 올라오고, 바이올렛의 모양 좋은 둔부를 향해 용서 없이 휘둘러졌다.

파-앙! 파-앙! 팡-! 팡-!

“...흣! 읏...!”

리드미컬한 타격음이 연달아서 들려왔다.

13호의 손이 용서 없이 바이올렛의 엉덩이를 연달아 때리자, 바이올렛은 입을  다물고 수치에 부들부들 떨었다.

단순히 부하에게 당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엉덩이를 맞으면서 기뻐한다는 이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보스? 보스. 이상합니다. 어쩐지 얼굴이 풀어지고 있는데요.”


“아흣... 읏... 흐잇... 아, 아냐... 읏...!”


바이올렛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어떻게든 신음을 참아보려했다.


“흐응... 그렇습니까.”

13호는 관심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하더니, 바이올렛을 때리던 손으로 그녀의 스커트를 들춰올렸다. 고급스런 자수가 들어간 새카만 속옷이 드러났다.

“어, 저기?! 이봐?!”

“체벌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부하의 일이니까요. ...잠깐, 확인해보겠습니다.”


13호의 손가락이 속옷 천 위로 바이올렛의 비부를 쓰다듬었다.


조금 전 엉덩이 때리기의 여파인지, 바이올렛의 팬티는 조금 젖어있었다.

자신의 속옷이다. 그게 젖어있다는 것도, 몸이 이미 어찌할  없이 달아올라 있다는 것도 바이올렛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만지고 있는 13호에게도 명백할 터다.


“.......”

그러나 13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를 확인하듯 끈질기게 속옷 위로 그녀의 균열을 이리저리 매만질 뿐이다.


거북한 침묵 속에서, 그러면서도 비부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바이올렛이 어찌할 줄을 모르던 와중에――13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젖어있군요.”


“.......”


“벌을 받으면서, 느끼신 겁니까? 조금 전에 느끼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설마 거짓말을 한 겁니까, 보스?”


13호의 추궁에, 바이올렛은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 그게....”


원래라면 여기서 반론조차 하지 못하고 13호에게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이 모든 게 세뇌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자신은 변태가 아니다! 음란한 아이가 아니야!


무엇보다 보스로서의 위엄을, 여자로서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 아냐... 아니라고...! 이건 세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뇌 때문입니까?”

“.......”


“다시 묻겠습니다. 세뇌 때문입니까, 보스?”

바이올렛은 수치심으로 입을  다물더니, 크게 끄덕였다.

“맞아! 13호가 나쁜 거야! 네가 나한테 세뇌 같은 걸 걸어서, 맞으면 느끼게 한 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나쁜 게 없다구! 전부, 전부 네가 나빴어!”

“그렇습니까....”

13호는 중얼거리더니, 깔끔하게 손을 뗐다.

“역시 그렇군요. 제가 나빴던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스.”

“..............................................에?”

깜박깜박.


바이올렛이 눈을 깜박이는 데, 13호는 짐짓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한걸음  물러섰다.


“맞습니다. 모든  세뇌 때문일 뿐이니, 보스는 나쁘지 않습니다.”

“어, 어... 그렇지....”

“체벌은 이걸로 끝내도록 하죠. 방청소나 요리 같은 거야... 네, 뭐. 천천히 합시다. 일단 지금 쪼오~금 버릇없었던 것에 대해선 충분히 벌한  같으니까요. 네. 여기까지면 충분하겠죠. 다음부터는 좀 더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주의해주세요, 보스.”

이것으로 체벌은 끝, 하고 가벼운 말투로 말하는 13호의 말에, 바이올렛은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기....”

“왜 그러시죠, 보스?”

“정말, 이걸로 끝?”


“네. 끝. 혼날만큼 혼났잖아요? 만약 보스가 ‘거짓말을 했거나’, ‘체벌을 받으면서 느꼈다거나’, ‘아주아주 음란한 사람’이었다면 저도 마음 아파하면서 체벌해드려야 했겠지만, 이야~ 다행이네요. 체벌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입니다.  은인이자 소중한 보스가 바라지도 않는 일을, 세뇌를 핑계로 계속해댔더니 저도 마음이 참 어려웠거든요.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혹시 언짢으셨다면 얼마든지 저를 처벌하셔도 좋습니다. 언제든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닥터 습격 건으로 좀 준비할  많아서. 안녕히 주무십시오.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정중하게 인사하고, 13호는 설렁설렁 복도 저편으로 떠나갔다.


멀어져가는 등을 바라보며 바이올렛은 “아....”하고 아쉬운 소리를 흘렸지만, 13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 * *

“......진짜 최악의 남자랑께.”


“뭐가?”


보스에게서 멀어져, 복도 귀퉁이를 돌자 퉁명스런 표정의 메이벨이 떡, 하니 서있었다. 상당히 언짢아 보이는 표정이 일품이다.

“네 보스 아니였어? 충성스러워 보였는데 저렇게 방치하고, 진짜 나쁜 남자당께. 니.”

“아니, 저 멀리서 몰래 훔쳐보던 네가 보여서. 노출증 취미는 없거든.”

“...잘도 말한당께.”


“그리고 무엇보다 보스의 습관은 좀 고쳐야지.”


이것에 만큼은 진정을 담아서 말했다.


“저번에 주방에 불을  뻔했을  깨달았어. 이대로는 안 돼. 보스를 그냥 두면, 정말 돈 버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글러먹은 사람이 될 거야!”

방청소는 하지 않아서 먼지와 별에 별 잡동사니들은 쌓여가고, 옷도 빨지 않고 빨랫감은 쌓여가다 한 번 입었던 속옷을 또 입어가면서 농후한 냄새가 옷가지에 배어들 테고, 나는 그것을 훔쳐다가 스읍~ 하아~ 스읍~ 하아~ 들이마시면서 보스의 냄새에 행복사할 거다.

내가 빨리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스는 슬슬 생활 패턴을 바꿔줬으면 한다. 저러다가 결혼도 못 하고 혼기가 지나서 그냥 내가 데려가 버릴 수도 있다고. 나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결혼식은 언제가 좋을까요.

“...증말. 니랑 말하는 것도 참말로 바보 같고.”


“응?”

꽈악-!


별안간 멱살이 붙잡혀  끌어당겨지는 바람에, 나는 엉거주춤하게 고개를 숙였다.
입술에 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게 닿았다.


“...후웁...음....”

상황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와중에, 메이벨의 도톰한 혀가 내 입술을 억지로 갈라열고,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메이벨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몸을 더욱 착 밀착시켜  쭉 뻗은 사지로 나를 얽어맸다.

“츄웁... 쭈웁...!”

내 입 안에 있는 것을 긁어내고, 더욱 더 내놓으라는 듯이 입술이며, 혀며, 몸을 이용해 나를 자극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 고동소리가 밀착된 몸을 통해 느껴졌다. 활발해진 신진대사 덕택인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인해서인지, 입안에 대량의 침이 고이고, 그것을 메이벨은 자연스레 빨아 마시며 전부 가져갔다.

우웁... 츄웁... 츕....

그렇게.


꽤나 오랜 키스가 되었던 것 같다.


“푸하....”

슬슬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지, 메이벨은 쿨하게 입을 떼며 내게서 한걸음 멀어졌다. 전부 삼키지 못하고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타액을, 길고 예쁜 손가락으로 떠올려  안에 넣었다.


“...슬슬 부작용이 몰려올 때라, 어쩔 수 없었당께.”

“까, 깜짝 놀랐네... 그렇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네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나를 덮치려는 줄 알았잖아.”

“뭐가 드디어냣~!”

의외로 순진한 척 하는 사람이 더 음란한 법이다.

“하지만 신기하네. 지금까지 그렇게 빼더니.”

내가 남자인 건 둘째치고, 빌런과 히어로기 때문에 너무 가까워지고 싶진 않다면서 새침하게 굴던 여자가.


“...의료행위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노카운트.”


“그건 그렇지만.”


“뭐, 솔직히 이제는 어찌되든 상관 읎다~ 싶기도 허고.”


메이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장이랑 잠깐 얘기 좀 했당께. 나야 술을 좋아하고 설렁설렁 대충대충 살아가는 한심한 인간이지만, 어쨌든 그런 내 멘토가 되어줬던 게 대장이니깐.”


“...네 빌런 혐오도.”

“혐오라고  것까지도 없제. 단순히 대장이 그러 대했듯, 나도 히어로로서 빌런한테 가차 없이 굴었을 뿐이고.”


하지만 실은 미래에서 무엇을 봤던 것인지, 아니면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그토록 적대하던 빌런과 손을 잡았다.

거기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나는 알 방도가 없지만, 메이벨은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고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그냥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게 참으로 많당께. 어차피 부작용 땜시 니한테는 한동안 신세져야 할텐게, 뭐... 어떤 결론이 나든, 그 때꺼진  지내보드라고.”


바이바이, 라면서 메이벨은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가버렸다.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고갔던 건지. 궁금하구만.


어쨌든 내일이 바로 닥터 습격 결행일이다.


미래에서 실이 건너와 준 덕분에, 실이 알고 있던 최악의 미래――우리 어비스와 4번대가 서로 맞붙은 끝에, 전멸한다는 미래도 피해갈 게 분명하다.


라헤와 참모를 탈환하고, 4번대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그러고 나면 다시 늘 있던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돌아오겠지.


보스의 일도, 메이벨의 고민도  뒤에 천천히 진행하면 된다. 고민할 시간도, 티격태격할 시간도, 초조해할 시간도 그 때가 되면 차고도 넘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참으로 안이하게도.

혹은 참으로 멍청하게도.

또는 참으로 무르게도.

내일 이후에는 분명하게, 틀림 없이, 어김 없이, 어쩔 도리 없이, 느긋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으며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주변에 있는, 그런 안이한 일상이 돌아오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 * *


이래저래 고민하고 준비한 끝에, 계획해두었던 ‘닥터 습격 결행일’의 아침이 밝았다.


언제나처럼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 우리는 라운지에 모여, 닥터의 아지트에 스파이로서 머물고 있는 도로시와 통화하며 습격하기 최적의 시간대와 루트를 수립, 오늘의 계획을 대강 정리――할 예정이었는데.

“...연결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도로시 본인이 연락이 되질 않았다.


휴대폰도 꺼져있고, 통신용 단말기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답신이 없고....

도로시의 말대로면, 닥터는 아지트의 경비 구조를 12시간 단위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즉, 사전에 습격루트를 짜두는 건 무의미하므로, 실시간으로 내부의 상황을 파악할  있는 도로시와의 내통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도로시에 버금가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상대하려면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대로면 돌입계획은 흐지부지될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보다도.

도로시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닐까 싶어,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13호. 마지막으로 연락이 되었던 건 언제야?”

보스가 어딘지 불편한 눈치로 물었다.


“어제 저녁 즈음에 마지막으로 통화했습니다. 이 시간에 연락하겠다며 도로시 쪽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들킨 거, 아냐? 닥터를 배신한 거.”

스페이드가 조심스레 말했다.


“윽...”

초조한 마음에, 나는 다시 한 번 통신용 단말기로 신호를 보내고――상대방이 수신했음을 뜻하는, 초록불빛이 떠올랐다.


받았다!

“도로시?!”


[아이고... 미안. 늦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제발 사람 놀래키지 좀 마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저녁에 연락할 걸 그랬나.”

[쯧, 늦어서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다고 했으면 됐잖아. 왜 사람을 잠탱이라고 욕하는 거야. 응? 넌 늦잠도  자?!]

“그런  없어!”

도로시는 뭔가 쪼잘쪼잘 말하더니, 별안간 불쑥 본론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거기,  모여있는 거야?]


“......? 응. 그렇지. 보스도 있어.”


[그래그래. 그보다 습격 계획 말인데, 꼭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말야. 어제 늦게나마 보냈으니까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을텐데... 현관에 나가볼래? 아, 위험하니까 멋대로 뜯지는 말고.]


“뭘 보냈는데 위험하다는 거야....”

하여간 천재란 것들은.

도로시의 지시대로 밖으로 나가보자, 아지트의 현관 앞에 선물 상자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들어보니, 상당히 묵직했다.

“...뭐야 이건?”

[잠입할 때  필요한 물건. 특제품이거든. 일단 가지고 들어가도록 해.]

특제품이라니, 뭐지?

갈수록 알쏭달쏭한데다 뭔가 분위기도 이상했지만, 어쨌든 순순히 도로시의 말대로 가지고 들어왔다. 라운지로 가져오니, 보스며 스페이드를 비롯한 모두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네 말대로 가지고 왔어. 개봉하면 돼?”

[열지 않아도 돼.]

“여는데 얼마나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길래? 하여간 똑똑한 건 알겠는데 조금쯤 심플하게 해도 되지 않아?”

[아니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단말기 너머에서 쿡쿡,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이라고 할까.

어딘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확-하고 올라왔다고 할까.


등골을 훑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오싹함에 다급하게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단말기 너머에서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필요 없다는 거야. 알아서 폭발할테니까.]


“――뭐...?”


그리고 다음 순간.

라운지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선물상자가 단번에 부풀어 오르더니, 섬광과 함께――


* * *



쿠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무시무시한 소음과 진동.


【어비스】의 아지트였던 건물이, 무시무시한 섬광과 폭발음과 함께 말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 * *



“......이래서 멍청한 것들은 안 돼.”

그리고 어느 건물의 아지트, 그 실험실.


도로시의 동생이자, 닥터라고 불리는 남자는 손에 들린 보이스 체인저와 통신용 단말기를 내려놓았다.

목소리를 조금 바꿨다고 의심도 않고 덥석 믿어버리다니,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안이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닌가.

사랑하는 누나의 말투며 행동거지 정도야 철저한 조사와 스토킹을 통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니까. 완성도 높은 연기에 속아넘어가는 것도 당연하다, 라고 생각해야할까.

【어비스】에는 닥터표 특제 폭탄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안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건물 하나 정도는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뒤에 반응도 흔적도 남지 않으며 성분조차  수도 없다. 누군가 폭발한 건물의 원인을 아무리 찾아봐야 ‘원인불명의 폭발’ 정도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읏... 흐그윽... 흐으으으...!”

“아, 미안 누나. 깨워버렸구나.”


실험실의 한구석에는, 여느때처럼 자그마한 몸과 가녀린 팔다리를 백의로 감싼 도로시가 의료용 의자 위에  늘어져있다. 손발은 의자에서 이어진 수갑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묘한 형상의 헤드기어가 씌워져있다. 팔목과 목에는  가닥의 전극도 이어져있다.


“아아... 하아... 흐윽....”

“누나, 누나. 내 사랑스런 도로시 누나. 이 동생은 정말 마음이 아파. 누나가 동생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되잖아. 응? 그렇지? 응?”


“흐그으으... 아아아아앗~~~~~~!!?”


닥터가 전극이 연결된 기계의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자, 도로시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닥터는 고통스레 신음을 흘리는 도로시를, 괴로운 얼굴로, 그러면서도 안쪽에서 서서히 밀려들어오는 도착적인 가학심을 품은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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