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40 그리고 폭발한다(1)
‘별자리의 능력’이라는 건 아직 인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모르는 게 많고도 많아서, 불법 합법을 넘어 수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변변한 성과는 없는 게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후의 미래라는, 지금까지 생각도 못했던 곳으로 날아가게 된 계기를, 실은 알 수 없었다.
“그게 죽기 직전의 기적 같은 거였는지, 아니면 우연히도 능력이 새롭게 개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아무리 시간을 자유롭게 다루는 나여도 미래로의 시간이동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 애초에 라헤와 싸우느라 마력도 거의 다 쏟아부은 상태였고.”
그 외에도 이래저래 이상한 게 많았지만 그 부분은 생략할게, 라며 실은 앞에 놓여진 찻잔을 기울여 차를 한모금 들이켰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예상했는지, 클럽이 자연스레 차와 다과를 준비해 준 것이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건너간 곳은 조금 달라진 미래선이었어.”
“달라졌다면?”
“일단 닥터의 손에 죽었을 터인 13호가, 메이벨이 있었어.”
“.......”
“그리고, 나도 있었고.”
나는 여전히 보스의 밑에 엎드린 채, 툭하니 중얼거렸다.
“...패럴렐 월드 같은 건가.”
“그게 뭐야, 13호?”
“에, 보스 몰라요? 웹소설에도 많이 나올 텐데. ...나오나?”
“그래서 무슨 말인데. 지껄여 봐.”
“.......”
“너도 모르는 거냐!”
“아니! 설명하기 어려운 것 뿐이라고요!”
대략적으로는 다른 가능성의 미래... 같은 느낌일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이런 걸.
“잠깐잠깐.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잖아? 나는 확실히 10년 뒤로 넘어갔어. 그런데 한가지, 그 미래는 ‘13호도 메이벨도 죽지 않은’ 미래였던 거야. 닥터도 무사히 제압한 세계였단 거지.”
“어...... 뭐야 그게. 이 바보랑 저 여자가 죽은 미래에서 넘어갔는데, 미래에선 죽지 않았다고...? 응...?”
“그, 러, 니, 까. 잘 모른다고~~~~ 어쩌면 그냥 꿈이었을지도 몰라. 그보다 지금, 솔직하게 얘기해주고 있으니까 일단 들어보라구~~~!”
보스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하자, 실은 팔을 붕붕 휘두르며 항의했다.
뭔가 성가신 여자네.
“아무튼, 거기서 어떻게 되었냐고 하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실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구구절절하면서, 간결하게.
그녀가 봤던 미래의 이야기를, 그녀가 느꼈던 것을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 * *
“자! 내 얘기는 여기서 끝.”
반짝거리는 말투와 함께, 실이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그제야 마법이 풀린 듯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벌써 이런 시간이 돼 버렸네.”
실의 이야기는 그렇게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눈치채고 보니 이미 꽤 늦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밖도 완전히 어두워졌다.
“우와~ 오래 얘기하느라 배고파~.”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않았었죠.”
“그래그래! 클럽, 잘 말했어! 말하는 것도 칼로리를 소비한다고? 그런고로 나는 엄청 배고프다~!”
실은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장난스레 칭얼거렸다.
그런 장난스런 분위게 어울리지 않게도, 메이벨과 보스는 무언가 골똘이 생각에 잠겼는지 조용했다.
툭툭, 채찍을 들지 않은 보스의 손이 내 엉덩이를 두드렸다.
“13호, 라운지 밖으로 나가자.”
“예에... 알겠습니다, 보스.”
당연하지만 두 발로 가는 건 허락받지 못했기에, 나는 엉금엉금 네 발로 기어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때, 13호. 지금 무슨 생각이 들어?”
“보스는 역시 가볍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 그래...?”
내 등 뒤에서 꼬물꼬물 엉덩이를 움직이는 보스. 아아, 다이렉트로 보스의 둔부의 감촉이 전해지니 행복하다. 이대로 말로 클래스체인지 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네.
“아무튼, 그런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
“네,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실에 대한 얘기잖아요. 네, 솔직히 믿기 어렵습니다만 보스의 능력으로 보장해주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아니아니, 난 지금 그런 얘길 하는 게 아니다만.”
보스가 요령 나쁜 아이를 가르치듯 내 머리를 툭툭 쳤다.
응?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야? 지금 이야기의 흐름에서 그 외의 무슨 얘기가 있지?
“13호 넌 실에 대한 문제 때문에 상당히 고민했었던 것 같은데.”
“아... 과거의 영상을 보셨다고 했죠.”
그 말대로면, 메이벨과 쑥덕쑥덕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전부 보았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정말 보스의 능력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보스가 용케 히어로를 도와줄 생각을 하셨네요? 히어로를 무지 싫어하시면서.”
“일단 그 여자 본인이 히어로를 관둔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생각하려는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 언젠가 빌런이 되어줄지도 모르고 말이지.”
보스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말을 이었다.
“그보다도, 이번에 말야. 내 능력 덕분에 네가 끌어안고 있던 어마어마하며 거대하고 난해한데다 해결불가능 명제와도 같았던 문제를 쉽사리 끝내버렸지.”
......응?
“어, 그렇게까지 어려운 문제였던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문제였어!”
“......아, 네. 그런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예에....”
보스가 스타킹에 감싸인 발끝으로 내 뺨을 꾹꾹 찔렀다. 아아, 보스의 발에 뺨을 찔리니까, 뭐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착적인 쾌락이. 이것이 스타킹의 매력인가.
언젠가 보스의 방에 침입해서 빨래통에 들어간 스타킹을 남김없이 쪽쪽 빨아버릴 것 같은 변태적인 취미에 눈을 뜰 것 같지만 참모가 아니니 가까스로 욕망을 끊어냈다.
후, 난 신사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13호. 어째서 내게 말하지 않았지?”
그렇게 새로이 태어난 욕망과 마음 속에서 싸우는 와중, 낭랑한 보스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에?”
“어째서 가장 먼저 나에게 상담하지 않았냐고 물었어, 13호.”
도움을. 보스에게.
“너는 내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지.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네 보스야, 13호.”
“아, 그건....”
“알아. 내가 얼마나 철부지인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저번에는 히어로에게 붙잡히고, 이번에는 꼴사납게 부하의 배신에 당했지. 거의 인질 같은 꼴이 되고, 네게 부담을 지웠어.”
하지만, 이라며 보스는 말을 이었다.
“나는 네 보스야, 13호.”
보스의 눈이, 나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보호받기만 하는 건 즐겁지 않아. 과보호하지 마. 제대로 대해줘. 똑바로 바라 봐줘. 13호. 나는 네, 뭐야?”
올곧은 눈으로, 낭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 이쪽은 도저히 반론할 말이 없다.
“보스는....”
확실히, 보스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소중하고 소중하니까, 이 목숨 따위 몇 번이든 버려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내 생각일 뿐인가.
이기심이고, 에고인 걸까.
“당신은, 제 소중한 보스이시지 않습니까.”
“그래. 정말 날 소중히 여긴다면, 단순히 애지중지할 게 아니라, 네가 가는 길에 나도 데리고 가줘. 반드시 도움이 되어 보일게. 내 앞가림은 스스로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적어도 너랑 같은 곳에서,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같은 것을 바라보고, 서로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그러면서도 결국엔 함께 가고 싶어. 죽더라도 같이 죽고 싶어.”
“...목숨을 버릴 각오로 히어로들을 함락하라고 명령했던 게 누군데요.”
분명 1화쯤에 그런 명령을 했었을텐데.
“그렇게 해서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생각이었는데 문제 있어?”
“와오......”
큰일났다. 보스가 너무 터프해서 반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13호. 알겠어? ...나를 혼자 두지 마.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더라도 같이 살아. ...알겠지?”
뒤통수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말하는 보스는, 어딘지 자애로운 누나 같으면서도, 외톨이가 될까봐 두려운 동생 같기도 해서,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대충 대화도 일단락이 되었고, 실에 대한 것도 해결되었으니 만큼, 이제 남는 시간은 닥터를 습격할 계획을 짜야 된다. 닥터의 거점은 도로시가 알려줬고, 상대측의 대강의 전력도 알고 있으니, 알맞은 전략만 짜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나는 보스의 아래에 엎드린 채, 조금 다른 이야기인 진지한 얘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보스.”
“응? 뭔데?”
“아까 말씀하신 건데, 그건 자립하고 싶다, 는 느낌으로 들어도 되겠죠?”
“뭐,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되게 글러먹은 인간 같은 느낌이잖아. 나 나름 성인이거든? 빌런 일이랑 주식 거래랑 외환 환익 같은 걸로 열심히 돈 벌고 있거든?”
“네. 맞습니다. 보스가 도로시와 함께 돈을 얼마나 열심히 버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립했다고 인정해주죠.”
하지만 인간적으로, 자립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몇가지 요소가 부족하다.
“보스가 그렇게 생각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나치게 과보호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어... 응?”
“그러니 보스, 이제부터 방청소는 보스가 직접 해주시지요.”
“....................뭐?”
나는 떠오르는 기억들에 기억을 모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한 달에 두 번, 제가 직접 보스의 방을 청소하지 않습니까. 아니, 인간적으로 그건 아니잖아요. 보스는 다 큰 숙녀고, 저도 남잔데 속옷 같은 거 보이는 거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면 2주만에 그렇게 더러워집니까? 정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보스가 돈 버는 쪽에 유능하다는 건 아는데, 인간적으로 방청소 정도는 스스로 해야하지 않습니까.”
“......에, 음. 흐음.”
보스는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더니, 뭔가 생각난 듯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화, 확실히 예전부터 13호가 해줬으니까 익숙해져버렸긴 한데... 지금은 히어로 애들이 있잖아! 걔네들한테 시키면 되잖아!”
“으으으음...!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역시 아까워서 제안하지 않았던 것을...!”
“뭐야?! 너도 즐기고 있던 거지?! 역시 변태! 내 속옷이나 방 안 한가득 담겨 있던 체취를 들이쉬면서 즐기고 있었던 거지!”
“.......”
“왜 아무 말도 없어?!”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보스.”
“뭐가 그렇곤데! 말 돌리지 마!”
“그보다 보스야 말로 말을 돌리지 말아주시죠.”
무겁게 말하자, 보스도 떨떠름하게 입을 닫았다.
“어제도 그렇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스페이드와 주방에 들어갔다가. 난장판을 일으킨 걸로 모자라 불까지 낼뻔 했죠.”
“그, 그건 스페이드 잘못이야... 난 잘못 없다 뭐....”
“스페이드는 보스 잘못이라고 하던데요.”
“그 여자!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는데!”
“.......”
“.......”
“보스, 할 말은?”
“......바, 밥을 제때 안 해준 13호 잘못이야.”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과보호가 심했던 모양입니다. 이제부터 자립을 위해, 보스도 슬슬 방청소나 식사준비는 직접.”
“싫어.”
“네?”
“그건 그거고 저건 저거지. 자립이랑 청소가 무슨 상관이야. 지금처럼 지내도 아~무 문제 없는걸!”
“......보스? 조금 전에 느낀 제 감동 돌려내주실래요?”
“어, 어쩌겠어! 그런거라고! 그보다 청소도 요리도 13호가 훨~씬 잘하는 걸! 적재적소! 나는 돈 벌고 너는 집안일한다! 남녀평등! 예이!”
“남녀평등이란 건 여기서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애초에 남녀평등이라며 여자는 돈벌고 남자는 집안일을 한다면, 결국 그건 옛날과 입장만 반대로 바뀐 거지 전혀 평등한 게 아니잖아.
남존여비가 여존남비로 바뀐 것 뿐이다.
“천천히 하나하나씩, 조금씩이라도 습관을 들이면――”
“싫어,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빼애애애애애애액~~~~~~~!”
제발 부탁입니다 보스.
내 안의 보스의 이미지를 깎아내리지 말아주세요.
아니, 이것도 귀엽기는 한데....
내 위에서 투닥거리며 떼를 쓰던 보스는, 찰싹찰싹 내 등을 두드리더니, 결국 노선을 바꿨는지 코알라처럼 내 위에 달라붙고는 얼굴을 바싹 붙였다.
아아, 달콤한 향기가...!
“응? 13호? 이 정도 어리광은... 안 될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스가 유혹을 시작했다.
마음이 혹할 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둬서는 안 된다. 이러다가 보스는, 나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글러먹은 인간이 될 거야!
......물론 그것도 좋지만!
더 글러먹은 여자가 되어서, 나를 마구마구 의지해줬으면 좋겠지만!
“...후우.”
“포기한 거지? 응? 그치? 이제 그런 말 안 할 거지? 에헤헤헤. 나, 돈 열심히 벌테니깐. 응? 이 정도 결점은 애교로 봐줄 거지? ...어라?”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근력이 부족한 보스의 몸이 통, 바닥에 떨어졌다.
“보스. 보스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 시, 13호?”
“이렇게 못된 아이에겐 ‘벌’이 필요하겠죠.”
“벌....”
보스는 멍하니 반복했다.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 알고 있어, 13호... 세뇌 때문에... 세뇌로... 그... 벌이란 말을 들으면... 이상해지는 건....”
“그러면 보스, 싫으십니까?”
“.......”
“못된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하는겁니다. 그렇죠?”
“.......”
“다시 묻겠습니다. 보스, 체벌을 해야 될까요, 말아야 할까요.”
바닥에 주저앉은 보스와 눈을 마주치고 추궁하자, 보스는 멍하니 내 눈을 응시하더니,
“해, 해주세요... 체벌....”
내 소매를 붙잡고, 모기 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장난기가 돈다.
"네? 뭐라고 했죠?"
"그... 체벌...을...."
"제대로 원인이며 주어를 더해서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못 알아 듣겠는데요."
보스는 촉촉하게 젖은, 원망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바, 바이올렛은... 나쁜 아이니까... 그러니까... 체벌, 해주세요...."
발개진 얼굴로, 허벅지를 비비며 그렇게 애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