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38 쓰레기 빌런과 양아치 히어로의 만남은 화장실에서 이루어진다(3)
【어비스】의 아지트에 불청객이 찾아오고 난 후, 향후의 계획에 대해 적당한 토의를 거치고 모두가 해산했다. 아지트에 방은 많으므로, 스페이드와 클럽은 실을 방으로 안내하기 위해 떠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간 회의실에서.
움... 츄웁....
메이벨은 13호와 농후한 입맞춤을 하며, 타액을 받고 있었다.
꼴깍, 꼴깍. 귀여운 목울대가 울리며, 점성이 높은 액기스를 목 너머로 삼킨다. ...처음에는 비리다거나, 혐오감이 들었던 액체지만, 지금은 어쩐지 달콤함을 느껴버리는 자신을 메이벨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충분한 거 같아...?”
“후음... 좀 더....”
메이벨은 얼굴을 붉히면서, 13호의 목을 껴안고 더욱 가까이 입술을 붙였다.
일전 메이벨은 생사의 경계에 가로놓였을 때, 13호가 주입한 치료제 덕분에 살아났다. 그러나 약에는 부작용이 있어서,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13호의 액기스가 필요하다.
그 액기스를 받기 위해, 메이벨은 정기적으로 13호에게서 타액을 조르고 있다.
‘몸이 뜨거워... 심장은 두근두근하고....’
부작용이 일어날 때의 증상은 여러 가지다. 몸이 무겁고, 심장은 무언가를 요구하듯 두근두근 뛰고, ...무엇보다, 조금 야한 기분이 들어서.
이대로 그냥 두면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13호의 타액을 받지 않으면 몸의 열기가 가라앉질 않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번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조르고 있는데....
“우웁... 추웁... 꿀꺽.....”
‘왜지...? 부족해....’
처음에는 단순히 한모금 정도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어쩐지 그 정도로는 부족한 기분이다.
“하아....”
그래도 적당히 달아오른 몸이 수그러들 즈음, 메이벨은 13호에게서 입을 뗐다.
“어때, 빌런의 입술 맛은?”
“......최악.”
나는... 무슨 짓을.
메이벨은 조금 전 자신의 행위를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며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 13호 너, 착각하지 말랑께. 지금 한 건 단순한 의료 행위고, 쓸데 없는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이 사진 어때? 「히어로가 빌런에게 헤롱헤롱한 짤」 같은 느낌으로 인스타에 올려도 될까?”
“언제 찍었냐 짜샤?!”
“아니, 너무 적극적으로 달라 붙길래... 무심코.”
메이벨은 바닥을 쾅쾅 밟으며 항의하고, 13호는 물흐르듯 낙천적이게 흘려넘겼다.
그리고.
“흐응...... 두 사람은 그렇고 그런 사이였구나. 몰랐네.”
““우와아?!””
아무런 전조 없이 두 사람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둘 다 까무러칠뻔했다.
어느샌가 다가온 실이 우후훗,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어, 언제 온 거야, 대장?!”
“방금 왔어. 능력으로 파팟, 하고. 놀래켜주려고.”
“그런 쓰잘데기 없는 데 능력 쓰지말랑께! 그보다 마력도 간당간당하대매~~~!”
“어머어머, 벨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마력이 텅 비더라도 보러 올 가치가 있지 않겠어?”
장난기가 느껴지는 웃음을 짓는 실을, 메이벨은 원수마냥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메이벨은 뭘 그렇게 처녀 같은 반응을 하는 거야? 키스 정도야 애들 장난이잖아. 그치? 그보다 13호 씨랬나? 나랑 더 좋은 거 할래?”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이 생기네요. 저쪽에 아무도 오지 않는 딱 좋은 공간이 있는데 함께 가보시죠.”
“그만하랑께, 대장!”
“아, 벨. 이제 나 대장 그만뒀으니까 그런 거 안 붙여도 돼. 평범하게 실 언니♥라고 부르렴.”
“싫당께!”
“고집이 센 아이구나....”
“그, 그보다 조금 전에 그건 단순한 의료행위니까, 대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한 게 아니니까!”
“어머머머, 강하게 부정하는 걸 보면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인데... 즐기고 있니, 설마?”
“아우~~~~~~~~~~!”
주먹을 붕붕 휘두르는 메이벨을 피해, 실은 오호호호 웃으며 종종 걸음으로 떠나갔다.
과연 대장급. A급 히어로을 주먹으로 쥐락펴락 농락하다니....
메이벨은 실에게 성을 내며 으르릉거렸지만, 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금방 얼굴을 풀었다.
“.......”
“벨?”
“...흥. 술이 마시고 싶당께.”
그 얼굴은 조금 전의 부끄러워하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어딘가 진중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 * *
“하아....”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술잔이 탁자 위에 내려섰다.
아지트의 카페 겸 바 안, 메이벨은 카운터 앞에 앉아 홀로 술을 홀짝이고 있다. 안주는 탐색하던 중 찾은 찢어먹는 치즈와 오징어다리 몇 개.
전통복장을 입은 채 서양식 바에 있는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잘 녹아들고 있었다. 여성스러운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생각하는 건 대장의 일.
“...히어로를 그만둔다라....”
――‘아하하하, 그만둔다기보다는 짤릴거라고 하는 게 맞을까? 일단 별에 별 누명이 다 씌어진 것 같더라고. 닥터와 엔데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특급 지명수배라도 받겠지. 대장급 빌런이라니, 위험하잖아?’
그런 얘길 아하하 웃으며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심각한 얘기잖아. 그렇지 않아? 엄청 심각한 얘기 아니냐고. 특급 지명수배면 마주치는 즉시 절차 없이 처형 가능한 상태인데다, 다른 대장급까지 움직이는 규모다. 결코 가벼운 게 아닌데.
메이벨은 단정치 못하게 오징어 다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우우우우....”
“아가씨, 한숨이 길군요. 어떠신가요, 이 바텐더에게 상담해보는 건?”
“......뭐하는 거야, 13호 시끼야. 그 꼴은 또 뭐시다냐.”
“후후. 내 센서가 고민하는 여성을 감지해서 말이지, 일부러 바텐더 옷까지 챙겨입고 찾아왔다고? 바텐더란거 인기 있는 직업이잖아? 바텐더 옷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 인기도가 3할 정도 올라가지 않아? 어때?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뭔가 끌리는 기분이 들어? 인기 많을 거 같아?”
“염병. 역겹긴.”
“...다 큰 숙녀가 땅바닥에 침을 뱉으면 안 돼!”
“그보다 뭐야. 꺼져. 술맛 떨어진당께.”
“후후, 츤데레 같긴.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외로워서 대화상대가 필요하단 거 알아. 나는 고민하는 여성의 곁에 늘 함께 있지. 그야말로 고민에 빠진 그대의 신드바드, 사로잡힌 공주님의 돈키호테...랄까?”
“지랄. 역겹다고 했당께.”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도 그만 두자!”
13호는 얼굴을 닦으면서, 메이벨이 마시던 술병을 들었다. 마오타이(茅台). 중국의 유명한 술이다. ...도수가 엄청 높았을 텐데.
“이런 것도 있었네.”
“뭐해~ 내려놔아~. 여기 있는 건 죄다 서양술들이라 취향이 안 맞는다고~.”
취한 듯 얼굴이 발개진 메이벨이 꼬인 혀로 항의했다.
뒤지고 뒤져보다 겨우 찾은거다. 싸구려 소주나 막걸리로도 만족할 텐데, 그것조차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근데 의외네. 조금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 같더니. 혼자서 청승맞게 술이나 들이키고.”
“할 일 없으면 술 마시는 거야 내 일과여. 신경 끄랑께.”
“고민하는 것 같은데.”
“고민하는 거 없어. 저리 끄져. 훠이, 훠이.”
13호가 잔에 술병의 내용물을 꼴꼴 따라주자, 메이벨은 마지못해 받아들고 쭈욱 들이켰다. 13호도 잔을 꺼내 직접 술을 따르려했다.
“줘보랑께.”
“오?”
13호의 손에서 술병을 뺏어 들어, 13호의 잔에 꼴꼴꼴 따랐다.
“물 탈 거야?”
“아니, 그냥 마실건데.”
“...너도 술 쎈가보네.”
“그렇지. 남자다워? 반할 거 같아?”
13호가 잔을 기울이며 허세 부리듯 말하자, 메이벨은 아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응. 반할 거 같디야.”
푸웁!
입에 머금은 술을 단번에 뿜었다. 메이벨의 얼굴을 향해.
“.......”
“콜록, 콜록. ......미안. 너무 놀라서.”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서 화를 낼 여유도 없다. 메이벨은 한숨과 함께 13호의 손에서 티슈를 받아들어 얼굴을 닦았다.
“뭐가 그렇게 의외디야?”
“빌런이랑은 상종도 안 하겠다고 결벽하게 굴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싶어서.”
“없디야, 그런거. 전혀. 조금도. 요만큼도. 나는 예전부터 이랬고, 앞으로도 이럴 테니.”
메이벨은 잔에 담긴 술을 홀짝였다.
“그냥...... 실 대장을 잘 모르겠어서 그럴 뿐이랑께.”
누구보다 일에 진지해 보였던 실이었지만, 히어로를 그만두겠다고 했을땐 아무런 미련도 없어보였고, 심지어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사정을 알고 있고, 딱히 문제될 것도 이상할 것도 없을 일이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대상에 대해 ‘이해’하는 게 중요하당께. 상대의 내면을 깊이깊이 상상하고, 상대에 대한 명확한 윤곽을 잡아내고, 그리고 그걸 다종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는데 그림쟁이의 일이랑께. 대장의 내면도 내 나름 윤곽을 잡아놓고 있었는디....”
이제는 모르겠당께.
그렇게 웅얼거리며, 메이벨은 카운터 위에 풀썩 엎드렸다.
떠올리는 건 회의실에서의 일과, 그리고 복도에서, 빌런인 13호와 히어로인 자신이 키스 같은 걸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실실 웃으며 즐기던 대장의 모습.
빌런과 상종하지 않으려 했던 그 결벽하던 대장은 어디 간 걸까?
빌런에게 무척이나 엄격해, 손에 피를 묻히는 걸 마다하지 않던 실.
이제 히어로가 아니라며 빌런이든 누군든 손을 잡는 걸 거부하지 않는 실.
둘 다 같은 사람인데, 맞물리지 않는 느낌 때문에 전혀 다른 사람 같은 이미지가 생긴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어느 쪽이 진짜 얼굴일까. 아니면 상황에 맞춰 억지로 타협하고 있는 걸까.
그런 사람일까, 4번대의 대장이란 사람은.
기준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고, 입맛에 맞춰 말을 바꾸는 그런 사람인 걸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니가 뭘 알아~!”
“그래....”
“아~. 역시 생각같은 건 나랑 어울리지 않당께. 됐고, 술 가져와 술! 이것도 다 떨어졌잖아!”
“네이, 네이. 조금 기다려.”
귀찮다는 듯 대꾸한 13호의 모습이 카운터 안 쪽으로 들어갔다가, 조금 후에 다시 나왔다. 13호가 가지고 나온 것은, 옅은 노란 빛깔의 전통주. 그리고 넓은 접시에 담긴 묘한 요리.
“술은 비싼 거야. 그리고 안줏거리도 가져와 봤는데.”
“오...?”
접시에는 희고 탁한 국물에 잠기듯 건더기가 담겨있었는데, 고소한 듯 담백한 향이 코끝을 자극해, 메이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조갯살과 생선살, 그리고 새우를 이것저것 영양분 있는 재료들과 함께 도기 그릇에 넣고 오랫동안 졸인 거야. 참모랑 보스, 도로시까지 인정한 맛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니... 정체가 뭐야.”
“멋쟁이, 랄까.”
지랄, 이라는 메이벨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전통주에 어울릴 법한 도기 잔을 꺼내어, 앞에 두고 술을 따른다. 영롱한 빛깔의 액체가 찰랑 흔들렸다.
쨍-
두 사람은 말 없이 잔을 들어, 서로 가볍게 맞부딪치고는 각자 입에 흘려넣었다.
“맛있어어... 국물도 맛있고... 생선도 맛있당께... 행복해... 결혼해달랑께... 아니, 하지만 빌런인디....”
“벌써 취했어? 가능하다면 방금 그 말 한 번 더 해줄래? 지금 녹음기능 켰거든?”
“...아직은 괜찮당께~. 그리고 그거 치아라.”
메이벨은 뚱한 표정으로 내밀어진 스마트폰을 밀어냈다.
알딸딸해 보이지만 아직 의식은 있는 모양이다. 각성자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술에 강하다. 덕분에 취하기 위해서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됐다.
“확실히 너네 대장... 이제 대장이라고 하기도 뭐한가. 실 그 여자의 태세변환은 좀 이상해. 조사했던 바와 전혀 다르잖아.”
“맞당께. 수상할 정도랑께.”
“그래서 가설을 좀 생각해봤는데.”
“가서얼~?”
메이벨인 수상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애초에 13호가 그녀를 찾아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첫번째는, 저게 사실은 본인이 아니라던가.”
“...바꿔치기, 같은 거?”
13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게 본인이 아니라면 이해가 된다.
메이벨은 눈을 크게 떴다. 찬물을 끼얹는 듯한 내용에 술이 살짝 깼다.
“하지만 몇 번씩 능력을 쓰는 걸 보여주지 않았나?”
“그것도 수상해. 능력을 굳이 저렇게 남용하는 것도,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도 보이지 않아?”
확실히.
코코의 【일루전】이나 씨씨의 【은신】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보이도록 꾸밀 수 있을 법한 일들 뿐이다.
오히려 자신은 실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꾸미기 위해 일부러 어필하는 거라면....
“두번째 가설은――실은 사실 손을 잡을 생각 자체가 없다던가.”
“아, 알거 같당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일단 한패인척을 하는 거지?”
어쨌든 실은 닥터를 물리치고 엔데를 되찾으면 원래의 히어로로 되돌아갈 수 있다.
단순히 【어비스】를 이용하고, 틈을 봐서 뒤통수를 칠 생각이라면....
“굴욕을 참고 13호 너 같은 거랑 손 잡으려는 것도 이해가 된당께....”
“나랑 손을 잡는 건 굴욕을 감수하는 일이야?”
'어라, 그러면 혹시, 내가 13호랑 야시시한 짓을 해도 웃으며 넘기는 건... 언젠가 함께 숙청해버리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니 핏기가 가셨다. 아니면 어디까지 하나 보자, 같은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는 걸지도.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실의 언동과 모순은... 되지 않는다. 아마도.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런 느낌인 걸까.
‘뭔가 위화감이. 아니, 그보다 진심 같다고 할까, 너무 자연스러운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고 할까. 내 직감에 따르면 저건 대장 본인일 텐데~.’
메이벨은 어딘지 찜찜한 얼굴로 눈썹을 모으고는, 새로이 채워진 잔을 입 앞에서 기울였다.
꼴깍, 쌀과 전통 누룩 특유의 자연스럽고 깔끔한 향이 입 안에 퍼져나간다....
“!”
쾅!
메이벨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뭐, 뭐야 너?!”
“저기, 13호... 대장이 말하기로, 미래에서 ‘그’ 라헤 대장이나 너네 참모 라는 문디도 세뇌되서 닥터의 말이 되었다고 했었지?”
“응. 그런데.”
“그리고 대장은 능력을 써서 미래에서 과거로 왔고. ...근데 어느 시점의 미래인지도, 솔직히 모르지 않나?”
거기까지 말했을 때, 13호는 아, 하고 멍청한 탄사를 흘렸다.
혹시. 어쩌면.
그런 생각이 시커먼 연기처럼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혹시... 우리 대장, 그 닥터란 녀석한테 세뇌된 건... 아닌가?”
메이벨이 새로이 내뱉은 가설에, 13호는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