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36 빌런은 겁도 없이 배신한 과학자에게 도전한다(3)
도로시는.
도로시라는 여자는, 말 그대로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여자다.
이상한 발명을 하고, 사람을 실험체로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도덕의 굴레를 넘어선 협박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고, 하여간 성가시다. 무지하게 성가신 여자.
천재라는 것들은 다 그런건지, 하여간 괴짜고. 말투는 험하고, 사람 취급을 하긴 하는 건지 의심이 되고....
그래도 도로시는 미워할 수가 없는 여자였고,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로시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으니까.
누가 오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무 말 없이 있다고 해도 쫓아내지 않는다.
특별히 나서서 신경써주려고 하지도 않지만, 거부하지도 않고, 도움을 요청하면 쓴소리는 하지만 도와준다.
도로시는 사람을 좋아한다.
도로시는 인류를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다.
인류를 좋아하는 여자다.
도로시 본인의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 * *
또옥, 또옥-
쉬이익-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정체불명의 화학반응 같은 소리에, 기절해있던 내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일어났어, 13호?”
“......여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실험실의 모습이 보였다. 익숙하다고 할까, 그 사이에 또 새로운 약이라던가 기계가 늘었다. 여기는 올 때마다 새로운 게 생겨나서 참으로 신선하다.
목이 욱신거린다. 체크가 용서 없이 조른 탓이다. 나중에 벌이다, 이 여자.
“일어났네?”
“...도로시냐. 오랜만이네.”
“그렇네. 네 얼굴은 언제봐도 얼간이 같구나.”
언제나처럼 입고 있는 흰 가운에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
오랜만에 보는 도로시는 막대 사탕을 까득까득 깨물면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실험대에 눕혀진 나는, 수갑과 족쇄로 옴짝달싹 못하게 구속된 상태다. 실험실의 안에는 익숙한 달콤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세뇌향이다.
“13호, 나한테 져버렸네. 나는 과학자지 책략가가 아니다... 같은 소리를 맨날 하더니, 내 책략에 이렇게 걸려버렸네. 기분이 어때? 응? 응응응응?”
“우와, 때리고 싶어.”
“...평소에 네가 놀리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것 뿐이야. 너도 붙잡은 여자들을 이런 식으로 놀리잖아.”
그랬었나. 앞으로는 반성해서 좀 더 능글맞고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역겹게 놀려야겠다. 사람은 늘 더 앞을 추구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붙잡아서 뭐하려고? 야한 짓?”
나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도로시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할래?”
라고 말했다.
어라...?
“......진짜?”
“싫어?”
“하고 싶어요!”
“그렇구나.”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실험 검체로 침팬지를 한 마리 공수해왔거든. 마침 암컷이라 딱 좋을 거야!”
“미쳤냐?!”
“왜. 너네 남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며. 수간이라는 장르였지?”
“다우트! 다우트! 네 지식은 뭔가 잘못 돼있다고!”
“13호, 너 오차해석이라는 말은 알아?”
오차해석...? 들어봤던 것 같은데.
“실험이나 계산에서 늘 정확한 수치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거든. 그러니까 사전에 오차범위라고 하는, ‘이 정도 오차는 괜찮다’...라는 범위를 정하는 거야.”
“그렇네. 대학수학 강의 때 들었던 것 같아.”
그게 뭐? 라는 눈으로 도로시를 쳐다봤다.
내 시선을 받은 도로시는 한쪽 눈을 감고, 흥, 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배열의 차이는 1.6% 이하. 즉, 허용할 수 있는 오차범위 안이라고 생각해.”
“생각하지 않아! 허용하지 말라고! 종족이 다르다고! 이 정신 나간 이과 뇌 같으니!”
“뭐, 농담은 이쯤하고.”
“농담이겠지... 다행이다....”
“반은.”
“나머지 절반은?!”
“사실 준비해 둔 실험체는 침팬지가 아니라 고릴라였어.”
“그 쪽이 농담이었냐고!?”
실험체랑 교미시키려는 건 진짜야? 맙소사. 저 여자라면 한다. 진짜로 할 거 같아! 키메라 실험이라던가 그런 명목으로 뭐든 시킬 것 같다! 살려줘~~~~~!
“......후.”
내가 살려달라며 열심히 발버둥치는데, 별안간 도로시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는 배까지 붙들고, 혼자서 즐겁다는 듯 깔깔깔깔 웃는다. 눈꼬리에 눈물까지 맺혀있다.
“아~ 얼마만이야, 이런 바보 같은 대화. 참 놀리기 좋은 녀석이야, 넌.”
“화내도 되는 거지 이거?”
“에이~ 왜 그래. 이건 그거라고 생각해. 그... 좋아하는 애는 괜히 놀려주고 싶은 그런 느낌?”
나는 잠시 꽁한 표정을 지었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 그, 그 말은...!”
“응?”
“도로시 너, 사실 날 좋아하고 있었던 거냐... 전혀 몰랐어... 과연 츤데레란 거였구나. 데레를 느낀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구만. 죄 많은 남자라미아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온 몸에 파지직-! 전기가 흘렀다. 도로시의 손이 실험대 옆의 스위치를 향하고 있었다.
“에이~ 헛소리 하지마~ 괴롭혀주고 싶어지잖아~.”
“죄송합니다잘못했어요....”
이 여자가 츤데레라니, 말도 안 된다. 그냥 악녀다. 마녀다. 악마다. 츤 밖에 없잖아....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왜 갑자기 배신을 한 거야?”
슬슬 바보 같은 얘기는 끝이다. 오늘자 지면의 절반을 할애해서 쓸데없는 농담이나 치고 있다니, 보던 독자님들도 ‘지금 뭐하고 있었지’하고 당황할 거라고.
도로시는 웃음을 그치고, 내 바로 옆에 의자를 끌어당겨 걸터앉았다.
“화낼거야, 13호?”
“내용에 따라서는.”
“화내는 거 무서워서 싫어. 뽀뽀해주면 용서해줄래?”
“네! 용서해드리겠습니다! 대신 진한 딥키스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내가 개조한 전기뱀장어가 있거든. 원래보다 100배 강한 생체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는 녀석이야.”
“그거랑 키스시키겠다는 건 아니지?! 그랬다간 입 안의 모든 감각이 죽어버리고 말거야!”
“큭큭큭. 마침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고 싶다 생각했던 차였어.”
“미, 미친 과학자...!”
내가 두려움에 덜덜덜덜 떨고 있자니, 도로시는 또다시 쿡쿡 웃더니, 웃음을 거두고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배신한 이유는, 그게――”
“...‘닥터’ 때문이지?”
도로시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 ‘닥터’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네 가족이라 그런 거지? 정확히는, 남동생인가? 맞아?”
그 말에, 도로시가 눈을 크게 떴다.
“알고, 있었어...?”
일전, 아리아에게 ‘닥터’에 대해 예지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아리아가 예지할 수 있던 건 ‘닥터’와 도로시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다는 것 뿐.
듣자하니 ‘닥터’라는 남자도 빌런을 돕는 과학자이자 개발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로시와 뭔가 연이 있어도 이상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로시의 가족 관계를 애플이 조사해 준 덕분에, 조금 더 상상의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도로시는 평범한 부모님과 비범한 동생이 있었다.
도로시와 마찬가지로, ‘천재’ 과학자인 동생.
젊은 나이인데도 각성자 연구시설에서 눈부신 실적을 만들어내고, 상식을 뒤엎는 논문을 여러차례 발표하고... 분명 화려하고 순탄한 미래가 예비되었을 그였지만, 1년 전 돌연 모습을 감추고 사라져버렸다.
여기까지가 애플이 조사할 수 있었던 한계였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가 ‘닥터’가 아닐까, 하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생각 뿐이지, 확신은 아니었고, 혹시나 싶어 도로시에게 뭔가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천재 과학자, <각성>에 대한 연구를 10년은 앞당길 수 있을 거라 기대받던 엘리트, 그 이름은 바로――
“도토리라니...! 도로시에 이어서 도토리라니, 네 부모님의 센스는 어떻게 되어먹으신거냐 정말!”
“그만해! 그럴 수도 있지! 내 이름이면 몰라도 도토리는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트라우마 밖에 안 된다고! 학교 다닐 때 놀림받을 만한 이유가 된다고 그거! 그리고 도로시라는 이름도 귀엽다고 생각해!”
“고맙네 정말!”
도로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무시무시한 원흉.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동생인 천재 과학자. 그 이름은 도토리... 뭔가 확 깬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도로시, 그 도토린지 쥐방울인지 하는 녀석 때문에 배신한 거야?”
“내 동생이 왜 쥐방울이야. ...뭐, 일단은 그래.”
도로시는 정돈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흑발을 대충 쓸어올렸다.
“그 아이는 내가 【어비스】에 들어온걸 모르고 있었을 거야. 나도 1년 전에 그 아이가 사라진 뒤,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러다가 연락이 오게 된 게, 얼마 전이야.”
그리고 그 때부터, 도로시의 배신활동이 시작되었다.
“보스에게 그 사진을 보내서, 13호 네가 보스를 세뇌하게 만들고, 4번대에 싸움을 걸게 만들고, 착실하게 배신을 준비했지.”
“...너였냐.”
“응. 많이 화났었지?”
도로시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후회 같은 감정은 보이지 않았고, 다만 체념과도 같은 허무함이 있었다.
“......네 동생의 목적은 뭐야, 도로시?”
“빌런과 히어로를 없애버릴 거래. <각성자>에 대해 편견이 생기는 건, 히어로니 빌런이니 하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이게 첫 번째 이유.”
빌런과 히어로를 없애?
“그리고 전 인구의 <각성화>. 이게 두 번째 이유야. 그러기 위해 참모와 13호, 너희의 몸이 실험체로 필요하대. 각성할 수 없는 남자의 몸으로, 부작용 없이 완벽하게 힘을 쓰는 네 몸은 더더욱 중요하지. 그리고 난 너와 참모를 바치기 위해서 배신했어. 그런 거야.”
“거창한 이야기네.”
“응. 거창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도로시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렇게 배신해버렸다.
빌런과 히어로의 완전배제. 그리고 전 인류의 각성화...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에 동조해버렸다.
“도로시 너라면 그런 얘기엔 관심이 없을 줄 알았어. 새로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 말고는 흥미가 없어 보였는데.”
“정답이야. 나라면 이런 생각 안 해. 아무리 이상적인 말을 하면서 나를 설득해도, 그게 13호 너라도 코웃음치면서 A4용지 100장은 나올 정도로 멍청하다고 매도해줄 자신이 있어.”
“그 정도로 멍청하다는 소릴 들으면 내 정신이 닳아 없어져버려....”
“원래라면 들은 척도 안 할 이야기야.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야. 상대해 줄 가치도 없는 말이야. ――근데, 동생의 말이거든.”
도로시는 눈을 내리깔았다.
“동생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어.”
“......너, 브라콘이었냐.”
도로시는 웃으려했다. 입술 끝이 살짝 올라왔다. 그러나 그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 게 보였다.
“있잖아, 내 동생이 왜 천재 과학자가 되었는지 알아?”
그런 거 알 리가 있나.
“나 때문이야. 중학생 때 각성해버리고, 천재가 되어버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녹아들지 못하고, 이물질 취급받고, 괴물 취급받고... 그런 나 때문에, 그런 나를 괴롭혔던 애들을 전부 때려눕혀줬어. 각성자가 아닌 몸으로 나와 나란히 서려고 천재가 되어줬어. 천재 과학자가 되어줬어. 물론 재능이 있었던 덕분이겠지만.”
“그리고.”
“그리고――나를 위해, 이제 세상을 바꾸려 해.”
도로시는 눈에서, 눈물이 또륵, 흘러내렸다.
“세상이 어찌 되든 상관 없어. 솔직히 이젠 아무래도 좋아. ...그런데 나를 위해 인생을 버린 동생을,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물질 취급받으며 힘들어하던 나를 지켜줬던 동생을, 그 말을... 안 들어 줄 수가 없잖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또륵, 또륵.
구슬 같은 눈물이, 떨리는 눈꺼풀 아래에서,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미안해, 13호. 참모한테도, 보스한테도 미안해. 내 이기심이라 미안해. 내가 못나서 미안해. 그치만 나... 나 하나 때문에 인생을 버린 동생을, 거절할 수가 없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흐느낌을 동반한 속죄의 말.
나는 그 말을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귀 담아 들을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도로시는 소매로 눈을 닦았다.
“13호. 선택해 줄래? 내 특제 TS약으로 너를 여자로 만들어줄 수 있어. 그러면 보스랑 참모랑, 내가 어떻게 해서든 도망시켜줄게. 빌런일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거야. 그 때는 내 동생의 표적이 될 테니까. 그 애는 무서워서, 한 번 하겠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거든.”
“......싫다고 하면?”
“그때는, 너를 세뇌해서... 내 수족으로 만들 거야. 내 것이 된다면, 내 동생도 연구 정도만 하고... 그 외엔 손대지 않을 거야.”
그래서 어쩔래, 라며 도로시는 대답을 재촉했다.
“그렇지. 내 것이 되어주면, 귀여운 펫처럼 대해줄게. 하루종일 뒹굴뒹굴하면서 놀아도 된다고? 가끔 내 실험에 쓰긴 하겠지만, 그 외엔 내가 전부 책임져줄게. 먹여도 줄거고 재워도 줄거야. 남자니까... 뭐...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쌓인 걸 풀어주는 것도 생각해볼게. 응. 파격적인 제안 아냐?”
달콤한 세뇌향의 향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느낌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거절한다! 기둥서방이든 펫이든, 물론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나는 빌런이니까!”
빌런이란 자유를 사랑하며, 속박되는 것 없는 프리한 인생이 자랑이다.
그런 빌런을 그만두다니.
거기다.
거기다......!
“한 달에 한 번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지! 하루 한 번이어도 부족하거든?! 도로시 너 말야, 남자를 전혀 모르는구만!”
이 여자, 처녀가 분명하다!
“거기다 유혹하려면 그 촌스런 백의라던가 다 벗고, 그 부드럽고 음란한 몸뚱이로 앵기면서 귓가에 요염하게 속삭여야지, 그런 태도로 남자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남자를 우습게 보지말라고, 이 처녀야!”
“.......”
도로시는 어느샌가 눈물을 뚝 그쳤다. 다만 나를 차갑게 내려보는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다. 빙하의 얼음 안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의 여왕에게 심장이 얼어붙는 저주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어째, 실수한 거 같지? 응?
“후, 후후후후... 알았어, 응, 그래.”
도로시는 우후후 웃었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지 않다.
“하여간 글러먹은 남자 같으니. 너는 세뇌해서, 24시간 노동형에 처해주겠어. 매일 같이 일에다가 아르바이트, 1년 365일 내내 쉬지 않고 자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하게 만들어 정신을 뜯어고쳐 주겠어. 걱정하지 마. 한번 마시면 일주일 동안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내 특제 ‘강장제Z’를 매일 같이 먹여줄 테니까.”
“마, 맙소사...! 무시무시한...!”
도로시는 주사기를 손에 들고, 그대로 내 팔뚝에 꽂았다. 그 안에 들어있을 세뇌약으로 추정되는 투명한 액체가, 피스톤을 따라 쭈우욱- 밀고 들어왔다.
“후후, 기대하라고, 13호.”
도로시는 사악하게 웃으며,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 * *
“......후우, 슬슬 약발이 돌고 있으려나.”
도로시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이제는 빛을 잃고 멍한 눈을 한 채 누워있는 13호의 얼굴을, 도로시는 말 없이 쓰다듬었다.
하여간, 멍청한 놈이다.
결국엔 마지막의 마지막에 바보 같은 말을 한 것도, 자신의 짐을 덜어주려고 한 것 아니었을까.
이 바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까 싶지만, 이 상냥한 바보라면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끝까지, 도망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여자가 되는 게 싫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이 녀석이라면...
‘나를 혼자 두기 싫다고...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도로시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배신자인 그녀에게,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가 있을리 없다. 한 번 자신의 행동에 후회해버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여기서 주춤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리면, 정말이지 그렇게나 바보 같은 이야기도 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도로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쓸데 없는 생각을 털어내고, ‘천재 과학자’로서의 일면만을 남기는 무표정을 만들어냈다.
“13호... 자, 내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거야. 내 말을 듣고, 그 마음 깊이 새겨넣도록 해... 알겠지?”
도로시는 13호의 양 뺨에 손을 대고, 눈을 마주쳤다.
13호의 눈과 도로시의 눈이 마주친다. 그의 눈에 자신의 눈이 비치는 게 보였다.
“내 눈을 바라봐. 눈동자 깊은 곳을 바라봐. 계속 보고 있는 거야. 놓치지 마. 보면 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네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아갑니다....”
사람의 눈이란 이다지도 투명한 것일까. 거울 같기도 하고, 새카만 바다 같기도 하다. 넋을 잃으면 그대로 빠져들 것 같았다.
13호의 표정이 느긋하게 풀어졌다. 그저 조용히 숨을 들이내쉬는 대로, 남자다운 탄탄한 흉부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도로시는 자신의 얼굴도 천천히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세뇌에는 ‘동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혀 다른 이질적인 누군가의 말은 잘 들리지 않지만,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본질적으로 같은 누군가의 말이라면 잘 듣게 마련이다. 설득의 기본은 ‘공감’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도로시는 13호와 천천히 호흡을 맞췄다. 표정을 맞췄다. 눈을 맞춘다. 천천히, 심장의 고동마저 맞추며, 상대와 동조해나간다.
“나를 잘 봐요... 제 눈에 비치는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겁니다....”
“당신은 내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안에 들어가있어요... 당신은 나... 나는 당신....”
“잊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나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겁니다....”
“영혼이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지금 이곳으로 옮겨갔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제 안에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세요... 영혼에 새겨넣고, 반복하는겁니다....”
“자, 따라해보세요... 나는 당신의 것...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
달콤한 세뇌향의 향기가 맡아오는 이 장소에서, 도로시는 세뇌의 말을 읊조려갔다.
“흔들립니다,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리고....”
“벽은 허물어집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가로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의 눈동자는 거울... 거울은 당신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습니다....”
“고요한 수면 위에 둥실둥실 떠올라 있습니다... 당신은 더더욱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멍하니 세뇌의 말을 읊조리면서, 도로시의 머리 한구석에 그런 의문이 흘렀다.
왜.
왜 세뇌향이... 피워져 있지?
애초에 13호를 세뇌하기 위한 세뇌약은 준비해놨는데, 어째서 세뇌향을 피우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피웠을까...........?
‘어..............?’
“『따라해주세요... 내 눈동자를 보는 겁니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의 마음은 이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곳은 빠져나갈 수 없는 영혼의 감옥입니다....』”
어느 사이엔가, 눈 앞의 13호는, 구속이 풀려있었다.
자신이 그 뺨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고 있듯, 그 또한 자신의 뺨을 붙잡고 있었다.
자신이 세뇌의 말을 중얼거리듯,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아니, 자신이 하려는 말을――상대가 앞지르고 있다!
“『따라해주세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당신의 영혼의 감옥.』”
“『무한히 이어지는 회랑.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수면 아래에 당신의 영혼은 가라앉는다. 당신의 마음은 이곳에.』”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계약이다.』”
“『잊지 마라.』”
“『너는 그의 것.』”
“『너의 마음은 그의 것.』”
“『그 목소리를 잊지 마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마음과 영혼에 새겨넣으라!』”
이상하다.
분명 눈 앞에 있는 건 13호였을 텐데, 13호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일그러지고,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아, 그렇다. 이 기분은. 이 말투는, 아마도....
“『그 말을 잊지 말고... 잠에 들기를, 도로시』.”
그 말을 끝으로.
도로시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몸이 툭, 앞으로 고꾸라졌다.
“....................................후우, 살았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쓰러진 도로시의 옆에, 본래라면 실험대 위에 있어야 할 13호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고.
“서방님...♥ 저, 잘했나요?”
“다 유능한 이 몸 덕분이지 뭐야.”
쓰러진 도로시의 아래에서, 본래라면 13호가 누워있어야 할 실험대 위에 대신 누워있던 애플이, 그리고 실험실 구석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코코가 각각 만족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