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35 양아치 화가는 양아치 빌런에게 약점을 잡혔답니다(2)
메이벨은 이불 속에서 당황하고 있다.
착각이 아니었다. 조금 전부터 몸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단순히 긴장하는 바람에 컨디션이 흐트러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두근, 두근, 하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다.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야릇한 기분이 들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술, 술이라도....”
술이라도 마시면 조금 나아질까. 그러고 보면 술은 항생작용, 발열작용에 소독효과도 있으니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이 몸의 이상도 술만 마시면 금방 나을 게 분명하다. 술 만세. 알코올 짱이랑께~.
“너 그러다 일찍 죽는다....”
“흐미야악?!”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쿠당탕! 침대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흐, 흐미... 13호?! 니가 어째 여깄다냥?!”
인원이 넷이 되었으므로 이 호텔의 트윈룸을 두 개 빌렸다. 그래봐야 달콤한 하룻밤을 보낼 셈인지 체크도 아리아도 13호가 있는 저쪽 방에 가버려서 이곳에서 혼자 쓸쓸하게 자고 있었다.
“냥은 또 뭐야. 뭐, 외롭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내일부터 바로 작전에 들어갈 텐데, 친목을 다져볼까 싶기도 하고. 덤으로 몸 상태를 좀 보러 왔는데.”
남이사. 내가 즐거운 말투를 내가 쓰겠다는 데 불만있냐!
“빌런 따위랑 친목을 다질 생각은 없당께....”
“...덤으로, 작전 중에 우리 동료라던가, 적에게 이용당하는 불쌍한 7번대 제군들을 상대할 때도, 목숨은 살려줬으면 좋겠다던가.”
조금 전 회의의 내용대로, 지금 13호며 메이벨은 외통수에 놓인 상황이다. 4번대만이 아니라 【어비스】, 도로시에 '닥터'라는 수수께끼의 인물들 까지도 전부 적이다.
이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게릴라전을 통해 수복해나간다지만, 어쨌든 어느쪽이든 충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도로시의 수중에 떨어진 스페이드와 클럽 같은 7번대 인원들만이 아니라, 【어비스】의 인원... 어쩌면 참모나 바이올렛, 최종적으로는 도로시까지 상대를 해야 하겠지. 그리고 이쪽은 전력이 부족한 관계로, 메이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다.
세뇌도구가 없어 메이벨을 세뇌할 수도 없는 지금, 히어로인 그녀가 빌런인 【어비스】의 인원들과 맞붙는다면... 손대지 못하게 할 쐐기가 없다.
“그것도 보장할 수는 없당께.”
예상했던대로, 메이벨은 딱 잘라 말했다.
“나는 히어로. 그리고 그 짝은 빌런들. 세뇌로 잠깐 적으로 돌아서버린 7번대 인원들을 상대할 때는 조심하겠지만... 히어로인 내가 빌런들을 봐 줄 이유는 없당께.”
물론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는 메이벨의 상황으로서는, 13호의 호감을 사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닥터’를 처리하지 않으면 곤란한 건 13호도 똑같고, 13호네가 ‘닥터’만 처리해버리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4번대에 복귀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환심을 살 이유는 없다.
메이벨은 비교적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물론 술이 들어갔을 때에야 그렇다지만, 기본적인 본성은 술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어쨌든 그녀안에 남아 있는 법이다.
직감에 따라 움직이고, 매사에 즐거운 일을 추구하며, 완벽함보다는 신선처럼 여유로움을 즐기고, 그림과 술을 좋아하는, 그런 여자다.
하지만 그런 메이벨에게도 4번대의 가르침은, 히어로로서의 본질은 깊게 남아있다.
빌런은 악이다. 빌런에게 정을 줘서는 안 된다. 빌런을 상대할 때 손속을 둬서는 안 된다.
메이벨과 마찬가지로 4번대의 대장인 실도 나름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그러나 이 철의 규칙만은 늘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날, 빌런의 숨통을 끊는 것을 주저하던 스페이드를 다그쳤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비록 트러블이 생겼다곤 해도, 자신은 4번대다. 무엇보다 히어로다.
빌런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줄 의리도 이유도 없다.
“흐음... 과연, 히어로들은 고지식하구만. 좀 더 오픈마인드한 기분으로 해주면 안 돼?”
“오픈마인드를 바란다면 술을 가져오랑께. 술. 그러면 좀 더 생각해볼텡게.”
“응. 다음 번엔 지참해 오도록 할게.”
호되게 거절당했으면서 생글생글 웃는 13호의 얼굴을 보자니 짜증이 났다.
“이야기 끝났으면 빨랑 가버리랑께. 안 그래도 뭔가 심장이 쿵쿵 뛰어서 몸이 안 좋――”
거기까지 말한 메이벨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어라.
그러고보니 이 남자, 뭐라고 했었지?
덤으로 뭐시기 말하지 않았었나?
몸 상태를 보러 왔다고?
‘서, 설마...?’
“몸 상태는 괜찮아, 메이벨?”
끼기긱-
소리가 날 정도로, 메이벨은 뻣뻣하게 목을 돌려 13호를 노려봤다.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어딘가 이상하다.
심장이 두근두근 세차게 뛰고, 어쩐지 열이 오르고 땀이 나고, 조금만 정신을 놔도 발작해버릴 것처럼 손발이 덜덜덜덜 떨리고 있다. 그 잠깐 대화하는 사이에 몸 상태가 한층 더 안좋아진 모양이다.
그리고 이 남자, 분명 자신의 이 상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메이벨은 13호의 멱살을 콱 붙잡았다.
“너... 뭔가 알고 있지? 아니, 네가 한 짓이지?! 나한테 이상한 독 같은 걸 먹인 거지! 역시 빌런이란 것들은! 믿을 수가 없어! 독으로 꼼짝달싹 못하는 나를 이리저리 능욕하고 카메라로 촬영해서 SNS를 통해 전세계에 뿌려버릴거다~ 같은 협박을 할 생각이지! 그걸 빌미로 매일매일 나를 향한 수치스런 능욕과 요구를 할 셈이지!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요구에 결국에 타락해버린 내 목에 목걸이 같은 걸 달고 저기 있는 체크나 아리아 같은 애들이랑 함께 홀랑 벗겨서 주지육림을 즐길 셈이잖아! 역시 변태로 이름 높은 빌런 자식! 에로 호색한! 쓰레기 변태신사!”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네, 변태녀.”
“누가 변태녀얏!”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13호의 손을, 메이벨은 탁, 쳤다. 친절하게 대해도, 지금은 일시적으로 한 편이 된다 해도 상대는 빌런이다.
“아무튼 나는 너희 빌런 따위 믿지 않으니까! 절대로 너 같은 변태에게 굴복하거나 하지 않으니까. 알겠냥께!”
“뭐... 그치만 일단 너도 부대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지금, 협력은 해주는 거지?”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거면 됐어. 그리고 지금 네 몸 상태에 대해 할 말이 있는데, 딱히 내가 독을 먹인 건 아닌데 그거랑 비슷한 거랄까.”
비슷한 거라니, 뭐라는 걸까.
그보다 이 녀석이 뭔가 먹이거나 한 적이 있었나? 독. 주사....
“......아!”
“응? 생각났어? 그거 있잖아, 포션.”
그러고보면 엔데의 총에 맞아 배에 구멍이 뚫렸을 때, 13호가 특제 포션이라던가 하면서 주입시켰던 게 있었다. 부작용인가 뭔가 있다고 말을 했었지.
“이게 그 부작용...?”
“응. 그대로 그냥 두면 위험해.”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되는 거냥께?”
“글쎄. 나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한테 시험해 본 건 처음이라.”
13호는 턱을 톡톡 두드리더니,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 구공분혈(九孔噴血)이라는 말 들어봤어?”
“꺄아아아악?!”
구공분혈. 사람 머리의 일곱 개 구멍(귀, 코, 눈, 입)에 항문에 요도에서까지 피가 뿜어져 나온다는 무시무시한 증세.
아, 아아아아아...!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꽃다운 처녀가 온갖 구멍에서 피를 뿜고서 죽는다니, 세상의 손실이잖아 그거.
“나, 나 그렇게 끔찍하게 죽는 거야...?”
그럼 그냥 총에 맞아 죽는 게 나았어~~~~~!
당황하는 메이벨의 머리를, 13호가 안심하라는 톡톡 두드려주었다.
“응급처치 해 줄 테니까 안심해.”
“진짜...?”
응급처치?
뭔가 약일까? 체 했을 때처럼 손을 딴다거나? 특별한 마사지술?
뭘까, 하고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올려다보는 메이벨의 양 뺨을, 13호의 손이 붙잡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당황했지만 머리를 꼭 붙잡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채로, 13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움――?!”
입과 입이, 입술과 입술이 접촉했다. 저항하듯 앙 다문 메이벨의 입술을, 13호의 혀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잇몸을 핥았다.
“응...!”
기묘한 느낌. 남자친구도 사귀어본적 없으니 키스도 처음이다. 덕분에 13호의 혀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입 안에 닿을 때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묘한 느낌에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입이란 건, 이렇게나 민감한 곳이었구나....
“웁...! 웁웁...!”
메이벨은 13호를 밀어내려했다. 하지만 단단한 남자의 몸은 가녀린 자신의 손으로는 밀어낼 수가 없었다. 호신용 붓을 꺼내들고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툭, 툭, 분하다는 듯, 그만하라는 듯 꼭 쥔 주먹으로 13호의 가슴팍을 때렸지만, 13호는 더욱 더 그녀의 몸을 세게 끌어안고 입 안 깊은 곳에 혀와 타액을 밀어넣었다.
“우...........!”
꿀꺽, 흘러들어온 타액을 목울대를 울리며 거의 억지로 삼켰다.
그 모습을 13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확인하고는, 그제서야 선선히 그녀에게서 몸을 뗐다.
“무, 뭐, 뭐, 뭐..................”
이게, 키스.
도대체 뭐지 이 남자는. 왜 갑자기 키스를 하는 거야? 미쳐버린 거야?
“그래서, 이제 몸은 좀 어때?”
13호의 말을 듣고, 메이벨은 심장 위의 흉부에 손을 올렸다. ......어라, 진정됐다.
“응. 그 포션 부작용의 특효약이야. 내 체액.”
“체...액?”
“전성기 시절의 내 마력을 도로시가 멋대로 뽑아내서 만든 포션이거든. 근데 무슨 문제인지 기본적으로 나 이외에는 부작용이 생겨버려. 즉, 내가 없으면 그 부작용을 없앨 방법은 없단 말씀.”
“?!”
“이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타액으로 안 되면 좀 더 진한 걸로 먹여줘야 될지도 몰랐는데, 응. 지금은 일단 타액으로도 충분한 모양이네~. 정말 다행이지~.”
“...지금은, 이라는 건?”
“.......”
“설마, 앞으로도 계속 해야한다는 거야...? 설마하니 증상이 더 심해진다거나...?”
13호는 말 없이 시선을 피했다.
이, 이, 이, 이 망할 변태 자식이이이이~~~~~~!
* * *
“흐윽... 도로시양... 이런, 짓을... 크읏...!”
저릿한 전기의 충격이 참모의 온몸에 내달렸다.
철그럭,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을 위로 한 채 구속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앞에 선 도로시가 손에 대충 든 채찍의 끝으로, 전과는 달리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몸을 꾹꾹 찔렀다.
“뭐야, 뭐. 즐기고 있는 거잖아. 응? 당하면서 즐기는 참모 씨 아니었어? 말해보라니까? 칠칠맞게 풀어진 얼굴 해서는.”
“하앗... 하... 더, 더 해주세요 도로시 양... 흐헤...♥”
“......하여간 구제불능의 변태자식이라니까. 그 모습이 되어서도.”
도로시의 매도에 참모는 “후옷♥”하고 한층 몸을 떨었다.
도로시의 약품의 실험대가 되어버린 참모는, 지금 세뇌를 위한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세뇌의 기본은 상대의 정신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찾아, 그곳을 비집어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강고한 신념이나 앞뒤 가리지 않는 흔들림 없는 신뢰, 그리고 복잡하고 논리정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일수록 세뇌는 어렵다. 세뇌도구란 것은 정신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 약점을 비집어 열기 쉽게 만들어 주는 것 뿐이지, 애초에 파고들 틈이 없거나 아주 작은 경우엔 어떤 도구를 이용해도 세뇌시키기는 쉽지 않다. 참모나 애플 같은 사람이 세뇌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하지는 않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신을 깎아낼대로 깎아내면, 어떤 역전의 용사라도 견디지 못하고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당하는 걸 기뻐하는 변태녀석이라는 건 좀 계산하기 까다롭지만....’
하여간,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다.
참모까지 세뇌가 끝난다면, 그 13호도 순순히 포기해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참모의 조력은 필요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취미이기도 하지만.
그 재수 없는 참모를 입맛대로 괴롭히고 세뇌할 수 있다니, 즐거운 일이다.
“그나저나 참모... ‘그 모습’, 참 잘 어울려. 많이 귀여워졌네♪”
도로시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며, 참모의 뺨을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었다.
참모는 분함과 즐거움이 반쯤 섞인 미묘한 표정으로, 그런 도로시를 마주보았다.
* * *
“일단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냈어. 아리아의 예지가 틀림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러니까 믿어 줘.”
그리고 도로시의 배신으로부터 이틀 후.
“오늘 우리는, 배신한 도로시를 공략한다.”
나와 메이벨을 포함한 네 사람은 【어비스】의 아지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