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33 빌런은 양아치 화가를 만났습니다(1)
최근 스페이드가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할까, 다가갈 수가 없다.
“어이, 스페이드.”
“크르르르르르릉......!”
다가려고 하면 무슨 위험한 맹수마냥 그르릉거리면서 위협하고는, 훌쩍 떠나가버린다.
저번에 엔데에게 습격받고 난 뒤부터 계속 이런다. 지명수배 당한 게 그렇게 충격이었던 걸까.
아무튼 이래서야 곤란하다. 저번 정찰조사로 어느 정도 수확은 있었다지만, 아직 부족하다. 특히나 【매드몬스터】 메이벨 만큼은 직접 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호위 겸 동행으로 스페이드를 데려가려 하는데....
‘이 상태로 봐선 무리겠지.’
스페이드 같은 신체강화계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을 때 자유도가 높아서 좋은데...
‘라헤는 아직 세뇌중이니 논외고, 클럽은 상황에 따라 효율이 천차만별이고, 코코는 왠지 곁에 두기 불안하고, 【시궁쥐】에서 납치해 둔 두 사람은 능력이 좀 아쉽고....’
아리아나 애플은 후방지원이니 역시 그렇고, 참모를 데려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체크 뿐이다.
‘체크의 능력이면 범용성도 좋고, 만약의 사태가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경험이 많으니.’
그 이상한 사이비 사투리 빼면 흠이 없는 여자였다. 놀랍군.
묘한 사투리...
사투리...
세뇌암시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투리...
흠.
“응?”
체크를 찾기 위해 7번대 기지의 복도를 걷는데, 저 편에서 평소대로 붉은색 기조의 한복을 입은 아리아가 문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살짝 벌려진 문 틈새로 뭔가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뭐해?”
“쉿... 보실래요, 13호 오빠?”
아리아가 입술에 검지를 댄 채 제안하기에, 나는 순순히 수락하고 아리아의 머리 위에 내 턱을 얹었다. 턱 끝이 정수리에 닿는 감촉이 기분 좋은지 아리아가 슬쩍 머리를 비볐다. 달콤한 복숭아 같은 향기가 나서 좋다.
『예, 어머니.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다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굉장히 정중한 말투다.
7번대에서 이런 말투를 쓰는 사람은 라헤 이외에는 없을 텐데, 일단 당연하지만 라헤는 아닐터다. 지금쯤 도로시의 실험실에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목소리라고 하기엔, 그것도 아니다. 묘하게 귀에 익다.
『아버님은 어떻게 지내실지 모르겠네요. 하여튼 몸 건강히 유의해주셨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런 목소리에 이런 말투... 처음 듣는데.
누구지?
열심히 눈을 굴려가며 살펴보고서야 그제야 통화하는 인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늘 보는 히어로제복에, 머리에는 동그란 만두머리.
“......체크?”
“네, 체크 언니요.”
『어머나~ 진짜요? 아니요, 괜찮다니까요. 예. 그보다 생활비 부족하시진 않으시고요?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멍하니 쳐다보는 내 눈 앞에서 체크는 아가씨처럼 다소곳하게 오호호호 웃었다.
늘 입에 달고 살던 사투리는 어디갔지?
그보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항상 그냥 흐물흐물 흐느적흐느적한 양아치 같은 느낌이었는데.
『네~ 그러면 끊을게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체크는 전화를 끊었다. 그대로 뭔가 지친 듯 한숨을 쉬는데, 문득 기척을 눈치챈 듯 이쪽을 돌아봤다.
“.......”
“.......”
나와 눈을 딱 마주친 체크가 거북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자, 잠깐만! 뭐, 뭐시여! 이건 그러니께... 암튼 가까이 오지 마시게! 히익?! 잠깐?! 워째 내 머리를 붙잡것이여?! 그만~~ 잡아당기면 안 된다 안 카나~~~! 내 머리 경단 뜯어진대이~~~~!”
“아우... 부, 부모님이 워낙 엄격한 분들이셔서 그렇고... 워쩔 수가 없어서 이런다니께. 항상 통화하는 내내 입이 근질근질거리는 걸 억지로 참고 있구먼.... 거기서 그래 인정사정없이 남의 머리를 쥐어 뜯을라하나!”
“아니, 너무 놀라서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었고... 그리고 내 잘못 아니야. 그 머리가 내 손을 끌어당긴 거라고.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남의 머리 탓을 하는기가! 문디야!”
동그란 만두머리를 보고 있으면 왠지 꽉 쥐어보고 싶잖아. 한번쯤 뜯어보고 싶잖아. ...그렇지 않나 보통?
“어쨌든 내 부모님은 허벌나게 무서우니께, 어쩔 수 없이 정중한 말투로 하는 거래이. 그 외에는 제대로 사투리로 얘기할거래이!”
“도대체 그 엉터리 사투리에 대한 집념은 어디서 그리 솟아나는 거람....”
“이기 내 아이덴티티다 아이가, 마!”
너 그 사투리 때문에 인기가 뚝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확실히 사투리 없는 체크는 더 이상 체크답지 않다고 생각해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세뇌로도 그만둘 수 없게 만든 사투리를 그만두게 하다니, 체크의 부모님이랑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 거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내, 내, 내, 내는 암것도 모른다! 그, 그러니까 뭔가 알려고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느니, 어둠의 뒷세계라느니, 홍콩이라느니... 내, 내는 암말도 안 할란다!”
라면서 벌벌 떨었다.
뭐하는 사람들인지 더 이상 묻고 싶지 않네. 그보다 이제부터 체크한테 잘해 줘야겠다....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동해 바다에 빠질지도....
“그래서, 내는 와 찾은기고?”
“아, 여차저차해서....”
나는 체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동행을 요청했다.
“음, 오늘은 별일도 없을 기고, 상관은 없겠으야... 근데 변장이 필요하겠구먼.”
“복장은 참모가 준비해 준 게 있으니까 이거로 입어.”
“오호. 센스 있는 남자로고.”
체크는 내 손에서 쇼핑백을 받아들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총총히 떠나갔다.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도 해 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체크가 돌아올 때까지.... 뭐하지?
적당히 7번대 기지를 돌아다닐까 하다가, 누군가 소매를 쭉쭉 잡아당기고 있는 걸 눈치챘다.
“응? 아리아?”
“.......”
왜인지 묘하게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왜?”
“오빠님 요즘 저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닌가요?”
나는 아리아의 한복 치맛 자락을 잡고 위로 활짝 들어 올렸다.
응. 물색 속옷이 눈부시다. 어제는 흰색이었는데.
“응? 소홀했나?”
“.................우와.”
적어도 매일의 팬티 색깔만은 잘 기억하고 있다는 어필이었는데, 아리아가 할 말을 잊은 듯 입을 뻐끔거리더니,
“하아... 제 속옷을 봐주셔서... 기뻐요...♥”
발그레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야, 위험한 여자가 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리아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핫, 이래서야 쉬운 여자가 되버리겠어요. 취소. 취소해주세요.”
“.......”
“어쨌든 이대로 계속해서 저를 홀대하시면, 저도 그냥 나쁜 여자가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반항할 거예요. 나쁜 아리아가 되겠어요!”
“그 열 받는 3인칭은 이미 나쁜 아이가 된 증거냐? 응?”
“아아아아아~~~~! 호, 호(코)~~~~!”
검지와 중지로 코를 잡아당겼다.
“끄으... 13호 오빠는 너무해요... 요즘 저한텐 신경도 안 써주면서 폭력까지... 최근에 저희 7번대 인원들을 촬영해서 만든 보물 폴더를 지워버릴 거예요....”
“네가 그걸 어떻게?!”
꽁꽁 숨겨놨는데.
어떻게 들킨거지.
스페이드가 내 이전 보물폴더를 전부 지워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내 유일한 에로 재산이다. 그걸 지워버리겠다니, 이 여자는 악마인가...! 만약 그랬다간 아리아 이 여자를 카메라 앞에 꽁꽁 묶어 매달아 놓고 일주일 동안 온갖 방식으로 괴롭히고 범해서 새로운 보물 폴더를 만들어주겠다.
아무튼 반항적인 눈빛이 보이는 아리아를 보니 살짝 난처해졌다.
세뇌라고 하는 것은 만능이 아니다. 지속적인 메인터넌스가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간 풀려버린다. 세뇌 기술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아무리 잘 외운 기억도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는 것처럼.
흠.
“그래서 나한테 뭔가 야한 짓을 해달라는 거지?”
“그, 그렇게 말하면... 뭔가 제가 변태인 것처럼 들려서....”
“변태 아니야?”
“아, 아니... 거든.... 요...?”
나는 아리아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아니야?”
“...........................으....”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나한테 명령 받으면 느껴버리는 변태, 아니었어?”
아리아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여전히 몇 번 머뭇거리더니,
“마, 맞아요............ 명령... 해주세요 오빠......♥”
결국엔 순순히 인정했다.
“터무니 없는 변태네.”
“맞아요...♥ 변태네요... 아리아는...♥”
그러니까, 라며 아리아는 양 손으로 치마 끄트머리를 잡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녀의 물색 속옷이 드러났다.
“어서 저를 범해주세요... 엉망진창... 히힛...♥”
흐음.
범하는 것 자체는 쉽다. 이렇게 열성적이게 애원하는 여자를 무시하는 건 남자로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하는 것도 저어하다.
――‘알겠어, 얼간이 13호? 세뇌를 계속 유지하려면 관계를 명확히 해주는 게 필요해. 모호하게 반응하면 상대도 헷갈리고 결국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세뇌가 풀려버려.’
라고 도로시가 가르쳤던 것이다.
아직 그녀나 참모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세뇌 기술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이전과는 같지 않은 나다. 새로운 나. 뉴(New) 13호다.
그런 뉴 13호의 견해로 보자면, 지금 그녀가 바라는 요구대로 계속 들어줬다간 주종관계가 역전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건 좋지 못하다. 애초에 아리아를 세뇌한 건 다른 미래선의 나. 어떤 방식으로 세뇌했는지, 무엇이 세뇌의 핵이 되는지 모르는 만큼 그녀의 세뇌 유지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나는 드러난 아리아의 물색 팬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팬티 사이에 다소곳하게 파묻힌 균열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자,
“히얏...♥”
아리아가 기쁜 신음을 흘렸다.
고작해야 이것만으로 손가락 끝의 천이 살짝 젖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마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거겠지. 명령 받았기 때문인지 자기가 변태라는 걸 인정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의심할 여지 없는 음란한 여자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팬티 천 위를 꾹꾹 압박하면서 빙글빙글 돌렸다. 이따금 균열 사이로 손가락 끝을 살짝 찌르면, 천과 함께 손쉽게 쭈우욱 밀려들어갔다.
“정말이지, 히어로인 주제에 이렇게 음란해도 되겠어? 응?”
“아니... 저는... 히어로가 아니라... 13호님의 암캐니까....”
“암캐에 어울리긴 하네.”
“햐윽...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개라는 건 주인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거겠지? 그렇지, 아리아? 대답해 봐.”
“네... 물론이죠... 그러니 얼마든지 말씀하시는 대로 봉사할게요....”
나는 그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음부에서 손을 뗐다.
“그럼 참아볼까.”
“.........................................................네?”
아리아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암캐잖아? 개는 훈련해서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응? 왜 그렇지, 아리아?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넌 ‘명령받는 걸 좋아하는’ 암캐 아니었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 아리아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어주자, 금방 발그레하게 풀어졌다.
“알겠니, 아리아? 오늘 내가 임무에 돌아와서, 내가 직접 너를 범해줄 때까지 참는 거야.”
“차, 참아요...?”
“그래. 참아. 하지만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도 용서하지 않아. 나를 생각해. 계속 생각해. 내 자지의 맛을 생각해. 내 정액의 냄새를 기억해 줘. 계속해서 발정하도록. 하루 종일 나를 생각하면서 내가 언제 와서 범해도 될 정도로 보지를 젖게 해둬. 알겠어?”
“네, 네헤......♥”
“그래... 자위하는 것도 허락은 해주겠어. 다만 가지는 마. 절정하기 직전에 멈춰. 네가 혼자서 가버리는 건 허락하지 않을 거야. 만약 내 명령을 어기고 혼자서 가버리거나 해버리면... 다시는 범해주지 않을 테니까... 알겠지?”
아리아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자, 나는 그녀의 비부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었다. 기쁨으로 몸을 떠는 그녀를 나는 만족스런 눈으로 내려다봤다.
“좋아. 대신 잘 참으면, 말 잘 듣는 암캐에게는 포상을 줘야겠지....”
“포, 포상....♥ 꼭 참을 게요... 말 잘 들을게요 오빠님... 아니, 주인님.......”
그럼 이제 슬슬 옷을 갈아입은 체크가 돌아올 시간이다.
이만하면 됐겠지, 하고 아리아에게서 멀어지려는 데, 아리아가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치만 주인님...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키스 한 번만요...♥ 안 될까요...?”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하는 미녀의 말을 거절할 수 있을까 보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락한다, 아리아. 네 쪽에서 해줄래?”
여유롭게 말했다.
“하아...♥ 감사합니다...! 웁....”
아리아는 내 양 볼을 손으로 감싸고, 그대로 발돋움을 하며 내 얼굴을 끌어당겼다. 입술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이 닿았다.
아리아의 숨결이 느껴졌다. 온기가 느껴진다.
아리아에게선 여느 때와 같은, 복숭아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났다. 향수는 아닌 것 같고, 어느 바디워시를 쓰는 걸까....
추웁... 움.......
아리아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조심조심 내 입 안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작고 도톰한 혀의 감촉을 느끼며, 나도 그녀의 혀에 내 혀를 얽고 끌어당기고, 누르거나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타액을 밀어넣고, 서로 섞고, 꿀꺽 삼켰다.
내게 달라붙어 온 아리아의 봉긋 솟은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리아는 내 체온이며, 내 체취를 자기 몸에 배게 하려는 듯 더욱 더 몸을 밀착시켜갔다.
꽤나 오랜 시간이어진 농후한 키스.
먼저 키스를 끝내고 얼굴을 떨어뜨린 쪽은 아리아였다.
“하아... 13호 오빠의 입술... 좋아... 따뜻해요... 숨결이... 찌릿찌릿해져... 느껴버려...♥”
“후우... 좋은 입이네, 아리아.”
“제 모든 건 13호 오빠를 위해 있으니까요... 얼마든지 사용해주세요....”
아리아는 뜨거운 숨결을 흘리며 다시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오빠님... 주인님... 잘 들어주세요... 아리아의 말을... 꼭이요....”
그리고는 유혹하듯 내 귓가에 요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로시 언니를, 부디 조심해주세요.”
그리고 다음 순간.
허를 찌르듯 속삭이는 비밀 이야기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