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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화 〉#31 빌런 × 히어로 × 로봇 = 트러블트러블(1) (146/271)



〈 146화 〉#31 빌런 × 히어로 × 로봇 = 트러블트러블(1)

고등학생 때, 지나치게 과학이 발전한 세계에서 지능을 갖춘 로봇에게 되려 인간이 습격받기 시작한다는, 흔하디 흔해 빠진 클리셰 덩어리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금 나이에 다시 본다면 흔하네~라던가  더 창의성 있는 설정은 없는 거야~ 같은 시건방진 생각을 하며 비판의 눈길과 함께 봐 줄 자신이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지식도 부족하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눈을 반짝이던 풋풋한 시기라(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이 반짝반짝 해 보이던 미소년 시절...) 그런 흔해 빠진 내용인데도 감탄하며 지켜봤더랬지.

로봇의 공세에 휩쓸려 나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사람보다 사람다운 로봇이 한 기(機).

로봇인 주제에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면서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마저 구하려 하는 정의의 로봇.

완전 멋져 로봇님, X간들이 미안해. 제발 나를 가져요, 엉엉.


막 그런 눈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도로시에게 우스갯소리로 너라면 진짜 인간보다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뭐? 실제로 그런 로봇이  앞에 있으면 징그러워서 당장 쳐부수고 싶어질걸? ‘불쾌한 골짜기’라는  정도는 들어봤을 거 아니야. 아니면 13호 넌 그 정도 상식적인 지식도 가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텅 빈 거야? 그딴 머리 달고 있는 게 도움이 되긴 해? 목도 고생스러울  같은데 그냥 머리는 따로 놓고 다니는 게 좋지 않아? 듀라한처럼.”


내 머리는 있으나 마나한 거 아니냐는 매도로 끝나버렸다.

정말이지 너무한 여자라니까.

불쾌한 골짜기 정도야 알고 있다고.

혹시 분야가 안 맞아서 접할 기회가 없는 독자님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도로시. 나는  지켜줄 거다. 항의하는 독자님까지 세치혀로 구워 삶을 것 같은 여자다마는....


어쨌든.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나도 로봇에 열광하고 눈을 반짝이던 시기는 있었지만, 실제로 인간 같은 로봇은 아무리 고도의 과학력을 가질 미래에도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문제가 있다면.

“목표 건재함을 확인. 이어서 대화력 고주포를 이용한 핀포인트 사격을 개시하겠습니다.”


“으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만! 살려줘 로봇님!!!!”

“부정. 본기는 로봇이므로, 인정에 호소할 뿐인 발언은 받아들이지 못함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고주포 스탠바이 완료. 3, 2, 1...... Fire.”

“스, 스쳤어! 스쳤다고!!!”

나는 지금 한 없이 로봇 같은 인간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일까.

* * *



사건의 시작이라고 할까,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까.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할 4번대 공략전에 대비한 사전공작에서 시작되었다.


“......왜 내가, 너 따위랑 같이 디저트를 먹어야하는데.”

“응? 싫어? 내가 사는 건데.”


“......”

불평하는 주제에 순순히 착석하는 스페이드.


우리는 지금 4번대 근처의 유명한 카페에 와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떤 싸움에도 이기리. 일단 기본적인 정보는 아리아나 애플을 통해서 수집한다고 해도, 실제 싸움터가  곳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건 역시 불안하다. 지금의 나처럼 툭치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허약한 상태로는 만에 하나 있을 불안요소라도 전부 배제하고 싶은 법이다.


“그런 것 치고 너무 무방비한  아냐? 실 대장님은 네 얼굴 다 알고 있잖아.”

“그래서 준비한 게 이거지.”


“.......”


커다란 쇼핑백에서 꺼낸 것은 곰모양 인형탈이다. 후후. 이것으로 얼굴을 가리면 들킬 염려 없이 이곳을 정탐할 수 있다. 잘하면 4번대 히어로들의 일하는 현장을 훔쳐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거 쓰고 다니는 놈이랑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아....”


“네 것도 준비했는데?  건 냥냥이 탈이야. 어때. 귀엽지?”


“.......”

스페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쓰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지만, 의외로 또 내 손에서 받아든 냥냥이 탈을 새침한 표정으로 쓰다듬는다.

앗, 저거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네.


평소에는 말괄량이 같은 행동거지를 보이는 주제에, 은근히 귀여운  좋아하는 여자다.


잠시 후 주문한 디저트가 나오고, 초코 오레오 프라푸치노를 행복하다는 듯 빨아 마시던 스페이드가 물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 같은  있어?”

“말 하기 부끄럽지만 없어.”


“없는 거냐.”

뭐, 계획이 없으니까 알아보려고 온 거지만.

“그래도 괜찮은 정보는 꽤 많이 건졌어. 4번대의 구성원이라던가... 요주의 인물은 그 대장을 제외하면  명 정도....”


“【안드로이드】 엔데와 【매드몬스터】...뭐시기 말이지.”


“응. 근데 뭐야, 그 별명은. 중2병 같은 센스가 돋보이는데.”


“...넘어 가. 두 사람  별명이 생길 정도로 별나거든. 엔데는 나랑 동기지만 안나 씨는 나보다 고참일 거야.”

도대체 뭐냐고, 그 별명은.


멋있잖아.

나도 그런 거 만들어주라. 【세균맨】 13호 같은 거.

그나저나 안드로이드라... 기계처럼 차가운 느낌의 여자라는 뜻이려나? 도도한 차도녀라니, 상상만으로도 울끈불끈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 근방에 유명한 맛집이랑 디저트 가게가 많아... 전부 들러보기 전까지는 계획은 못 짜겠는걸....”


“이 기회에 그냥 맛집 탐방을 하고 싶을 뿐인 거잖아.”

“싫어?”


“좋지만...!”

스페이드는 분한  뿌득거리면서도 접시 위의 케이크를 포크로 능숙하게 조각냈다.
4번대는 아직 우리 【어비스】가 자기네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를 테니, 솔직히 느긋하게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어비스】의 관할은 거의 7번대가 하고 있었고....



7번대를 함락한지도 근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오랜 시간을 들여 타락시킨 라헤는 지금 도로시의 손에 의해 한층  깊은 세뇌 공정에 들어갔고, 나머지 멤버들은 평소대로 7번대의 히어로 업무를 하는 한편 지속적인 세뇌 케어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보스에게 의문의 메시지가 날아온 지도, 이미 꽤 지나버렸다.

아직 그 진의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도로시나 애플이 알아봐 준 정보대로면 메시지의 발신처는 4번대 대장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 의도를 알지 못하겠지만.


 의미를  수가 없지만.

“......13호!”


“응?”

“...얼굴이 무서워, 너.”

스페이드가 책망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여자를 앞에 두고 그런 표정 하는 거 아냐. 불안하잖아.”


“...미안.”

순순히 사과했다.

아무래도 보스가 관련된 일에는 지나치게 과민반응해버린단 말이지. 평소의 내 이미지와 다르다. 좀  가볍고 유쾌하게 사는 게 나랑 잘 어울린다.

“좋아. 다 먹었으면 이제 슬슬 갈까.”

“어디 가려고?”


“이 근처에 명물 도넛 가게가 있다는데?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빨리 안 먹으면 10대가 자자손손 후회할 거래. 이건 꼭 가야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니, 오히려 인기가 없다는 거 아니야, 그거...?”

보스도 먹고 싶다며 경비로 사오라고 했으니, 7번대 인원들 것까지 포함해서 잔뜩 사가야겠다.

“그보다 너무 싸돌아다니는 것도 위험하잖아. 언제 어디서 순찰중인 히어로한테 들킬지 모르는걸. 그리고 네 얼굴은 이미 다 까발려진지 오래고.”

“아하하하. 걱정도 팔자야. 이 대낮에 디저트 가게에 있는 히어로가 있을 리가 없잖아. 농땡이 피우는 것도 아니고.”

걱정도 팔자라며 손사래까지 치며 하하하 웃는데,


“............................빌런? 어비스?”


별안간 경악한 듯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중얼거린 것은 쟁반을 손에 든, 익숙한 히어로 제복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알아봤다는 듯이 눈을 크게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그 얼굴은 자료를 통해 이미 본  있는 얼굴이다.

4번대의 요주의 인물. 【안드로이드】 엔데.


......왜 여기 있는 거냐.


“임무를 농땡이치고 디저트를 먹으러 왔더니... 이런 곳에서 빌런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 행운...? 아니, 이건 불행...? 대장한테 들키면 죽으려나...? 하지만 빌런을 놓칠 수는...?”

“히어로 주제에 진짜 농땡이였냐!”

놀거면 그냥 이쪽 신경 쓰지 말고 끝까지 놀아줬으면 싶었지만, 상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나 싶더니, 엔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고, 케이크며 음료가 담긴 쟁반을 허공에 던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쟁반을 향하는 순간, 엔데가 재빨리 허리춤에 손을 대는 게 보였다.


“13호!”


엔데는 허리춤의 총을 꺼내더니, 그대로 총구를 나를 향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농담이지? 여긴 사람들이 잔뜩 있는 가게 안인데?!


피슉-하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발포음.


깜짝 놀라 아무 것도 못하는 내게 날아오는 물체를,


“이익...!”

날카로운 눈을 한 스페이드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팔을 뻗어, 허공에서 그대로 낚아채듯 붙잡았다.


총탄을 손으로 잡았어?!


“마취총이야. 그보다 도망치자!”


스페이드는 마력으로 강화된 다리로, 그대로 옆의 유리로 된 벽을 와장창 깨부수고 나를 끌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 * *



“이럴 수가, 어째서 빌런이 여기에...!”


엔데는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스페이드를 쫓아 완전히 깨져버린 창문 사이를 뛰어넘어 거리로 들어섰다. 인파에 섞여 사라지려고 하는 두 사람의 뒤통수가 보였다.


 명은 본적 있는 히어로 였던  같은데, 어떻게 된 걸까. 배신일까? 사정을 들어보는 게 좋을까? 하지만 옆에 있는 게 빌런이라는 건 역시 배신이겠지? 그렇다면 숙청?


아아아아아~~~~ 하필이면 모두에게 비밀로 그토록 고대하던 디저트를 먹으러 온 이 순간에 빌런 녀석을 맞닥뜨리게 되다니, 운도 지지리도 없지~~~! ...그냥 모른 척 할 걸 그랬나....

‘아니, 생각은 그만 두죠. 히어로로서 빌런은 물리쳐야합니다. 디저트는 다음 기회에... 어차피 저는 기계. 철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쓸데 없는 생각은 고개를 저으며 털어버리고, 그녀는 그녀를 ‘기계’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을 입에 담았다.

“【흐르는 피는 철이요, 마음도 철이어라. 흔들림 없는 강철의 마음을, 적을 부수는 무쇠의 몸을 이곳에.】”

엔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다음 순간.


엔데의 몸은 폭발하듯――하늘로 날아올랐다.

“뭐어어어어어어어어?!”

도망치는 와중에도 슬쩍 뒤를 돌아보았던 13호가 경악하며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폭발하듯 날아오른 엔데의  뒤에 철로 된 날개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녀의 몸을 감싸듯, 머리에는 바이저 같은 헬멧이,  외에도 금속으로 된 갑주와 같은 것이 그녀의 팔목이며 정강이, 가슴 위며 허리 같은 몸의 일부분을 덮었다.

얇은 금속핀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날개는, 아무리 봐도 새의 날개와는 전혀 다른 구조의 날개였다.

육안으로 확인할  없을 정도의 초고진동을 이용한, 말 그대로 하이테크 기술을 이용한 부유기술에 13호는 혀를 내둘렀다. 그 기술이라던가 원리는 다  수 없더라도, 꼴에 도로시의 발명품을 옆에서 봐온 안목이 있다. 저렇게 자유자재, 초스피드로 공중을 뜬다는 것은 얼만큼의 기술이 들어간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거기다 가장 난감한 것이.


“적성 인원을 포착했습니다. 인파 사이에 있어도 제 스펙이라면 핀포인트로 노릴 수 있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인간미가 사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왼팔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거대한 총구가 달린 레이저포 같은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기계처럼.

마치 로봇처럼.

“인류의 적, 【어비스】 소속 빌런의 섬멸 및 그 외 1명의 생포, 시작하겠습니다.”

기계적인 선언과 함께, 공중에 떠오른 엔데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기를 가르고 수평으로 날아들었다.

* * *

그렇게 해서 앞머리로 돌아온다.

“저게 뭐야! 왜 갑자기 날개가 튀어나와?! 저 이상한 헬멧은 뭐야?! 팔은 왜 포구로 변하는데?! 완전 멋있잖아!”


“지금 죽을뻔 해놓고 감탄할 새가 있어?! 내가 안 끌어당겼으면 너 배때지가 뚫려서 죽었따고?!”

나와 스페이드는 서로를 향해 꽥꽥 고함치며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지나가던 통행인들이 저건 뭐야, 라는 눈으로 보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왜 【안드로이드】니 뭐니 하는 별명이 붙었나 했더니, 저런 거였어...? 로봇이라니, 완전 멋져...!”


“도대체 왜 저런 거에 감동하는 건데... 온다!”


스페이드가 내 허리를 붙잡고, 단숨에 가속했다.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고 잔상이 남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도약하고 나니, 쩜 몇 초의 차이로 우리가 원래 있던 땅에 여섯 개나 되는 작은 미사일이 날아와 그대로 착탄. 퍼버벙- 폭발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지적할 곳 없는 정확한 조준에 혀를 내둘렀다.


시선을 돌리니 허공에 뜬 엔데의 정강이 장갑 부근이 열려 있었으며, 조금  미사일을 사출한 것으로 보이는 포구가 언뜻 보였다. 금방 장갑이 닫혀버려 자세히  수는 없었지만.

“몸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거야? 반할  같아...!”


“아까부터 하나하나 반응이 이상해....”

건물 벽을 수직으로 두다다다 내달려, 단숨에 높은 건물의 옥상 위에 도착한 스페이드는, 나를 내려놓으며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시가지라서 그나마 무기를 고르고 있는 걸 거야. 내가 알기로 【안드로이드】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고화력 무기가 강점이라고 들었어. ...저런 거,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뭐, 어떻게든 해봐야지 뭐야. 솔직히 쫄리긴 하는데.”


저게 바로 4번대의 엔데. 【방패자리】의 은혜를 입어 주문과 함께 몸도 마음도 기계의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안드로이드】란 별명의 히어로.

그리고 4번대를 공략하기에 앞서, 요주의의 인물이자... 가장 먼저 함락하기로 한 히어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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