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27 최강의 마녀는 악에게 굴복했습니다(2)
“흣, 으으으읏~~~~!”
라헤는 전신에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찌걱... 하는, 그녀의 비부를 적신 점액을 스치며 내는 습기 찬 소리와 함께 침입해 들어오는 페니스를, 그녀의 질벽이 환희하듯 받아들이며 옴죽옴죽 감싸 안는 게 느껴졌다. 질과의 접합부에서 애액이 방울지며 흘러떨어져내렸다.
몸이 너무 민감하다. 아무리 그래도 삽입한 것 뿐인데도 밀려오는 이 쾌감이란....
그러나 13호는 페니스의 뿌리까지 라헤에게 삽입하고는, 그 이상 움직일 생각은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어....”
움직이지, 않는 거야...?
필사적으로 결의한 각오도 흐지부지되어서, 힘겨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능글능글한 13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13호가 거드름을 피우듯 라헤의 골반 부근을 손으로 쓰다듬자, 라헤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어때? 네가 말하는 추잡한 빌런의 물건이지만, 나쁘지 않지?”
“......당신이 추잡한 건 인정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빌런 같은 건 상관 없을 텐데요... 약 같은 천한 짓을....”
“그건 그렇지. 빌런이나 일반인이나 거시기는 똑같지.”
13호는 유혹하듯 라헤의 귓가에 속삭였다.
“빌런이나 히어로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무슨 소리를....”
“아니, 지금 네 모습을 보자면 완전히 ‘여자로서의 기쁨’에 취한 것 같아서... 어때? 굳이 ‘정의’니 ‘악’이니 선 긋고 살기보다 그냥 순순하게 욕망에 젖어 살아가는 건? 평생 행복하게 해줄 텐데 말이야.”
골반을 만지던 13호의 손이 미끄러져, 그녀의 아랫배... 자궁이 있을 곳의 위를 슬슬 간지럽히고 문질렀다. 그 손길에 맞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마치 창세기에 나온 이브를 유혹하는 뱀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라헤는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몸 속에 미친 듯이 날뛰려는 쾌감이며 약기운을 어떻게든 의식적으로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세뇌의 여파로 각인된 성감은 지금 그녀의 흔들리는 의식으로 가라앉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후우... 흐.... 웃기는 소리를... 단순히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게... 짐승이랑 다를 게 뭔가요... 그딴 헛소리를 들어줄 거라 생각했던 건가요...?”
아무래도 13호의 목적은 그것이겠지.
자신을 ‘정의’라는 발판에서 끌어내리는 것.
‘정의’의 편에 있지 않은 자신은 대장격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히어로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 내기, 13호의 승리조건은 단순히 ‘라헤의 굴복을 받아내는 것’만이 아닌 것이다.
“빌런도 히어로도 어차피 제대로 된 취급은 받을 수 없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욕망대로만 살아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를 지키고 보폭을 맞추는 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가... 아쉽네. 너라면 훌륭한 암캐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애초에 여성을 깔보는 당신의 인식에 무리가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즐기는 건 맞잖아?”
“흐윽...?!”
13호가 여전히 페니스를 깊숙이 삽입한 채 허리를 비틀자, 라헤는 신음하며 고개를 숙였다.
“뭐, 충분히 쉬었으면 슬슬 움직일 테니까? 쉽게 가지 않도록 조절은 해줄...게!”
13호는 페니스를 크게 빼냈다가, 다시 깊숙이 쑤셔 넣었다. “흐윽!”하는 소리와 함께 라헤는 머리가 새하얘져버렸다.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찌걱.... 찌걱... 처덕....
13호는 천천히, 그러다 점점 더 빨리 움직였다.
하앙... 하... 하읏.... 앙......!
라헤는 가녀린 어깨를 뒤틀며 필사적으로 쾌감에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움직임에 소파 시트에 잔뜩 발기한 유두가 쓸리자, 이중으로 겹쳐오는 쾌감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쩌걱... 찌걱, 쯔억, 쩍, 쩍....
“아, 아, 하읏, 응......흐응~~~~~!”
라헤는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소파 시트를 깨물었다. 지나친 쾌감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안 돼... 버텨...!’
하지만 아직, 아직이다... 버텨야만한다. 조금이라도 더 버텨야한다. 부하들을 위해서, 대장의 긍지로서, 이 부분은 포기할 수 없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철의 의지로... 조금이라도, 더, 버텨야......!
“라헤, 그거 알아? 너 지금 되게 음란한 얼굴하고 있는데.”
“아응, 흣, 그, 그럴, 리... 응아....앗......!”
“왜 그래. 이 편이 여자답고 귀여워서 좋은 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귀여......워?
필사적으로 쾌감을 참는 와중에도, 어째선지 13호의 그 말은 라헤에게 똑똑히 들려온 기분이 들었다.
“응. 맞아. 귀여워, 라헤.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라헤.”
또. 또다. 또... 말했다.
‘얼음마녀’라고 불리는, 냉철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그녀에게는 어울리지도 않고, 들을 일도 없는 단어다.
그런데 이상하게... 원수와도 마찬가지인 13호에게 들었는데도, 13호의 말인데도, 어째선지... 기분이 좋아졌다.
“?!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리고 마치 그게 열쇠가 된 듯, 갑자기 그녀의 안에서 모든 저항이 사라졌다. 저항의 의지가 사라졌다. 필사적으로 억누르려던 쾌감이 몸 안에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가드가 내려갔다. 무방비하게 쾌락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치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쾌락이라는 파도가 그녀의 안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으응, 다, 당신, 무, 햐, 햐읏, 앙, 응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헤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퍼득 떨며 가버렸다.
당황하는 라헤를 보며, 13호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오랜 시간, 티타임을 이용한 로아의 세뇌의 결과다.
‘얼음마녀’의 껍데기가 씌워진 라헤의 안에는 생각 이상으로 여린 부분이 있었다.
방에 인형을 쌓아놓거나, ‘마녀’라고 불리면 홀로 의기소침하거나... 세뇌로 인해 방벽이 약해지면서 그런 부분들이 드러나고나자, 13호도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약점이라고 한다면, 이용해주는 게 악당의 도리. 이 약점에 관한 암시를 지속적으로 주입해서, ‘귀엽다’던가 ‘사랑스럽다’던가... 몇 가지 관련된 키워드를 들으면 가드가 풀리게 해뒀다.
지나친 절정의 여운에 몸을 움찔움찔 떠는 라헤의 안에, 13호는 여전히 페니스를 깊숙이 박아넣은 채 라헤의 팔의 구속을 풀었다. 라헤가 저항하지 않는 건 확인했으니 이제 이건 필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능력을 쓸 수 있다면 이런 거 아무 의미도 없을 테고.
“벌써 가버리셨나, 대장 나리.”
“하아, 하아... 읏... 어, 어째서... 당신...... 제게 무슨 짓을....”
“응? 귀여운 여자한테 귀엽다고 해준 것 뿐인데, 왜?”
“안 돼... 아니야.......!”
라헤는 해방된 두 팔로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칠칠치 못하게 풀어져 있었다.
......얼마나 칭찬에 대한 내성이 없는 거야.... 이 경우엔 ‘귀여움’에 대한 내성인가....
아무튼 절정의 여운으로 붉어진 얼굴로 헤실거리고 있으니, 평소의 모습과 맞물려 터무니 없는 음란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앗....”
13호는 페니스를 뽑고, 라헤의 몸을 뒤집어 서로 마주보게 했다. 애액이 줄줄 흐르는 보지에 다시 페니스를 찔러넣자, 라헤가 눈을 찡그리며 달콤한 교성을 흘렸다. 그러나 풀어진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황급히 양 팔로 얼굴을 가렸다.
보여주기 싫어하면 더 보여주고 싶은 법이다. 13호는 라헤의 손목을 붙잡고 라헤의 머리 양옆에 움직이지 못하게 눌렀다.
“이것 봐. 풀어진 얼굴이 더 귀엽잖아, 라헤.”
“그, 그만하세요...!”
13호는 페니스를 찔러넣은 채로 라헤의 입술을 덮쳤다.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굳게 닫힌 입술을 혀로 비집어 열고, 그녀의 잇몸을 훑었다. 억지로 혀를 얽고, 타액을 흘려넣었다.
“......!”
지금 라헤는 입 또한 민감해져 있다. 미약으로 인해 통상의 몇 배는 넘는 감도에, 로아에게 ‘입이 보지처럼 느껴지는’ 암시까지 걸려있는 상태다.
자신의 가장 민감한 곳을 유린당하는 감각에, 라헤는 머리가 하얗게 튀어오르며 비부에서 애액이 잔뜩 흘러나왔다.
“흐읏...?!”
13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젖은 음핵을 집어올렸다. 라헤가 무심코 허리를 들었다.
안 돼... 안 된다... 몸이고 뇌고 노골노골 녹아버릴 것만 같다... 13호의 손을, 13호의 맛을 잊을 수가 없게 된다....
“맛있어, 라헤. 과연 대장이라는 걸까, 부하들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걸. 극상의 디너라고 할까. 왜 부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 5성 레스토랑에서 한조각에 몇백은 되는 고기를 시키는지 이해가 간다고 할까.”
“하앗, 하...! 여자를... 음식에 비유하지 마세요... 쓰레기...!”
“남자의 고질적인 병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줘, 라헤. 이렇게나 귀여운 너를 칭찬할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난 거니까.”
“또......!”
분한 눈으로 13호를 노려보려던 라헤였지만, 그녀의 의지를 벗어난 입은 멋대로 입꼬리를 올리며 헤실거리려 했다. 입술을 꽉 악물어 어떻게든 표정근을 제어하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다른 쪽의 방비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쯔적...하는 소리와 함께, 13호가 다시금 피스톤 운동을 재개했다.
“귀여워, 귀엽네, 라헤.”
“아, 안 돼... 그만.........! 히이이이익~~~~!”
그녀의 보잘 것 없는 저항은 13호의 불기둥이 질 안 깊숙한 곳에 파고드는 순간, 완전히 산산조각 깨어져버렸다.
조금 전에 가버린 몸인데도, 라헤는 등을 새우처럼 휘며 또 다시 가버렸다.
“또 갔지, 라헤?”
“아, 아니야... 하지마.. 안 돼....”
“정말이지 무척이나 귀여워, 라헤.”
“그만~~~~!”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눈물과 함께 부정하려는 라헤의 목덜미를, 13호가 잘근 깨물었다.
이어서 13호는 쉴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피스톤질을 계속했다.
“아, 아, 앗, 하읏, 앗, 응앗......!”
라헤는 딱, 딱, 이를 맞물리며 필사적으로 참으려 했지만, 이미 완벽하게 뚫려버린 가드는 수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늠름하던 얼굴은 지금은 붉게 물든 채 칠칠맞게 풀어지고, 입가에서는 침을 흘리는 모습에서 대장의 위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하으... 그만... 히잇... 기분이잇... 너무... 응......! 조, 좋아...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 안 돼......! 하아아앙......!”
13호는 허리를 움직이는 한 편, 침이 흘러내린 그녀의 뺨을, 귓불을, 목덜미를, 어깨를, 쇄골을, 가슴이며 그 정점에 선 유방을 핥거나 깨물며 그녀의 온 몸을 유린해갔다. 13호의 색으로, 13호의 것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라헤는 느꼈다.
라헤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새하얘진 머리로, 오로지 쾌락을 탐하는 것 밖에는 머리에 남지 않았다. 헛소리처럼 “안 돼... 안 돼...”하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무엇이 안 된다고 하는 건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아, 앙, 앗, 흐아아앙....! 햐읏...!
라헤의 달콤한 허덕임이 높이 울려퍼졌다. 13호는 그 목소리를 즐기며, 슬슬 마지막 마무리에 들어갔다. 이제 자신의 물건도 슬슬 한계였다. 라헤의 질은 무척이나 탄탄하게 조여와서, 솔직히 여기까지 버틴 것도 오로지 오기 덕분이었다.
“자, 그럼 귀여운 라헤... 이제 슬슬 끝내도록 할게. 내가 사정하는 것과 동시에 가는 거다... 알았지...?”
오로지 쾌감에 몸부림 치는 라헤는 13호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끄덕 끄덕였다.
그 풀어진 모습이 한층 13호의 욕망을 부추겨, 그의 분신에 한층 더 단단함을 더해주었다. 그에 반응하듯 라헤의 교성이 높아졌다.
‘찌걱, 처덕...’ 하던 소리가, 13호의 허리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척, 척’ 하는 서로의 허벅지가 부딪치는 소리에 묻혀갔다.
“아, 앙... 아... 안 돼... 간다, 간다...! 아아아아아아아...! 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13호의 삽입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라헤는 사정까지 참지 못하고 그대로 허리를 크게 들어 올리며 절정을 맞이했다. 꾸욱 조여오는 질벽의 감각에, 13호 또한 참지 못하고 울컥울컥울컥울컥... 라헤의 안 깊숙한 곳에 사정했다.
“허억... 후.......”
13호는 라헤의 꿀단지에서 페니스를 뽑아, 자위하듯 뿌리를 훑고 흔들며 남아있는 정액을 그 얼굴에 흩뿌렸다.
늠름하고 아름답던 대장의 얼굴이, 희고 탁한 액에 더럽혀져 간다....
“아, 아아... 하아........”
소파 위에 드러누운 채, 흰 피부의 풍만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빛을 잃은 듯 멍한 눈을 한 얼굴은 백탁액으로 더럽혀지고, 보지에선 꿀럭- 꿀럭-하고 애액이며 정액이 섞인 흰 액체가 스며나오는 라헤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13호는 근처에 두었던 전용 단말로, 그런 라헤의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 찰칵, 찍어두었다.
“수고했다, 라헤.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어. 그렇지만 꽤나 페널티가 쌓여버렸네. 이것으로 네 부하들도 꽤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겠어.”
라헤는 숨을 들이내쉬며, 멍한 눈으로 13호의 말을 잠차고 듣고 있었다.
“페널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해봐야겠는걸. 페널티 숫자만큼 전기고문으로 절정시켜주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그 숫자만큼 로터를 넣어줄까? 자위로 가게하는 것도 괜찮고... 어떻게 하면 네가 괴로우려나.”
“부... 하들은....”
“응?”
멍한 눈이던 라헤의 눈에, 미미하지만 의지의 빛이 돌아왔다. 부하, 라는 단어에 반응한 걸까.
“부하들은... 손대지 마세요... 제가... 제가 그만큼...... 할 게요... 부탁... 드립니다....”
13호는 웃으며, 라헤의 턱을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느껴버렸는지, 라헤는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착각하지마, 라헤. 페널티는 단순한 여흥이야. 그런 게 없더라도 너는 앞으로 일주일간 내 성노리개가 되어줘야 하니까.”
“그, 런......! 당신... 이 쓰레기......!”
“하지만 네 태도를 봐서, 부하들은 봐줄 수도 있어.”
분노로 욕지기를 하려던 라헤였지만, 이어진 13호의 말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순순히 내게 봉사하고, 그리고 만족시켜봐. 그러면 굳이 네 부하들까지 손댈 필요는 없겠지. 알겠어, 대장님?”
“.......알겠...어요....”
라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13호는 한동안 그런 라헤의 하복부――자궁의 위쪽을 의식적으로 문지르며 자극하더니, 단말기와 함께 근처에 두었던 안대를 라헤의 눈에 씌어주었다. 그리고는 두 팔을 조금 전과 같이 가죽끈으로 묶어 구속하고, 스페이드와 클럽을 불러 라헤를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이대로 라헤를 데려가서 고문대 위에 올리고, 두 사람을 비롯한 라헤의 부하들로 그녀를 고문하게 될 것이다. 부하들의 손에 의해 폭력과도 같은 쾌락이 계속해서 주입될 것이다. 물론 밤을 샐 정도로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한 부대의 수장이다. 이 일주일 만에 그녀의 의지를 꺾으려면 이 정도는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 뒤로도 그녀의 의지를 흩어버리려면 이런저런 각도에서 약점을 찌르고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대강 계획은 있긴 하지만, 오늘 돌아가면 좀 더 구체적이게 구상해야만 하겠지.
“......그런데 진짜, 다 끝나가네.”
나는 한숨과 함께 그렇게 중얼거렸다.
맨 처음 보스가 맡겼던 7번대 전원의 함락. 이미 그 임무는 끝이 보이고 있었다. 라헤의 상태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그녀의 능력은 성가신데다 기믹 투성이니까 어떤 변수가 생겨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대로 라헤의 세뇌도 끝나버린다면... 그 뒤는 어떻게하면 좋을까.
‘7번대의 히어로들을 데리고 주지육림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마안~.’
그런 분홍빛 상상을 하며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을 때였다.
“13호님.”
“흐억?!”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 어디서 들린 거지? 아니, 애초에 지금 이 방에는 나 밖에 없을 텐데...?
“여기입니다.”
“흐어어억?!”
다음 상황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내 앞 대각선 위치에 있던 커다란 캐비넷이 천천히 열리며, 그 안에서 애플이 내려선 것이다.
저, 저 캐비넷은 나니아와 연결되어 있었던 걸까...?
“왜, 왜 네가 거기서 나와?!”
“이 작전 중에 13호님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쓸쓸해져서... 몰래 숨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애플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옷가지도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할까 셔츠 앞은 벌어져 있었고, 팬티도 허벅지 중간 쯤에 걸려 있었다.
내가 라헤를 범하는 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캐비넷 안에서 자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랄까, 상상하고보니 상당히 호러라고 할까, 오싹하다고 할까....
“13호님.”
“으, 응.”
전날 밤 애플의 말이 플래시백 되어서, 나는 황급히 자세를 잡았다. ‘자신보다 다른 여자를 더 좋아한다면 죽여버릴거예요♥’ 같은 말을 했던 기분이 든다.
혹시라도 칼이 날아오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경계하는데,
“죽을 생각이셨나요?”
뜬금 없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애플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굳이 라헤 대장의 앞에 모습을 보였던 것도, 허술할지 모르는 세뇌에 몸을 맡겼던 것도... 제게는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애초에 13호님은 분신 능력도 있었을 텐데....”
“아냐아냐. 난 정말 최선을――”
“거짓말, 하지 말아주세요.”
애플의 박력 있는 눈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제 앞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요, 13호님. 이번 작전에서 13호님은, ‘죽는 것도 어쩔 수 없지’라는 태도였어요. 라헤 대장의 일격을 허용한 것도 그 때문 아니었나요? 아리아의 세뇌가 통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굳이 라헤 대장이 당신을 공격할 틈을 주었던 거 아니었나요? 라헤 대장이 일격으로 13호님을 죽이려 했다면――”
“그대로 죽을 생각...... 아니었나요?”
나는 턱을 긁적였다. 아니, 뭐... 솔직히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긴 했었지만.
“.......”
솔직히 말하자면,
“......너희들의 인생을 망친 책임이라고 할까.”
내가 아니었다면 당당하게 살아갔을 히어로들이, 빌런인 내 손에 떨어져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물론 빌런이고, 히어로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진 않고, 느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만약 라헤의 손에 내가 쓰러지고, 모두가 세뇌에서 해방되서, 멀쩡하게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라헤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랬겠지.
라헤마저 내게 세뇌되고 만다면, 이제 7번대의 히어로들이 【어비스】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지니까.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시험해보고 싶었다.
살면 좋고, 죽어도 좋다. 보스는... 참모가 어떻게든 지켜주겠지. 믿을만한 남자니까.
그저 그 뿐인 이야기였다.
“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그저 그 뿐인 이야기인데.
“죽지 말아 달라고, 말했는데......!”
애플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또르륵 또르륵 떨어져내리는 것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아릿해졌다....
그 뒤로 애플이 뭔가를 더 말했던 것 같았지만, 오열에 섞여서 분명하게 들리진 않았다. 그래도 대강 내용은 알 것 같았기에, “응, 응.”하면서 품에 안고 토닥여주었다. 그녀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결국 내가 ‘절대로 죽지 않을게. 죽는다면 요단강을 자유형으로 헤엄쳐서라도 되돌아올게’라고 맹세하고 나서야, 애플은 눈물을 멈춰주었다.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겨버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