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26 빌런은 아름답고도 최강인 마녀를 사냥하고자 한다(5)
“잠깐, 라헤. 멈춰 봐.”
갑작스런 13호의 제지에, 라헤가 발걸음을 멈췄다.
순간 철렁했다. 속셈을 들켰나...?
“혹시 모르니까. 그 검, 바닥에 내려놓을래?”
검집째로 허리에서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으로 13호는 경계심을 완전히 푼 모양이었다.
“좋았어. 그렇지, 이왕이면 바닥을 기어서 오는 건 어떨까? 부하들을 위해 그 정도 굴욕은 참을 수 있겠지? 노예에 어울리게.”
능글능글 웃으며 말하는 13호의 면상을 냅다 갈겨주고 싶었다.
그래도 참자.
라헤는 순순히 바닥에 네 발로 엎드려, 13호를 양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좋아... 좋은 광경이네.”
13호가 참지 못하고 특정 부위를 불뚝 세우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제 곧, 지척에 다다라간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영 싱거운걸... 대장이라고 하니, 뭔가 좀 더 스펙타클한 뭔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싸우기도 전에 이기는 게 지성인들의 싸움이라고 하니 상관은 없지만. 흐헷. 정말이지 너무 유능한 것도 문제――”
보였다.
빈틈.
“......응?”
척, 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13호의 팔을 붙잡았다. 정확히는 팔목에 있는 시계...처럼 보이는 통신용 단말기를.
“【얼어붙어라】!”
“뭐, 뭐야?!”
13호가 당황하며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라헤는 그런 13호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단숨에 옆에 서있던 아리아를 덮쳐, 목 뒤를 수도로 쳤다.
“아.......”
아리아의 부러질 듯 가는 목이 순간적인 충격에 꺾이고, 그대로 기절했다.
“이런... 세뇌가 안 걸렸나?! 참모...... 아니, 잠깐만, 통신기가...?!”
13호는 손목시계형 통신 단말을 확인했지만, 서리와 얼음으로 뒤덮인 단말기는 조금도 작동하지 않았다.
“클럽의 보고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급할 때 그 단말기로 통신하죠? 통신할 수단이 없으면 당신의 위기를 알릴 수도 없고... 참모의 능력으로 도망칠 수도 없겠죠.”
라헤는 똑바로 선 채, 13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오른손에 차가운 한기가 맺히나 싶더니,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이 만들어졌다.
“기고만장하던 당신의 모습을 보는 건 상당히 유쾌했습니다. 어땠나요, 대장급 히어로를 무릎 꿇리고, 앞에서 기게 만든 경험은?”
“......최고였지.”
“잘됐네요. 요단강을 건너기 전 마지막 선물이니까요.”
“라, 라헤.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까지는 그냥 농담... 여흥 같은 거였거든?”
“농담?”
라헤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아, 실수한 것 같다고, 13호는 넘쳐흐르는 살기를 피부로 느끼며 생각했다.
“아, 아냐! 농담도 장난도 아니고! 진지하게... 그렇지, 부하들을 제게 주십시오! 같은....”
“차라리 농담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꺄아아아아악?! 잠깐만! 칼로 발등을 쑤시면......! 찌, 찔릴 뻔했잖아!”
“그렇네요. 그렇죠. 곱게 죽이진 않겠다고 했엇죠.”
라헤는 13호의 복부 한복판을 발로 가볍게 찼다.
라헤에게는 가볍게, 였지만 마력이 실린 발차기는 13호에겐 덤프트럭에 치인 것과도 같은 충격을 전해줬다.
“커헉... 쿨럭...!”
“13호. 당신이 한 짓에 대한 벌은 받아야겠죠...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자비로운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최대한, 최대한 고통을 줘서... 자근자근, 사지를 찢어 흩뿌리고...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 피의 제사를 드리도록 하죠... 어떤가요.”
13호는 덜덜덜덜 떨었다. 지금 그에게 정말 공포가 되는 것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흩뿌리는 라헤가 ‘웃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저것이 ‘얼음마녀.’
“어, ‘얼음마녀의 미소를 보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나... 여기가 내 끝인 모양이군... 제길....”
“......그런 소문이 도는 건가요.”
“그 외에도 네가 관련된 얘기는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단신으로 빌런 조직을 몇 개나 괴멸시키는 괴물 같은 강함,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인 것 같지 않게 아름다운 모습......!”
“어머나... 칭찬인가요.”
“분명 저 화장을 벗겨내면 무시무시한 아수라 백작 같은 민얼굴이 있을 거라며 다들 덜덜 떨었다지...!”
“......저, 화장은 하지만 정말 기본적인 것만 하거든요?”
“그렇다면 그렇게 예쁠리 없잖아!”
“에, 에헤헤헤헤....”
라헤는 칭찬에 약하다. 버러지 같은 빌런 13호의 말이었지만, 그래도 라헤의 얼굴을 풀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잠깐 옅어졌던 살기도, 금세 팽팽하게 다시 돌아왔다.
“크헉?!”
비틀비틀 일어서려는 13호의 턱을, 라헤는 손에 든 얼음검의 손잡이로 때렸다.
뇌를 뒤흔드는 충격에 13호의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마치 라헤에게 굴복해, 그녀의 앞에 무릎 꿇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13호의 목에, 라헤가 얼음검의 날을 가져다댔다.
“13호. 그래도 함께 싸웠던 정이 있으니... 마지막 말 정도는 들어드리죠.”
“......괴롭히다 죽인다지 않았냐?”
“그건 히어로로서 조금 그러니까요.”
마지막의 마지막에, 자비를 베풀어주기로 했다. 히어로는 증오나 원망으로 적을 섬멸해선 안 된다.
감정이 들어가면... 그건 정의구현이 아니라, 단순한 살인이 되니까.
“아니면 당신, 그걸 노린 건가요.”
“......어떨까....”
13호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13호라면 라헤의 능력 매커니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다. 자신의 ‘정의’를 흔들기 위해 일부러 도발했다고 한다면....
‘아니, 설마 거기까지 생각했을리는 없어.’
라헤는 고개를 저어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유언이 없으면 이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깐만! 유언을 생각할 시간 정도는 줘야지!”
“생각하지 않은 당신 잘못이죠.”
“부조리! 부조리다! 언제 죽을줄 알고 유언을 준비해둬!?”
“하아,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이 죽고 나면 제가 친히 유언을 작성해드릴 테니 걱정마세요.”
“그거 유언 사기잖아?!”
상쾌하게 웃으면서 할 얘기가 아냐―!
“그, 그렇지. 잠깐 멈춰봐! 너 어디서부터 세뇌가 안 된 거야?!”
“처음부터요.”
“아니...... 하지만 네가 세뇌가 안 먹히는 건 상대가 빌런이어서잖아? 매일 티타임을 가진 거 보면 애플의 세뇌도 먹힌 것 같고... 그래서 같은 히어로인 부하의 세뇌라면 먹힐 줄 알았는데...”
후우, 하고 라헤는 한숨을 내쉬었다. 못난 학생을 보는 눈으로 13호를 내려다본다.
“부하. 부하죠. 하지만 적의 수중에 떨어진... 스파이를 부하라고 부르진 않아요.”
“들켰었나....”
“다 들켰습니다. 대장을 얕보지 마세요. ...의식적으로 제 안에서 저 사람은 빌런, 저 사람은 아군... 그렇게 지정하면, 제 능력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스페이드나 아리아나, 같은 동료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세뇌는 먹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던 애플의 세뇌가 먹히지 않게 되었던 것도,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 챈 라헤가 의식적으로 애플을 ‘적’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끝났나요? 그럼, 이대로 목을――”
“잠깐잠깐, 마지막 하나! 하나만!”
“정말이지 귀찮게... 말해봐요.”
“그래. 그러면....”
13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라헤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혹시, 기분이 이상하거나 하진 않아?”
“......?”
라헤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이제 13호를 죽일 생각으로 통쾌함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데.
13호는 말을 이었다.
“클럽을 위해 옷을 벗어줬지?”
“......그야, 그대로 두면 불쌍하잖아요. 반라 상태로....”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거기에――더워서, 라는 이유는 없었을까?”
더워서...?
히어로협회의 전투복은 통기성이 뛰어나다. 겨울용도 있지만, 지금 입고 온 것은 사계절용... 아무리 움직여도 더위를 느낄일은 없다. 하물며 얼음을 쓰는 라헤에게있어서....
‘아니, 그치만... 묘하게 더위를 느끼긴... 했죠. 지금도 그렇고....’
지금도 살짝, 덥다.
상의를 벗고, 브래지어 하나만 차고 있는데도... 묘하게 덥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스스로도 숨이 찬 듯 헐떡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르륵,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알지 못했는데, 등도 축축하게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지칠 정도로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그녀는 7번대의 대장이다. 3시간을 쉬지 않고 전투해도, 상대가 빌런이라면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네가 전 층에서 몸에 발랐던 것, 입에 머금었던 것... 전부 미약이야. 독이 아니어선지, 아니면 네 손으로 직접 발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있나 보네.”
“아니, 미약이라니... 그런 느낌은, 전혀...?”
“그야 그렇지. ‘성적인 감각을 차단하도록’ 세뇌를 걸었으니까.”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헤의 눈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의 빛으로 물들었다.
“네가 적으로 의식하면 세뇌가 먹히지 않는다... 즉, ‘적으로 의식하지 않은 상대’라면 너를 세뇌할 수 있다는 거지?”
안 돼.
이 이상 말하게 둘 수는 없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느낀 라헤는, 당장에라도 13호의 목을 치기 위해 얼음검을 들어올렸다.
‘이제 이대로 내려치면――’
“멈춰!”
라헤의 움직임이 멈췄다.
13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라헤의 등 뒤...... 아마도, 지금 막 기절에서 깨어난 아리아겠지.
오래 잠들어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벌써...?
“어, 어째서?! 어째서 몸이 움직이질...?”
“이야, 다행이야. 세뇌는 제대로 먹힌 모양인 걸.”
13호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천천히 일어나, 라헤의 눈을 마주보았다.
여자치고 큰 키를 가진 라헤라고 해도 13호가 키는 좀 더 크다. 자연스럽게 13호가 라헤의 눈을 내려보는 형태가 되었다.
“세뇌라니... 그럴 리가... 당신, 에게는....”
“내 세뇌는 먹히지 않겠지만, 쟤는 먹히는 모양인걸.”
“말도 안 돼요! 아리아는 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 했던 세뇌도, 먹히지 않았잖아요! 만약 세뇌가 먹혔다면 이 방에 들어온 시점에서 당신에게 굴복했을 텐데....”
“그래, 그렇지. ......저기 말야, 네가 출발할 때 기지에 있던 아리아가 여기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무슨, 소리를...?”
“도와주지.”
13호는 라헤의 손에서 얼음검을 빼앗고, 팔을 내려주고, 손수 턱을 붙잡고 고개를 돌려주었다.
라헤의 시야에 아리아가 들어왔다. 아리아가 어쨌다는 걸까. 평소대로 한복 차림에, 멍한 얼굴의, 아리아.......
‘어......?’
라헤의 머리가 한순간 멍해졌다.
‘아리아가...... 이런 얼굴이었나?’
아니, 얼굴만이 아니라, 체격도... 생각해보면, 목소리도, 전혀 달랐다.
“빌런도 히어로도 안 된다면 말야. 이렇게 생각한 거지. 중립인 인물을 쓰자고.”
아, 그렇다.
이 얼굴...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억났다.
아니, 도대체 왜 착각했던 걸까. 왜 몰랐던 걸까. 왜......아리아라고 생각했던 걸까. ‘전혀 다른 사람인데’.
카지노에 갔던 스페이드에게 부착 시킨 카메라, 그 영상에 나왔던 여성.
“13호님, 저, 잘했나요...?”
“그래그래, 잘했어. 칭찬해주마.”
“히이잇...♥ 헤헤....”
13호에게 복종하고, 행복한 듯 복종하는 그 여성은,
“정말 잘해줬다――로아.”
카지노의 주인. 빌런도 히어로도 아닌 중립에 선 인물. 정보상... 로아였다.
* * *
“말도 안 돼! 어째서, 어째서 못 알아봤지...? 아니, 언제부터......?”
라헤의 머릿속은 패닉으로 휘말려 있었다. 맙소사. 말도 안 된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 여성을, 로아를 아리아라고 착각했던 걸까.
애초에 언제부터 착각했던 걸까...?
“말했잖아. 세뇌에 걸려서라고.”
“세뇌, 라니....”
“스페이드에게 카메라를 부착시켰지?”
라헤의 눈이 커졌다.
알아차렸었나......!
“그걸 바꿔치기 한 거야. 다행히 로아 이 녀석이 꽤 다재다능해서 말야. 그 자리에서 영상 편집을 바로 해주더라고. 그래서 세뇌전파가 담긴, 새로운 영상으로 바뀐 거야... 전부 로아의 손으로. 세뇌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꽤 부자연스러운 영상이었는데 말이야.”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제야 깨달았다. 확실히 영상이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을. 스페이드와 로아, 두 사람이 13호에게 능욕 당하는 게 절반 이상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보여주기 위해....
“‘이 영상을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세뇌되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로아를 보면 아리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몇 가지 암시가 더 있었지만, 대충 이 정도였어.”
“그럼..... 처음부터....”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로아는 7번대 기지에서 생활하고 있었어. 체크도 코코도 세뇌해둬서 못 알아채게 했지만.”
그리고 줄곧, 티타임 시간을 이용해 라헤를 세뇌했다.
항상 세뇌의 끝 마무리에는, ‘세뇌에 걸린 척을 한다’라는 암시를 추가하고, 이 부분만 기억하지 못하도록 했다.
“......말도... 아니... 그런.......”
라헤는 말도 나오지 않는지, 창백한 표정으로 부정하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몸이 자유로웠다면, 양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네게도 세뇌가 먹힌 다는 건 저번에 가슴을 만졌을 때, 도로시가 확인해 줬고... 뭐, 정말 만약의 때를 대비해 하나라도 더 수를 준비해두자! 같은 즉흥적인 생각으로 했던 건데, 그게 이렇게 최고의 한 수가 될 줄은 몰랐어. ......슬슬 알았겠지? 라헤. 지금까지 네가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세뇌는, 사실 전부 네 안에 있어. 네 이상할 정도의 강한 정신방벽도, 꽤 오랜시간 공을 들여 세뇌하니 충분히 물들었고... 이곳에 오기 전에 본 건 진짜 아리아니까, 네 말대로 그 세뇌는 먹히지 않은 모양이지만... 뭐, 그런 거지. 설명은 충분했어?”
“당신......!”
“좋아좋아. 그 표정 아주 좋아.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두고 싶네... 그럼, 이제 슬슬 마무리할까. 로아. ‘그거’ 풀어줄래?”
“네에~♥”
로아가 라헤의 귓가에 뭔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제, ‘느끼셔도 돼요’.”
뭐를, 이라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로아가 속삭인 순간 지금까지 어째서 느끼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열락이, 체온이, 무엇보다... 찌릿찌릿한 성감이 그녀의 온 몸을 지배했으니까.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라헤는 언어조차 되지 못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려 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곳을 만지고 싶다. 어서 자신의 그곳을 쑤시며 자위하고 싶었다. 온 몸이 민감하다. 옷의 감촉마저도 열락과 쾌감으로 다가와서 견딜 수가 없다.
꽃잎이 저 혼자 뻐끔뻐끔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애액이 흘러나와, 속옷을 적시는 게 느껴졌다.
“히, 히이이이잇......아으으응......! 무, 뭐.......야으으으......?!”
“자, 라헤. 이제 잠시 잠에 들 시간이다.”
로아는 말 전달 게임처럼, 13호의 말을 그대로 라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저 귀에 닿는 숨결 만으로도, 그 속삭임과 떨림만으로도 라헤는 당장에라도 가버릴 것처럼 느끼고 있었지만.
로아는 장난스레 그 귀에 슬쩍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라헤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부르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네게 키스하는 것으로, 너는 절정한다. 그러면 절정과 동시에... 바로 잠에 드는 거야. 우리가 깨우기 전에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잠에... 알겠지......?”
“으으으으으읏......!”
온 몸을 저릿저릿하게 뒤덮은 쾌감에, 이미 라헤는 13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13호는 빙글빙글 웃으며, 라헤의 턱을 정중하게 붙잡고――그대로 그녀의 건강한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동시에, 라헤는 절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