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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23 히어로 VS 시궁쥐(4) (112/271)



〈 112화 〉#23 히어로 VS 시궁쥐(4)

“기다려, 체크.”


“......메르 대장! 그치만...!”


당장 달려들려는 체크를, 메르가 제지했다.

“저 아들 그냥 두란 말이가?! 어차피 여기 있는 놈들 다 범죄자들이겠다, 그냥 이대로 전부 쓰러뜨려서――”

“시선이 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메르는 모포 너머로 체크의 팔을 붙잡아, 서둘러 안으로 나아갔다. 작은 소란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했지만, 어두운 조명에 묻혀  사람의 모습은 금방 잊혀졌다.


“메르 대장...!”


체크는 분노로 떨었지만, 상관의 명령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나마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메르의 눈을 보고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메르의 눈은 살기로 가득해서,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체크.”


“네, 넵!”

“지금 저희는 작전 중에 있습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면 안 돼요. 최단 거리로 최속으로 적의 수괴가 있는 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 【시궁쥐】의 핵심 전력들이 도망이라도 친다면 큰 일입니다. 그렇죠?”

“그, 그렇심더.”

메르는 마치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함인 듯, 낮게 중얼거렸다.

합리와 이치에 따른 이유를 들먹이는 것으로, 가까스로 당장에라도 튀어나가려는 스스로를 잡아 눌렀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넘어가야합니다. 무엇보다 히어로의 본분은 힘이 없는 시민들을 빌런이라는 부조리로부터 지키는 것. 평범한 범죄자들은 경찰분들이 맡을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메르는 안쪽으로 향하는 발을 재촉했다.

이를 얼마나 꽉 물었는지 턱이 떨릴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분노를 참고 삼켰다.


그녀는 히어로이며, 대장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마구 저지를 입장이 아니다. 실수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체크는 그러한 메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잡티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의, 어른스럽고 고운 얼굴.  여유가 엿보이던 그녀의 얼굴엔, 지금은 차가운 분노로 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히야아아~ 빌런 놈들, 아주 그냥 다 디졌데이.’


그러고보면 3번대의 대장인 메르는 직속 부하가 【시궁쥐】에 붙잡힌 전적이 있었다. 자력으로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며칠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혹사당한 흔적이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팔팔해졌다고는 들었지만.

메르에게 조금 전의 광경은 어떻게 비쳤을까.


어쩌면 자신의 부하도 이런 식으로...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깨어나지 않을 것 같던 부하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까.

‘이거든 저거든, 내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데이.’


분노는 판단을 흐리게 하는 법이니까.

메르는 보기보다 부하를 엄청 아끼는 사람이기도 하니, 혹시나 격한 감정으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도 있다.


옆에 화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의외로 화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메르가 한껏 분을 내는 모습을 보자니, 체크는 반대로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안쪽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21층으로.

21층에 올라서니, 레드카펫이 널린 복도라던가 인테리어가 뭔가 다른 분위기로 바뀐 느낌이었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랄까.


빌런의 아지트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에 체크는 수상함을 느꼈다.

수상한  수상한거고, 지금은 안으로 나아가는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 통신은 여전히 안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가드맨으로 보이는 슈트 차림의 남자 둘이  사람을 제지했다.

“이곳은 VVIP 전용 플로어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을 들여보낼 수는 없습니다.”


“......이 카드가 있는데요.”


메르는 지배인에게서 뺏어온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가드맨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이 플로어의 고객 리스트를 전부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아는 한 당신들 같은 고객은 없었습니다. 이곳에 출입이 허가된 스태프로 보이지도 않는군요.”

“그 말대로예요. 히어로입니다. 여기, 수첩. 이 층에 빌런들이 숨어있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이 카드는 지배인이 협력 차 준 거고요. 이제 안으로 들여보내 주겠어요?”

“죄송하지만 확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럴 시간 없는데요. 언제 빌런이 도망칠지 모르고.”


“이대로 보내드릴 순 없습니다. 이곳은 VVIP 플로어. 저희 호텔의 최중요 고객님들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허가 받지 않은 외부인을 들여보낼 수는 없습니다.”


가드맨은 단호하게 말했다.

탄탄한 근육에 건장한 몸은, 그저 흔들림 없이 서있는 것만으로 대면한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위압감을 들게 한다. 가드맨은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히어로는 각성자라곤 하지만 고작해야 여성들. 이 정도면 겁 먹고 알아서 꼬리를 말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조금 안일했다.

메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쩌적, 하고.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혀?!’


“지금 말했잖아? 히어로라고. 빌런들이 이대로 도망치면, 책임 너희가 질 거야? 아래의 돌대가리 지배인한테  말, 똑같이 들려줘야 비키겠어?”

형식적으로나마 붙이던 높임말도 내버리고, 메르는 언짢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다그쳤다.

미처 다 갈무리하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마력에, 공기가 삐걱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킬, 수는....”

“이제 됐어. 지금 나, 엄청 화난 상태거든?”

메르가 흰 장갑을 낀 손을 앞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먼지 쪼가리가 될 만큼 압축시켜줄까? 아니면 이 높이에서 맨틀에 닿을 때까지 중력으로 찍어눌러 줘? 지금 힘이 조절이  되니까, 최소가 즉사인데 어때. 이편이 좋아?”

“......!”


가드맨을 조이는 압박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리적으로 뭔가가 당한 것은 아니다. 지배인이 당했던 것과도 같은, 메르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짓눌린 것 뿐.

그러나 거기에 분노로 인한 차가운 살기와 노기가 더해지니, 가드맨은 당장에라도 목이 분질러질  같은 착각을 느꼈다.


“나 지금, 당장  호텔째로 와그작 짓뭉개고 싶을 정도로 화난 거 간신히있는 거거든? ......부탁이니까, 화내게 하지 말아주라? 응?”


메르가 가드맨을 향해 내민 손으로 주먹을 쥐듯 천천히 손가락을 구부렸다.

가드맨은 마치 그 손에 자신의 심장이 올려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메르가 주먹을 쥐는 그 순간, 그 손에 올라온 자신의 심장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힌다.


뽀골뽀골 게거품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시야가 흐릿했다.


‘살, 려......!?’

가드맨이 저항하지 못하고 압박감에 휩쓸릴 뻔 한 그 때,

우우웅-하는 진동이 울렸다.


슈츠의 앞주머니에 넣어놓은 직원용 통신 단말기였다.

“――커, 헉.... 하아, 하악..... 콜록......! 크하....”

그 순간 가드맨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메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싱긋 웃으며 단말기를 가리켰다.


“뭐해? 받아.”


“.......”

가드맨은 거친 숨을 고르며 몸을 돌리더니, 단말기에 연결된 인이어에 손을 대고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을 돌아 본 가드맨은,

“들여보내라는 지배인님의 지시입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싱겁게 길을 터주었다.

메르는 싱겁다는 듯 웃으며, 가드맨의 옆을 지나쳤다.

지나치기 전에, 한 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부 농담이었어. 히어로는 일반인들에겐 손대지 않으니까. 후후,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됐는데.”

귀여웠어, 라며 가드맨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복도를 따라 걸어들어갔다.




‘일단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메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고급스러울 뿐 평범한 객실들인데, 여기에 정말 【시궁쥐】의 멤버들이 살고 있는 걸까?

확실히 알려면, 안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밖에 없다.


“체크 대원.”

“예, 메르 대장.”

메르는 근처 객실의 문을 가리켰다.


“부숴.”


“알겠심더.”


체크는 모포 속에서 자그마한 나무망치를 꺼냈다. 보는 대로 재질은 오로지 나무로 만들어진, 쇠망치에 비해 여러모로 실용성이 떨어져보이는 망치다.

그러나 체크는 그것이 용사의 성검이라도 되는 양,  손에 든 망치고 자신감 넘치게 메르가 가리킨 문을 향해 휘둘렀다.


콰-광!


플로어를 흔드는 굉음.


동시에 객실의 문짝이, 벽과 함께 와르륵 부서져내렸다.

『뭐, 뭐야?!』

『히에엑, 문이!』

부서진 문 사이로, 깜짝 놀라 이쪽을 돌아보는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메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빌런...? 아니, 민간인이야, 이 분위기는.’

“체크, 다음. 지시하는 객실들을 전부 부숴버려.”


“예입.”


메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체크는 닥치는 대로 부숴버렸다. 그녀의 마력으로 강화한 나무망치는 파일 드라이버보다도 강력한 파괴력으로, 문을 가차없이 산산조각내었다.


하지만 몇 개나 되는 문을 부수더라도, 빌런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당했네.”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이 층에 있는  정말로 VVIP인 민간인들, 【시궁쥐】의 빌런은 없는 것 같았다. 그 뜻이 의미하는 건 하나 밖에 없다.


지배인이 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단순히 지배인을 협박해 부린 게 아니라, 지배인 스스로자 자주적으로 【시궁쥐】에게 빌붙어, 그들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궁쥐】에게 불이익이 될 히어로인 두 사람에게는 거짓된 정보로 시간 낭비를 하게 했다....


“어쩌겠으까, 메르 대장? 내려가서 지배인 그 간나 자슥을 족친다던가?”

“......아니. 계속 올라가자. 1층에는 라헤와 백업이 아리아가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으니까. 설마하더라도 도망칠 수는 없어.”


“하지만 여기가 아지트가 아니라면....”

“조금 전 카지노도 그렇고  지배인도 그렇고, 여기가 【시궁쥐】의 아지트인 건 확실해. 우린 꼼꼼히 살펴보면서 일단 위로 올라가자. 역시 대장이라면 가장 높은 쪽에 있겠지.”

갑작스레 문이 뚫려 당황하는 민간인들을 무시하고, 메르는 또각또각 안쪽으로 나아갔다.


* * *

‘흐응. 드디어 왔구나.’


조금 전 지배인과 함께 있었던 애플은, 지금은 아지트의 강당에 돌아와 메르와 체크가 비치는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시궁쥐】가 아지트로 사용하는  지금 메르와 체크가 있는 곳보다 조금 더 위쪽의 플로어였다. 단순히 그들의 아지트를 습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메르의 판단은 옳았다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책(愚策)이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필드에 숨길 생각도 없이 당당하게 발을 내딛다니.

이래서야 뭐든 좋으니 함정을 준비해주세요~하고 조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히어로들을 이용한 심리유도도 괜찮게 된 것 같고.’

“좋아, 끝났습니다.”


애플이 기쁜 듯 손뼉을 짝짝 쳤다.

“아, 아....... 카......”

애플의 눈앞에는 흐리멍덩하게 죽은 눈을 한 스페이드가 주저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 디디에 의해 이곳까지 강제로 옮겨지게 된 스페이드는, 저항할 틈도 없이 세뇌의 ‘키워드’를 듣고 트랜스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본래는 13호가 본인에게 굴복시키기 위해 심어놓은 키워드였지만, 애플도  키워드를 알고 있는 이상 언제든 스페이드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애플 님. 가공은 끝나셨나요?”


“그래요, 디디. 스페이드를 잘 데려와줬어요.”


“헤, 헤헤... 아직  번은  텔레포트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

옆에 쪼그려 앉은 디디의 머리를, 애플이 마치 귀여운 강아지라는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디디는 지고의 보물을 받은 것처럼 기쁘게 웃었다.


“장하네요, 디디. 스페이드에겐 당장  수 있는 건 다 해뒀어요. 묘하게 세뇌에 저항이 커서 암시 자체는 얕지만요. 적어도 제 충실한 인형으로서는 일해줄 거랍니다.”

원래 심지가 곧은 아이여서 그럴까.


시궁쥐의 단원들처럼 마음 깊이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충실한 종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지금 가능한 건 인격을 가두고 그녀의 명령에만 따르는 고기인형으로 만드는 것 뿐.


‘라헤 대장을 상대할 카드로 스페이드를 납치해 온 건데, 이래서는 힘들겠죠.’

지금 같은 상태로는 어떤 명령이든 듣게  수는 있다.


하지만 본래의 이성을 가둔 상태로는 세세하고 섬세한 부분에서 기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스페이드에게 본래의 전투력을 그대로 바라기는 어렵다.

‘스페이드 혼자로는 역부족. 그렇다면 일단 라헤 대장을 상대할 패를 추가해야겠어... 이 쪽을 쓰면 되려나. 충분하겠네요.’


라헤 쪽은 그녀가 준비한 한 수, 그리고 스페이드만 있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메르는 지금 제 발로 애플이 준비한 함정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을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은 13호를 어떻게 대응할지인데.

‘일단 귀찮은 건 참모.’

참모는 그림자를 통해 13호를 그가 있는 장소로 끌고 올 수있다. 결국 그가 있는  아무리 13호를 붙잡아도 금방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애플은 잠시 고민하다, 디디에게 코코를 불러오도록 시켰다. 세뇌시켜 놓은 그녀는 지금쯤 복도에서 가슴과 음부를 드러낸 채, 개처럼 엎드려 애플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후후, 이제 끝에 다 와가네요. 대장이라는 사람들도 곧 함정에 빠지고 끝...이에요. 즐겁네요. 그렇죠, 스페이드?”

“네... 애플 님....”

“후후, 스페이드. 아아, 스페이드.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애플은 즐겁다는 듯 몸을 떨며, 스페이드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눈에 빛을 잃은 스페이드는 순순히 애플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한껏 민감해진 몸으로 애플의 손에 성감대를 자극받을 때마다, 스페이드는 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꿀 같은 달콤한 교성을 흘리며 애플을 기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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