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21 빌런과 히어로 사이에는 음모와 모략이 판을 친다(3)
으직, 으직, 으직, 으직――!
으으...... 으으으윽........
뼈가 삐걱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무수한 신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신음소리의 출처는 쓰러진 17명의 【시궁쥐】 제2 습격부대. 그리고 그 앞에는, 3번대의 대장 메르가 오만하게 서 있다.
“어때? 슬슬 포기하고 싶지 않아? 싹싹 빌면서 알고 있는 거 전부 토해내겠다고 말하면 이만 해줄게~.”
“닥쳐라...! 애플 님의 충실한 종인 우리가, 너 같은 창녀에게...!”
“......말버릇이 좀, 교육이 덜 된 강아지들이네.”
“으으으윽...!”
중력의 조작 범위를 바꿔, 국소적인 부위를 프레스.
압력에 약한 관절 부위를 노리는 중력의 압박에 열일곱이나 되는 단원들이 고통으로 신음을 흘린다.
“자, 빨리 말 안하면 온 신체가 흐늘흐늘한 해파리처럼 변해버릴 거야? 손가락 하나 들지 못하는 그런 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
“아, 가가가각...!”
메르가 대장으로서 고평가 받고 있는 것은, 가장 큰 점은 대규모의 적을 단번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그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목적을 위해 무자비하게 상대를 고문할 수 있는 잔혹성 또한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히어로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그런 잔학무도함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고결하거나 계산적인 동기(라헤, 실)들과 함께함으로 딱 좋은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이봐들, 나는 너희들한테서 얘기를 듣기 위해 여기 남은 거야. 실이 있는 4번대와는 다르게 우리 3번대는 오늘 습격 대상에 없으니까. 오로지 너희들을 고문하기 위해서 있는 거라니까? 헛된 생각은 하지 말고 귀찮으니까 빨리빨리 불어줘. 나 바쁘고 비싼 사람이다?”
아리아의 예지대로라면 본래 계획에서도 3번대는 습격당하지 않는다. 3번대는 S시에서 꽤나 거리가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줄곧 7번대에 남아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이다.
13호를 괴롭히는 건 있는 동안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함 덤일 뿐이다.
본래의 목적은 자신의 부하들을 납치하고 마력을 뽑아내겠다고 엉망진창으로 만든 【시궁쥐】의 쓰레기들을 향한 복수.
부하들을 통해 자존심과 프라이드까지 상처 입은 아름다운 중력의 여왕은, 오만한 눈으로 습격자를 향한 중력을 한층 더해주었다.
당장에라도 뼈가 으스러질 듯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헤, 헤헤헤헤헤.......”
쓰러진 빌런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마치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혹은 미쳐버린 것처럼.
메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한 분위기다.
아무리 중력을 더해도 겁먹은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한군데 부서지면 달라질까 싶었지만, 실제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는데도 비명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아까부터 애플 님, 애플 님.
사이비 종교단체의 맹신자들 같다. 목숨도 돌보지 않고, 몸이 불타 없어지더라도 괜찮다는 것 같다.
“도대체 뭐야, 너희들....”
그녀가 알기로 애플이란 히어로가 사라진 지는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이 이렇게나 깊게 물들 수 있을까?
깊게 세뇌된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심히 오싹한 광경임에 틀림이 없었다.
메르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뜨며, 그런 오싹함을 가라앉혔다. 20대 중반이라면 젊은 나이지만, 적어도 그녀는 대장으로서 여러 빌런들을 보아왔고, 세상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기인들도 차고 넘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 정도 맛이 간 인간들 따위에 놀라지 말자.
냉정하게,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자.
과연 이 정도로 맹신하고, 세뇌된 인간들을 심문한다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인간들에게 포로나 인질로서의 가치는 있을까? 만약 이 한 명 한 명이 각성자라면, 살려뒀을 때의 위험성은――
‘그냥 죽여두는 게 나을까.’
메르가 냉정하게 결단을 내리고, 사람을 압사시킬 수 있을 만큼 중력의 무게를 더하려던 때였다.
푸욱-!
“어?”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별안간 나타난 반짝이는 은빛 칼날이, 무방비한 메르의 몸을 관통했다.
* * *
폭탄테러를 벌이려던 에이의 상대를 하던 체크는 살짝 고전하게 되었다.
웬만한 테러범이나 빌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력을 발하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폭마저 불사하는 특공에는 조금 애먹을 수 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체크의 강점은 ‘일점돌파’.
단련한 마력의 질은 아득히 양질이지만, 스페이드처럼 마력이 넘쳐나는 편이 아닌 그녀는 보다 높은 효율을 위해 공격할 때는 ‘민첩’과 ‘공격’에, 방어할 때는 오로지 ‘방어’에 마력을 몰빵하는 식으로 마력을 운용한다.
그렇기에 이런 카운터 타입은 껄끄럽다.
“귀찮구마이.”
“하으.......”
뭐, 그렇다고 상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체크가 찔러넣은 봉에 인체의 제어를 빼앗는 여덟 개 혈을 찔린 에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수류탄에 C4, 콩알탄에 가스폭탄, 연막탄, 스턴 그레네이드, 지향성 지뢰... 터지기만 하는 거면 어떤 종류든 맹글어 내고, 자기가 만든 폭탄에는 다치지 않는다... 반칙이지 않나?”
말 그대로 자폭 테러 특화라고 할까.
아무래도 구속하기 힘든 능력이다. 적어도 이 놈들의 출처나 무슨 생각으로 쳐들어왔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심문하고는 싶은데, 이런 탈주하기도 용이하고 무엇보다 언제든 삐끗하면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은 아무래도 거북하다.
아쉽게도 히어로협회의 기술로는 아직 마력을 억제하는 기술이 없다.
‘죽일까.’
아무래도 이 7번대를 습격한 멍청한 빌런은 이 녀석만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심문하여 캐내기에 적합한 녀석들이 그 쪽에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이 녀석보단 구속이 편하겠지.
어차피 폭탄테러까지 하려는 빌런은 처형당한다.
인류와 세계와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분자는 없애는 게 룰이다.
‘하지만 역시 죽이는 건 좀.’
아직 대장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그런 방식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일단 대장의 지시를 기다리자.
“뭐야, 안 죽이는 건가요오...♥?”
“느그는 왜 깔려 있으면서 그리 기뻐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고?”
“글쎄요... 이것도 저것도 기분이 좋아서 말이죠... ‘각성화’한 뒤로... 줄곧... 기분이 좋아요.......”
그렇게 말하는 에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바닥에 쓰레기처럼 쓰러져 있는데도.
체크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이건 세뇌의 영향일까? 아니면 인위적인 ‘각성화’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끌고가서 확인해 봐야 안다.
“얌전히 있그라.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죽으러 왔으니까요.”
“뭔 소리고?”
“전 어떤 종류의 폭탄이든 만들어낼 수 있어요. 위력이 큰 걸 만드려면 그만큼 시간과 품이 들지만요. ......그렇다면 미리 만들어 두면 되겠죠.”
폭탄? 미리 만들어 놔?
그제야 체크는 에이의 눈이 위,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력을 이용해 시력을 강화, 저 멀리 밤하늘의 어둠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파악한다.
뭔가가 있다.
아니, 저건.
“사람...... 폭탄을 들고?!”
“선행부대가 나 혼자라고는 안 했는데...♥”
사람은 한 명. 아마도 하늘을 나는 능력. 그리고 꾸러미를 들고 있다. 뒤집는 꾸러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새카만 물체 ......아마도, 하나하나가 전부 폭탄.
“육시랄년이!”
“위만 보면 위험할 텐데♥”
에이의 눈 앞, 허공에 빛의 입자 같은 것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폭탄을 만들어내는 전조다.
위에는 폭탄의 비, 아래에도 폭탄. 이제와서 이 여자를 죽인다해도 폭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차피 자기 폭탄에 상처입지 않는다면, 위력을 조절할 생각도 안 할 테고――
“아하하하하하하핫♥ 최고, 최고, 최고야아아아!! 사랑해요, 애플 님♥♥♥♥!”
절체절명인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크를 향해 폭탄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 * *
밖은 요란하다. 잠깐 본 사이에 체크는 정면 현관에, 메르는 뒤쪽으로 나가는 건 확인했다.
‘정보상’ 로아의 정보대로면 제3습격대가 있는 모양이니, 남아있는 히어로들은 그 쪽에 시선을 집중하겠지. 알고 있던 예정과는 다른 습격이니, 대장인 라헤도 전장 한가운데에서 지휘하려 할 것이다. 직접 전황을 살피지 않으면 만약의 사태에 대응하기 어려운 법이니.
그렇다면 분명 우리들을 향한 경계의 눈빛도 약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복도를 지나, 목표한 문 앞에 선 나는, 똑똑 문을 두드렸다.
“보스, 계십니까?”
『......13호?』
요란한 소동 때문에 깨어있었는지, 보스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 일은 없어요? 아무래도 빌런들이 쳐들어온 모양입니다.”
『빌런이? 13호 넌 어디 다친 데 없지?』
“걱정마시죠. 그보다 문을 열어주실 수 있나요? 히어로들은 빌런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이 틈에 도망치죠.”
『문을 열고는 싶은데, 이거 안에서는 못 열어. 내 【언령】으로 열려고 해도 마력이 튕겨나와. 뭔가 이상한 가공을 해둔 것 같은데.』
“도로시도 모르는 기술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문을 부수겠습니다.”
『뭐? 그러다가 들키는 거 아냐?』
“들켜도 상관 없습니다. 보스랑 접촉만 하면 돼요. 그럼 참모의 능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참모에겐 말해두었다.
내 그림자는 참모와 연결되어 있어서, 내 그림자에 접촉만 하면 참모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데려갈 수 있다.
가능한 조용히 부수겠지만, 소음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채고 라헤가 달려오더라도, 그 전에 보스를 데리고 도망칠 자신이 있다. 이곳저곳에서 마력을 받아온 덕분에, 문을 부수는데 필요한 마력 정도야 우습다.
“보스, 문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져 주세요. 가능한 사선으로... 파편에 다치지 않게요. 예, 그럼 이제――”
“거기서 뭘 하고 있나요.”
또각, 하는 발소리가 울렸다.
일부러 불 하나 켜지 않은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뼈를 시리는 냉기.
막을 길 없이, 한숨이 나왔다.
복도 저편에서 걸어나온 것은 7번대의 대장 라헤. 어째서 그녀가 이 상황에 7번대를 지휘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다 꿰뚫어봤다는 듯 여기에 있는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망했다.
“밖이 시끄러워졌길래. 혹시 보스한테 무슨 일이 있을까 해서. 걱정되서 온 것 뿐이야.”
“그런가요. 제 귀엔 문을 부순다던가 어쩐다던가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요.”
“......들렸어?”
“똑똑히.”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꺼냈다.
그러나 변변찮게 휘두를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 메르가 눈 앞에 육박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복도 저 편에 있었는데?!
퍼억-!
“꺼흑!”
복부 정중앙을 앞차기로 걷어차여, 몇미터나 날아가 데굴데굴 굴렀다.
“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제 천칭은 그런 걸 용서하지 않아요.”
“허억, 큭...... 웩....”
무슨 고릴라냐, 이 여자.
고작해야 발차기 한 방에 내장이 뒤집히는 기분이다. 위액이 역류하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저녁을 일찍 먹지 않았다면 이대로 지저분한 걸 토해냈을지도 모르겠다.
“대장 주제에... 왜 여기 있는 거냐... 이 상황에.......”
“그야 이럴 것 같아서 입니다. 당신이란 사람도 참 단순하네요.”
라헤는 얼음처럼 차가운, 반항을 허락하지 않는 눈으로 나를 내려봤다.
“돌아가세요. 이 틈을 타 뭔가 수작을 부리려한다면, 저는 당신에게도 인질에게도 사정 따위 바주지 않겠습니다.”
울고 싶다 진짜. 빼애애애애애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