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20 카지노에는 무시무시한 여자가 산다(2)
얼마 안 있어 커피가 준비되자, 우리는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풍미 깊은 드립커피의 향이 방 안에 가득 찼다.
“그래서, 일이라고 했는데 뭐 때문이야~?”
“‘각성화’ 수술과 닥터의 행방을 알고 싶어. 설마하니 【시궁쥐】 일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어머나, 싫어라. 그딴 말이나 할 거면 차라리 오지 말아줄래~.”
로아가 빈정대듯 말했다.
“뭣하면 너네 【어비스】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행보에다 이번에 옮긴 아지트의 위치, 예비 아지트, 얼마 전 7번대와 협정을 맺은 것 까지 전~부 나불나불 내뱉어줄까~? 이 정보 그대로 연합에 가져다 팔면 아주 좋아하겠네~.”
“...참아줘. 알려줬다간 우리 조직 그대로 끝장이니까.”
“흐응~. 들키기 싫다면 일단 히어로랑 같이 다니는 것부터 피해야 하지 않겠어? 그 아이, 꽤 유명하다고~? 떠오르는 혜성 같은 느낌으로~?”
로아는 스페이드를 향해 빙글빙글 웃으며, 긴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고풍스런 곰방대 같은 담배.
【길드】는 내가 아는 한 해외에도 통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정보망을 자랑한다. 거점은 이 카지노지만, 그 구성원들 대부분은 사회에 제멋대로 퍼져있다.
언뜻 보면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많고, 척 보기에도 정상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나 대기업의 요직에 속한 사람도 있다면, 어느 빌런 조직에서 조용히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에 앞뒤 세계를 가리지 않고 온갖 정보가 【길드】에 모여들고, 온갖 방식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다. 길드는 그런 조직이다.
당연하지만 그들이 취급하지 않는 정보는 없어서, 내가 물은 【시궁쥐】의 일은 물론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빌런 사건들도 전부 잘 알고 있겠지. 어쩌면 시궁쥐 조직 내부에 밀정 같은 요원을 몇 명 쯤 배치해놨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는 것과 그걸 굳이 알려준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지만.
후, 하지만 나는 자신만만하다.
이 녀석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나에게, 거래 재료를 고르는 것 따위 손쉬웠으니까!
나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탕! 하고 올려놓았다.
“......? 뭐지?”
“한 번 봐. 생각이 달라질걸?”
로아는 미심쩍은 눈으로 내가 내려놓은 사진을 바라봤다. 스페이드도 옆에서 목을 빼고 보더니, 경악하듯 눈을 크게 떴다.
“내, 내 사진?! 그것도 오기 전에 찍은거!”
“호......오?!”
로아는 잽싸게 사진을 집어들고, 잡아먹을 듯 눈 앞에 가져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 취향 정도야 파악했다 이거야.
여자 취향인데다 그 이상형이 딱 스페이드 같은 여자애라는 것도, 부끄러운 복장으로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그 포즈를 좋아하는 것도, 무엇보다――
“아름다운, 마력이야...! 사진으로 이런 게 보이다니...!”
이 녀석, 로아는 마력이 눈에 보이는 특이체질이다. 사람을 둘러싸듯 보이는 마력은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사진으로 보이지 않지만, 염사(念寫)를 응용한 도로시의 기술로 그 마력이 눈에 보이도록 가공한 게 바로 지금 내민 저 사진이다.
“우리 유능한 과학자 특제품이야. 복장 별로 잔뜩 가져왔으니 부족하진 않을 걸?”
“야, 야! 뭔데 그 두꺼운 사진 뭉치! 그거 설마 전부 내 거야?!”
“말해봐! 경찰복 코스프레든 바니걸이든 간호사복이든 속옷에다 알몸차림이든 뭐든 꺼내주마!”
“야~~~~~~~~~~~~!”
원망하듯 스페이드가 나를 탈탈탈탈 휘둘렀다. 야야, 어지러워.
로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뚫어져라 사진을 바라보더니,
“헤, 헤헤헤헤.......”
입에 문 곰방대마저 떨어트리고, 꼴사납게 웃었다. 얼굴은 발갛게 홍조를 띄우고, 사진을 잡아먹을 침을 흘리며 바라본다.
“좋아, 좋아... 깨끗하고 순수한 마력도, 내 취향의 여자애가 내 취향의 복장으로 내 취향의 포즈로 내 취향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거기다 그 대상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히어로라는 것도 점수가 높아... 후, 후후... 거기다 히어로 스페이드는 뒷세계에서도 유명하니까. 이런 사진 한 장 만으로도 프리미엄은 충분히 붙겠지. 팔 생각은 없지만.”
“너한테 수집벽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그건 서비스로 주겠지만, 고작해야 한 장으로 만족할 건 아니지?”
“후, 후후후후....”
로아는 어깨를 떨며 웃었다. 그 괴기스런 모습에 옆에 앉은 스페이드가 움츠러 들었다.
“나 말야, 더 갖고 싶어~.”
“좋아좋아. 다 줄게. 그럴 생각이었어. 다만 이쪽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주면.”
이 정도로 좋아해주면 좀 더 바래도 괜찮을 것이다. ‘각성화’의 정보와 【시궁쥐】의 행방이라던가, 사진을 한 장 한 장 주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아내자.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사진만으론 부족하고~.”
“......응?”
“그 아이도, 줘.”
로아는 뱀처럼 입을 길게 찢으며, 씨익 웃었다. 뺨을 상기시킨 채 스페이드를 바라보는 그 눈에는,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스페이드를 내놔~. 내 것으로 하겠어~. 가지고 싶어~. 그러니까 이 애 두고 넌 꺼져버려, 죽고 싶지 않으면~.”
13호는 쾅!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농담은 좋아하지 않아. ‘정보상은 항상 중립에 서서 공정한 거래를 한다’, 그게 룰일텐데.”
정보상의 정보는 히어로에게도, 빌런에게도 치명적일 정보를 다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상은 공정한 룰을 지키기 때문에 빌런으로도, 히어로로도 취급되지 않고, 양 측에 비호를 받으며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수 있었다.
정보상도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가를 받고 가능한 서로에게 치명상이 될 정보들을 피하며, 어느 악과 정의 어느 한 쪽에 서지 않고 중립의 입장을 고수해야만 한다.
설령 정보상이 미친 콜렉터라고 하더라도, 사적인 욕망은 공적인 계약 앞에 한 수 접어둬야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방금 그 발언은, 정보상으로서 문제가 크다. 실격이다.
애초에 13호가 알던 정보상은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정보상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던 이 여자가 할만한 말이 아니다.
“최근에~에. 성격이 좀 바뀌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졌거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 거 없어어~. 애플이라는 히어로랑 얘기를 좀 했을 뿐~.”
13호는 이마를 짚었고, 스페이드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입을 어버버 벌렸다.
애플?!
거기서 그 이름 왜 나와?!
“설마하니, 최면....”
“글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그치만, 최근 기분이 아주 좋거든~. 욕망에 충실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이 마음 이해해?”
안 되겠다. 눈이 맛이 갔다. 이 정보상에게서 뭘 바랄 수 없다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애플 이 년은, 도대체 뭘 한 거야?
“가자, 스페이드. 이 이상은 시간낭비다.”
“어머~? 어디 가려고~?”
딸랑딸랑, 로아가 옆에 놓인 벨을 집어들어 흔들자, 무수한 발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문이 신사적으로 열리고, 그 너머에서 한 덩치 하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잔뜩 몰려들어왔다. 전부 들어오자, 문이 도로 닫혔다.
“여자애는 남기고~ 남자는 지하 징벌방에 넣어둬~. 조교해서 내 수족으로 써먹지 뭐~.”
13호와 스페이드는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직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어디보자, 하나, 둘 셋...... 대충 열 명인가. 집무실이 넓어서, 이만큼이나 사람이 들어오고서도 공간에 여유가 남는다.
“야야, 이 아가씨가 있는데 고작해야 경호원 몇으로 되겠어? 얼굴 무서운 아저씨 한 트럭을 가져와도 이 아가씨는 못 이길 텐데. 네 능력도 눈을 보지 않으면 소용도 없고.”
“어머나, 정보상의 실력을 무시하지 말아줄래?”
벨을 내려놓고 짝짝, 손뼉을 치자, 남자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었다.
누군가는 손에서 불을 뿜고, 누군가는 몸집이 단숨에 두 배로 커졌으며, 누군가는 묘한 연기를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초능력 같은 기현상. 단순한 인체개조로 이루어진 강화가 아닌....
“‘각성화’냐...!”
“정답. 정보를 얻자마자 애들에게 시켜봤지. 아직 미숙한 점은 많지만, 그만큼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거지. 13호 지금의 넌 아무 것도 못하는 찌끄레기라고 알고 있는데, 스페이드 혼자 괜찮겠어? 그냥 일찌감치 포기하고 순순히 넘기고 가는 건 어때? 징벌방에 들어가면 사과 정도론 안 끝날――”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네.”
스페이드가 말을 끊고 앞으로 나섰다.
“왜 자꾸 나를 지들끼리 어쩌네 저쩌네 하는 건데?! 내가 물건이야?! 니들이 뭔데 날 가지고 티키타카하냐고!”
스페이드는 거침없이 가장 가까운 양복 남자를 향해 척척 걸어갔다. 양복 남자의 능력은 거대화인지, 이미 머리는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지고, 몸도 좌우 폭으로 네 배는 커진 상태다. 옷이 어떻게 찢어지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스페이드의 눈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녀를 붙잡으려는 거대 양복 남자의 손을 피해, 단숨에 그 품에 파고들어 주먹을 날렸다.
쿠쾅!
그저 그것 뿐. 단 한 번의 주먹으로, 약복 남자의 거구는 그 뒤의 또 다른 양복 남자를 덮치며,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사람 얕보지 마! 나 가지고 니들끼리 이래저래 하지 마,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스페이드는 다른 양복 남자들을 향해 짐승처럼 뛰어들었다. 쭉 뻗은 다리, 여성스럽게 가녀리지만 건강한 팔은 상대의 능력이 불이든 안개든 독이든 바람이든 어떤 기현상이나 기적이라도 거침없이 찢어버리고, 양복 남자들을 짓뭉개고 날려버렸다.
모든 인원들을 정리하기 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살짝 찢어진 드레스를 속상한 듯 내려보더니, 금세 표정을 바꾸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13호를, 그리고 로아를 째려보았다.
“이게 바로 7번대의 A급 히어로 스페이드야. 우습게 보지 마. 알겠어?!”
검지를 내밀며 선언하는 스페이드를,
로아는 황홀한 눈으로, 마치 감동에 젖은 것처럼 눈물까지 흘리며 바라보았다.
“아아, 맙소사... 저렇게 아름다운 마력... 가녀린 몸으로 저 보기 싫은 우락부락한 남자들을 물리치는 늠름한 모습... 더, 더 가지고 싶어져... 하아아아...... 젖어버려...♥”
“에.......”
스페이드가 식겁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내렸다. 지금의 로아에게선 위험한 향기가 풀풀 쏟아졌다.
옆에 선 13호도 식겁한 표정으로 로아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슬슬 포기하지 그래? 저 아가씨는 네가 감당할 수 없으니까.”
“――남자 따위가 손대지 마!”
어?
순간 13호의 시야가 휘릭 돌며, 등에 무거운 충격이 들었다.
로아가 그대로 13호를 업어치듯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쓰러진 13호를 향해 주머니에서 꺼낸 새카만 전기충격기를, 마치 검을 꽂아 넣듯 내리찍었다.
“쿠어어어어어억...?!”
“13호?!”
“하아... 남자 놈이, 내 몸에 손을 대다니... 기분 나빠... 소독하고 싶네....”
로아는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인상의 얼굴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일그러진 험악한 표정을 보며 13호를 내려보고 있었다.
“너, 너.......”
“뭐야, 기절 안 했네? 꽤 세게 튜닝해 둔 건데... 비실해보여서 맷집 하나는 좋은가 보구나?”
“크, 크..... 이, 이래 봤자... 저 아가씨는... 감당... 안 돼....”
“그치만 널 따르고 있잖아?”
그거야 어쩔 수 없다. 스페이드는 13호에게 세뇌되어――
“세뇌란 거 때문이지?”
“......어떻게?”
13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뇌에 대해서는 비밀을 철저히 했을 텐데. 어떻게 이 여자가 아는 거지?
해답은 금방 알았다. 이 여자에게 접촉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면, 그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다.
“애플...... 그 여자가...!”
“열쇠가 되는 시동키만 알면 얼마든지 내 것으로 할 수 있다고 알려줬어. 문제는 그 시동키는 듣지 못했지만... 괜찮아. 너한테서 천천히 들으면 되니까. 징벌방에 데려가서 천천히 고문해줄게.”
“누가 그렇게 둘 거 같아?!”
스페이드가 사납게 외치며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발이 꼬여 넘어져버렸다. 일어서려 해도,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스페이드를 쳐다보며, 로아는 즐겁게 웃었다.
“내 능력을 못 들었나 보구나? 내 능력인 【메두사의 눈】은 눈을 마주친 사람을 마비시킬 수 있거든. 너처럼 마력이 강한 애들한테는 시간이 걸리지만... 슬슬 시간이 된 모양이네.”
스페이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럴 수가...!
“스페이드...!”
안타까운 듯 가까스로 스페이드를 부르던 13호는, 로아가 마무리하듯 전기충격기를 내리꽂자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