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17 말괄량이 히어로 스페이드는 괴롭힘 당한다(4)
“흐윽......!”
폭발로 인한 연기는 농후했지만 금방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터져나온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스페이드는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수 밖에 없었다.
심호흡, 심호흡을 하자… 천천히, 몸을 가라앉히고…….
“히윽…!”
안 가라앉아!
안 그래도 13호 때문에 잔뜩 초조해 있던 몸인데, 조금 전의 가스로 공기에 닿는 것만으로 느껴버릴 만큼 민감해져 버렸다.
마치 기름이 찰랑찰랑 흐르는 방에 언제 터질지 모를 기화성 가스를 빵빵하게 채워 넣은 느낌이다. 누군가 손가락 하나만 대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면서 쓰러질 것 같다.
그래도 빌런은 해치웠으니... 기지의 누구한테든 연락을 해서....
“게하하하하하하하하! 해치웠다고 생각했느냐! 이것이야말로 ‘버섯자리’로부터 받은 진정한 능력, 마치 버섯처럼 새로운 몸뚱아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포르치니.
스페이드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도, 도망칠까...?’
아니, 안 된다. 빌런을 앞에 두고 도망치는 히어로라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도망치더라도 한계까지는 해보자. 조금만 더 힘내보자. 아직 주먹을 날릴 힘 정도는 있다. 다음 공격이 안 통하면 그 때 도망가자.
‘지금 같은 긴급탈출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닐 거야.’
적어도 한 방 더, 이 주먹을 먹여보자. 다행히 적은 빈틈도 많고 허접하다. 싸움에는 익숙하지 않은 빌런인게 분명하다. 주먹 한 방 정도 먹일 틈은...!
“후, 후후후후, 도망치지 않는 그 기개는 인정하겠어, 히어로. 하지만 각성한 내 능력은 고작해야 이 정도가 아니라고?!”
포르치니가 두 손을 들어올리자, 스페이드의 발치에서 갑자기 몇이나 되는 포르치니의 상반신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이 마치 마구 솟아오르는 버섯군(群) 같아서, 징그럽고 섬뜩했다.
발치에 나타난 포르치니는 스페이드의 다리에 엉겨붙고, 스커트를 들춰올리려 했다.
“꺄, 꺄앗?! 어딜 들추는 거야?!”
“응? 뭐야... 설마 너, 안에――”
“하지마앗!!!”
포르치니는 집요하게 스페이드의 스커트를 노리며, 착실하게 그녀의 손과 발을 하나하나 붙잡아갔다.
이대로 있으면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온 몸이 잔뜩 달아오르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스페이드였지만, 그러나 필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고, 단숨에 해방했다.
“하아아아아아아아~~~~~~!!!!!”
세게 바닥을 밟으며, 온몸으로 마력을 퍼뜨렸다. 찍어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스페이드를 둘러싼 가짜 포르치니들이 전부 터져나갔다.
“어......?”
포르치니(본체)는 당황하며 새로운 포르치니들을 소환하려 했지만, 스페이드는 고양이 같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포르치니들을 피해내거나 밟으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스페이드는 더 이상 아래가 보이거나 하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미약향 때문에 머리가 마비되서 그런 거겠지. 부끄러움도 수치도, 지금은 생각할 여유도 짬도 없었다.
그러자 놀라우리만치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스페이드를, 포르치니의 단조로운 공격으로는 이 이상 붙잡을 수 없다.
“이익...! 촐랑촐랑거리긴...!”
“넌 역겹지만.”
어느샌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스페이드. 그녀는 포르치니의 안면에 정확히 주먹을 꽂아넣으려 했지만,
“.......”
그 얼굴 앞에서 주먹을 멈추고, 곧바로 뒤로 뛰어올랐다.
“크, 크크크. 눈치챘구나! 이 가짜 몸은 【포르치니 스멜】로 가득 차 있지! 아까 전처럼 공격했다간 또 똑같은 가스를 잔뜩 들이킬 거라고?!”
포르치니는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사실 전부 거짓말이지만...!’
조금 전의 긴급탈출은 정말 만일의 수였다. 다음은 없다. 지금 건 단순한 허세일 뿐이다.
그러나 그 허세는 확실히 유효했는지, 스페이드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고민하듯 다가오지 않았다.
둘의 싸움은 고착 상태에 들어갔다. 포르치니의 공격은 힘으로 떨쳐낼 수 있는 스페이드에게 큰 의미가 없고, 스페이드는 포르치니의 긴급탈출을 염려해 다가오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가스가 점점 몸을 좀 먹겠지.’
그 사실은 스페이드의 상태를 보면 일목요연하다. 뺨은 상기되어 있고 숨은 거칠어졌다. 다리는 갓 태어난 고라니마냥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이대로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그러면 쓰러진 히어로를 마음껏 유린하자. 미약향을 잔뜩 들이마시게 해준 뒤에 온갖 욕망을 쏟아부어주자!
그렇게 망상을 부풀리는 와중에, 스페이드의 몸이 기우뚱 기울며 옆에 있던 가로등에 기댔다. 한계에 가까워진게 분명하다!
“자, 히어로! 이대로 네 년......을...................”
“가까이만 안 가면 되는 거지?”
그러나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힘이 빠져 가로등에 기댔다고 생각한 스페이드는, 그대로 가로등을 바닥에서 뽑아버린 것이다.
전선이라던가 이런저런 것들이 딸려올라왔지만, 스페이드는 개의치 않았다.
“어...... 오....”
“주먹으로 때리는 것보다는 약하겠지만... 그만큼 여러 번 패야겠네.”
뺨은 상기되어 있고 다리는 떨리지만, 아직 스페이드의 눈에는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가던 스페이드는,
“야아아아아아아아~~~~~~!”
양 팔로 든 가로등을 마구 휘둘렀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상하좌우, 종횡무진, 포르치니는 마구 휘둘러지는 가로등에 개처럼 얻어맞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다. 개조수술로 강화된 몸이어도, 그를 아득히 상회하는 힘으로 휘둘러지는 가로등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가로등의 끝이 마구 찌그러졌다.
이대로면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포르치니는, 마지막 힘을 짜내기로 했다.
“으, 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가짜 포르치니를 잔뜩 양산해낸다. 가짜인만큼 내구성이 약해서, 스페이드가 가로등을 휘두르면 이리저리 날아가고 터져나가고 산산조각났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숫자를 늘려갔다.
“쓸데없는 발악을...!”
스페이드는 근처에 나타난 가짜 포르치니들을 가로등을 크게 휘둘러 날려버리고,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마지막이다, 변태 빌런아!”
공중에 뜬 채로, 가로등을 뒤로 당기며 투창의 자세를 취하는 스페이드.
이대로 낙하하는 힘과 함께 포르치니의 본체를 꿰뚫으려는 심산이었다. 만약 저것도 가짜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도망칠 틈 정도는 벌 수 있으리라 계산했다. 어느 쪽이든 이 이상 상대하는 건 무리다...!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지 않는다, 히어로오오오오오오오!”
대치한 스페이드와 포르치니의 목소리가 겹쳤다. 포르치니는 잔뜩 불어난 가짜 포르치니들을 벽처럼 세워 공격에 대비했고, 스페이드는 그 정도 벽 따위 단숨에 꿰뚫어버릴 수 있을 만큼 가로등을 쥔 팔에 마력을 모았다.
승부는 이제 단 1합만을 남겨놓았고, 이 공격으로 이 싸움은 결판이 난다.
그러나 난데없이,
“잠깐 멈춰라, 스페이드!”
두 사람 사이에, 멋대로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머릿속이 몽롱하게 젖어있던 스페이드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챌 수 없었지만, 그 안쪽 깊은 곳, 그녀의 안쪽 깊은 곳에 박혀있던 암시가 익숙한 주파수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즉, 「13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는 암시가 작동해, 스페이드 본인의 의지와는 반대로 움직임을 딱, 멈췄다.
‘......어?’
마치 신화속 뱀괴물의 눈을 본 것처럼,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로 가로등을 날리려던 자세 그대로 낙하한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고나서야, 비로소 몸을 감싼 주박이 풀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마력으로 강화되어있던 덕분에 추락했어도 상처 하나 없었다.
그러나 이 이상 낼 힘도 없었다. 다리에서는 완전히 힘이 풀려서, 일어날 수가 없다.
이미 한계에 달했던 그녀의 몸은, 이번 추락을 계기로 이 이상 움직이길 거부했다.
포르치니는 갑작스런 상황에 이해못하겠다는 듯 뻐끔뻐끔 눈을 떴지만,
“가라, 내 수족들이여!”
상황을 이해하길 포기하고, 일단 눈 앞의 스페이드를 포획하길 우선했다. 포르치니의 의지에 따라, 무수한 버섯머리 근육질 몸뚱이가 스페이드를 덮쳐 그 매끈한 다리를, 팔을, 온몸에 얽혀들고 달라 붙어갔다.
“아, 안 돼......!”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이드의 몸은 버섯군락처럼 쌓인 포르치니의 몸뚱아리에 삼켜졌다.
* * *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빌런 포르치니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야생의 빌런인 자신이, 단독으로 A급의 히어로를 쓰러트린 것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분명 유망한 빌런 조직들에게서 스카우트 제의가 물밀 듯이 밀려올 것이다. 어쩌면 빌런 연합의 3대 빌런 조직에서 간부급으로 부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약버섯’으로 인한 벌금 따위 안녕이다!
빌런 주제에 성실히 벌금을 내는 것도 웃기지만!
상상만해도 기쁜 일이지만, 그런 것보다도 지금은 부수입이다. 저 히어로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근처에 쓰러진 여대생들까지 생각하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대로 저 당찬 히어로와 여대생들을 자신의 은신처(반지하 셋방)으로 끌고 가서, 죽을 때까지 성노리개로 사육하자. 미약향인 【포르치니 스멜】로 무력화시키면 반항할 생각도 못할 테고, 원할 때 원하는 여자를 골라서 저 히어로의 눈 앞에서 범해주자.
패배감과 굴욕에 젖은 히어로의 얼굴을 즐기고, 마지막엔 항상 히어로의 구멍으로 마무리를 하자. 미약향에 취해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물건에 달라붙을 히어로를 상상만 해도, 포르치니는 자지가 불끈 솟아오를 것 같았다.
포르치니는 망상을 중얼중얼 입으로 읊으며, 음흉하게 히죽 웃었다.
‘그런데 방금, 그 마지막 목소리는 뭐지?’
그 목소리를 듣고 나니 히어로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생각할 틈도 없다. 혹여나 다른 히어로가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지금의 그로서는 버틸 수 없다.
정신을 잃은 히어로와 근처에 쓰러진 여대생들을 운반하기 위해 가짜 포르치니들에게 명령을 내리려 할 때,
“야, 남자로서 네 마음은 이해되는데, 일반인들한테까지 그러는 건 아니지.”
포르치니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히어로들은 자기도 당할 각오를 한 채로 임한 거니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각오가 없는 일반인들은 아니지. 악당이라도 악당의 미학이란 게 있는 거야. 너 같은 녀석이 있으면 빌런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나타난 것은 머리에는 얼굴 전체를 덮는 버섯 같은 탈을 쓴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사복을 입은 여성이 한 명.
“벼, 변태다?!”
“......네 모습을 따라 한 건데.”
버섯 탈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탈 안에서 히죽 웃었다.
“잠깐 실례. 그 녀석 내 거거든. 염치없지만 도로 가져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