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17 말괄량이 히어로 스페이드는 괴롭힘 당한다(3)
별자리로부터 받은 마력을 개방하는 것으로 머리를 타는 듯한 다홍색으로, 뺨에는 그녀임을 드러내는 스페이드 문양을 그려낸다.
‘좀 이따 변할걸... 괜히 시선을 끌었어...!’
1학식을 향해 두다다다 달려가면서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와서 다시 되돌리는 것도 웃기고, 머리색을 되돌린다고 마력을 가라앉히면 지금처럼 달릴 수도 없다. 지금 다리를 강화시켜서 달리고 있는 거니까.
그보다 치마다. 옷이다. 아래다.
신경 쓰여서 죽겠다. 팔락팔락 치맛단이 오르내릴때마다 울고 싶다. 설마 보이는 거 아니겠지...?
* * *
“갸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몸은 빌런 ‘포르치니’! 이 몸의 버섯 스멜로 세상을 야하게 물들어주겠다, 공포에 떨어라 인간들이여!!!!”
빌런 포르치니! 그물버섯과 같은 이름의 빌런이다!
그는 특수한 개조수술을 받은 야생의 빌런으로, 다부진 근육으로 울룩불룩한 몸에 머리와 손 대신 버섯 같은 게 달려있다. 유망한 빌런 조직으로부터 스카우트 받기 위해 열심히 ‘미약버섯’을 이곳저곳에 심는다는 소극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허가받지 않은 식목 행위로 벌금 폭탄을 받은 후 자포자기하여 S여대를 습격하러 온 것이다.
왜 S여대인가!
취향이다!
거듭 말하지만 취향이다!
“여대생이라니, 한창 좋을 때지! 문란하고도 문란한 여대생들에게 내 버섯맛을 보여주마!”
말하는 건 지리멸렬하지만, 이미 포르치니의 주변에는 몇이나 되는 여대생들이 풀썩풀썩 쓰러져 있었다. 모두 야하게 흐트러져, 거칠게 허떡이고 있다.
육체개조수술 이후 자유자재로 내뿜을 수 있게 된, 미약을 포함한 농후한 정액향――【포르치니 스멜】에 당한 것이다.
빌런 포르치니는 그 광경을 즐기듯 천천히 둘러보고, 좀 더 희생자를 늘리기 위해 자리를 뜨려했다.
“거기 서! 7번대 히어로 스페이드다! 멈춰, 이 변태 빌런아!”
“으음...? 히어로?”
생각한 것보다 일찍 왔다. 애초부터 캠퍼스 안에 있었나?
나타난 히어로는 타는 듯한 다홍색 머리에 뺨부터 목에까지 걸쳐 그려진 스페이드 문양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다만 한가지, 포르치니의 미약향을 맡은 것도 아닌데 뺨은 상기되어 있고, 어쩐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치맛단을 붙잡고 있고... 뭐지, 저 여자?
스페이드는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흐트러진 치맛단을 정리하면서 날카롭게 눈을 떴다. 포르치니의 발치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함께 밥 먹으러 간 동기들....
“용서하지 않아, 변태자식...!”
스페이드의 눈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그래봤자 하등한 개조 빌런. 별자리의 힘을 받은 각성자, 거기에 A급 히어로인 스페이드에겐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
그럴 터다.
“히어로 네년, 지금 날 깔봤지? 고작해야 개조 빌런 따위가 히어로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잘 아네. 알고 있으면 당장 항복하도록 해, 변태 빌런아! 지금 항복하면 뼈를 반쯤 부러뜨리는 걸로 용서해주겠어!”
“얕보지 마라, 히어로.”
순간 빌런 포르치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후욱, 하고 바뀐 분위기에 스페이드는 저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다.
“나는 단순한 개조 빌런이 아니야, 히어로. 태평하게 주어진 능력에 안주하는, 평화에 찌들은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뒷세계에서는 매일이 나 자신을 갈고 닦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그래봤자 개조 받고 땡이잖아, 멍청이들.”
“핫, 그렇긴 하지. ......하지만 히어로, 별자리의 힘이란 것, 그게 너희들만의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말라고! 여자들의 것만도 아니라고!”
설마......?
포르치니는 힘을 모으듯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드러난 상반신, 등의 날개뼈 부근이 울룩불룩 솟았다.
“잘 봐라, 그리고 공포에 떨고 머리를 조아려라――이게 바로 닥터의 개조수술로 각성한, 별자리 ‘버섯자리’의 힘이다!”
우드득! 뿌득!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포르치니의 등에서 두 개의 근육질 팔이 돋아났다. 도합 네 개의 팔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버섯 손가락을 꿈틀거린다.
그러나 스페이드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대치했다.
“......역겨운 외견이네. 고작해야 그 정도로 기고만장한 거야?”
포르치니는 그런 스페이드에게 호기롭게 외쳤다.
“하하, 히어로 따위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 여기서 네년을 쓰러뜨리면 분명 괜찮은 빌런 조직에서 스카우트해 주겠지... 이 몸이야말로 차세대 ‘최강최악’의 빌런이 될 것이야! 와라, 히어로! 필살의 【포르치니 스멜】로 앙앙거리게 만들어주지!”
‘괜찮은 느낌이네.’
스페이드와 빌런 포르치니, 두 사람이 대치한 장소를 엿보며, 13호도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버섯모양의 두건을 쓰고, 옷도 조금 전까지 입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체형을 숨기는 후드티를 입고 있다.
도로시의 말에 따르면 ‘다양한 조건, 다양한 상황에서의 세뇌’라는 게 필요한 모양이다. 예를 들면 저번의 도주극 뒤의 처벌 같은 건 상당히 좋게 작용한 것 같다고 한다.
이번에 조성할 상황은 ‘패배 히어로 치욕 능욕’.
최근 스페이드는 13호에게 패배하면 ‘암시 때문’이라며 패배에 대한 의식이 낮아져 있으니, 다른 빌런을 이용하여 깊은 패배감을 재차 안겨주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의가 얼마나 얄팍한 건지 깨닫게 해준달까.”
그럼, 작전 개시다.
* * *
‘평소라면 기동성을 살려서 교란시키면서 일격...인데.’
스페이드의 기본적인 전투스타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란 후 틈을 찌르는 것으로, 예를 들면 전봇대를 박차고, 주변을 재빠르게 빙- 돌아 사각지대에서 일격을 날리면 대부분의 빌런은 따라오지 못하고 단번에 당한다.
‘아래가 신경 쓰여서... 그건 좀.’
종횡무진 돌아다니다 스커트가 뒤집어지기라도 하거나 아래에서 보인다고 생각하면 부끄럽다.
여대라곤 해도 남자 교직원도 있고, 카메라 같은 것도 있고....
“뭘 가만히 있는 거냐, 히어로! 먼저 간다!”
그렇다면 역시 일직선, 최단 최속으로 일격을 날리는 게 최선인가.
빌런 포르치니는 스페이드를 향해 두 쌍의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손의 손바닥이 기이하게 좌악 찢어져 열리면서 회색의 뽀얀 기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분출되었다.
“받아라, 내 필살의 【포르치니 스멜】! 미약이 섞인 정액향에 발정하면서 가버려라!”
콰아아아아아-!
연기는 스페이드가 선 도로 위를 일직선으로 메우며, 순식간에 스페이드를 뒤덮었다.
히어로도 어차피 여자, 이 능력에 당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액기스를 흘리며 절정에 몸을 떨 수 밖에 없다!
‘......이래서 팔이 두 개 생긴 걸로 그렇게 기고만장한 거야...? 두 손일 때보다 많이 쏘니까?’
그러나 정작 회색 연기 속에 갇힌 스페이드는 느긋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야외인데도 불구하고 이 연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데다, 어쩐지 피부에도 끈적끈적하게 붙어오는 느낌이라 기분 나빴다. 분출하는 손이 네 개나 되니 양이 어마어마해서, 앞뒤좌우가 보이지도 않고 속수무책으로 온 몸을 뒤덮어버렸다.
하지만 이 연기, 아무래도 직접 비공으로 흡수하지 않으면 크게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지금의 스페이드처럼, 숨을 참고 있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이대로 바람이 쓸어가길 기다린다... 는 것도 어려워보이지.’
오늘은 바람이 적다. 헤라클레스 자리의 힘을 받은 그녀는 1시간 정도라면 숨을 참을 수 있지만, 미묘하게 무거워보이는 이 연기가 가시길 기다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낭비다.
이러나 저러나 문제는 없다.
스페이드는 양 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게하하하하! 바보 같은 히어로년! 아무것도 못하겠지!”
자신만만하게 외치고는 있지만, 포르치니는 내심 쫄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히어로다. 거기다 A급 히어로 스페이드.
무수한 빌런들이 그녀의 손에 피투성이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난폭한 폭력에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연기도 어떤 정론도 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폭력의 화신. 심지어 그 옛날 최각최악이라 불렸던 어비스의 13호도 그녀의 손에 엉망진창으로 당하고 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가지고 있었다.
‘앗...... 이거어... 이상해애....’
‘아응... 몸이...... 뜨거워서... 졋습니다아... 우으응...♥’
그런거.
그런거그런거그런거!
그 잔혹무비하며 건강하고 당당한 히어로가 얼굴을 붉히고 쾌락에 젖어 애액을 흘리는 모습을! 음부에 손을 댄 채 몸을 비틀며 가버리는 모습을!
어쩌면 지금 내뿜은 포르치니 스멜의 연기가 걷히면, 히어로의 치태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내 버섯으로 엉망진창 괴롭혀주겠어... 크헤헤헤....’
포르치니가 음흉한 미소를 흘리던 그 때, 연기 너머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무시무시한 마력의 격류가 연기 너머에서 느껴졌다.
짜악-!
속을 울리는 손뼉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포르치니가 뿜어냈던 연기가 홍해바다처럼 좌우로 좌악 갈라졌다.
“무, 무슨...?!”
단순한 손뼉치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스페이드가 포르치니의 눈 앞까지 쇄도해있었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끝. 바라건대 이 주먹으로 적을 부수라】.”
포르치니의 눈앞에 다가온 스페이드의 오른 주먹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마력이 모여들었다. 세게 내리밟는 왼발을 중심으로 바닥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위험하다...!
포르치니는 반사적으로 두 쌍의 팔로 몸을 가렸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건 반사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포르치니를 올려보는 스페이드의 눈이, 반짝 빛났다.
“【파이어볼트】.”
붉은 빛의 궤적을 그리며, 스페이드의 주먹이 포르치니의 팔을 피해 번개 같은 속도로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커.....헉.”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일격이다. 나름 힘 조절은 했지만, 강화개조된 빌런이라도 한 방이면 기절시킬 힘이다.
스페이드는 승리를 확신하며 숨을 토해내는 빌런을 의기양양하게 올려다봤지만,
불룩-!
“어......?”
갑자기 포르치니의 몸이 풍선처럼 불룩 솟아올랐다. 스페이드의 능력이 일으킨 현상은 아니다.
설마, 함정?!
그 순간 이미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피할 시간도 뭔가 조치를 취할 여유도 없었다.
스페이드의 눈 앞에서, 버섯 빌런의 몸이 퍼엉――! 터지며, 아까보다 짙은 회색 연기를 흘뿌렸다.
눈 앞에서 갑작스런 폭발에 휘말리지 않게 몸을 강화하며 꼿꼿이 버틴 스페이드였지만, 연기를 마시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아, 안 돼... 마셔버렸어....’
깜짝 놀라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바람에, 연기가 폐부 깊숙한 곳에 들어온 게 느껴졌다.
온 몸이 근질거리고, 피가 폭주하는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몸이 이상한 것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