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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11 연약한 빌런에게 폭력 히어로는 위험하다(6) (52/271)



〈 52화 〉#11 연약한 빌런에게 폭력 히어로는 위험하다(6)

방금 그 목소리는 뭐지? 잘못 들은  아닌  같은데.


이상하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못 들었다. 아무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주변에 아무리 살펴봐도 자신을 제외한 사람은 없었다. 헛, 혹시 헛것이 들린 걸까. 애초에 어디서 들린거지? 이랬는데 알고보니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린 거면 진짜 현웃!

“여기요, 여기.”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눈을 돌리려던 코코는, 그제야 목소리가 자신의 발밑에서 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밑, 자신의 그림자에서 빼꼼히 고개만 내민 안경 낀 남자――빌런 조직 【어비스】의 참모가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림만 보면 호러다.
손에서 사탕이 툭, 떨어졌다.

“이 앵글 좋네요. 반바지라 속옷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힐끔 보이는  특히, 마음에 듭니다. 검은색이라니, 제 심금을 울리는 색상도 마음에 들어요. 아아, 젠장. 너무 기뻐. 하아,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뭐하고 계신지 물어도 될까요?”


“.................................................길을, 잃어서요. 헤헤헤....”


코코는 에헤헤, 웃어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발밑의 그림자가 확 솟아나 그녀를 덮쳤다.

* * *




“......어쩌지....”


【어비스】의 아지트에 남은 스페이드는 초조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아직 13호의 방에 남아있었다.


알몸이던 그녀는 대충 옷장을 뒤져 와이셔츠를 멋대로 꺼내 입은 뒤, 뭔가 약점을 잡을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방을 조사했다. 손목을 구속한 수갑의 열쇠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에 남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확인했지만, 소득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생긴 소득이라면 13호의 노트북 비밀번호가 ‘1313’이라는 것과 500GB의 방대한 AV 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지워버렸다. 변태 새끼.

그보다 문제가 생겼다.

아직 13호는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7번대의 누군가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그 사악한 빌런들의 마수(魔手)에 걸린 건 아닐까 걱정 됐다. 그렇게 간단히 당할 사람들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래도 역시 걱정된다. 애플도 클럽도 세뇌된 상황이니... 어쨌든 걱정이 깊다.


‘......안 돼.’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로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힐긋, 스페이드는 침대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침대 아래의 박스. 그 안에는 13호가 도로시와 함께 구매했던 각종 성인용품, 성기구들이 가득 들어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13호의 방을 조사하다 지쳐버린 스페이드는, 쉬는 겸 상자 안의 내용물을 잠깐 살펴봤다.  시점에서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살펴보면서, 어떤 건 단순히 모양만으로 어디에 사용하는지 짐작이 가고, 어떤 건 알쏭달쏭해서 동봉된 설명서를 보고 “과연!”하고 즐겁게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점차, 어떤 도구가 있는 걸까, 라는 호기심이 이건 어떻게 쓰는 걸까, 이걸 쓰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으로 바뀌었다. 이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니, 저도 모르게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해선 안 된다.

‘저걸 사용해서 ‘스스로 위로하고 싶어’라니, 그거 그냥 변태잖아. 개변태잖아!’


인정하는 순간, 뭔가 소중한 무언가가 무너져버릴  같은 기분!

“안 돼... 안 되는데....”

지금  시간도 7번대 사람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을지 모르는데, 자신은 태평하게 자위를 하고 있다니. 그것도 빌런의 거점에서. 맙소사, 그건 그냥 변태가 아니라 쓰레기다. 인간쓰레기.

――‘그럼 얼마든지 자위해~.’


환청과도 같이, 13호의 목소리가 머리 안에 울린다. 시끄러, 닥쳐. 그치만 알겠어요. 아니, ‘알겠어요’라니, 미쳤냐. 그런데 이거 설마 세뇌된 것 때문이야? 저것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이러는 거야?

스페이드는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가, 잠깐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고, 다시 도리도리 젓고, 다시 빼꼼 내용물을 보고, 슬쩍 하나를 집었다. 봉 형태의 바이브. 스위치를 넣으니, 우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 너머로 자극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음순에 대면 음핵과 함께 부드러운 진동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서에 쓰여 있다. 더군다나 몇 가지 혈 자리를 함께 자극해주니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과학적으로 증명한 장활한 설명이 덧붙었다.

건강.......

맞아, 건강 마사지 같은 거라면.

그러고 보면 자위는,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들었던 것도 같고... 그럼 딱히 야한 게 아니지 않나? 괜찮지 않을까? 응, 그럴 거야.


......아니더라도, 못 참겠다.


스페이드는 꿀꺽, 침을 삼키고, 상자 안을 뒤져 몇 가지 도구를 더 꺼냈다. 이미 눈이 반쯤 맛이 갔다. 광기와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본인은 알지 못했다.


“응.......”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스페이드는 속옷을 입지 않아 허전한 음부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살짝, 젖어있었다.

왜일까. 뭔가를 당한 것도 아닌데. 13호가 있는 것도 아닌데.

“.......”

스페이드는 말 없이 와이셔츠의 앞을 풀어, 자신의 모양 좋은 가슴을 내려봤다.

......그냥 도구를 쓰면, 아프겠지.

다시 상자를 뒤져, 찾고 있던 걸 꺼냈다. 러브젤. 동그란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손가락에 살짝 부어봤다. 미끈한 것 같기도 하고, 끈적한 것 같기도 하다. 손가락을 적신 번들거리는 액체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 그대로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섬뜩했다.


다시 한번 손에 젤을 부었다. 이번엔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에 부어 가슴에 문질렀다.

“하으.......”


자신은 뭘 하는 걸까... 깊은 회의감이 들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양쪽 가슴에 젤을 다 묻히고, 어딘지 부족한 기분이 들어 유두를 만져봤다. 유두 가운데의 살짝 패인 홈을 손톱 끝으로 살살 긁어보고, 그대로 유두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 돌리듯 쓰다듬었다.


“~~~~......!”

고개를 위로 향하며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젤이 잔뜩 묻은 손이 가슴에서 옆구리, 배꼽과 하복부로 미끄러지며, 비부(秘部)에 닿았다.

하아...... 미끈미끈... 차가워.......

손가락을 넣어 질 근처를 자극하고, 특별히 음핵 위를 공들여 문지르며 젤을 발랐다. 무의식중에 움직이는 허리와 다리는, 남자가 본다면 누구나  같은 욕정을 품게 될 정도로 요염했다. 마무리하듯 손가락 끝을 질 안에 넣어보자, 찌걱... 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나, 젖었구나....

스페이드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 그럼 뭐부터 써볼까....


침대 위에 꺼내 놓은 것 중, 먼저 유두를 자극하는 쪽을 골랐다. 유두에 부착하면, 유두를 흡착하며 안에 있는 브러쉬가 자극한다고 설명서에는 써져있었다.


“......신기해.”

생각보다 사용법 자체는 심플해서, 단순히 유두에 부착하고 전원을 넣으면 끝이었다. 양쪽에 부착하고 제일 약한 레벨로 스위치를 넣는다.


위이이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유두가 서서히 빨려가는  느껴졌다. 동시에 흡착구 안의 빳빳한 털이 빙글빙글 돌며 유두를 쓸었다.


“~~~~~읏...!”

떨리는 양가슴을 손바닥으로 아래에서 들어 올리자, 어쩐지 조금 더 자극이 강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유두의 자극을 즐긴 것도 잠시, 스페이드는 달콤한 한숨과 함께 유두 흡입기를 떼어냈다.


......하아... 하....

머리가 멍하다. 자신이 왜 이걸 하고 있는 걸까. 점점 자신이란 사람이 멀어져가는 기분이다.


손으로 침대 위를 더듬어, 다음 도구를 집었다. 빨판이 달린 동그란 도구다. 이건 어디에 쓰는 걸까...?




하앙...... 흣...... 아앙....

수 차례 도구를 바꾼 스페이드는, 이제는 마지막 성기구를 시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머나이저(Womanizer). 본래는 클리토리스를 흡입하여 자극하는  기본형이지만, 지금 사용하는 건 그와 동시에 질에 삽입해 진동하는 바이브레이터가 달린 일체형이었다.


한쪽 끝을 질에 삽입하고, 원통형 부분을 클리토리스에 누르듯 댄 채, 스페이드는 밀려오는 쾌락의 파도에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유방과 유두를 만지고 꼭 죄며 자극하고 있다.

보지와 허벅지는 흘러나온 애액으로 번들번들했다.


“히잇...... 흣~~~~~~~~?!”


스페이드는 얼굴을 침대에 묻으며, 새우처럼 등을 굽혔다. 온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왈칵 솟았다. 보지에서 애액이 뚝, 뚝, 방울져 떨어졌다.


가버렸다, 자위로.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뭘  거람, 나는.”

우머나이저의 스위치를 끄고, 침대 위에 대충 던져놨다. 스페이드는 절정 후의 나른한 권태감에 휩싸인 채, 침대에 몸을 파묻고 홀로 중얼거렸다.


“이상해... 정말.”

그녀도 자위 정도는 한다. 일주일에  번 정도.

하지만 적어도 일이 있을 때 눈치 없게 하거나 하진 않는다. 자위를 못하면  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욕에 굶주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할까. 자위 후의 절정도 이전보다 한층 격렬한  같았다.

자위를 하게 된 건 13호의 명령이라지만, 성욕에 한껏 달아오르고 민감하게 느껴버리게  이 몸은....


분하게 생각하면서도, 스페이드는 침대에 누운 채 아무 생각 없이 굴러다니던 바이브레이터를 들었다. 스위치를 넣자, 부우우웅- 소리를 내며 진동한다.


‘......이왕 한 거,   더 할까....’

아직, 부족하다. 애초에 13호와 섹스를 하게 되면, 단순히 한  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애초에 도구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다.

한 번 더 할지 말지, 스페이드가 손에 든 바이브레이터를 켰다 껐다 하며 고민하는데,

별안간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

13호가 돌아왔나?!

스페이드는 황급히 도구들을 던지듯 박스 안에 집어넣고 허둥지둥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 옷을 입어야, 아니, 그 전에 씻어야, 나 냄새 나면 어떡하지, 13호 그 자식 이걸로 엄청 트집잡으면서 놀릴텐데... 다급한 순간 몇 개나 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는지.


그러다 별안간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3호가... 노크?’

자기 방인데 노크를 한다고? 그럴 리가 없지 않아? 스페이드가 안에 있어서 노크를 했다? 매일 같이 알몸으로 만들고 희롱하는 녀석이 그런 매너를 챙길 리가 없다. 13호가 아니라면 다른 어비스의 멤버들일 텐데, 참모는 13호와 같이 나갔고 도로시는 마스터키를 이용해 어디든 맘대로 드나든다. 대장에 이르러선 언제나 쾅쾅쾅쾅 시끄럽게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노크소리?

스페이드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간이 주방 쪽에 대충 굴러다니던 후라이팬을 집어들었다. 혹시 모를 상황엔 이걸로 확... 그렇게 생각하며  앞에 다가가, 현관문의 도어뷰에 눈을 댔다.


그리고는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있는 거죠, 맞죠, 스페이드 언니... 하아, 귀찮아....』

문 앞에 서있던 사람은 7번대의 서브 멤버이자, C급 히어로 ‘아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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