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11 연약한 빌런에게 폭력 히어로는 위험하다(2)
“......얘, 뭐냐.”
“그러게 말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창고의 밖,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폐건물 구석에 숨어 있던 13호와 참모는 태블릿에 띄운 감시 영상을 얼이 빠진 채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에 나오는 건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참모의 인형 대군. 능력의 유용성에 비해 마력 용량이 적은 참모지만, 클럽과의 잦은 교합으로 상당한 양의 마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체크라는 난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비축한 마력을 한계까지 동원해 인형들을 소환했다. 그 결과가 이 어마어마한 양의 인형 대군이고, 인형의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착실히 소환에 소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감시 영상 너머에서, 인형들이 노리고 있는 목표물――체크는 여전히 건재한 채, 밀려오는 인형들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리치고 있다.
물리친다는 말도 너무 약하다.
압도하고 있다.
한 번 봉이 휘둘러지면 대여섯의 인형이 산산조각 부서지고, 겨우 몰아넣었다 싶으면 바닥에 세운 봉을 타고 올라가 절묘한 발놀림으로 인형들을 쪼개버린다. 방금 이쪽에서 보였지만, 어느 순간엔 저쪽에 번쩍 나타나있고,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형들이 날아가고 산산조각 부서졌다.
버림말 같은 느낌으로 사각지대, 컨테이너 위에서 덮치듯 뛰어내린 인형들도, 보지도 않고 봉을 휘둘러 공중에서 날려버렸다. 말 그대로 전후좌우상하 360도 모든 각도에 대한 방비가 완벽하다.
정말이지 말도 안 돼.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휴대폰 단말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광소(狂笑). 심지어 저 녀석,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다. 미치겠다. 한 손을 봉인한 채로 싸운다니, 찐따 냄새 나는 소설의 힘순찐도 아니고.
아니, 쓸데 없는 생각이다. 눈 앞의 광경이 너무 터무니 없어서 한 순간 정신을 놓을 뻔 했다.
“참모.”
“네.”
“우리 작전, 괜찮을까?”
참모가 자신 없다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우리의 책략은 상대가 사람일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상대가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라면 좀 그렇다. 좀 많이 곤란하다.
좋아. 그렇다면.
“도망치자.”
“안 됩니다.”
참모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
“저 괴물 같은 아가씨를 붙잡을 찬스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대로 아무 것도 못하고 아라 양을 빼앗긴다면 더는 체크 양을 집중 마크 할 틈이 없습니다.”
세뇌된 애플로 그 대장님을 떼어놓았고, 서브멤버 두 사람은 없으며 체크 한 사람만 노릴 수 있는 기회. 거기다 단단하게 구속된 클럽을 구출하기 위해선 단 한 순간이라도 틈이 생긴다.
참모의 말대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거다.
저 가공할 무력에는 솔직히 오금이 저리지만, 좋아, 용기를 내자.
거기다 생각해보면 여기는 창고에서 몇 백m는 떨어져 있다. 이대로 저 여자의 눈 앞에 나타날 것도 아니고, 실패하더라도 도망칠 시간 정도는 있을 것이다.
......있겠지? 왠지 저 괴물은 뭐든 가능할 것 같아서 무서운데.
“――만, 그런 만큼 변수를 가능한 없애기 위해, 작전을 좀 변경해야겠습니다.”
“응? 뭐? 변경?”
“예.”
참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산뜻하게 말했다.
“계획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13호님께서 직접 나타나 주셔야겠습니다. 체크 양의 앞에.”
응.
간결하게 말하면 자살하라는 거네.
* * *
“콜록, 콜록... 에휴, 먼지야.”
손을 휘휘 저어 먼지 섞인 공기를 밀어내며, 체크는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창고의 3분의 2쯤을 독파할 즈음에는 더 이상 인형이 나타나지 않았다. 상대쪽 마력이 다했거나, 이 이상 할 필요를 못 느꼈거나. 그렇게나 달려들었는데도 체크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으니 그렇게 판단할 만도 했다.
‘몇백 개 밖에 못 부쉈는데.’
체크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계속해서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체크는 정의를 사랑한다. 히어로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지만, 정의를 사랑하는 만큼 싸움도 좋아한다.
그래서 빌런 사냥을 좋아한다. 정의구현과 동시에 원하던 싸움 욕구도 맘껏 발할 수 있으니.
‘싸우고 나니까 만두 먹고 싶다. 깨물면 뜨거운 국물이 흘러 나오는 딤섬....’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다음 순간 눈에 들어온 장면에, 체크는 봉 끝을 바닥에 대고, 입을 다문 채 부들부들 떨었다.
“우...... 흐우우.......”
창고의 가장 안쪽에 클럽이 구속되어 있었다.
구속되어 있다고는 들었다. 다만 지금까지 사진을 보내준 것처럼, 대충 겉치레 식으로 묶어놓거나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흐으우우... 흐읍...?! 크우우우우.......”
클럽은 검은 천으로 눈 앞이 가려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체크가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입에는 볼개그가 물려져 있다.
구속복을 연상케하는, 면적이 적은 새카만 가죽제 의상. 도착적인 느낌의 본디지 의상이 입혀진 클럽은, 겨드랑이를 드러낸 채 뒤로 돌려진 손목은 등 뒤의 봉에 밧줄로 묶여져 있었다. 다만 그 위치가 낮아서, 다리는 음부가 보이도록 수치스럽게 벌려져있다. 무릎을 접은 채로 묶어놔 발버둥도 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더해서 본디지 의상은 의복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듯, 유두도 보지도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러난 유두에는 로터가 테이프로 붙여지고, 보지에는 바닥에 고정된 딜도가 꽂혀있어, 연신 위이잉- 소리는 기계음과 함께 클럽의 질 내를 휘젓고 있었다.
“크우우으~~~~~응!”
바로 앞에 체크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클럽은 꼴사납게 조수를 뿜으며 절정에 달했다.
이미 바닥은 흘러넘친 애액과 수 차례 조수를 뿜은 흔적으로 질척하게 젖어있었다....
* * *
뿌드드드드득.
체크는 부서질 기세로 이를 갈았다. 늘 가벼운 느낌으로 설렁설렁 사는 그녀의 마음에, 지옥의 업화와도 같은 맹렬한 분노의 불길이 차오른다.
감히, 내 후배에게, 이따위 짓을......?
봉 끝이 닿은 바닥이, 방사형으로 쩌적- 금이 갔다. 내리친 것도 아닌 단순히 닿아있을 뿐인데도.
분노한다.
열이 받는다.
다, 깨부수고 싶다...!
‘아, 다 쳐죽여버리고 싶데이. 어비스, 그 개새끼들.’
“클럽, 지금 풀어줄테니 기다리라.”
“흡.......”
들렸는지 어땠는지, 클럽은 딜도의 움직임에 맞춰 꾸물꾸물 허리를 떨 뿐이다.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하며 클럽에게 가까이 다가가, 먼저 안대와 볼개그를 풀어주었다.
“하아...... 하... 체... 체크 씨...?”
“괜찮나? 고생했데이. 지금 바로 풀어줄테니께.”
“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먼저 유두에 붙은 로터를 떼어내고, 바닥에 고정된 딜도를 클럽의 음부에서 뽑아냈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딜도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움직이는 걸 보자니 기분히 묘했다.
“으응.......”
“아따, 교태부리는 게 암컷이구마.”
“체크 씨도... 심술쟁이.”
다음은 팔과 다리의 구속이다. 어느쪽을 먼저 할까 고민하다, 다리를 묶은 쪽을 먼저 풀기로 했다.
“잘 안 되네... 칼로 자를테니, 움직이지 말그레이.”
투둑.
단단하게 묶여있던 밧줄이었지만, 날에 마력을 담은 칼에 종잇장처럼 잘려나갔다.
이제 손목의 밧줄만 끊으면 된다. 뒤로 돌아가서 끊어버릴까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앞에서 자르기로 했다. 클럽의 위로 허리를 숙여, 손목의 밧줄에 칼을 가져다데려는데,
“체크 씨! 위에!”
......하긴, 그 놈들이 아무 것도 안 할 리가 없지.
최소한의 각도로 고개와 시선을 돌리니, 바로 위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인형의 무리가 보였다. 과연, 아까 그게 다가 아니었단 거구나. 몇백 개나 부쉈으니 이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한 걸지도.
인형의 손에 들린 것은 사람 배구공만한 크기의 둥근 물체. 저게 뭔지 어디에 쓰는 도구인지 판단하고 있을 틈은 없다.
“쓰레기들이.”
주먹으로 요격할까? 그러기엔 수가 많다. 거리를 둔 채로 커버하는 편이 유리하겠지. 그러려면 바닥에 내려놓은 봉을 이용하는 게 좋다. 봉을 집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상당히 높은 위치에서 낙하하는 인형들이 두 사람에게 도달하기까지 약 3초 정도로 보면 여유는 2하고 쩜 몇 초의 시간. 그 사이에 저 인형들을 요격해야한다.
뭐야, 충분하잖아.
퐁당-!
그렇게 생각하며 호기롭게 눈을 빛내는 순간, 발치에 묘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나 싶더니――무수한 동그란 구체가 그림자에서 튀어오르듯 솟아올랐다.
‘아래에서도?!’
“짜증나게!”
0.8초. 바닥을 구르던 봉을 발로 차올린다.
1.7초. 봉을 정확하게 휘둘러, 구체를 아래에서 때리듯 쳐올린다.
2.3초. 그녀에게 도달하려던 첫 번째 인형이, 봉의 끝에 찔려 다시 위로 떠오른다.
3.1초. 그 외의 인형들도, 조작하는 참모조차 인지하기도 전에 모두가 공중에 다시 떠올랐다.
3.7초――높이 떠오른 구체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스를 방출하며 일제히 터져나갔다.
“폭탄이었나.”
“우와아....”
클럽은 말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봤다. 역시,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정면에서 이런 사람을 누르려면 어느 정도의 능력이 필요한 걸까.
“깜짝 놀랐네. 클럽, 다친데는 없――”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를 때리는 고함소리.
허를 찌르듯, 새로이 그림자에서 솟아난 인영이 체크를 향해 덮쳐들었다. 나타난 것은 13호. 한 손에는 방금 것과 같은 폭탄을, 다른 한 손에는 무력화 시키기 위한 나이프를 들고 있다.
폭탄을 내치더라도 나이프가 있다. 나이프를 막더라도 폭탄이 터져버린다. 살상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 안에 든 게 마비가스 같은 거라면 맡게 되는 순간 체크의 패배다.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쓰러지더라도 아직 참모가 남아있으니까.
동반 K.O.를 각오한 희생의 일격.
“하.......”
연이어 이어진 기습에 허를 찔린 체크는, 덮쳐오는 13호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저 정도 신체능력과 반사신경이면 원래의 작전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니,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쐐기를 박을 수 있을 만한 요소를.”
“내가 그 쐐기란 거지?”
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크가 아직 밀려드는 인형들과 싸우던 즈음이다.
“아라 양의 구속을 풀려면 자연적으로 양손이 비게 될 겁니다. 쓰더라도 나이프 정도. 저 봉이 아니라면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인형들을 대처하긴 힘들테죠.”
하지만 천장에서 덮치는 걸로는 부족하다. 떨어져 내리는 인형은 단순하 페이크.
“주의가 위로 쏠린 순간 클럽의 그림자를 통해 폭탄 13개를 전송할 겁니다. 폭탄은 전송되고 4초 이내에 터지게 됩니다.”
“원래의 계산이면 이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상대가 ‘상식적인’ 범주 내였다면요.”
저 여자는 비상식과 부조리의 세계에 살고 있다. 단순한 상식적인 계산으로는 처치 불가능. 이런 똥겜이 어디에 있을까.
“13호님이었다면 어떨 것 같나요?”
“나? 연약한 나라면 저 인형들이 밀려들었을 때 이미 쪽도 못 쓰고 아작났을걸?”
“예전의 13호님을 말하는 겁니다.”
예전. 아직 내 별자리가 쓸데 없는 변덕을 부리지 않고, 마력을 쓸 수 있었을 때.
“내가 각성자가 된 건 25살 때. 각성자로서 산 시간은 비각성자로서 산 시간보다 짧아.”
보통 각성자들은 5~7세의 유아기 때 본인이 각성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정규 루트로 각성한 나는 아직 능력에 대한 이해가 적다.
“그래서요?”
“내 능력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지도 못했고, 갑작스런 상황에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어.”
“그렇군요.”
“체크라는 여자와 싸우면 이길지 질지 판단할 눈도 없어. 최강의 능력을 가졌다곤 해도 완전 풋내기야.”
“그렇죠.”
그런 내가 만약 이런 책략에 말려든다면, 무사할 확률은 대략적으로....
“아마 8할 정도? 확률로 무사할 걸.”
“과연, 그렇군요. 그렇네요. 그런가 보네요.”
참모는 시원스럽게 웃고는, 나를 체크의 앞에 던져버리기로 결정했다. 나쁜 새끼.
* * *
‘들어간다들어간다들어간다들어간다들어간다들어간다!!!’
폭탄과 인형을 공중으로 띄우기 위해 봉은 위로 향한 채다. 사방이 컨테이너로 둘러싸여 있으니, 폭탄이 나타나더라도 다른 방향이 아닌 위로 쳐올릴 거라던 참모의 계산 대로였다.
위를 향해 들어 올린 봉. 봉은 2미터 정도 되고, 거기다 양 팔을 위로 올린 자세, 이렇게 근접한 거리의 습격에는 대응하기 어렵겠지.
클럽의 그림자로 전이한 나는 체크의 코앞에 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봉보다도 가깝다. 이대로 팔을 뻗자.
좋아, 문제없다. 문제없어. 다음에는 이 특제 ‘세뇌가스탄’을 코앞에서 터뜨리기만 하면 된다. 좋아. 좋다. 아무 문제 없어.
“야아아아아아아아!”
“......시시하구마이.”
퍼억-!
복부를 때리는 통증에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무릎으로?! 그 상황에?! 어떻게 되먹은 반응속도야?!
“고작, 해야,”
손에 들려있던 ‘세뇌가스탄’이 휘둘러진 봉에 튕겨 날아갔다.
“이따위 새끼가, 내 심기를 건드려?!!”
그 뒤로는 샌드백 신세.
물 흐르듯 이리저리 휘둘러지는 봉에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았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려고 하면 다시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바람에 공중에 뜬 채로 온몸을 난타당한다. 뼈가 삐걱삐걱, 근육도 찢어버린 듯 무시무시한 통증이 구석구석 배어든다.
이야, 이거 그거지. 떡갈비 만들 때 찰지게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열심히 탁탁 두드렸던 기억이 나....
빠악-! 쿠웅!
마지막 일격이라는 듯 크게 휘둘러진 일격에,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처박혔다.
“흥, 역시 별것도 아니구마. 새끼야, 넌 우리 기지로 끌고 가서 또 허벌나게 패줄테니 각오하고 기다리그라.”
컨테이너 아래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않는 13호를 내려다보며, 체크가 기고만장하게 선언했다.
후배를 요꼴로 만든 쓰레기는 좀 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중국에서 직접 전수 받은 고문술로 눈물을 아주 그냥 쏘옥 빼주마. 으햐햐햐햐.
“체크 씨. 얼굴이 사악해 보여요....”
“......쫌 거시기했나?”
클럽의 구속을 마저 풀어주고, 이 민망한 차림 그대로 밖으로 데려갈 수는 없으니 일단 자신의 전투복 상의를 벗어 덮어주었다. 허벅지까지 덮는 걸 보면, 클럽의 몸집이 작아서 다행이다.
“......가슴, 헐렁하네요....”
“응?”
“아뇨...... 아무 것도.”
가슴 부근을 찰싹찰싹 두드리며 홀로 낙담하는 클럽. 이 고깃덩어리 쓸데없이 무겁기만 하고, 클럽 쪽이 귀여워서 좋다고 생각하는데.
체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 생각을 입에 담을 때마다 이 쪼그만 후배는 어째선지 화를 낸다. 일단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나저나 클럽만 구출할 생각이었는데 【어비스】의 핵심 잔당인 13호를 붙잡다니, 매우 기쁘다. 이 녀석을 쭉쭉 괴롭히면 머지 않아 스페이드도 구출해낼 수 있겠지. 아아, 좋다. 매우 기쁘다. 이 녀석을 어떻게 고문해서 어떻게 입을 열게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오싹오싹하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오늘 저녁은 군만두를 먹어야겠다.
“아.”
“어이쿠, 괜찮나?”
13호를 체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니, 클럽이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체크는 서둘러 쓰러지는 클럽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죄송합니다, 다리가 풀려서....”
“괜찮다. 그렇게 묶여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네. ......그런데 체크 씨, 살결이 좋네요. 매끈매끈하고, 부드럽고....”
“머야, 머야. 이상한데 만질라 하지 말그라. 나 예쁜 거 잘 안다.”
“이상한데 안 만져요... 팔만 조금 붙잡을 게요.”
“그래그래,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면야. 아니면 내가 업어주까?”
“아뇨, 여기면 돼요. 여기여야 해요. ......여기만 접촉할 수 있으니까.”
전투복 상의는 짙은 남색, 혹은 검은색의 손목까지 오는 디자인이다. 장갑까지 낀 체크는 그렇기 때문에 노출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지금은 상의를 벗어서, 민소매의 블라우스만 입은 채다. 덕분에 어깨 아래, 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드러난 팔을, 클럽은 팔짱을 끼듯, 혹은 뱀이 휘감듯 양 팔로 꼭 죄었다.
그리고 숨죽인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직접 접촉해야만 가능하거든요.”
“응?”
“【동조개시】.”
체크가 의아한 목소리를 내려던 순간,
클럽의 읊조림과 함께, 그녀의 시야가 뒤집히고 어지러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