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11 연약한 빌런에게 폭력 히어로는 위험하다(1)
오늘은 【어비스】 측에서 약속한, 클럽의 해방일이다.
오늘 해방하겠다고 약속했던 주제에 아무런 연락도 없어서 초조해하던 7번대 대원들이었지만, 어쨌든 당일에나마 연락이 왔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니,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만.
“왜 이렇게 늦은 시간을 고른 거지...?”
체크는 아몬드톡으로 날아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았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아니, 상대가 빌런 임을 감안하면 수상한 게 당연하다. 분명 뭔가 함정이 있을 게 빤하다.
‘내랑 대장이랑 두 명이면 무슨 함정이 있든 상관은 없겠다마는.’
무슨 꿍꿍이가 있든 정면에서 쳐부술 각오는 되어있다.
그래도 역시 께림칙한 느낌이....
손에 든 얇은 장갑을 매만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이게 경험에 의한 감인지 단순한 불안인지 판단해 본다.
음.
으음.
으으으으으으음...!
‘안 되긋다. 그런 쪽에 밝은 것도 아니고.’
책략이나 속임수 같은 것에 약한 체크다. 남들은 능력이나 전투능력만으론 대장급이네 뭐네 하지만, 넓게 보는 시야도 없고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신중함도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넘기는 식이라, 분명 언젠가 한 번 크게 데일 것 같다고 어렴풋이 생각할 정도다. 뭐, 지금까진 위협적인 상대를 만난 적이 없어서 어찌어찌 잘 풀렸었지만.
결론, 생각해봐야 의미가 없다.
마, 됐다.
어디 한 번 실력을 보자, 빌런 놈들......
“......만두 먹고 싶다.”
갑자기 만두가 땡기네. 마라탕도 먹고 싶다. 중국에 살았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거기 빌런들은 다들 센 주제에 바보들이어서 재밌었는데.
이렇게 된 거 오늘은 만두머리나 해야겠다. 흥흥.
* * *
“.......”
스페이드는 이불 속에서 잠에서 깼다.
뭐지, 언제 여기로 온 거지. 기절하기 전에는 딱딱한 목마 위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정신이 점점 맑아질수록 혹사당한 음부나 엉덩이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끄으응......
폭신한 이불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 너머의 밖은, 밤인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여긴 어디지...?’
“일어났어?”
“13호.......”
능글능글하게 웃는 13호는, 포트기를 앞에 두고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근데 왜 저 녀석도 알몸이야.
“휴식시간이야. 이참에 쉬어둬. 차를 준비할테니까, 마시고. 내 방이니까 편하게 있어도 돼.”
“병 주고 약 주고야?”
“망가지지 않게 케어하는 것 뿐이야. 벌써 망가지면 재미 없어.”
“.......”
아직도 더 하겠다는 걸까. 물론 얼마든지 하라고 스스로 말한데다가, 각오는 되어 있지만....
뭐에 반응한 걸까, 음부가 살짝 욱신거렸지만 스페이드는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하도 희롱당해서 그런지 몸이 자꾸 이상하게 반응한다.
13호가 내민 컵을 받아, 홀짝이며 마셨다. 내용물은 자잘한 견과류가 떠있는 희멀건 액체. 호두 율무차라고 하는데, 냄새도 맛도 고소하다. 무엇보다 지친 몸에 따뜻한 게 들어오니 좋았다.
멍하니 따뜻한 차를 홀짝이고 있자니, 13호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뭘 보는 거야? 하고 생각했더니 가슴을 보고 있다. 슬금슬금 이불을 끌어올려 상반신을 가렸다.
“......변태새끼.”
“슬슬 익숙해질 때 아냐?”
“이런 거 익숙해지는 순간, 내 안에 뭔가가 무너질 걸.”
“즉, 무너지면 거리낌 없이 보여줄 거란 말이네.”
“뭔 소리야?”
“다른 쪽 아가씨 얘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변태는... 그렇게 생각하다, 눈을 크게 떴다.
“맞아, 클럽은?!”
“어떻게 됐을까.”
“그 애한테 손대면 가만 안 둬!”
“......이제와서는 너무 늦었지.”
13호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하고, 스페이드의 눈 앞에 내밀었다.
켜진 것은 동영상.
그리고 동영상에 찍힌 건――클럽이었다.
[하아...... 읍...... 하...... 자지님...... 사랑해요....]
마력을 제한하는 수갑조차도 차지 않은 알몸에, 목에는 개목걸이 같은 초커가 걸려있다. 초커에서 이어진 목줄을 손에 들고 있는 건 13호. 클럽의 아래에선 참모로 보이는 인물이 클럽의 음부를 향해 페니스를 세우고 있었다. 클럽은 자기 아래의 페니스를 자극하듯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며, 동시에 13호의 음경과 음낭을 만지고 빨며 봉사하고 있었다.
[히잉......! 히읏......! 하으.....!]
[클럽, 좀 더 힘내서 빨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으... 죄송합니다아...... 열시미 하겠습니다..... 히그읏...!]
두 남성에게 봉사하는 그녀는 확실하게 지쳐보였지만, 그 상기된 뺨은 봉사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전히 암캐, 혹은 숙련된 창녀의 그것이다.
맙소사......!
“클럽한테... 클럽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7번대로 돌려보내기 전 마지막 상품 검사. 하자가 있어서 중간에 반품되는 것도 그렇잖아? A/S를 해주기도 어려우니까.”
“사람을 물건 취급하지 마! 그리고, 그리고... 클럽은, 이렇지 않았는데......”
“네가 목마 위에서 고문 받는 걸 보고, 완전히 무너져버렸어. 어제 탈출 계획을 발안한 것도 클럽이고, 계획이 새어나간 것도 클럽이니까. 죄책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그런...... 그런 거...! 거기다 이런 취급이라니, 너무하잖아...!”
“뭐야, 이런 것도 각오는 돼 있던 거잖아? 빌런에게 붙잡힌 히어로는 도구 취급 당해도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스페이드는 이를 뿌득 갈았다. 분하지만 그 말이 맞다. 빌런에게 패배한 히어로들이 다른 나라에 물건처럼 팔려나간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하아....... 13호님의 자지... 맛있어....... 참모님의 자지...... 뜨거워...... 하아....]
[기뻐보이네요, 아라 양.]
[기뻐요...... 클럽은 지금 행복해요오.......]
영상 속의 클럽은, 망가진 인형처럼 반복해서 기쁨을 표현했다. 그렇게나 경멸하던 빌런들을 상대로 봉사하며, 활홍경에 빠진 얼굴로.
......그렇게, 기쁜 걸까.
스페이드는 무심코 꼴깍 침을 삼켰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저항했다.
“용서 안 해...! 너희들, 절대로 그냥 안 둬......!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거야...!”
“그냥 안 둔다니, 어쩔 건데?”
“목을 물어뜯어서 죽여버리겠어!”
“해 봐.”
13호는 “자.”라며 고개를 쭉 빼고, 스페이드의 눈 앞에 내밀었다. 여성과는 다른, 굴곡진 목.
읏.......
바로 눈 앞에 증오스런 적의 목이 들이밀어 졌는데도, 소중한 후배를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만든 적이 앞에 두고도,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참을 수 없는 분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 얼굴, 취향이야. 분해 보이는 게.”
“너 따위......!”
“참을 수가 없네.”
스페이드의 머리를 억지로 붙들어, 입을 맞추며 범한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탐하듯, 저항하는 입술을 혀로 비집어 열고 잇몸을 핥았다. 암시 때문인지 지금까지의 조교 때문인지, 몸은 거스르지 못하고 입을 열어, 13호의 혀를 맞아들였다. 스페이드의 손에 들린 잔이 떨어지고 내용물이 침대를 적셨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으.......”
13호의 몸을 밀어내려는 그녀의 저항도 헛되고, 13호는 거칠게 손을 들어 스페이드의 가슴을 주물렀다. 민감해진 유두는 이미 딱딱하게 발기해 있다.
분해.
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분해......!
스페이드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조차 13호에게는 가학심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조미료가 되었다....
‘사랑스럽네.’
우연찮게도, 참모가 클럽을 향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13호도 이 순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이미 몇 번이고, 어렴풋이 느껴왔던 마음이다.
어쩔 수 없다. 이 자리에 있는게 13호가 아닌 어떤 남자라도 똑같을 것이다.
당당하고, 꺾이지 않고, 아름답고, 저항하며, 때론 절망하는 당찬 이 히어로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입을 범할수록, 모양 좋은 가슴을 주무를수록 스페이드의 몸에서 힘이 차츰 빠져갔다. 바동거리며 발버둥치던 팔다리도 이미 오래 전에 체념한 듯 늘어뜨린 채다.
굉장히 오랜 시간의 키스 끝에, 13호는 천천히 얼굴을 떼었다.
눈에 들어온 스페이드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눈에서는 몇 줄기나 되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뺨은 약간 상기 돼 있다.
그러나 멍한 것도 잠깐, 스페이드는 다시금 눈에 힘을 주고, 13호를 노려봤다.
이 상황에 와서도 아직도 저런 눈을 하는 거야?
아직도 이렇게 굳세게 있을 수 있는 거야?
대단해...!
“뭘, 쳐 웃고 자빠졌어...!”
스페이드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아, 이런. 웃고 있었나. 하지만 그녀의 약간 잠긴, 분한 목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그럼 좀 더 쉬고 있어. 테이블 위에 만들어 온 먹거리 올려뒀으니까 챙겨 먹고. 고기는 남기지 말고 먹어. 체력 보충도 해야될 테고, 분하고 슬플 때는 일단 고기가 최고니까.”
“......너, 자잘한 거 챙기는 게 아줌마 같아....”
모질게 괴롭힌다 싶다가도 챙길 때는 온갖 오지랖을 다 부리면서 챙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스페이드도 살짝 독기가 빠져버렸다.
13호가 겉옷을 챙기고 현관으로 향했다. 나가려는 걸까?
“어디 가?”
“클럽 돌려주러.”
“물건 취급 하지 말라고!”
“알겠어, 알겠다고. 아까 말 심하게 했던 것도 사과할게. 충격을 주려고 일부러 세게 말한 것뿐이야. 됐지?”
“......그리고, 너희,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지? 클럽을 해방하고 끝낼 생각은 없지? ......애초에, 클럽을 해방할 생각도 없는 거 아냐?”
13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흐음? 뭔가 감을 잡았나?
“애플이 세뇌 됐어도... 체크 씨도, 라헤 대장도 너희 뜻대론 안 될 거야. 다른 두 사람도... 너희 따위한테, 당할 만큼 무르지 않으니까...!”
“너흰 물러서 잡혔단 거야? 은근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낮구만.”
“으...! 짜증나!”
“그리고, 애플 하나로는 안 될 건 알아. 그러기 위해 클럽을 철저히 세뇌한 거니까.”
“흥. 허를 찌를 생각이어도 소용없을 거라니까? 체크 씨와 대장이 있는 한, 무적이니까.”
“그거야 보면 알겠지.”
13호가 씨익 미소짓자, 스페이드는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우리는 체크를 함락할 거다. 기대하면서 기다리라고.”
당당한 선언을 끝으로, 13호는 밖으로 나갔다. 씨이...... 체크 씨든 대장이든 좋으니까 저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줬으면 좋겠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렇게 생각하자니, 별안간 문이 다시 열리고 13호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뭐야? 뭐 잊은 거라도 있나?
“스페이드, 거기 침대 아래 좀 봐줄래? 왼쪽에.”
“아래?”
13호의 지시대로 살펴보니, 웬 상자가 있었다. 열어보니 나타난 건 딜도나 바이브레이터를 비롯한 각종 성기구들.
“적당히 골라놨으니까, 나 없어서 외로우면 그걸로 위로해도 돼. 이 방 방음은 잘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아, 거기 옆에 있는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전원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녹화는 안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진짜로. 응. 그럼 얼마든지 자위해~!”
“할까보냐앗~~~~~!!!!”
빼액 소리 지르는 스페이드를 뒤로하고, 13호는 이번에야말로 현관으로 향했다.
자, 다음은 체크 차롄데, 과연 성공할 수 있으려나....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불안한데.......
* * *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다가 가까우니 그럴 만도 하려나.
“보내준 위치데이터로는 여기인데, 그 문디 놈들은 으디 있으려나?”
휴대폰과 주변을 번갈아 살펴보며, 체크는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잘 모르는 장소에선 길 찾는 것만 해도 일이다.
‘원래 혼자 올 생각은 없었는데.’
본래라면 라헤 대장과 체크, 두 사람이 함께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비겁한 빌런 조직이 순순히 클럽을 해방해 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저쪽에서 장소를 지정한 것부터가 ‘함정’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렇기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찾아오려고 했던 건데....
――‘죄송합니다, 체크 씨. 라헤 대장님은 그 시간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하셔서....’
――‘체크 씨의 실력을 믿고 있으니, 혼자 다녀오셔도 괜찮을 거라고 하시네요.’
짐짓 미안하다는 듯 애플이 전해주었다. 결국 대장은 오지 못한다나 보다.
‘대장급은 바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약간 걱정은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빌런은 많고 히어로는 적으니까.
그래도 혼자라니.
‘우햐아... 적어도 서브 멤버 두 사람이라도 와줬으면 든든했을 텐데.’
두 사람도 임무 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애플은 전투계가 아니니 애초에 논외. ......하아, 외롭다.
이렇게 되면 텐션이 낮아질 수 밖에 없잖아. 세상은 나한테 왜 이렇게 가혹한 거야?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면 돼?
하아...... 만두 먹고 싶다. 고기가 꽉꽉 들어찬 소룡포 먹고 싶어.
속으로 푸념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니, 새카만 전투복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폰이 부우웅- 울렸다.
어비스의 아톡(아몬드톡)이었다.
[눈앞에 있는 창고다. 안으로 들어와라.]
체크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휴대폰 화면을 터치했다.
[니가 뭔데 명령이가. 거기다 반말? 말이 짧다? 뒤져볼래?]
[눈앞에 있는 창고입니다. 부디 조심히 들어와 주세요.]
쯧, 별것도 아닌 게.
어디 보자, 가지고 온 장비는...... 사이즈가 다른 단검이 둘. 쌍절곤이 하나. 장갑 한 쌍. 분리형 봉이 하나. 투척용 침이 열다섯. 너클과 다섯 종의 암기류.
충분한가?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칠 정도로 넓은 창고는 무수한 컨테이너로 가득한 미로 같은 느낌이었다. 컨테이너가 이렇게 많이 있는데도 사용하지는 않는 듯, 뽀얀 먼지가 쌓여있었다.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고민하자니 다시금 휴대폰이 부우웅- 울렸다. 이번에는 아톡이 아니라 전화다.
“전화 받았데~이.”
[히어로 체크지? 놀라울 정도로 가볍구만. 적진에 들어와 있다는 자각은 있어?]
“말이 또 짧다?”
[......자각은 있으신가요. 에에잇, 적한테 굳이 존댓말 할 필요는 없잖아! 참모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내사 한 대 때리면 될 거 두 세 대 때리는 정도로 바뀔 뿐이다. 아, 네들 지금 나 보고 인나?”
타이밍 맞춰서 전화가 걸려오는 거 보면 감시카메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단 거겠지. 그렇게 판단한 체크는,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로 척척 걸어갔다.
휴대폰을 들지 않은 손과 입을 능숙하게 사용해, 장갑을 낀다.
[......? 뭘 하려는 거야?]
“그냥, 좀.”
가볍게 심호흡. 허리를 돌리고 장갑을 낀 주먹을 뒤로 가볍게 당긴다 싶더니, 그대로 컨테이너 벽을 향해 내질렀다.
콰광-!
마치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 동시에 체크의 주먹에 닿은 컨테이너가 반쯤 종잇장처럼 우그러지고, 중앙부는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다. 심지어 잠깐 공중에 붕 떴다가 내려앉는 바람에 위치도 1미터 가량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광경을, 카메라의 영상을 통해 13호와 참모도 똑똑히 목도했다. 둘 다 입이 떡 벌어져 닫힐 줄을 몰랐다.
“마, 어차피 두 대도 못 버틸 것 같으니께. 말투가 어떻든 상관 읎다.”
지금부터라도 경어를 쓸까, 13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일단 클럽은 거기 창고 안 쪽에 있어. 묶어놨으니 알아서 찾아서 데려가.]
“불친절 하구마. 기껏 여기까지 행차하셨는데 마중 나올 생각도 없드나?”
[우린 애초에 그 창고에도 없어. 너 같은 괴물이랑 얼굴만 마주쳐도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거든.]
“어제 봤을 땐 쌩쌩하게 도망쳤던 거 같은데.”
[그 때의 나는 죽고 새로 태어났어. 여기 있는 건 13호 2세다.]
“치아라, 재미도 없는 농담을 씨부러싸나. 니 분명 인기 없을끼다.”
13호는 마음에 약간 데미지를 입었다. 조금은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응?”
안쪽이라고 하기에 무작정 걸어 나가던 체크의 앞에, 달각, 달각,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다가왔다.
재질을 알 수 없는 새카만 도기 인형들이었다.
관절 등을 쓸데없이 생동감 있게 재현한 인형들은, 세쌍이나 달린 손에 곤봉, 식칼 등 다양한 도구들을 든 채 흉흉한 기세로 다가왔다.
동시에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냥 데리러 오시는 건 재미 없을 것 같아서, 여흥거릴 준비해봤습니다. 부탁이니 적당히 틈을 봐서 쓰러져주시지요.]
자료대로면 어비스에는 13호 외에도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참모역을 맡은 남자였다. 이 인형도 참모의 능력이라던가.
“거, 참.......”
짊어지고 온 가방을 털썩 내려놓고, 안에서 단숨에 목표한 물건을 끄집어내었다.
찰칵, 찰칵.
꺼낸 것은 네 개의 원통형 곤봉. 네 개를 하나로 잇자, 하나의 긴 봉이 되었다.
체크는 다가오는 인형들을 바라보며 흉흉하게 웃더니,
“이런 거, 딱 내 취향이데이.”
손 안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봉을 빙빙 돌리며, 인형들을 향해 단숨에 쇄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