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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9 빌런과 히어로의 두근두근♥ 데이트(1) (39/271)



〈 39화 〉#9 빌런과 히어로의 두근두근♥ 데이트(1)

“영화라니, 그 개소리를 지껄이는 입은  입이냐?”

“남의 입을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지 말아줄래, 요 사이비 과학자.”

13호와 도로시가 뭔가 티격대격 싸우기 시작하자, 참모가 말리듯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긴, 최근에는 제대로 쉴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저기 있는 두 히어로 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름 즐거웠습니다만.”

“그 따위 감상 밖에 말하지 못하는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네요.”

“어라, 기분 나빴습니까 아라 양? 당신의 몸은 정말 달콤해서 맛보는 내내 질리지 않는다고요?”

“저는 먹을 것이...!”


벌컥 의자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클럽은, 한숨과 함께 도로 자리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해도 저 재수 없게 싱글거리는 미소를 지울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13호님, 쉬시는 겸에 보러 가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여자친구.”

“에?”


“여자친구랑 보러 가고 싶어.”


식탁 위에 한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13호는 억울하다는 듯이 식탁을 내리쳤다.

“영화보러 혼자 갈 순 없잖아! 여자친구랑 가고 싶다고! 귀여운 여자애랑 꽁냥거리면서, 팝콘도 서로 먹여주고! 같이 조잘조잘 영화 감상도 말해보고! 풋풋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단 말야! 그리고 끝에는 조금 야한 분위기에서 서로 몸을 접촉하고...! 이러저러한 전개를 바라!”

절규하듯 외치는 13호.

그런 13호를, 스페이드는 한껏 경멸을 담아 쳐다봐주었다.

“딱 봐도 인기 없는 남자의 질척질척 끔찍한 욕망이 눈에 보여... 쓰레기. 100번 정도 죽어버려.”

“스페이드 씨. 진실이란  가혹한 법이라고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조금쯤 배려해주는 편이....”


뭔가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것보다 영화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아쉽게도 13호에겐 현재 애인이 없다. 빌런 노릇을 하면서 일반 여성과 그런 관계가 되는 건 어렵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사내연애, 즉, 같은 어비스의 동료들일텐데....


“도로시, 나랑 같이.”


“영화따위 시시해서 안 봐. 그리고 연구하느라 바빠.”


“보스, 저랑 같이.”

“응?  좋은데, 이번에 새로 나온  <우리들의 사랑>이란 영화 보고 싶어.”


찾아보니 BL 영화였다. 포기했다.





“스페이드, 일어났냐? 이거 받아.”

“응?”

다음 날, 아침부터 방으로 찾아온 13호는, 스페이드에게 쇼핑백을 하나 건넸다. 안에 든 것은 옷.


무려 정상적인 옷이었다. 검은 치마에 리본이 달린 흰색 상의. 디자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취향이 눈에 보인다. 소녀소녀한 느낌이랄까.

징그러...... 역겨워........


“왜 바라는 대로 옷을 줘도 그런 눈으로 보는데?”

“‘저는 얌전하고 순진한 소녀소녀한 여자를 좋아합니다’라는 취향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잖아... 역겨운 녀석.”


“옷을 사줬는데 왜 그런 불평을 들어야하는 거야?! 경비도 아니고 자비를 털어서 산 건데!”


어제 입었던 메이드복은 녹아버렸으니, 지금은 와이셔츠 한 벌과 코스프레 의복 중에서 발굴해낸 검은 반바지만 입고 있다. 제대로  옷을 주면 고맙지.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가지?”

“왜. 갈아입으면 되지.”

“니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갈아입어!”

“옷 갈아입는 사이에 도망칠 수도 있으니 감시해야 해.”

거짓말. 빙글빙글 웃는 얼굴의 13호에게선 음흉한 속셈밖에 느껴지지 않는걸. 애초에 세뇌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스페이드는 13호를 노려봤지만, 결국 체념의 한숨과 함께 옷을 벗었다. 그래봤자 옷을 갈아입는 것뿐이다. 속옷은 벗을 필요 없으니....


“아.”


“응?”

“생각해보니까, 너 씻어야 하지 않냐? 잘됐네. 샤워해. 나도 해야겠다.”


죽여버리겠어.


스페이드는 이를 갈며 분노의 눈으로 쳐다봤지만, 결국엔 거역하지 못하고 함께 샤워를 하게 되었다. 쓰레기 자식.





질척거리며 달라붙은 13호에게 샤워 내내 희롱당했다. 약점인 목덜미를 자극하고, 온 몸의 성감대와 질을 손으로 애무 당해 가볍게 절정. 그 후에야 비로소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샤워 후엔 13호가 보는 앞에서 명령대로 과시하듯 천천히 옷을 입고, 함께 아지트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어비스】에 붙잡히고 나서 처음으로 하는 외출.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니 신선했다. 13호는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밖에 내보내 준 건 고마웠다.

“영화를  거야.”


고마움이 단숨에  사라졌다.

“......나랑?”


“응. 너랑.”

“왜 하필?”

“다른 여자들이 싫다고 하니까.”

“참모랑 가면 되잖아!”

“말했잖아. 여자친구랑 가고 싶다고. 그리고 참모는 보스가 끌고 갔고. 어제 말한 그 BL 영화를 보러간다더라. 클럽도 데려갔을걸.”

“난 네 여자친구가 아니거든?!”


“알아.”

그렇다면 왜! 스페이드가 항의하듯 바라보자, 13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내 여자친구인 척. 하루만 임시 여자친구야. ......다섯 살도 더 어린 여자애한테 부탁하는  좀 그렇다마는.”

 더 나이가 들면 별 생각 안 든다고 하지만, 한쪽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다른 한쪽은 초등학생, 한쪽이 대학생이었을 때 다른 한쪽은 중학생이었단 사실을 떠올리면 역시 떨떠름한 기분이 들  밖에 없다.


“그럼 스페이드, 갈까?”

“......진짜? 진짜로?”


――그리고, 현재로 돌아온다.

“왜 내가 빌런 따위의 여자친구 노릇을 해야하냐고~~~~~!”


울먹이며 외친 스페이드였지만, 결국엔 체념하고 홀로 중얼중얼 거리며 13호를 따라  수밖에 없었다. 세뇌된 자신은 결국 13호를 거스를 수 없었으니까.

* * *



“어쩐지 지하철은 신선하네.”

“여자친구 데리고 돌아다닐 거면 자차 정돈 이용하지 그래?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여자들은 걸어다니는 거 싫어하거든? 특히 사람 많은 곳은 더욱더. 그리고 길을 몰라 헤매거나 하는 것도 꼴불견일테고.”

“내 차는 네가 부쉈잖아. 한 달 전엔가.”

“그 때는 정말 기분 좋았지...♥ 차를 타고 도망치는 너를 지붕과 함께 짜부라트리려 했는데.”

살벌한 얘길 저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하다니.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거 진짜야?”

“응?”


“여자들은 걷는 거 싫어하고, 데이트를 할 거면 자차 이용하라는 거. 지하철 데이트 같은 것도 나름 좋다고 생각했는데....”


스페이드의 눈이 실망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여자에 따라 다르지. 그런데 남자들은 다 그런 사소한 망상 같은  하는 거야? 좀 더 의미 있는 쪽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주지 그래? 인기 없는 거 티내지 말고.”

“누, 누, 누, 누가 인기 없다는 건데?!”

“아, 그리고 솔직히 데이트 노하우라던가 데이트 스폿이라던가 데이트 플랜의 팁이라던가 이런저런게 많은데,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라면 뭐든 아무래도 좋은 법이야.”

“그렇구만....”

“...............그런데   지금 너한테 연애 조언을 해주고 있는 걸까.”


“오늘은 일단 여자친구니까, ‘오빠야♥’ 같은 호칭으로 불러주면... 어이쿠, 그 표정은 여자친구가  표정이 아니네. 응. 포기할게.”


“스페이드. 영화 보기 전에 뭐라도 먹자. 아침도  먹었고.”


“그럼 나 국밥 먹고 싶어.”

“나도 먹고 싶었어. 마음이 잘 맞네.”


“국밥 먹기 싫어졌어. 뭐든 좋으니 국밥 말고 다른거. 뭐든 좋으니 네가 먹고 싶지 않은 걸로 먹을래.”

“......마음이 맞는다는 게 그렇게 싫었던 거냐....”

실없는 대화와 함께 대강 식사를 마쳤다. 결국 메뉴는 국밥으로. 먹고 싶었긴 했지만 13호와 마음이 맞았다는 사실에 스페이드는 먹는 내내 뚱한 얼굴이었다. 국물도 남기지 않고  먹었지만.

“자, 스트로베리 스무디. 너 딸기 좋아하지?”


“......어떻게 아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준 거야. 섹스하면서 이거저거 물어봤거든. 기억 못 하나 보네.”


“그딴  기억하지마!”

근처의 커피숍에서 간단히 마실 것을 마시고 난 후,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영화관은 13호가 테러를 하고 클럽이 붙잡혔었던, 그 백화점의 제일 마지막 층에 있는 그 영화관이다. 장소 초이스에 악의를 느낀다.


“그래서, 무슨 영화 볼 거야?”


“네가 보고 싶은 거로 골라. 뭐든 괜찮으니까. ...BL은 빼고.”

13호는 화려하게 광고되고 있는 <우리들의 사랑>을 죽은 눈으로 쳐다봤다. 보스라던 여자는 참모랑 클럽을 끌고 저걸 본다고 했었지. 참모라는 사람도 고생이네. 클럽은... 좋아할 것 같다. 저번에도 스페이드에게 ‘이 웹소설 추천이요!’라고 하면서 알려준 게 BL이었으니까.


어쨌든 스페이드는 예기치 못하게 영화선택권을 가지게 되었다.

‘재미없게 엄~청 지루한 로맨스물 같은  고를까? 아니,  녀석 스릴러나 공포에 약할 수도 있어.  튀기는 걸 못 본다던지. 시험해  가치는 있는――’

스페이드의 눈에 ‘그게’ 들어왔다. 무심코 뚫어져라 쳐다보고 말았지만,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싫다, 이 녀석한테 취미를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이건 좀.......


“이거 보고 싶은 거야?”


그러나 잠깐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13호가 가까이 다가왔다.

“엘즈니 신작이네...... 너, 애니메이션 좋아해?”

엘즈니는 초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엘즈니의 작품이라면 영화를 안 보는 사람이라도 이름만 들어도 ‘아아, 그거’라는 식으로 다 안다.


“아, 아니야! 엘즈니라니, 어, 어린애 같고....”


“? 엘즈니 좋아하는  어린애 같은가? 나는 좋아하는데.”


“좋아해?!”

무심코, 그런 질문이 막지 못하고 입을 뚫고 나와버렸다. 스페이드는 서둘러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되돌리지 못한다.

“응. 좋아해. 이 참에 이거나 보자.”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보게 될 영화가 결정되었다.




영화 상영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13호는 잠깐 돌아다녀 보자고 제안했다.  참,  녀석이랑 뭐하면서 돌아다니란 건지. 후딱 영화만 보고 돌아가고 싶은데.

‘......응? 뭐지?’


문득 스페이드는 의문을 느꼈다.

......그래,  녀석, 이상하다. 지금까지  다른 일이 없어서 이상하다. 이 녀석이 이상하지 않은  이상하다!


이 녀석이라면 분명 영화관까지 오는 길에, 열댓번은 성희롱을 했을 텐데!

‘이 녀석이 정상이라니, 무조건 이상해!’

여러모로 실례되는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봐온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정상이라면 빌런  따위 할 일도 없고, 자기를 붙잡아 세뇌한다든가 하는 발상도 할 수 없을 거다.

“옷 좀 잠깐 볼래? 계절 세일이라는데.”


“......수상해.”


“응?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 것도. 들어가든지.”

유명한 메이커의  가게 안에 들어가는 13호를, 스페이드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따라들어갔다.


‘핫, 그래. 옷가게라면 탈의실이 있지.’

13호의 머릿속을 상상해 본다. 띠띠띠. 좋아, 계산 완료.


13호라면, 분명 몰래 자신을 탈의실 안으로 끌고 들어가 이상한 행위를 강요할 것이다. 그게 분명하다!


‘헷, 여기서 소리를 내면 점원이나 손님들이 다 들어버릴 거라구...?’

‘그, 그런! 크읏...! 차, 참을 거야...!’


‘후후,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번 보도록 할까, 스페이드!’

부끄러운 소리를 낼 때까지 탈의실에서 억지로 범해지는 자신. 그러나 꿋꿋이 버텨내고 소리를 내지 않자, 13호는 입술을 낼름 핥으며 ‘꽤 하네. 그래봐야 다음은 못 버티겠지...’라며 새로운 능욕의 계획을 짠다....

그래!

그거다!


그거라면 어울려!

“스페이드? 스페이드!”


“하앗?!”


자신을 부르는 13호의 목소리에, 스페이드는 긴장하며 돌아봤다. 지금부터인가?! 지금부터 탈의실 능욕이 시작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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