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4 추락한 빌런은 어부지리에 기뻐한다(3)
“무슨…… 짓을 한 거야?!”
“기업 비밀이다, B컵 녀.”
똘마니가 팔을 휘두르자, 팔에서 뻗어져 나온 촉수가 채찍처럼 뻗어나와 스페이드를 가격했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스페이드의 팔과 목을 촉수로 붙잡고, 날리듯 내팽개친다.
“꺄앗!”
“흥. 마력이 없으면 그냥 계집이슈. 가슴력이 없으니 그렇지.”
쓰러진 스페이드에게 다가간 똘마니가, 그 복부를 두 세 번 발로 세게 찼다. 위를 강타당한 스페이드는 침과 위액을 뱉어냈다.
그대로 쪼그려 앉아 스페이드의 다홍색 머리를 움켜쥐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기분이 어떻슈? 히어로? 좀 더 힘내 보지 그러슈?”
느물느물하게 웃은 똘마니는 젤리 같은 촉수를 조작해 스페이드를 구속했다. 미끈한 감촉이 기분 나쁘다.
이 따위는 본래라면 단번에 찢어버렸을 텐데. 아무리 마력을 불어넣으려 해봐도, 그 마력이 텅텅 빈 것처럼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이게 뭐야………… 무슨 짓을….”
“닥터의 발명품이슈. 효과 되게 늦게 나타나네. 덕분에 효과 보기도 전에 죽는 줄 알았슈.”
“발명, 품……이라고? 뭘 어떻게 하면 마력을… 완전히, 없앤 건, 데….”
“기업비밀이라지 않았슈. 애초에 원리는 나도 모르지만. …뭐, 효과야 금방 사라지니까 그 전까지 얌전히 재워야 될 텐데.”
촉수를 조작해 스페이드의 상의를 거칠게 튿어버리고, 그대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벌려진 앞섶의 아래에 드러난, 머리색과 같은 다홍색의 브래지어와, 브라에 감싸인 모양 좋은 가슴, 그리고 허리나 허벅지, 발 끝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전신을 품평하듯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아…… 역시, 빈약한 가슴이 아쉽슈.”
“죽여버리겠……어.”
“C컵 이하의 가슴을 보게 만들다니, 괘씸한 여자유.”
젤리 같은 형태의 촉수가 스페이드를 더욱 강하게 휘감았다. 단단한 압박감이 스페이드의 온 몸을 덮친다. 몇 가닥의 촉수가 옷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질척질척한 체엑을 묻히고, 그녀의 가슴을 희롱했다.
그 광경을, 촉수를 조작하는 똘마니는 따분한 듯 쳐다보았다. 촉수와 마찬가지로 흐물거리는 손을 내밀어, 스페이드의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얼굴은 곱슈. 취향이슈. 솔직히 D컵만 되어줬으면 나도 기쁘게 당해줬을 거슈. 오히려 당하는 게 포상이라는 말 아슈?”
“읏…… 시끄러워…. 닥쳐, 이 변태 자식. 사람을 가슴 크기 따위로 차별하지 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생긴 것처럼 쓰레기라고… 너.”
“알고 있슈. 나 쓰레기인거.”
또 다른 촉수를 조작해, 스페이드의 입에 쑤셔 넣는다. 혀를 자극하고 입안을 유린하는 감각. 촉수의 끝에서, 뭔가가 분비되어 무방비한 스페이드의 목 너머로 흘러 들어갔다.
꿀……꺽.
‘이거, 뭐야. 미끈거려서, 기분 나빠… 비려…….’
“스페이드, 이제부터 너는 【시궁쥐】 연구의 실험체가 될거슈. 오래 걸리지는 않아. 네 마력이 필요한 거슈. 그렇지, 끝나면 닥터한테 가슴 개조 수술이라도 부탁해야겠슈. 그럼 좀 더 맛깔나게 즐길 수 있겠지.”
“우…… 아…!”
스페이드는 굴욕과 공포로 눈을 부릅떴다. 유방과 온몸을 희롱당하는 수치스러움과 분함에 눈물이 찔끔 고이면서도, 눈빛으로라도 쏘아죽이겠다는 듯 똘마니를 노려봤다. 얼굴은, 어쩐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똘마니는 그 시선을 가만히 마주 봤다.
“……그런 눈빛은 좋슈. 아주 좋슈. 가학심을 자극하는 게 취향이슈. …나는 쓰레기. 쓰레기 중에서도 상 쓰레기니까, 그런 눈으로 봐주면 되슈. 쓰레기가 아니면 시궁쥐라고 자처할 수가 없지.”
“우……우!”
……뜨겁다.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혈관에 불덩어리를 쳐넣은 것처럼 뜨거웠다. 촉수에서 쏟아지는 정체불명의 액체를 삼킬수록, 목을 타고 넘어올수록 열기가 스페이드의 몸을 침식해갔다.
“지금 맥이는 건 닥터 특제 미약이슈. 마력을 뽑아내려면 ‘그쪽’이 제일 효율적이니까. 이렇게 하면 쓸데없는 생각도 안 할 테고, 너도 즐기고, 우리 부하들도 즐기고, 무서운 것도 사라질 테니 좋지 않겠슈.”
괴롭게 헐떡이기 시작하는 스페이드를, 똘마니는 마무리를 하겠다는 듯 촉수를 조작해 음부를 향해 뻗어 보냈다. 이렇게 하더라도, 지금의 스페이드는 저항하지 못한다. 그토록 강하던 여자가 아무것도 못한다.
그 점이, 똘마니의 안에 검붉은 가학심에 불을 지필 때였다.
“우~~~~~~~~!”
“발버둥쳐도 소용은 없――”
태평하게 말한 순간, 똘마니의 눈 앞에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눈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춘 그것은, 스페이드가 필사적으로 내민 주먹이었다.
“……어라?”
우득, 우득, 우드득, 우지직-
스페이드를 감싼 촉수에, 미미하지만 저항감이 느껴졌다.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듯 정신을 집중하는 스페이드의 몸에, 정체모를 힘이 다시금 모이고 있었다.
마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똘마니는 다급하게 촉수를 움직였다. 힘으로 조이는 건 의미가 없다. 애초에 몸을 짜부라트릴 힘은 촉수에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집중을 흐트리기 위해, 몸을 희롱하는 자극을 더하고, 유두를 꼬집고 음부에 질척한 점액을 묻힌다. 이대로 관통하려는 듯, 촉수의 끝자락이 그녀의 질 안으로 침입하려 했다.
“우……..우으으……..!”
그러나 그런 촉수를, 그녀는 한 손으로 꽉 붙들어 빼냈다. 점차 몸에 힘이 실리며, 그녀의 입을 점유하던 촉수도, 꽉 다물려는 그녀의 입에 반쯤 잘려나갔다. 붕 떠 있던 발이 바닥에 닿았다.
말도 안 돼! 어째서 마력이 돌아온 거지?!
“지지…… 않아…!”
스페이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촉수에 아무리 힘을 줘도 막을 수가 없다.
촉수가 억센 힘에 끌어 당겨지고, 한 뼘 더 나아간 손이, 그대로 똘마니의 머리를――
“크으!”
“아읏?!”
다급하게 그녀를 감싼 촉수에서 새로운 촉수를 뽑아내, 그녀의 귀로 침입시킨다. 막을 방도도 없이, 대비하지 못한 곳에서의 예기치 못한 자극에 스페이드의 몸에서 단번에 힘이 빠졌다.
그 틈을 타 촉수를 다시 한번 조작해 스페이드의 전신을 덮어갔다. 스페이드의 몸을 몇 겹이나 덮을 정도로 잔뜩.
얼마 지나지 않아, 저항하던 스페이드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이제 반항은 끝이슈?”
“마력이… 더는… 씨이…….”
스페이드의 고개가 추욱 늘어졌다. 달아오른 몸으로는 더 이상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눈 앞이 흐릿하다. 방금 전의 무리한 움직임으로 약이 온몸에 퍼졌는지, 온몸의 열기는 더 이상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똘마니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흐릿한 시선으로, 똘마니를 노려봤다.
‘……가슴은 전혀 취향이 아닌데 말이슈.’
이 눈을 보고 있노라면, 가학심이 솟아오른다. 불이 붙은 석탄처럼, 시커먼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내며 똘마니의 마음을 채워갔다.
아, 좀 더 괴롭히고 싶다.
이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싶다. 눈물 흘리며 악을 쓰는 모습이 보고 싶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녀의 뺨에 혀를 대고 핥고 싶다. 굴욕에 젖은 표정을 보며 자신의 것을 박아 넣고 싶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닥터의 부탁마저도 밀어내고, 똘마니의 안에 검붉은 욕망이 타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런 똘마니의 바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와아… 그 얼굴, 빌런의 귀감이야.”
“엉――쿠헥?!”
똘마니의 몸이, 별안간 ㄱ자로 꺾이며, 저만치 나아갔다. 촉수의 제어가 풀려, 스페이드조차도 놓쳐버리고 꼴사납게 바닥을 구른다. 엎어진 똘마니의 눈 앞으로, 탱그랑, 100원짜리 동전이 떨어졌다.
“뭐, 뭐야?! 누구, 무슨 일이슈?!”
“안녕하신가, 빌런 씨. 동업자인데.”
“어엉?!”
골목길 저편에서, 새로운 인영이 출현했다.
나타난 건 남성으로,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설렁설렁 흔드는 손짓도 그렇고, 능글맞음의 오라가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
“동업자라니, 너 빌런이냐?! 어느 조직이야?”
“말하면 화낼 것 같아서 안 할래. 그보다 말야, 일단 조심해. 안 그러면 한 방에 훅 간다?”
“무슨――카학?!”
어둠 속에서 뭔가 반짝인다 싶더니, 별안간 무언가 쏘아졌다. 급소를 정통으로 맞은 똘마니는 촉수를 바닥에 고정하며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편이 악수(惡手)였다.
“클럽, 아직 안 쓰러졌다. 마음껏 쏴버려. 스페이드를 덮친 녀석이다.”
“당신 명령을 듣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알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단단히 화가 났으니까요.”
좌르륵- 소리와 함께, 13호와 함께 나타난 클럽이 양 손 가득히 든 동전을 위로 던졌다.
동전은 가로등과 달빛을 받아 반짝이나 싶더니, 갑자기 총알처럼 똘마니를 향해 쇄도해갔다.
“우,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기관총마냥 쏘아진 동전에, 똘마니는 온 몸을 처맞고 날아갔다. 닥터의 약으로 살덩이가 질척질척한 점액질의 젤리처럼 변해있었으나, 젤리 너머로도 전해진 충격이 똘마니의 내부를 어지럽히고 확실하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뭐, 뭐, 뭐, 뭐야! 뭐냐고 너네들!”
“말했잖아, 동업자라고.”
“도, 동업자인 건 알겠슈! 그치만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 거슈?!”
“그 아가씨.”
13호가 손가락으로 쓰러진 스페이드를 가리켰다.
“우리가 먼저 찜했거든. 새치기는 안 돼.”
“뭐――”
“끝장내, 클럽.”
“……알겠습니다.”
클럽의 손이 들렸다. 엄지에 올린 100원짜리 동전을 똘마니에게 향한다.
다수의 동전을 이용하는 것보다, 하나의 탄환에 마력을 집중하면 당연하지만 위력은 극대화 된다. 그야말로 건곤일척의 일격.
똘마니는 그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공격을 맞으면 위험하다는 걸 아는 눈치 정도는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행동은 빨랐다.
“우랴앗!”
촉수를 조작해 단번에 뛰어올라, 촉수와 점액을 이용해 건물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미끄러지듯 건물 벽을 이동하고, 담벼락을 달리고 이리저리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클럽의 조준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 한 편, 착실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촉수로 구속하면 끝이야…! 저 여자의 팔만 못 쓰게 막는다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달려들려던 순간, 덜컥, 똘마니의 몸이 멈췄다.
어느샌가 벽에서 튀어나온 사슬이, 하나도 아니고 도합 넷이나 되는 사슬이 똘마니의 몸과 촉수를 붙든 것이다.
“이게, 무슨!”
갑작스레 허공에 붙들린 똘마니는 이도저도 못한 채 몸부림쳤다. 하지만 구속에서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여자의 능력?! 이런 것도 있다고?! ‘쏘는 것’만이 아니야?!
“그건 제 능력이 아닙니다. 아니꼽지만, 제 옆에 있는 남자가, 한심하게도 제 마력을 뺏어서 사용한 것 뿐입니다.”
“클럽의 마력, 은근히 파장이 맞아서 말야~. 나도 내 능력을 오랜만에 쓰니까 좋네~.”
“……정말, 열이 받습니다. 이딴 남자의 도움이 되어버리다니.”
클럽은 새침한 얼굴로, 100원짜리 동전을 똘마니에게로 향했다.
“아, 안 돼! 하지 마! 죽어! 죽는다고!”
“당신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 뒀습니까? …뭐, 빌런이기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클럽의 엄지에, 그리고 엄지에 닿은 동전에 차츰 밀도 높은 마력이 모여갔다. 동전의 표면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린다.
“――지금은 저도, 일단은 빌런에 속해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며, 그녀는 별자리에게 주어진 또다른 능력의 이름을 외치며, 마력을 해방시켰다.
“【포톤 캐논】.”
쏘아져 나가는 푸른 섬광.
섬광은 똘마니를 휩쓸고 촉수를 뜯어내며, 단숨에 밤의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력에 의해 음속을 넘는 속도로 쏘아진 동전은 마력이 다하기 전에 녹아 없어지리라.
* * *
“스페이드! 스페이드 어디 있습니까?!”
7번대의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싸움의 흔적만 남았을 뿐이었다.
체크에게 전해 들었던 【시궁쥐】 일당도,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스페이드도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라헤 대장은 초조해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따라왔던 애플은 멍한 눈으로 현장을 보고 있고, 체크 또한 분한 표정으로 발을 굴렀다.
“대장, 스페이드는…….”
“…….”
아무 말도 할 말이 없다. 대장씩이나 되어서 대원을 지켜주지도 못하다니, 자신의 한심함이 저주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은 대장이다. 아무리 한심함을 한탄해도, 사라진 대원은 돌아오지 않고, 일은 알아서 해결 되어주지 않는다.
“체크, 애플. …스페이드는 【시궁쥐】에게 구속되었다고 잠정적으로 추측하도록 하겠습니다.”
라헤 대장의 시선이 두 사람을 훑었다. 그 눈에 무시무시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우리 7번대는 현재 진행중인 모든 활동, 모든 업무를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순찰 및 방위, 구조 행동은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 그 외 모든 시간은 【시궁쥐】의 탐색 및 박멸에 집중하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습니다. 추가로, 【시궁쥐】 소속 빌런에 한해 '살해' 허가를 내립니다. …본 때를, 보여주도록 합시다. 피의 비가 내릴 거예요….”
히어로는, 빌런의 위험성 및 사회에 미치는 여파를 고려해 그 생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정확히는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취급, 설령 살해하더라도 '과잉진압'이 되는 일은 없다. 7번대의 경우 '가능한 생명은 존중하자'며 평소엔 이 부분을 껄끄러이 여기지만.
껄끄러이 여기는 것은 라헤 대장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상황에 따라 그러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언제든 '처분'을 실행할 각오는 되어있고, 이미 수 차례, 무수한 전장에서 적지 않은 목숨을 뺏어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은 '처분'을 꺼리지 않는, 차가운 전사의 눈빛을 하고 있다. 분노로 불타며 한점의 자비도 남기지 않겠다는, 냉혹한 눈빛.
그렇게 【시궁쥐】를 향해 전의를 불태우는 7번대였지만, 정작 중요한 스페이드는 13호가 데려갔다는 사실은 알 방도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