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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4 추락한 빌런은 어부지리에 기뻐한다(2) (22/271)



〈 22화 〉#4 추락한 빌런은 어부지리에 기뻐한다(2)

“……뭐야, 이 정도로 각성한 히어로를 습격한 거야?”


스페이드를 중심으로, 그녀를 습격한 빌런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자비한 폭력의 흔적이었다.


이 【시궁쥐】의 빌런들도 닥터의 강화개조를 받아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지만, A급의 육체강화에는 쪽도  쓰고 당해버린 것이다. 무기라고 가져온 각목은 주먹 한 방에 두동강 났으며, 알루미늄 야구배트는 킥 한 방에 찌그러졌다.

“괴, 괴물…….”


“괴물이 아니야. 히~어~로~! 꽃다운 여대생한테 괴물이 뭐냐, 괴물이.”


[정리되었나 보네?]

“네. 그냥 언제나 있는 떨거지들이었어요.”


[다행이다~ 보란 듯이 습격했으니까, 뭐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암튼 끝까지 조심하고~.]

“……호오?”


[응? 아직  있나?]

“일어선 녀석이 있어서.”

스페이드의 말대로, 쓰러진 빌런 들 중에 한 명, 어떻게 봐도 똘마니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빌런이 비척비척 일어섰다.


“……아~ 아프네. 역시 각성자라는 거쥬. 따까리들 아무리 데리고 와봐야 소용도 없슈. 이러니 요즘 빌런 사업이 망해가지. 우리 쪽은 각성자도 거의 없단 말이슈. 좀 봐주면서 해주는 게 어떻슈?”


“빌런 따위한테 봐줄 이유가 없는데?”

“따위? 아따, 거 시방 말을 그렇게 하나. 누가 히어로 따위라고 부르면 기분 좋슈? 말 취소 못혀?”

스페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제압은 완료됐고, 당장 체포될 녀석이  이렇게 당당할까. 상황 파악을 못 하나? 아니면 자포자기야?


“거 시방 눈깔이 마음에  드네. 나는 그렇게 내려보는 게 싫단 말이다… 알겠슈?”

“말을……. 진짜 재수 없는데, 그 주둥아리에 몇 대 쯤 먹이면 조용해질래?”


“보소보소, 히어로라는 년이 폭력으로 사람을 입 다물게 하려 그러네. 이게 히어로슈? 아주 그냥케흑?!”


스페이드의 주먹이 복부에 파고들자, 똘마니의 몸이 ㄱ자로 꺾였다.


“조용히… 너희 같은 녀석들은 1년에 다섯 번 정도 보거든. 볼 때마다 이렇게 작살을 내줬지만.”

“아, 헤헤…… 우리 같은 놈들이라니, 뭐슈?”

“힘도 안 되는 주제에 입만  녀석들.”

똘마니의 몸이 떠밀리듯 밀려나, 바닥을 데굴 굴렀다.

제대로 먹였으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지. 스페이드는 체크와의 통화를 끊고, 경찰에게 연락했다.

“하, 하하하하… 힘이, 안 된다….”


“아직 말할 힘이 남았어? 보기보다 터프하네. 좀  두들겨 패줄 걸 그랬나.”

“맞는 게 얼마나 아픈  아슈? ――얘들아! 허가한다! 먹어라!”


똘마니는 태평하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투명한 유리병에 알약 같은 것이 잔뜩 들어있는 유리병.

똘마니만이 아니라, 쓰러져 있던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병을 꺼내들었다.

스페이드는 순간 위기감을 느꼈다. 단숨에 달려들어 병을 차버리려했지만, 그보다 유리병 속의 알약을  안에 털어넣는 게 빨랐다.


“당장 뱉어!”

똘마니의 배를 발로 세게 밟았다. 뚜둑, 갈빗대가 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힘조절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뭔지 모를 약을 먹지 못하게 막는 게 급했다.

“……!”


똘마니도 필사적인지, 격통에 몸을 떨면서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뱉어내지 않게 막았다. 필사적으로 입을 움직여 와드득와드득 약을 씹어먹는다.

무슨 약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위험할  같다. 스페이드의 직감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턱을――


“――?! 꺄앗?!”


갑작스레 몸을 떠미는 충격에, 스페이드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방금, 팔이…!’

팔이 늘어났다. 저 멀리 쓰러져 있던 다른 빌런의 팔이.


“하, 하후아…… 각성 따위 했다고… 나대지 말란 말이야 썅……!”

따라 일어선 똘마니의 몸이, 형태를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무너지고 일렁였다. 드러난 몸은 살색이 아니라 탁한 젤리처럼 변해있다.

“말도 안 돼… 남자가, 각성? 아니, 방금 먹은 약이….”

“도핑이슈. 우리 같은 시궁쥐 떨거지들도 능력을  수 있도록, 닥터가 개발한 도핑약. …재료가 부족해서 가능한 아껴 쓰고 싶었슈. 어쨌든 이 쪽도 능력을 쓸 수 있으니, 나대지 말란 거다 히어로 썅년아.”

기절해서 약을 먹지 못한 인원들을 제외하고, 팔이 하나 더 돋아난다던가 뿔이 난다던가, 이형의 모습으로 변한 빌런들이 다시 하나둘 스페이드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뭔가가 다르다는 기백이 풍겨져 온다.


다시 한번 빌런들이 일제히 달려들려는 순간, 스페이드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나갔다.


“에?”

똘마니가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이  물어.”


스페이드의 주먹이, 똘마니의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퍼억!


젤리 같이 통통 튀는 몸이 몇 번이나 바닥을 튕기며 날아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섬광(閃光)과도 같은 일격에, 달려들려던 빌런들이 눈을 껌벅이며 멈춰섰다.

“야, 멍청이들.”

“누, 누구보고 멍청이라고.”


퍼억!

용감하게 입을 열었던 빌런이, 마찬가지로 한 주먹에 날아갔다.

“야, 멍청이들.”

“““…….”””


“대답  하냐 멍청이들아!”

“““네엡!!”””


잔뜩 긴장하며 대답한 그들을, 스페이드는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봤다.


“나 말이야, 늬들 죽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참은 거거든? 정말 열심히 살살 때렸던 거야.”

빌런들 전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스페이드는 가볍게 손을 털고,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으며 두 손을 꽉 쥐었다.

“조금쯤 튼튼해진 것 같으니까, 이번엔 마음 놓고 때릴게. 이 꽉 다물고, 죽지 않게 잘 버텨봐.”



* * *

“라헤 대장님! 체크 씨로부터 연락입니다! 스페이드 씨가 습격을 당했다고…!”


애플의 다급한 보고로, 7번대의 사무실에 가벼운 소란이 일었다. 빌런 집단에는 보통 능력자가 하나둘 정도만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능력으로 일반인들을 해코지 하거나 하지, 급이 높은 히어로들을 습격할 일은 거의 없다.


물론 보복성의 습격이 한두 번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즉흥적인 습격이고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습격자들은 【시궁쥐】로 판명되었습니다. 체크 씨가 직접 그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 자식들…….”

최근 【시궁쥐】는 7번대의 집중 마크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마치 기다렸다는  7번대의 멤버를 습격하다니. 마치 ‘우리한테 신경 썼다간 이렇게 될 거다’ 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스페이드라면 아마 문제 없으리라. 클럽과는 달리  다른 비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약점도 없는 그녀라면 웬만한 빌런이나 각성자로는 상대도 안 될테니.


하지만, 뭘까… 이 술렁이는 기분은.


“일단 기지에 남아있는 인원들은 바로 출동 준비. 스페이드라면 괜찮겠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서둘러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10분 내로 준비를 마치고 집합하세요.”

그러나 어쩐지 느껴지는 안 좋은 예감에, 라헤 대장은 초조하게 지시를 내렸다.

* * *



퍼버벅-! 콱, 쿠웅!


“뭐, 대충  정돈가?”


가볍게 손을 털고 둘러보니, 아까보다도 한층 무참해진 풍경에 스페이드는 쓰게 웃었다.

부서지고 무너진 벽에, 콘크리트 바닥은 거미줄처럼 쩍쩍 금이 가있고, 피인지 오물인지 모를 액체가 여기저기 질질 늘어서 있으며, 온갖 종류의 이형의 빌런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사, 살려줘…… 오, 팬티 럭키.”


“…….”


퍼억!


“쿠헉?!”

아직도 정신을  차리고 헛소릴 내뱉는 빌런에게 깔끔한 마무리 주먹을 먹여주었다. “빠, 빨강….”이라며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기절하는 빌런.

……이런 상황에서도 팬티 타령이라니, 남자가 바보인 걸까 이 녀석들이 바보인 걸까. 답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때, 똘마니 씨.  도핑약을 먹어보니 이길 거 같아?”


똘마니는 벽에 반쯤 처박혀있다. 벌어진 입에서  같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 빠득 이를 갈았다.


“젠장……! 망할 년이.”


“아직도 입버릇이 고딴 식이야? 정신을 못 차리겠어? 이 상황에서 그딴 말버릇은 매만 벌 뿐이라는 걸 모르겠냐고.”


“어쩔 수가 없다고. 어쩔 수가 없어. 스페이드,  년만큼은 용서할 수 없으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특별히 네가 어쨌다는 게 아냐. 네 존재 자체를 용납할  없는 거다!”

똘마니의 목소리에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원망과 증오가 느껴졌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저릿해지는 기백에 스페이드는 순간 주춤할 뻔 했지만, 심호흡과 함께 똘마니를 마주 봤다.

그런 스페이드를 증오한다는 듯, 똘마니는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난 거유파기 때문이다!!!!!!!!!!!”


………………………

………………………………………………..


………………………………………………………………………………………………? 뭐라고 한 거지, 방금?


“나는 거유파기 때문이다!!!!!!!!!!”


“잘 들었어. 들었으니까 다시 안 말해도 돼 멍청아!”

되도록 잘못 들었던 것 뿐이길 바랐다.


“알겠냐, 스페이드? 내 슬픔. 내 원망을 알겠냐고. 내가 바라는 건 거유의 히어로를 습격해서 이리저리 농락하고 그 가슴을 열심히 조물조물 농락하는 거였어. 그런데 현실은 이게 뭐냐. ‘스페이드는 스타일이 좋아요~’ ‘움직일 때마다 가슴 출렁이는 게 보인대요’ 같은 부하들의 말을 듣고 왔더니, 이건 뭐, 저건 출렁이는  아니라 떨리는 거 잖아! 그 정도 밖에  될 정도의 가슴이라고 이건! 내 배신감을 알아?  슬픈 마음을 아냐고! 차라리 타깃이 네가 아니라 같은 7번대의 애플이라던가 체크라던가, 목숨을 잃어도 좋으니까 그 거유의 대장님을 보고 싶었다고! 왜 너 같은 빈약도 풍만도 아닌 애매한 가슴을 노려야 하냔 말이다…!”

“이건 뭐, 병……”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다. 뭐냐, 이 빌런은. 화를 내야 되는 건가?


“저기, 나 그래도… B는 되는데?”


민망해하면서도 최소한의 항의를 하고자 가슴 컵수를 입에 담아봤지만,

“B가 가슴이냐?! C이하를 가슴으로 칠  있을리 없잖아! 차라리 AA였으면 ‘절벽은 스테이터스’ ‘빈유도 수요가 있습니다’라고 이해하고 온화하게 웃어줄 수 있어! 뭐야 그 어중간한 크기는! 뭐냐 그 애매한 정의는! B라는 숫자 따윈 세상에 존재해선 안 돼. 세상의 모든 B컵 따윈 나가 죽으라지! 나는 인정못해! 인정  해~~~~~~~~!!!!”

빼애애애애애애액 악을 쓰는 똘마니.

대략 멍해진 스페이드는 그런 똘마니를 힘 없이 쳐다보다, 근처에 굴러다니는 빌런 한 놈을 집어 들고 똘마니에게 집어던졌다.


“쿠헉?!”


“……잘 알았으니까, 이제 좀 닥쳐. 진심 지금 어떻게 화내야 될지 고민 되니까.”

이렇게나 웃음거리 취급당했는데 그냥 용서하고 싶진 않았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애플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풍만한 체크 씨나 라헤 대장 같은 경우, 같은 여자로서 자격지심이 느껴질 정도로 비교가 되는 기분이 없잖아 있긴 하다.

하지만 여자의 가치는 가슴 크기 따위로 결정되는  아니다. 그딴 걸로 결정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악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멸절해야하는 악이다――응,


그러니까 저 똘마니는 사형 결정. 지금 이 자리에서 ‘실수로 죽여버렸다, 데헷♥’ 같은 느낌으로 처리해 버리자. 이건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느낌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죽여버리자’고 생긋 웃으며 결단하려던 때였다.

“…………………어?”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져, 스페이드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가까스로 벽을 짚으며 넘어지는 건 면했다.

“어라?”


아니, 넘어지는 걸 면한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힘이 빠졌다는 것이 문제다. 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뭔가가 이상하다.


아아, 그렇다.

마력이――느껴지지 않는다.

“어……………….라?”

“왜 그러냐, 스페이드.”

당황하는 스페이드의 시야 저 너머에서, 똘마니가 자기에게 내던져진 빌런을 옆으로 데굴 굴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그 표정은. 마치……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정인데. 응?”


그렇게 말하는 똘마니는 마치 덫에 걸린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으로,


지금까지 보였던 어떤 표정보다 역겹고, 느물느물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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