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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4 추락한 빌런은 어부지리에 기뻐한다(1) (21/271)



〈 21화 〉#4 추락한 빌런은 어부지리에 기뻐한다(1)

클럽은 빌런 조직 어비스에 잡혀버렸다. 심지어 13호와의 내기에서도 져버려, 순순히 암시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세뇌향과 기타 세뇌도구를 이용해 이미 몇 가지 암시는 걸려있었지만, 고집이 센 그녀에게는 얕은 암시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내기를 통해 패배를 인정한 그녀에게, ‘내기의 결과’라는 형태로 걸린 암시는 그녀의 안에 깊이 파고들었다. 설령 고집  그녀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더라도.


그 결과,

“……………………………………………왜 제가, 빌런 조직의 아지트를 청소하고 있는 거죠.”

반쯤 죽은 눈으로,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손목에 걸린 팔찌를 이은 체인이 철그럭 소리를 냈다.


손에는 기계식 진동 무선 걸레가 들려있지만, 최신식이라 허리에 부담도 없고 청소는 편하다. 다만 자신의 손으로 깨끗해져가는 바닥을 보고 있노라니, 뭐라 말할  없는 허탈감이 솟아올랐다.

“혼자 하는 것도 아니잖냐. 자기가 머문 장소는 자기가 청소해야지.”

13호가 손에 든 청소기를 흔들흔들 휘저었다.

“……있고 싶어서 있는 것도 아닌데요.”

“군대는 가고 싶어서 가냐?”

“빌런 주제에 군필이었습니까…?”


“나이가 몇인데.”

빌런이고 뭐고 안 가면 잡혀가거든? ……지금도 잡히면 큰일이지만. 흠.

“어쨌든 한 사람한테  넓은 아지트 청소를 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이왕 하는 거 기쁜 마음으로 봉사해줘.”


“아니, 빌런이면 좀 더 퀘퀘한 이미지일 것 같은데… 그리고 청소 정도는 사람을 부르라고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약해야지 사람을 왜 써? 그리고 빌런 조직에 출퇴근 청소부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더해서, 예전에 인원이 많았을 때는 청소 같은 건 금방 끝났고.”

“끄응…….”

“그리고 거기 구석까지 제대로 닦아. 그런데에 먼지가 모이니까. 아, 저쪽에 이상한 자국이 남아있잖아. 제대로 닦일 때까지 문대.”


“크읏!”

7번대의 경우 귀찮아서 눈에 보이는 부분만 닦거나 설렁설렁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대장이 안 보면 농땡이를 부리기도 했는데. ……13호  남자, 쓸데없이 꼼꼼해서 일일이 지시 내리는 게 짜증난다. 빌런 주제에 깔끔한 것도 짜증 난다. 온갖 짜증 밖에  나는 남자다. 발끝부터 시작해서 뼈를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어…!


짜증 나는  그것만이 아니다.

“거기다… 왜 저는 이런 차림인가요! 제대로  옷을 달라고요!”


클럽의 가지런한 흑발 아래, 몸에 걸친 것은 새하얀 와이셔츠였다.  봐도 남자용으로 평균 여성보다도 몸집이 작은 그녀에겐 사이즈가 너무 크다.


그래도 그것만이었으면 문제 없을 텐데.

문제는 그녀가 걸친 게――와이셔츠 한 장 뿐이라는 것. 그야말로 완벽한 알몸 와이셔츠, 혹은 남친 셔츠 차림!

그나마 위아래 속옷은 입었지만(참모의 컬렉션에서 가져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장에라도 벗어버릴 뻔 했지만. 그보다 사이즈가 딱 맞다), 바지도 치마도 아래에 걸친 건 아무 것도 없다. 이토록 노골적인 하의 실종 패션은 21년 인생 처음이다!

“참모가 이렇게 입혀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서… 속옷도 안 주려는 걸 억지로 뺏어온 거야.”

“Holy crab! Fucking shit! 변태! 죽여버리겠어요!”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설레. 네가 앞에서 허리를 숙이면 안이 보여서….”


“죽어! 죽어죽어죽어죽어어어어~~~~!”


대걸레를 마구 휘두르려는 그녀를 붙잡고 워워 진정시켰다.

“내기에서  탓이잖아. 이겼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고.”


“으그그그그그……!”

“그보다, 그런 태도야 말로 어울리지 않은데. 다시 한번 교육해줘야 하나?”

클럽은 13호와의 내기, 혹은 게임에서 졌다. 먼저 세 번 가는 쪽이 지는 내기였지만, 13호의 간계에 빠져 중간에 클럽 쪽이 패배를 인정해버렸으니.


그리고 패배한 클럽에게 13호는,

――‘패배자는 진 상대에게 굴복할 것’.


이라는 암시를 걸었다.

심플하며 인정하긴 싫지만 납득할  있는 암시는, 그녀의 기억에도 남아 착실히 그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 청소도 13호에게 명령받자 몸이 멋대로 먼저 움직여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거부한다는 선택지 조차 없게 된 것이다.

‘굴복이라니, 내가, 이까짓 남자에게… 빌런 조직에게…!’


분함과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이를 빠드득 갈았지만, 덧없는 반항이다. 이미 마음속 깊은 곳은 이 남자에게 굴복해, 명령에 거절하는 자신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 클럽.”


별안간 13호는 청소기를 놓더니, 클럽의 몸을 벽으로 밀어내고, 손으로 벽을 짚었다.


“읏?! 자, 잠깐만요. 지금은 청소――.”


“그보다는 교육이 더 필요할  같네.”

13호의 자유로운 한 손이 미끄러져 내려가, 와이셔츠의 아래를 들추고 그녀의 팬티 위로 음순을 자극했다.

내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민감한 그녀의 몸이 그에 반응해 움찔 떨렸다.

“클럽, 너는 내게, 어비스에게 졌어. 그렇지?”

“그……. 크…….”

“대답은?”

“응힛?!”


팬티 위로 자극하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이 속옷의 천과 함께 꽃잎 안으로 살짝 들어가니, 오싹오싹한 쾌감이 클럽의 척수를 타고 올라왔다. 클럽은 무심코 눈을  감았다.

“네, 네에… 저는…… 13호님에게, 져서….”


“그래서?”


“그…….”

13호의 손이, 이번에는 위에서 속옷 안으로 침입해 들어가, 그녀의 음순을 직접 자극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그녀의 감촉을 즐기듯, 부드럽게 주물러간다.

“13호님에게, 져버린… 저는…… 당신에게…… 어비스에… 굴복……했습니다….”


“그래. 잊지마라, 클럽. 내기에 져버린 너는, 우리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어. 거역하면 안 돼. 우리에게 봉사하고, 굴복하고, 복종해라. 너처럼 꼴사납게 패배한 암캐한테는  편이 어울리니까.”


“으……!”

클럽은 눈을 뜨고, 반박하듯 13호를 노려봤다. 치켜뜬 고양이 같은  눈의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분함과 한심함 등등이 담긴, 안타까운 눈물.


13호는 그 눈을 마주보다, 맺혀있던 눈물을 낼름 핥았다.

“?!”


그대로 우물우물 그 맛을 음미하는 듯 싶더니, 그대로 클럽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갑작스런 키스였지만 클럽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얼마나 키스했을까, 13호가 얼굴을 떼어내니, 두 사람의 입 사이에 타액의 실이 늘어졌다.

“너무 낙담하지마, 클럽.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널, 우리는 소중히 대해줄 테니. 안심해도 돼.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복종하도록 해. 괜찮아. 나는  모든 걸 받아줄 거야.”

“아…….”

“알겠어? 클럽? 알겠다면, 네가 직접 말해볼래? 복종하겠다고,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고.”

여전히, 13호는 클럽의 속옷 아래로 음순을 주무르고 매만지며 희롱하길 계속했다.그 부드러운 쾌감을 견디며, 클럽은 상기된 얼굴로 복종의 말을 선언했다.

“제…… 몸과… 마음도….. 복종…… 하겠습니다… 13호님께……. 전부….”


“그래. 잘했다, 클럽. 그 선언을 잊지 마라.”

다시 한 번 가볍게 입을 맞추고, 13호는 클럽에게서 몸을 뗐다. 속옷에서 손을 빼내자 클럽은 “아….”하고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청소 계속하자.”

“예……에.”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몸을 주체 못하면서, 클럽은 줄곧 붙잡고 있던 전동 걸레를 움직였다.


“아, 그리고.”

“?”

“뭐랄까, 호칭도  더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그게…… 주, ‘주인님’이라거나.”

“…….”

21세기에 그게 말이나 되냐며, 머리는 괜찮은 거냐는 듯한 차가운 경멸의 시선에, 13호는 허겁지겁 청소기를 밀며 도망쳤다. 언젠간, 언젠간 저 입으로  듣고 말겠어…!

일단 오늘은 클럽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소고기 스테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이번 주 식사 당번은 13호니까.

…………………뭐랄까. 입장, 바뀌지 않았어?

* *


“클럽, 괜찮으려나….”

클럽이 납치된 지 사흘이 지났다. 스페이드는 비번인 시간까지 이용해 클럽의 행방과 【어비스】의 아지트를 찾았지만, 변변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탐색용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 조사할 만한 변변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의심 가는 곳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발로 뛰어 찾아가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13호가 의외로 부주의하게 돌아다닌 덕에 목격정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3호의 목격정보를 바탕으로 탐사의 범위를 좁혀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늦은 밤의 어둠 따윈 개의치 않고 13호의 목격정보를 따라 인적이 드문 창고 거리에 와있다. 근처에 항구가 있는  지역에 13호의 목격정보가 은근히 많이 몰려있어, 이번에야말로 잭팟이 아닐까 기대한다.

[스페이드 씨. 당신이야말로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새벽에까지 나가서 탐사를 했다며?]

스페이드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귀에 꽂은 블루투스이어폰에서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탐색을 맡은 7번대 대원, 체크였다.


“걱정돼서, 잠이  오는걸요. 그 이전에 빌런 조직의 아지트에 갇혀있으면서 클럽이 무슨 일을 당할지… 이게 전부 13호 때문이에요.  13호가 거기 있어서 불안하다고요! 가녀린 그 아이한테 손을 대고 이런저런 몹쓸 짓을 할 게 분명해요! 상상만해도, 상상만해도… 아아! 13호! 분쇄시켜버릴 거야! 의자에 묶어놓고 다리가 찢어질 때까지 주리를 틀겠어!”

[……진정해라, 스페이드 씨. 너무 흥분했다~. 의외로 신사적인 아그일지도 모르지 않나~. 거기다 매일 밤 클럽을 찍은 사진도 보내주고 있고? ……그, 남친 와이셔츠 패션은 놀랐다마는.]

“으으으으으으~~~~~ 13호~~~~~~! 그 놈이 분명해요!”

[아따, 진정, 진정 좀.  13호란 아그를 때려주려면 네가 먼저 체력이 남아야지.]

체크가 이리저리 설득을 하려 했지만, 불이 붙은 스페이드는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정의를 사랑하고 동료를 중시한다’… 진짜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특촬물의 히어로 같구만, 하며 체크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응?”

[…? 무슨 일 있나?]


“아니…….”


한껏 불평을 쏟아내던 스페이드가, 별안간 조용해졌다.


13호의 목격정보가 유달리 많았던 허름한 폐허 건물 앞의 골목길. 그녀의 눈은 긴장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뭘까,  피부에 닿는 불안감은.

육체강화에 특화된 그녀의 마력은 ‘직감’과도 같은 육감 또한 높여주었다. 그런 강화된 육감 레이더가, 그녀를 향한 해의(害意)를 감지한 것이다.


“나와.”

“이런, 들켜버렸나. 감이 좋네. 건물 안에 들어가면 덮치려 했는데.”

어둠 속에 낭랑하게 외치자, 느물느물한 목소리와 함께 사람의 인영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13호나 참모, 혹은 참모가 조종한다는 ‘그림자인형’도 아닌, 사람.

각자 손에는 각목이나 방망이 같은 흉흉한 물건을 들고 있고, 그녀를 향한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스페이드? 뭔가 있는 거야?]


“있어요. 잔뜩. ……저 마크는, 분명――【시궁쥐】.”


섬뜩한 해골쥐의 마크는, 본적이 있다. 최근 사람들을 납치해간다던 빌런 조직.


“어라? 우리 알아? 우리도  유명한가 보네.”

인파 사이에 껴든 똘마니 같은 남자가 말하며 웃자, 옆에 있던 빌런들이 따라 웃었다. 한껏 웃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스페이드를 핥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음욕에 젖어 번들거리는 눈에 스페이드는 무심코 몸을 떨었다.

[당장 도망치래이! 나도 금방 갈테니까! 혼자서 달려들지 말고――]

“아니요, 체크 씨. ……봐줄 생각은 없나 봐요.”

어느샌가 잔뜩 몰려든 사람들로 골목길은 좌우 완전히 막혀버렸다. 건물 사이를 박차서 옥상으로 간다면, 도망은 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저도, 굳이 봐줄 생각이 없어요.”

스페이드. A급 히어로 스페이드.

고작해야 이딴 양아치한테 당해줄 생각따윈,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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