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3 클럽 함락(4)
“13호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번대에 연락은 해두었습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어차피 참모 네 책략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책략을 내는 것뿐, 방향을 제시하는 건 13호님과 보스십니다. 바라시는 방향에 길을 내드릴 수 있다면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뭐.
고개를 끄덕이자, 참모는 별안간 눈의 희번덕 뜨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시선을 따라가니, 쓰러진 채 잠에 든 클럽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지금은 쉬게 냅둬라?”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 아가씨는 취향이 아니라. 아, 물론 어떤 여성이든 좋아하긴 합니다만, 역시 조금 더 살집이 있는 편이 취향이랄까.”
……그 말, 클럽 본인이 들으면 화낼 것 같다.
“하지만 작은 것도 스테이터스. 충분히 그 만의 매력이 있으니, 으으음…! 못 참겠다. 이대로 덮쳐도 되겠습니까?”
“안 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상 뭔가 했다간 이 아가씨의 몸에 부담이 너무 크다. 참모는 여자를 밝히긴 해도 분별력이 없는 녀석은 아니니 자중해주겠지.
“그야 뭐, 너랑 저 아가씨 사이에 이래저래 부딪치고 연이 깊은 건 알겠지만. 나중에 천천히 시간을 들이도록 해.”
“깊지 않습니다.”
“……깊지 않아?”
“깊지 않습니다.”
“…….”
왜 이렇게 부정하는데?
“참모, 그 얘기는 왜 빼먹어?”
“커흑!”
멀뚱히 서있던 도로시가 별안간 참모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빌런 연합 쪽 정보망에 정보가 들어왔어.”
“예에…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일인 것 같아서 입 다물었습니다만, 【시궁쥐】쪽에서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시궁쥐】는 연합에 소속된 빌런 조직 중 하나로, 각자 개성이 뚜렷한 조직 들 중에서도 ‘음습함’과 ‘과격함’이 특징인 조직이다.
……빌런으로서의 인지도는 꾸준히 높아지지만, 비례하듯 범죄 또한 과격해지고 있다.
“뭘 하려는지는? 구체적인 계획은 모르고?”
“정보망에 잡힌 건 【시궁쥐】가 움직일 거라는 내용 뿐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전해지지 않았어요.”
“참모 네가 아는 것도 그 뿐이야?”
참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을 뿐.
“다시 한 번 묻지, 참모. 정말 그것뿐이냐? 네가 아는 건.”
“……가능하면 숨기고 싶었는데요.”
“말해 줘, 참모. 숨기지 말고.”
“끄음, 이런이런.”
참모는 한숨과 함께 마지못한 듯 웃었다.
“개인적인 루트로 모은 정보와 소문으로 추측하건데, 아무래도 【시궁쥐】는 7번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에라도 습격하기 위한 준비들을 하고 있겠죠. ……그리고 이대로면, 7번대는 전멸하고 히어로협회는 크게 흔들릴겁니다.”
* * *
“――이상이, 14시경에 일어난 사건의 전말, 그리고 15시 33분경에 걸려온 전화의 내용입니다.”
애플이 이야기를 마쳤지만, 회의실에 모여 앉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현재 회의실에 들어와 있는 이들은 7번대의 멤버, 스페이드와 서브 멤버를 포함한 5명이었다.
그 중 상석에 앉은 긴 상아색 머리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다른 대원들관는 달리 흰색을 기조로 한 독특한 전투복과 마크는, 그녀가 7번대의 대장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애플. 참모가 한 말은 그것뿐인가요?”
“……뭐랄까, 데이트를 하자던가 첫 키스 경험을 묻는 등 성희롱 같은 질무이 섞여 있었습니다만, 일단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클럽을 맡아두겠다, 그녀의 안전을 바란다면 쓸데없는 일은 벌이지 말라, 그렇다면 위해는 가하지 않겠다’…대강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딴 말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스페이드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그 쓰레기 같은 13호라고요?! 클럽한테 무슨 몹쓸 짓을 할지 모릅니다! 당장 쳐들어가서 반갈죽을 만들어야――!”
“진정하세요, 스페이드.”
“하지만, 라헤 대장…!”
“진정하라고 했습니다. 괜찮아요, 클럽을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분노하는 것으로 해결될 만큼 문제가 간단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조곤조곤한 말투에, 스페이드는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라헤 대장이라 불린 여성은 차분하게 회의를 재개했다.
“참모에게서의 통화 말고, 다른 정보는 없나요? 클럽의 위치라던가, 상황을 아는 방법이라던가. 대원복에는 GPS 기능이 달려있었을 텐데요.”
“클럽 씨의 대원복 상의가 테러가 일어났던 백화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GPS의 존재를 알고 납치당할 때 벗겨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겉옷만 발견된 거겠죠?”
“……상의랑… 그, 브래지어… 까지…….”
“죽여버리겠어 13호오오오오오오오!!!!!”
“앉으세요, 스페이드!”
“진정해 스페~이드!”
잠자코 보고 있던 또 다른 멤버, 체크까지 가세해 당장에라도 뛰쳐나가려는 스페이드를 억눌렀다.
“그, 그리고 약 10분 전, 아몬드톡으로 클럽 양은 무사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애플, 어비스 멤버의 아몬드톡 ID를 알고 있었나요?”
“그쪽에서 멋대로 친구 추가를 해서… 아무튼, 봐주세요! 스페이드 씨도!”
애플이 설치된 블루투스 프로젝터에 휴대폰을 연동하자, 한 사진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흰 셔츠 차림의 클럽은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다친 곳 없이 무사한 것 같았다. 설마 싶지만 고문이나 괴롭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스파게티와 식빵 피자, 샐러드와 스패치콕(Spatchcock, 통닭구이) 등의 푸짐한 식사가 놓여있었다. 참모는 클럽의 옆에, 13호는 그 맞은편에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 있고, 클럽은 그런 두 사람을 쓰레기를 보듯 죽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완벽한 셀카 각도.
“이 사진과 함께 ‘밥도 잘 먹이겠습니다. 7번대의 맛 없는 짬밥 따윈 잊어버릴 정도로’라면서… 아, 요리 사진도 정성스레 하나하나 찍어서 보내줬습니다. 확실히 잘 만들어졌던데요.”
애플이 손을 놀리자, 다음 사진으로 연이어 전환되었다. 전부 요리 사진. 어플까지 써가며 공들인 티가 났다.
“집에 친구 부른 여대생이야?! 쓸데없이 저런 건 왜 찍어!”
스페이드는 다시 한번 테이블을 쾅 두드렸다.
“나도 먹고 싶은데! 맛있어 보여, 닭고기!”
“애플 씨~ 이번 주 식사당번 애플 씨지~? 우리도 통닭구이 먹고 싶어~.”
“……(추릅).”
“저거 설마 저 녀석들이 만든 거 아니겠지? 그렇겠지? …나는 요리 하지도 못하는데, 저런 치들이 더 잘한다니 믿고 싶지 않아…!”
짜악!
“정숙!”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진 회의실이, 라헤 대장의 손뼉에 단숨에 조용해졌다.
“일단 클럽의 일은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료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비스】는 과격한 일은 벌이지 않았고 사진으로 보니 클럽도 안전해 보이니까요. 무엇보다 아지트의 위치를 전혀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쓸데 없이 일을 크게 키웠다간 오히려 클럽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네.”
“그리고 무엇보다, 【시궁쥐】의 건입니다. 과격파인 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해서, 저와 체크, 두 사람이 중점적으로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체크, 조사된 내용을.”
“예~ 알겠슴다, 대장.”
이번엔 체크라 불린 여성이 조사된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시궁쥐】는 최근 일어난 납치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에 체크와 라헤 대장, 두 사람이 잠복 수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결과 ‘흑’으로 판정, 납치사건의 범인은 【시궁쥐】가 맞았습니다. 또한 그것과 별개로 모종의 계획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붙잡은 잔당을 경찰 쪽이 심문하고 있습니~다.”
체크의 시선이 흘긋 테이블의 다른 멤버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고 “그럼 제쪽에서도 보고를.”이라며 설명을 시작한 건, 7번대의 서브멤버이자 경찰에 속한 서브 멤버 ‘코코’다.
그녀는 경찰에 속한 인원이면서도 능력자임을 감안해 빌런 및 능력자들을 상대하는 특수과에 속해있다. 일의 편의를 위해 히어로로서도 인정받는 히어로협회의 서브멤버로 일하고 있다.
또 한 명의 서브멤버 ‘아리아’는 시종일관 멍한 표정으로 회의의 내용을 듣고 있었다.
대강의 이야기가 정리되었을 즈음.
“들은 것처럼 현재 위험도가 가장 높은 건 【시궁쥐】 일 입니다. 도덕도 윤리도 없는 녀석들이라 살인이나 그 외 용서받지 못할 짓들을 마구 저지르는 해충들입니다. …클럽의 일은 걱정되지만, 7번대는 【시궁쥐】의 추적과 격멸을 우선하겠습니다.”
“…….”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스페이드.”
“그건…….”
라헤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당분간, 【시궁쥐】는 저와 서브 멤버 두 사람이 전담해서 추적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이드와 체크는 【어비스】의 아지트 및 클럽의 소재를 파악해주세요.”
“에? 라헤 대장?”
“네~에. 오늘부터 스페이드를 도와 클럽 탐색에 전념하겠음~다.”
스페이드의 얼굴에 급격히 화색이 돌았다. 동료에다 동생인 클럽이 그만큼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 라헤 또한, 쓴웃음을 지었다.
“스페이드, 걱정말라고 했죠? ……클럽이 납치 돼서 불안한 건 당신만이 아닙니다. ……만약 그 치들이 클럽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댔다면, 정말 만에 하나 뭔가 몹쓸 짓이라도 했다면――핏덩어리 다진 고기로 만들어 땅속 1000m 아래에 묻어버리겠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선언에서는 얼어붙을 것 같은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스페이드는 안심하는 한편 오히려 동정심을 느낄 뻔 했다. 잘 가라, 어비스. 네들은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거야…!
* * *
그리고, S시의 어딘가에 숨어있는 지하 시설, 【시궁쥐】의 아지트에서.
“닥터, 아직 준비는 안 끝났슈?”
“조금 더 기다려주시길. 시간도 재료도 아쉽게 부족한 상황이라서.”
닥터라 불린 긴 장신의 남성은, 장신임에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백의를 입고 있었다. 담담하게 대답하니, 찾아온 똘마니 같은 사내가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글쎄, 꽤 많이 잡아 온 것 같은데 아직도 더 필요하단 말이슈? 보스가 매일 같이 나를 닦달해서 힘든데.”
“그 보스가요? 농담도.”
“……그렇긴 하지이… 보스도 당신도, 원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렇지만 항상 그 눈이 나를 재촉하는 것 같단 말이쥬. 잘은 모르겠지만, 따분해서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눈빛이슈. 어제도 '심심하니 됐다고 할 때까지 지혜의 고리 자세로 있어'라면서 밤새 방치한 거 있쥬.”
“......'지혜의 고리 자세'라니, 어떤 거죠.”
“이런 거쥬.”
“......당신의 몸, 굉장할 정도로 흥미가 생겼는데 제 실험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싫어! 절대로 싫슈!”
“그렇다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이곳은 빌런 조직 【시궁쥐】의 아지트, 그 중 닥터에게 배속된 실험실이다. 빌런 조직의 실험실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코를 자극하는 상큼한 냄새와 밝은 분위기가 풍기지만, 좀 더 안에 들어가면 눈을 감고 싶을 만큼 끔찍한 모습이 나온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빌런이라지만, 똘마니 남자도 볼일이 없다면 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뭐, 제가 아무리 천재라지만, 역시 실험체가 좀 더 필요하군요.”
“잡아오는 거야 어렵진 않지만….”
“다음 실험체만 잡아오면 나머진 금방입니다. 기다릴 수 없다고 하시니, 하는 수 없죠.”
“오호?”
백의의 남성은 상쾌할 정도로 생긋 웃으며 말했다.
“히어로가 필요합니다. 어디보자… 7번대의 스페이드라는 히어로가 적당하겠네요. 비능력자들은 상대도 안 되겠지만 도구를 좀 빌려드리겠습니다.”
“……이봐, 닥터.”
“예?”
“실험이 끝나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지? 그 여자.”
“물론이죠. 실험만 끝난다면 얼마든지.”
“그렇다면 기쁘게 따르겟슈. 으크크.”
똘마니 남자는 음침하게 웃으며, 실험실 밖으로 나갔다. 닥터는 여전히 생글생글 미소지으며, 스페이드를 붙잡을 도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