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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2 일상이 패배인 빌런, 패배가 싫은 히어로(7) (14/271)



〈 14화 〉#2 일상이 패배인 빌런, 패배가 싫은 히어로(7)

“Fuck, ……뭔가 묘한 기분이 드는데요.”

창문 너머, 대낮치고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클럽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클럽은 그런 직감이 뛰어난 편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비스의 두 사람을 놓치고서, 닷새가 지났다. 그 사이, 어비스로부터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적어도 클럽이 아는 한은, 따분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어제는 웬 소동이 일어났나 싶었더니, 다른 빌런 그룹이었고 말이죠.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는 됐습니다만.’

어비스를 놓치는 바람에 잔뜩 열이 올라 있던 클럽이었지만, 어제 소동을 일으킨 멍청한 빌런들에게 화풀이를 한 덕에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과잉진압으로 혼은 났지만.

“클럽 씨? 어째서 장비를 꺼내시는 건가요?”

“그냥, 그런 감이 와서요―. 출동 준비를 해야할  같은, 그런 느낌이네요. 오늘은 다른 분들도  계시고.”

“동물적 직감이라는 거군요? 그러고 보면 클럽 씨는 그런  있었죠. 별자리의 능력인가요?”

“그렇죠~.”

애플은 신기한 듯 클럽을 지켜봤다. 오늘 7번대에는 두 사람밖에 없다. 사람이 적은 만큼 다들 매일 같이 바쁘다….

“그건 그렇고, 애플 씨. 요즘 스페이드 씨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해요? 뭐가요?”


“잘은 모르겠는데, 색기가 넘친다고 해야하나, 어째 여자 같은 냄새가 나서요.”

“스페이드 씨는 원래 여자인데요… 그리고 냄새라니, 클럽 씨는 냄새도  맡나요?”


“능력을 발동하면 그렇지만, 이건 그냥 직감 같은 거예요. 뭐랄까, 최근 스페이드 씨는 어딘지 모르게 여자여자하달까, 요염하달까, 음란하달까….”


“맞아요! 클럽 씨도 느끼고 계시죠?! 뭐랄까, 최근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친숙……?”

“남자친구라도 생긴 걸까요. 아, 전화다. 잠시만요.”

클럽이 미묘한 눈으로 애플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신경 안 쓴다는 듯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은 깊이 알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죠…. 외모는 청순하게 생겼으면서. 동갑이지만 가끔 미지의 생물 같고. 계속 높여서 말하니 이쪽도 말 놓기도 어렵고. 정말 수수께끼인 사람이에요, 애플 씨는.’


“……에? 어…… 끊겼네….”


“뭔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네, 그게 좀.”

애플이 당황한 눈치로 말했다.


“빌런 13호가, 백화점에 폭탄테러를 예고했다고….”

“뭐라고요?!”


* * *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은 안전해요! 천천히, 천천히 침착하게 내려가시면 됩니다!』

『밀지 마! 위험하잖아!』


“7번대에서 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요?”

“아, 히어로시군요. 안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클럽이 현장에 도착하자, 구조대원인 듯한 남자가 다가왔다. 고글에다 헬멧,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하고 있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주말의 한낮인 만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있던 백화점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가롭게 쇼핑을 즐기러 왔더니 갑작스런 테러 예고. 당혹과 혼란으로 가득 찰만 하다.

구조대원에다 ‘폭발물처리반’이니 ‘과학수사대’라는 글자가 떡하니 쓰인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지만, 다들 백화점 주변을 난처하게 서성일 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단 오후 2시 11분경, 약 13분 전에 온 백화점에 테러 예고가 방송되었습니다. 영상과 함께 방송되었으며 13호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고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4층 동쪽에서 폭발 소리와 함께 모종의 가스가 분출 되었습니다.”

“가스요? 독가스 같은 건가요? 인명피해는요?”


“저희도 자세한 건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해들으니, 이 가스를 뒤집어 쓴 40대 남성이 10대 여성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왜 굳이, 10대?”

“전성기라서가 아닐까요.”


머리가 아파질  같았지만, 아무튼 목숨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닌  같았다.


하지만 나이야 그렇다 쳐도 성별이다. 평생을 남자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여자로 변해봐라. 본인도 힘들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절대 평범하게 넘어갈 수 없겠지. 그게 백화점 규모의 다수의 사람들한테 일어난다고 하면… 끔찍하다. 사회는 파탄난다.
이 어찌 무시무시한 발상……!

“상대의 요구는요? 예고의 내용은? 테러 규모는 어느 정도쯤 될까요?”

“일단  폭탄을 임시로 ‘TS폭탄’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13호의 요구는 ‘히어로 1명의 단독 투항’. 백화점 최상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무장 해제 상태로 찾아오라는 요구입니다. 거절한다면 오후 3시 정각에 백화점에 내부에 잔뜩 설치된 TS폭탄을 일제히 터뜨리겠다고 합니다.”


“…….”

히어로 1명의 투항.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히어로는 클럽 한 사람 밖에 없다.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녀 스스로 투항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지정된 시간까지는 30분하고 조금 더 남았나….


“백화점 안에 있는 사람들은요? 30분이라면 충분히 전부 대피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도망치면 터뜨리겠다는 경고라도 있었나요?”

“안 그래도 그게 문제입니다만…….”

마스크 대원이 백화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백화점 내부에 뭔가 새카만 인형 같은 것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림자 인형’. 【어비스】 참모의 능력이군요…!”

참모의 능력으로,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자율기동형 인형을 소환한 것이다. 완력은 일반 남성 정도지만 숫자가 많아서 번거롭다.


“도주를 시도한 시민이 있었지만, 남자라면 속옷을 포함한 하의를 너덜너덜 찢어버리고, 여자라면 생크림 범벅을 만들어버린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하죠…! 정말 잔학무도한 놈들입니다! 때문에 다들 공포에 떨면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저희 대원들도 돌입할 수가 없고요. ”


“어딘가 반쯤 나사 빠진 게 그 녀석들답네요.”


클럽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이해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제한시간까지 딱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은 뭔가 감이 안 좋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클럽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는 제가 투항하겠습니다. 그러면 시민분들게 피해가 가지는 않겠죠.”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스크를 쓴 대원이 말도  된다는 듯 소리쳤다.


“투항이라뇨, 말도  됩니다! 하물며 빌런에게. 거기다 여성이시지 않습니까. 무슨 추잡한 짓을 할지 모릅니다! 이렇고 저런 짓, 거기에 그렇고 그런짓에다 말로 할 수 없는 요렇고 조런 짓도 할지 모릅니다! 하으으윽, 거기다 기렇고 기런 짓까지 해버린다면, 아아아, 상상만으로, 상상만으로오……!”


잔뜩 흥분한 채 중얼거리는 구조대원을, 클럽은 차가운 눈으로 쳐다봤다. 뭐냐,  변태새끼는.


“Fuck.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괜찮습니다. 히어로로서 무슨 짓을 당하든 각오는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만약의 경우에 그렇게 하겠단 거예요.  정도 사태, 저라면 문제 없으니까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클럽은 홀스터의 권총에 손을 가져다댔다.


동시에 그것이 신호라는 듯, 수풀에서, 길바닥에서, 담벼락 사이에서,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많은 ‘고양이’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여자… 여자여자여자. 추잡스러운 생크림 범벅으로 만들어  테다!! 남자라면 고간을 온 천하에 드러내 줄테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관절인형 같은 것이, 두 명의 여대생을 덮치려하고 있었다. 몸에서 돋아난 여섯 개의 팔에는 각각 2L짜리 생크림 봉지가 들려있다.


여대생들은 인형이 뜸해진 틈을 타 비상계단으로 도망치려했으나, 예상했다는 듯 계단에 대기하고 있던 인형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참모의 능력에서 발현된 ‘그림자 인형’들은 도망치려 한 자들을 인정사정없이 응징하리라.

『크으하하하하하하하하…각?』


그 순간, 창문을 깨뜨리며 날아온 총알이 인형을 꿰뚫었다. 총알은  발이나 더 날아오더니, 여대생을 덮치려던 인형들을 단숨에 산산조각 내고 무력화 시켰다.


“……사, 살았다?”


“Shot. 명중이군요. 권총으론 아슬아슬한 거리였습니다만.”

열린 창문을 향해 들이밀었던 총을 회수하며, 클럽은 다시 한  의식을 집중했다.

고양이들의 ‘시각’을 통해 백화점 전체의 상황이 손에 잡힐  전해졌다.

【감각동조(感覺同調)】. 대상과 자신의 감각을 동조시켜, 대상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등을 떨어진 장소에서 동일하게 느끼는 능력이다.

이게 클럽이 가진 ‘천리안’의 정체였다.

동조하는 대상에 제한은 없지만, 클럽은 파장이 맞는 고양이들을 주로 이용한다.


지금도  백화점에 고양이들을 잔뜩 풀어놨으며, 그들의 시야를 통해 인형의 위치를 파악, 필요에 따라 ‘원격조작탄’으로 저격해 파괴하고 있다. ‘원격조작탄’도 ‘감각동조’도 유효거리가 있는 만큼 본인도 백화점에 들어와야 했지만.

‘남은 탄 수가 그리 많지 않아요.’

탄 수는 한정되어 있지만, 고양이들의 시야로 얼핏 살펴본 바로 ‘그림자 인형’은 셀 수 없을 만큼 잔뜩 있었다. 인형을 파괴할 생각은 접어야 한다. 애초에 너무 눈에 띄었다간 13호가 예고를 무시하고 TS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다.


“노려야할 건 폭탄 본체….”


클럽은 정신을 집중하며, 고양이들을 통해 물밀 듯이 몰려오는 외부정보의 바다를 헤맸다.


개만큼은 아니지만, 고양이도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후각이 뛰어나다. 후각과 시각 정보를 총동원 해 ‘폭탄 같은 것’을 찾도록 유도한다. 이미  개는 찾아냈다.

‘폭탄이 설치된 간격을 보면 가스의 분출 범위도 대강 짐작할 수 있어요. 모든 폭탄을 처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민들한테 피해를 줄 범위에 있는 폭탄만 제거하면 됩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이 확보되는 순간, 그녀는 곧바로 최상층으로 돌입, 13호를 체포할 것이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도망칠 곳 없는 장소에서 대기한다니, 멍청하다고 밖에  말이 없다. 13호, 멍청이. 참모도 멍청이. 멍청멍청 똥멍청이들.


‘……그런데 뭐죠, 저 반짝거리는 건? 고양이들이 자꾸 멈춰서서 보게 되잖아요.’

아까부터 정찰을 나간 고양이들이 자꾸 멈춰선다. 호기심을 부추기는 물건을 발견하면 본능에 따라 지켜보고 마는 것이다. 어디 장난감 코너에서 떨어졌는지, 백화점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어서 고양이들이 매번 멈춰서고 있다.


거기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신경 쓰인다.

고양이는 청각이 뛰어나다. 후각보다도 청각을 의지할 정도로.

그만큼 민감한 청각에, 자꾸만 알 수 없는 묘한 소리가 들렸다.


뭘까, 이 신경을 자극하는 듯한 소리는. 기계음일까?

지금의 클럽은 다수의 고양이들과 신경을 공유하고 있다. 평소라면 그냥 ‘신경 쓰이는’ 정도의 소리도 지금은 몇십 배나 증폭해서 들리는 것이다. 덕분에 정신력이 자꾸자꾸 깎여나가는 기분이다.

‘아니, 거기다 묘한 향도 나는 것 같고. 폭탄 때문인 걸까요. 뭐죠, 아까부터 오감을 자극하는 듯한… 어쩐지 머리도 멍하고…….’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부르르- 울렸다.

“……Fuck.”


꺼내보니 [발신번호 제한]. 분명 13호에게서  전화겠지.

클럽은 고민에 빠졌다. 받을까? 받지 않으면 의심하겠지? 아직 폭탄을 처리하지 못했다. 혹시 자신의 계획을 알아채고, 그대로 기다리지 않고 폭탄을 터뜨려버리면 큰일이다.  받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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