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2 일상이 패배인 빌런, 패배가 싫은 히어로(3)
어째서 저 녀석이 여기 있는 거지?!
평소대로의 대원복이 아닌 평범한 사복이지만, 저 리본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히어로는 평소 생활할 때도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는 표식을 해둔다. 예를 들면 스페이드는 뺨의 스페이드 타투로, 클럽은 클로버 문양이 들어간 리본으로.
히어로가 여기에 있음을 알림으로써 범죄의 발생율을 늦추는 것이다.
“사복인 거 보면 비번인가 보네. 저 계집도 숨 좀 돌리러 온 거겠지. 잘 보면 친구들도 있어.”
도로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네. 히어로도 24시간 일만 하는 건 아닐 테니.”
시내로 숨 좀 돌리러 왔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
“근데 이대로면 여기서 밥 먹긴 좀 그렇겠네. 먹다 체하겠어.”
“흥. 쫄보가.”
“뭐야, 도로시 너도 나랑 같이 있는 걸 보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 때는 ‘나, 나, 나, 나쁜 빌런 아저씨가 절 협박해서...!’라는 명연기로 도망쳐 보일 거니까 괜찮아.”
“정말이지 너무하는구만!”
아무튼 이 거리는 너무 위험하다. 히어로가 활보하는 거리에 있다간 언제 들킬지 모르니. 가까워서 자주 온 시내였는데, 이런 위험성이 있다면 앞으로 쇼핑 같은 건 다른 곳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도로시? 왜 그렇게 날 쳐다봐?”
“네가 저 계집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
“뭐야. 질투? 너만 봐달라고?”
“멍청이.”
복부를 얻어맞았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지만 맵다!
“신경 쓰이는 거면 미행하면 되잖아. 저 계집을 함락시킬만한 약점을 원하는 거지?”
“아니, 하지만 지금은 너도 있고――”
도로시의 가느다란 검지가 내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참모. 너 지금 보고 있지? 아니라고? 개소리 마. 아지트의 비품을 다 누가 관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바보의 어딘가에 카메라랑 집음기 달아뒀을 거 아냐. 아지트에서 능글능글 웃으면서 보고 있겠지. 내 말 틀려?”
진짜냐?!
“아무튼 네가 보고 들은 대로 클럽이 나타났다. 참모인 네 녀석이라면, 거기다 저 계집한테 당한 게 있는 네 녀석이라면 미행해서라도 뭔가 약점을 잡고 싶을 테지? 그대로 해주겠지만 공짜는 아니야. 한 달 치 에너지바랑 닥터페퍼랑 교환이다. 내 냉장고에 비는 일 없게 해 놔. 좋아. ......그리고 그 민망한 가게에서의 내 모습, 촬영한 기록 전부 지워놓도록 해. 남아있다면 그 메모리 디스크로 네 머리를 깨부숴줄테니까.”
일방적으로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도로시의 다갈색 눈이 시내로 향했다. 시야의 끝엔 클럽이 인파에 묻혀 사라져가고 있었다.
“얼빠져 있지마, 13호. 나도 미행할 이유가 생겼으니까.”
“......고맙다.”
“뭐, 하려는 짓은 여자애를 미행해서 약점이나 캐내려하는 쓰레기 짓이지만. 정말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구나, 너.”
야야, 그걸 말하면 섭섭하지.
미행하기로 마음 먹은 우리 둘의 발치에서, 새카만 검은 고양이가 냐앙~하고 울었다.
* * *
“에고, 들켜버렸네.”
참모는 스피커폰으로 틀었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껐다. 테이블 위에는 휴대폰 말고도 태블릿 PC가 어느 시내의 거리를 비추고 있다.
도로시의 예상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소형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13호의 옷에 달아놨다. 천재인 도로시가 직접 개발한 물건이니 본인마저도 알아차릴 수 없었을 테지만.
자, 그럼.
‘도로시 양의 부끄러워하는 동영상은 잘 백업해둬야지. 이 백업용 외장하드를 들키는 날에는 진짜로 골로 가겠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자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뛰어들어야 하는 때가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그 때, 문 너머에서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 드디어 왔군.
“끙~차. ......클럽 그 아가씨, 정말 인정사정 없다니까.”
다행히 며칠 전 13호에게서 스페이드의 마력을 전달받은 덕분에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은 치유되었다.
정말 간신히 거동할 정도로만 회복되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으니 시내에 나가기엔 눈이 너무 띄는 데다, 아직도 행동에 이래저래 제약이 많지만. 애초에 단순한 접촉을 통한 마력 전도(傳導)는 효율이 너무 나쁘다.
아까 전의 통화.
도로시의 추측은 대부분 맞았지만, 한 가지 틀린게 있었다.
현재 참모가 있는 곳은 아지트가 아니었다.
“네, 잘 오셨네요.”
“어......라?”
힘겹게 현관으로 나와 문을 열자, 다갈색 머리에 안경을 쓴, 동안인 얼굴의 여성이 서 있었다. 익숙한 7번대의 대원복을 입고 있다.
애플. 7번대의 서무담당 대원.
어딘지 멍한 눈의 그녀는 참모의 얼굴을 보자 위화감을 느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기, 어라, 어째서 제가 여기에...?”
“어라, 애플 양. 그 전에 해야할 게 있잖아요. 예의 있는 인사가 먼저 아닌가요?”
“아, 인......사.”
인사, 인사.
입 속에서 몇 번 중얼거린 애플은, 기억이 났다는 듯 배시시 웃고는 살며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참모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음.......”
살짝 겹칠 뿐이던 키스였지만, 참모는 부족하다는 듯 입술을 가르고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애플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자연스럽게 그 혀를 맞아들이고 자신의 보드라운 혀를 얽었다.
춥...... 추릅.......
잠시 후 입을 떼자, 가느다란 타액의 실이 두 혀 사이에 이어졌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오시죠.”
“네헤.......”
그 키스가 스위치가 된 것인지 여느 때의 트랜스 상태처럼 눈에 빛을 잃은 애플이, 참모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아지트가 아닌, 어느 호텔 방 안. 그것도 히어로 협회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호텔이다.
최근 며칠, 몸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참모는 애플에게 본격적인 최면심도 개발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다.
전화를 통한 최면음파나 암시를 통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세뇌의 심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좀 더 유용한 말로 쓸 수 있도록.
그래봤자 고잘 며칠, 거기다 오래 기지를 비우게 할 수도 없어 개발 진척도는 생각보다 부족하지만 말이다.
“몸 상태가 좋았으면 좀 더 이런 짓 저런 짓 했을 텐데요.”
“......? 참모님, 뭐라고....”
“혼잣말이에요, 혼잣말. 자, 그건 그렇고, 애플. 아랫 속옷을 보여주실래요?”
애플은 그 말을 따라, 순순히 스커트 양 끝을 잡고 들어올렸다.
고급스런 레이스의 밝고 따뜻한 느낌의 민트색 속옷이, 스커트에 가려져 있던 뽀얀 허벅지가 숨김없이 드러났다.
‘아, 페로몬이다.’
참모는 눈 앞의 광경을 음미하며, 호텔 한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편으론 눈만을 돌려 태블릿 PC에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는 영상을 확인한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겠지만, 이 정도 멀티플레이도 안 될 정도로 무능하진 않다.
“조금 더 이리로, 가까이 와주세요. 예... 그럼 다음은――”
* * *
우리가 클럽을 미행한지 약 두시간 정도 지났지만, 특필할 만한 일은 그다지 없었다.
평범한 청년들의 평범한 일탈 같은 느낌이다. 같이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디저트를 먹고, 디저트를 먹고, 디저트를 먹고.
“......분명히 밥을 먹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디저트가 들어가는 거지?”
“너 주제에 무슨 여자를 이해해보겠다고 그런 말을 해? 징그러워. 그냥 여자는 그런 생물이다, 하고 받아들여 멍청이. 넌 평생 가도 이해 못할테니. 그보다 이거 먹고 싶어. 이 【메론월넛콘컵】.”
“너 아까 먹은 것도 남겼잖아.”
“맛이 궁금하단 말야. 아예 안 들어가는 건 아니야.”
“네가 남긴 거 처리하는 건 나라고. 더 이상 단 건 보고 싶지도 않아.”
“이번엔 다 먹을 테니 얼른 사줘. 봐, 애초에 이건 용량도 적고.”
내 억지에 맞춰주는 거니 별수 없이 이런 각종 비용은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하아, 디저트는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이 미행, 나가는 돈 만큼의 성과는 있는 걸까....”
“성과가 없지는 않잖아? 저 여자가 철권을 잘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으니.”
아까 전 잠깐 들린 게임센터에서의 일이다. 철권 게임으로 기고만장하게 연승하던 플레이어를 원 코인으로 엉망진창 두들겨패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더랬지.
나도 그 게임을 좋아하는 만큼 그 아름다우기까지 한 콤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게임에 졌던 상대방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니, 클럽이 속을 긁는 비웃음을 흘렸던 것도 잘 봤다. 미행이 아니었으면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만큼 아니꼬운 비웃음이었다.
게임을 잘하고 승리를 좋아한다. 대충 그런 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사진도 찍었고.”
도로시는 휴대폰을 꺼내 셀카를 찍는 듯한 각도로 클럽과 그 옆의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귀신같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찍어내는 그 솜씨는 놀라웠다. 나였다면 휴대폰을 꺼내든 시점에서 도촬범으로 체포됐을 텐데.
“혼자만 어딜 가나 본데?”
“그렇네.”
화장실인 걸까?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어딘가로 총총히 떠나가기 시작했다.
“어쩔래. 친구가 있다면 어차피 돌아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도 돼.”
“......쫓아가자. 틈을 봐서 습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온몸이 무기인 스페이드와는 달리, 클럽의 전투능력은 기본적으로 무기에 있다. 히어로 등급도 B급이다.
무기가 없는 지금, 어쩌면 손쉽게 제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혹여나 들킬까 싶어 주의하며 미행을 계속했다.
클럽은 단순히 화장실을 가려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멀리 가고 있었다.
어딜 가는 거지?
어쩐지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어느새 눈치채 보니 인적이 뜸한 골목길로 들어와 있었다.
“......젠장. 깨닫는 게 늦었다. 도로시! 돌아가자!”
“응? 뭐?”
“어딜 돌아간다는 걸까요.”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들었다.
바로 머리 위에, 분명히 저 앞에 있었을 단발머리 소녀가, 7번대의 히어로 클럽이, 담벼락 위에 오만하게 선 채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들켰지?”
“전 시선에 민감해서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 굳이 마스크로 가리려하지 않아도 돼요. 빌런 13호 씨는 잘 알고 있으니. 옆에 여성은... 잘 모르겠지만, 상황으로 봐선 13호 씨의 동료라고 보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