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0 Prologue (1/271)



〈 1화 〉#0 Prologue

현대사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가치관마다 다를테지만, 일단 빌런 13호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돈, 시간, 명예’로 정의하고 있다.

진부하다면 진부하려나?

'후후후....'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인 S시는 13호의 손에 의해 '돈'과 '시간'과 '명예'가 엉망이   아비규환의 지옥도에 빠져있었다.

[속보입니다. 빌런 13호에 의한 테러공작으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27분 늦어졌으며 덕분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져…]

“으아아아아아아! 13호오오오오오오오!!!! 그 놈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었어어어어...! 그 놈 때문에 여친한테 차여버렸어어어어어어!!! 으허어어어어어엉!!!!”


“휴, 휴대폰 없이 갇혀 있던 27분은... 지옥이었어....”

“지각하는 바람에 상사한테 까였어...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고... 안 그래도 신입이라고 눈칫밥 먹는데...!”


거리에서 들려오는 불만어린 감미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빌런 13호는 숨죽여 웃었다.


빌런 13호는 S시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공포의 존재였다.


‘별자리’로부터 힘을 받는 소수의 각성자들이 생겨나고, 세상에는 빌런이라는 사회의 암덩어리들이 생겨났다.


초인의 힘을 마구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빌런들, 그 사이에서 ‘빌런 13호’의 이름은 여타 다른 빌런들과는 그 무게가 달랐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는 사람의 마음이 없는 잔학무도한 빌런이라 한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개차반스러운 성격답게 최강의 빌런이라 한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는 악마의 화신이라 한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야말로 빌런의 카리스마라 한다.


그런 얘기가 들릴 때마다, 빌런 13호는 유쾌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이 맛에 빌런을 해먹지.’

그는 정말 최악의 빌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전하는, 공포의 화신이라 해도 좋다.

지하철 열차의 시간표를 조작해 노선에 혼란을 빚어 어마어마한 교통 트러블을 일으킨 것도 그다.

쭈그리고 앉아 변을 보려던 사람이 있길래 그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휴지를 빼앗아 간 것도 그다.


컵라면에 물을 부으려는 사람에게 미지근한  밖에 나오지 않는 정수기를 권해준 것도 그다.

가게의 매장에 숨어들어가 블루투스 이어폰의 짝을 전부 뒤섞어 버린 것도, 모든 것은 빌런 13호의 소행이었다!


최악!


쓰레기!

악마!


...이처럼 그의 잔학무도하며 악마 같은 행보는 하루를 멀다하고 끊이지 않았으며, 덕분에 S시에 사는 모든 시민들은 그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연히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히어로 협회, 그곳의 유능한 히어로들이 몇 번이나 그를 체포하기 위해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으나, 그조차도 빈번히 실패했다.

그는 최강이었기 때문이다.

각성자의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치 않게 남성 각성자였으며, 그럼에도 출중한 능력으로 히어로들을 빈번히 격퇴시켰다.


덕분에 빌런들의 위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히어로들은 패배의 쓴잔을 들이킬  밖에 없었다.

“빌런 13호! 이번에야 말로 놓치지 않아!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지를 찢어서 동해 바다에 던져버리겠어 이 개쓰레기야....”


“쯧쯧쯧. 그래선 안 되지, 히어로. 바다에 쓰레기 무단투기는 불법이라고.”


붉은 머리의 A급 히어로, 능력이 출중한 정의의 히어로가 끈질기게 따라붙었을 때도, 13호는 여유로웠다.

오늘은 특별히 화폐 유통의 중심지, 은행의 한복판에서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 어마어마한 만행을 벌이던 그는, 찾아온 히어로를 비웃으며 손에 쥔 쌈을 입에 털어넣었다.


 여유만만한 모습에 붉은 머리의 히어로, 스페이드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 이,  나쁜 자식들! 너희만 입이냐! 나도 고기 좋아하는... 아니, 그게 아니라, 은행에서 무슨 짓들이야  바보들아! 고기 냄새 때문에 다들 힘들어하잖아!”


“뭐야, 마음에 안 들면 잡으면 되잖아? 체포하라고? 뭐가 문제지? 넌 히어로고 난 빌런. 빌런이 빌런을 한다는 데 뭔가 문제 있나? 응? 응? 응응응응? 말해보지 그래, 히어로?”

“으, 으으으으으으...! 짜증나......!”

열이 받는지 스페이드가 발을 쾅쾅 굴렀다. 발밑의 바닥에 금이 가고 깨졌다. 얼마나 힘이 센 거냐. 13호는 무심코 침을 삼켰다.

아니, 아니다. 그래봐야 나는 최강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13호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 그는 빌런의 카리스마. 대한민국 대표 악의 조직 선봉장이다.


그의 위세는 계속될 것이며 세상은 언제까지고 빌런 13호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해 있었다.


“뒈져버려! 이 쓰레기 빌런 녀석!”

달려드는 붉은 머리의 히어로.  움직임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직선 저돌맹진. 속도는 빠르지만 그것 뿐. 그보다 빠른 속도 앞에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히어로란 것들도 학습능력이 없구만.


이제는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의 조잡한 돌진을 지켜보며, 13호는 카운터를 준비했다.


마력이 담긴 그녀의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곧바로 복부에 공격을 날려 기절시켜버리자.


그 다음엔 쓰러진 그녀에게 살짝 ‘장난’을 칠 수도 있겠지만, 히어로라면 빌런에게 당했을 때의 각오를 마친 정신 나간 녀석들이니까.

조금쯤은 이해해주겠지. 이해 안 하면 어쩌겠어.

음흉한 미소와 함께 그런 생각을  때였다.

몸 안의 마력을 움직인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잉?”


엉거주춤한 자세의 13호. 마력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느껴지지 않는다.

'뭐야, 뭐지? 뭐냐? 뭐냐고?'


혼란에 빠진 그 잠깐 사이, 히어로 스페이드는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 아니, 잠깐, 잠깐만!”

주먹에 힘을 싣기 위해 밟은 진각을 중심으로 바닥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는 게 보였다. 이야. 저 힘이 그대로 실린 주먹이 날아오면, 진짜로 죽겠지?

그건 알지만, 갑자기 힘이 사라져버린 갑작스런 사태에 굳어버린 13호는 피하기는커녕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퍼-억!

무시무시한 타격음, 동시에 13호의 몸이 핀볼처럼 벽과 천장에 이리저리 부딪치며 날아갔다.

최종적으로 창문을 부수고 은행 밖으로 내던져진 13호.

“““시, 13호님?!”””

“......어, 어라? 맞았네?”


부하들의 당황스런 목소리와, 어딘지 얼빠진 히어로의 목소리가 가물가물해진 의식 속에 들려왔다.


동시에,

『안녕 13호! 나 네 별자리거든? 이렇게 말 거는 것도 오랜만이네!.』

머릿속에 그런 목소리가 울렸다.


『이대로면 재미가 없으니, 난이도를 한  올려보고 싶네. 가능하면 절망할 정도로 쭉쭉.』


뭐?


『이제부터 마력공급 레벨을 최저치로 낮출게.』

잠깐만.

『일단 죽지는 않게 손은 봐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장난해?

『이상! 이제 좀 재밌어졌으면 좋겠다. 그치?』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잠........!”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로 가까스로 욕설을 내뱉은 13호는, 격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빌런의 카리스마 13호, 최약의 빌런으로 추락한 순간이었다.
 

16554488613643.jpg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