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8 - 338화- 탈출 성공?
마침내 아르웬은 라미드 섬에서 탈출했다.
“용병왕, 그 여자에게 가야만 해.”
미네 일행의 지원을 받은 아르웬은 테리스를 쓰러뜨렸다. 그녀를 쓰러뜨린 대가로 외부로 나갈 배를 얻을 수 있었다. 돛단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르웬은 미네 일행을 배에 태운 뒤, 열심히 노를 저어 용병왕이 다스리는 나라인 로세움 왕국으로 향했다.
현재 그리드를 적대하는 세력 중 라미드 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로세움밖에 없으니까. 행여 그리드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게 아닌가 싶어 아르웬은 불안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째 로세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해역에 제국 소속 함선이 단 한 척도 나타나지 않은 게 정말 이상했지만, 아르웬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탈출하는 게 우선이니까. 함정이든 뭐든 일단 도망가야만 한다. 언제 닥쳐올지 모를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르웬은 더 빨리 노를 저었다.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를 저은 끝에 테리스는 로세움 왕국에 도달했다.
“제 모든 걸 바칠 테니 복수할 힘을 주옵소서!”
도달하자마자 아르웬은 용병왕을 알현했다. 처음에는 대악마가 입은 군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이유로 하마터면 미네 일행과 함께 투옥당할 뻔했으나, 자신에게 흥미를 보인 용병왕의 변덕으로 간신히 죄수가 되는 꼴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신의 노예가 될 테니 그리드를 쓰러뜨릴 힘을 주옵소서! 제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입니다!”
용병왕을 알현한 아르웬은 자신을 노예로 삼아 평생 노리개로 부려도 상관없으니 그리드를 토벌하는 데 선봉을 맡게 해달라고 빌었다. 용병왕은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아르웬은 드디어 재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복수의 대가로 죽을 때까지 용병왕의 성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으나, 아르웬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복수할 기회를 얻었는데 노예가 되는 게 대수랴? 그리고 어차피 그 악마 자식 밑에서 험한 꼴이란 꼴은 다 당했는데 용병왕의 노리개가 되는 것은 무섭지도 않다. 나중에 후회하겠지만,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악마를 쓰러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간신히 얻은 이 기회, 허투루 쓸 수 없다. 자신의 몸을 대가로 아르웬은 그리드 토벌대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으며, 곧바로 대악마를 사냥하기 위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수십, 수백 번 넘게 계획을 계속 수정했다.
어설프게 계획을 짜면 실패하니까. 어설프게 결전에 임했다가 참패를 당한 전적이 있었기에 아르웬은 신중하게 사냥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대악마를 무너뜨릴 방도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꼴 좋구나, 이 악마 자식아!"
마침내 아르웬은 그리드의 목을 베는 데 성공했다.
“그러게 혼자서 덤비니까 이 꼴이 나지, 이 개자식아!”
참수된 악마의 머리를 들어 올린 아르웬은 조롱했다.
"내가 말했지. 언젠가 복수하겠다고. 그걸 헛소리로 치부하면 안 되지, 응? 나도 하면 하는 여자라고!"
지금까지 당한 서러움을 아르웬은 전부 토해냈다. 오직 이날만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그녀였기에 아르웬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통쾌했다.
"가서 광장에 매달아주마. 네놈의 시신도 전부 꼬챙이 꽂아서 매달아주겠어!"
아버지가 당했던 것만큼 똑같이 갚아주마. 똑같이 편히 죽지 못하게 만들어주자! 아르웬은 뒤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봐, 이 개새끼를 담을 포대 가져와!"
하지만 누구도 포대를 가지러 오지 않았다.
"어이, 내 말 안 들리냐! 어서 가져오라니까!"
다들 귀가 썩었나? 왜 튀어나오지 않는 거야? 군기가 빠졌나? 소리쳐도 대답이 없자 아르웬은 고개를 돌렸다.
"야, 어서 가져오라니…어?"
아무것도 없었다.
"무, 뭐야 왜 아무도 없는 거지?"
분명 이곳은 바다 한가운데였다. 용병왕의 이름으로 모인 함대가 이곳에 모여 있어야만 했고, 고용된 용병들이 이곳에 있어야만 했다. 그리드의 토벌을 성공적으로 끝냈으니 우레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어야만 했다.
근데, 왜 아무것도 없는 걸까? 함대도, 용병들도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왜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르웬은 당혹스러웠다.
당혹스러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라? 분명 목을 들고 있었는데…."
아르웬이 손에 쥐고 있던 그리드의 머리도 사라졌다. 갑판에 엎어져 있던 악마의 시신 역시 사라졌으며, 그녀가 서 있던 갑판도 사라졌다.
오직 어둠 속에 아르웬만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복수에 성공했잖아. 근데 왜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냐고! 아르웬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땅이 흔들린 건 그때였다.
'윽?'
흔들림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언가가 땅 밑에서 솟구쳐 올랐다. 자신을 압도하는 그림자를 향해 아르웬은 고개를 올렸고,
"어, 어째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왜, 왜 저 마물이 여기에…그리드는 죽었는데, 어째서?"
거대한 촉수였다. 갈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촉수였다. 자신을 집어삼켰던 그 촉수가 맞았다. 둥지에 있어야 할 촉수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그리드가 죽었는데 왜 촉수가 나타난 걸까?
아니,
정말로 자신이 그리드를 죽인 게 맞나? 이렇게 그리드가 쉽게 죽일 수 있는 녀석이었나? 아르웬이 그런 의문이 든 순간,
아르웬은 거대한 촉수에 삼켜지고 말았다.
●●●
"…!"
아르웬은 눈을 떴다. 뜨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여, 여기는…설마!"
지금 아르웬이 있는 곳은 벌집이다.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 오직 그리드가 만들어낸 갈색 촉수로 이루어진 집이다.
그 집 중 하나에 아르웬은 갇혀 있었다. 사지는 촉수로 결박당해 있었기에 몸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 왜 내가 여기에…흐윽?"
아르웬은 신음을 흘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 가슴에 착유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촉수 두 개가 가슴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반복 동작을 통해 세찬 우유 줄기가 터져 나오고, 새하얀 물줄기를 촉수들은 끊임없이 빨아먹었다.
“어, 어째서 여기에 갇혀 있…하윽?”
그녀의 배 역시 굵은 촉수들이 감싼 상태였다.
감싼 상태에서 만삭이 된 그녀의 배를 조이고 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폭탄이 터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 분명 결투에서 이겼는데, 왜 임신을…하오오옥!"
가랑이 사이에는 두 개의 굵은 촉수가 박혀 있었다. 하나는 보지를 마음껏 농락하고 있으며, 남은 하나는 항문을 마음껏 농락하고 있었다. 이미 싸질렀는지 촉수가 박힌 두 구멍에서 정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아르웬은 모체로 이용당하고 있었다.
이 사실에 아르웬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난 분명….’
의식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르웬은 떠올렸다.
‘결투에서 이기고….’
기절했다. 과도한 강화의 반동 탓인지, 아니면 드디어 강적을 쓰러뜨렸다는 안도감에 휩싸였기 때문인지 아르웬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즉, 아르웬이 그리드를 참수한 일은 꿈에 불과했던 거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벌집에 갇혀 있는 건가? 갇힌 지 며칠이나 지난 걸까? 여전히 라미드 섬에 갇혀 있는 걸까? 내보내 준다고 했으면서 왜 그 녀석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아르웬은 의구심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나, 분명 이겼는데…." "그래, 분명 이겼지."
익숙한 목소리에 아르웬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진짜 아프더라. 설마, 나한테 박치기를 날릴 줄이야. 순간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어."
구릿빛 피부를 가진 흑청색 머리의 여전사. 그리드의 스승인 테리스다. 아르웬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래, 나도 놀랐지."
그 테리스 옆에 서 있는 흑발의 청년이 말했다.
"역시 괜히 복수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어떻게 생각했으면 박치기를 날린다는 발상을 했을까?" "그리드…."
자신의 철천지원수, 그리드였다. 능글맞게 웃는 그리드의 모습에 아르웬은 자동으로 표정이 구겨졌다.
"그보다 팔은 괜찮냐? 뼈가 부러져서 다시 맞추긴 했는데…." "네놈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리드의 질문에 아르웬은 톡 쏘듯이 대답했다.
"그러냐? 그럼 이곳에서 한동안 모체로 살아도 되겠네. 이번에는 얼마나 낳을지 궁금하네." "…왜." "음?" "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지?"
멍청한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아르웬은 물었다.
"풀어준다고 했잖아. 근데, 왜 이곳에 가둔 거지?"
애초에 그리드가 약속을 지킬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아르웬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애완동물로 삼기 위해서 온갖 고문이란 고문을 다 하던 녀석이었는데, 고작 결투 한 번으로 풀어줄 인간인가? 진짜로 약속을 지킨다는 말에도 아르웬은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잡고 싶었다.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랬는데, 또 속아버리고 말았다. 멍청하게도 또 놈에게 놀아나고 말았다.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또 당하니 스스로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근데도 질문을 던지는 건 왜일까? 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녀석을 문책하고 싶은 걸까? 왜 이러는지 아르웬 자기 자신도 몰랐다.
"가두다니, 풀어줬잖아?"
강림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 반응에 아르웬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는 라미드 섬…." "여긴 라미드 섬이 아니야."
대답한 사람은 테리스였다.
"여기는 동굴이야." "동굴?" "그래."
지금 아르웬이 어디에 끌려왔는지 테리스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로세움 왕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