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7 - 337화- 두 번째 대결의 결과는?
다음 날, 벌집에서 나온 아르웬은 경기장에 도착했다. 어제와 똑같이 몸에 꽉 끼는 군복을 입은 채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옷을 준비한 사람은 강림이었다. 옷이 찢어지는 상황이 분명 있을 거라고 보았기에 여러 벌의 군복을 준비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말에 아르웬은 전혀 기쁘지 않았지만 말이다.
"밤은 잘 보냈냐?"
먼저 경기장에 나온 구릿빛 피부의 여전사, 테리스가 물었다.
"…."
아르웬은 그 질문에 호응하지 않았다.
"…잔말 말고 어서 덤벼."
오른손에 쥔 목검을 들고 테리스를 향해 겨눌 뿐이었다.
그런 아르웬을 보며 테리스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내렸다.
'어제보다 좀 달라진 것 같네.'
외형상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눈빛이 뭔가 달랐다. 마치 각오를 확실하게 다진 느낌이랄까? 뭔가 제대로 다짐을 하고 찾아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물론,
"하아, 하아, 하아…어, 어서 덤벼, 덤비라고."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과 별개로 얼굴은 흥분으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덤비란 말이야. 내가, 내가 있을 수 있을 때 어서 결판을 내자고!"
홍당무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상태로 아르웬은 소리쳤다. 화내고 있으나, 도저히 화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섹스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창녀 같은 느낌이다. 테리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서 합시다, 스승님."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흑발의 청년, 강림이 어서 하자고 재촉했다.
"저 녀석 오래 못 버틸 겁니다."
갈색 촉수로 이루어진 소파에 앉은 강림은 말했다.
"그걸 아니까 어서 하자는 거예요. 이미 제가 얘기했으니 모르진 않겠죠?" "음…."
테리스는 아르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아르웬 상태가 시한폭탄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치 화산처럼 보이네.'
강림은 세 모험가를 이용해 아르웬을 강화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나마 테리스와 맞상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너무 강화한 나머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싸울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일 것이며, 그 제한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다.
아르웬이 어서 덤비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자자, 어서 합시다.”
강림은 손뼉을 치며 재차 결투를 재촉했다.
“이 두 사람도 결투를 보고 싶어 난리니까요, 안 그러냐?”
강림 옆에는 두 개의 고치가 있었다.
“우끕, 우끕, 우끕, 우끕!” “푸끅, 푸끅 푸끅, 푸끅!”
갈색 고기로 이루어진 고치이며, 고치 하나당 한 명의 여성이 갇혀 있었다. 한 명은 폭유급 이상으로 가슴이 큰 여자이며, 다른 한 명은 빨래판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가슴이 매우 작았다.
그 상태로 두 여성은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촉수에 가슴이 희롱당하고, 가랑이가 범해지고 있었다.
"우끅, 우끄윽, 우끄으읍, 우끄으으윽!"
이 중 가슴이 폭유급 이상인 여성이 지나칠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나,
재갈 형태로 촉수가 입을 봉하고 있었기에 단순한 울음에 그칠 뿐이었다.
"두 사람도 얼른 보고 싶다고 합니다. 어서 합시다."
여자가 울부짖는 걸 무시하고 강림은 어서 하자고 졸라댔다.
"그래, 알았다."
강림이 만든 연극이다. 그 연극에 따르겠다고 한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괜히 초를 칠 수는 없지. 폭탄이 터지기 전에 확실하게 하자. 테리스도 마침내 목검을 꺼내 들었다.
"…." "…."
대악마를 탄생시킨 스승과 그 대악마를 죽이고 싶어 하는 복수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눈 채 노려보기만 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둘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그 모습을 강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고, 고문을 받는 두 여자도 경기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때, 천장에서 정액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캉!
두 목검이 격돌한다.
-캉, 캉, 캉, 캉!
격돌한다. 계속 격돌한다. 격돌할 때마다 충격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퍼져나간 충격파는 둥지 내부를 크게 진동시켰다. 만약 충격파에 힘이 담겨 있었다면 그 자리에 있는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도 남을 거다.
-캉, 캉, 캉, 캉!
사나운 돌풍이 되어 테리스를 몰아붙이는 아르웬. 어제와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테리스를 공격하고 있다. 버프를 받은 덕분인지 어찌나 세게 공격하는지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복수귀의 매서운 공격에도 테리스는 전부 막아내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이 철벽을 자랑하는 테리스였으나,
그 철벽이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캉, 캉, 캉, 캉!
역으로 쳐내고 테리스를 향해 검을 찌른다. 어제는 빈틈만 집요하게 노리며 공격했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오직 힘으로 테리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테리스의 얼굴은 점점 놀라움으로 채워져 갔다.
"…!"
결국, 테리스는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매섭게 내찌른 아르웬의 목검이 그녀의 오른쪽 팔뚝을 꿰뚫어버렸다. 아르웬이 목검을 빼자,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로 인해 테리스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르웬은 테리스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
복수귀의 주먹에 정통으로 맞은 테리스는 그대로 날아갔다. 기둥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도 기둥은 촉수로 이루어진 것이라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는 대참사가 벌어지지 않았으나, 효과는 충분했다. 내상을 입었는지 테리스는 좀처럼 일어서질 못했다.
기회다. 이제 한 방 더 먹이면 된다!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아르웬은 당장 달려들려고 했다.
그 순간, 시야가 흔들거렸다.
"윽?"
갑자기 현기증이 온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무언가, 무언가 줄줄 새어 나가는 것 같다. 왜 갑자기 몸에 힘이 없어지는지 아르웬은 눈치챌 수 있었다.
'왜, 왜 하필 지금이야? 왜 하필 지금이냐고!'
부작용이다. 미네 일행에게 받은 강화의 부작용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짧다고 들었지만….'
고작 몇 분도 버티질 못할 줄이야. 한계에 봉착한 아르웬은 하마터면 목검을 놓칠 뻔했다.
'어서,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차려야 해!'
세 모험가는 말했다.
지금 자신들의 희망은 오직 아르웬뿐이라고. 아르웬이 이겨야 다 같이 이 생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벗어나고 싶으니 자신들이 가진 힘을 전부 아르웬에게 주겠다고.
단, 다 들어가지도 못할 폭탄을 억지로 쑤셔 넣은 거나 다름없으니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터지기 전에 승부가 난다면 자신들이 어떻게든 해제할 수 있으나, 승부가 나지 않으면 그대로 끝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르웬은 속전속결로 이 싸움을 끝내려고 했다. 승리해도 죽는 것은 절대 사절이니까.
근데, 이제 결말이 코앞인데 발작이라니.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어떻게든 테리스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위해 아르웬을 발걸음을 옮겼다.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푸른색 자칼이 그녀 앞에 닥친 건 그때였다.
"…!"
아르웬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렀다. 그녀가 있었던 자리는 자칼 형태의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갔다. 1초라도 늦었다면 아르웬은 어제처럼 또 넝마가 되었을 거다.
간신히 피한 아르웬은 몸을 일으켰다.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캉!
달려든 테리스가 휘두르는 검을 막아냈다. 한 번 막는 걸로 그치지 않았다.
-캉, 캉, 캉, 캉!
테리스는 무서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태세를 전환한 여전사의 무자비한 공격에 아르웬은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막아내고 있지만, 점점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몸 곳곳에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발작으로 아르웬은 검을 휘두르기가 버거워졌고, 테리스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완전히 박살을 내기 위해 더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싸움의 판도가 순식간에 역전되고 말았다.
'이, 이대로는….'
진다. 무조건 진다. 또 져서 벌집에 갇히게 될 거다. 그때는 정말 모체로 이용당하게 될 거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 모험가도 똑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 거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간신히 승리할 길이 보였는데, 여기서 멈출 것 같나? 반드시 이겨야 한다,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이 괴물을 확실하게 제압할 틈을 만들 방도는 무엇일까?
답은 금방 나왔다.
그리고, 아르웬은 공격을 멈췄다.
"…?"
갑자기 아르웬이 목검을 놓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테리스는 깜짝 놀랐으나,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르웬의 오른팔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잡았다."
아르웬은 남은 왼손으로 테리스의 멱살을 붙잡았다. 테리스가 바로 아르웬의 손을 떼어놓으려던 순간,
아르웬은 박치기를 날렸다.
"…뭐?"
세게 박치기를 날렸다. 계속 날렸다. 서로의 이마가 피범벅이 될 때까지 아르웬은 박치기를 날렸다. 이런 식으로 반격을 당할 줄은 테리스는 생각지도 못했으나,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결국, 테리스의 고개가 축 늘어지고 나서야 아르웬은 박치기를 멈췄다. 아르웬이 손을 놓자, 이마가 깨진 테리스는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겼다, 이겼어!"
마침내 승리했다는 사실에 아르웬은 크게 기뻐했다.
"이제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다고!"
이제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아르웬은 크게 환호했다. 어서 세 사람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나갈 수, 나갈 수 있…."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있게…되었는데…."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여파로 아르웬은 그대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자, 그럼 끌고 가볼까?"
원수가 다가오는 소리를 아르웬은 끝내 듣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