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3 - 323화- 둥지 안에 존재하는 경기장
"허억, 허억, 허억…."
갈색 촉수로 이루어진 경기장이 있었다.
바닥은 타원형이었고, 천장은 없었다. 대신 수많은 기둥이 타원형 바닥의 둘레에 세워져 있었다.
이것을 만든 재료는 전부 갈색 촉수다. 그래서 항상 이 경기장은 꿈틀거리는 소리가 항상 들려왔고, 항상 악마의 정액 냄새가 풍겨왔다.
그 경기장에 한 여성이 갇혀 있었다.
"허억, 허억, 비, 빌어먹을…."
그녀는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계속된 상대방의 공격으로 흉갑은 움푹 파였으며, 팔다리를 보호대 역시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이마가 찢어졌는지 계속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승기를 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여성은 크게 분노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녀의 직업은 용병이었다. 로세움 왕국 소속이었으며, 용병왕의 명령에 따라 그녀는 파티원들을 데리고 제국에 침입하려고 시도했다.
용병이면서 왕의 명령에 따르는 이유는 단 하나. 그리드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얻기 위해서다.
-대악마 그리드의 목을 가져와라. 가져오기만 하면 너희들이 부르는 대로 돈을 주겠다.
그리드는 해적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상 수배범이 되었다. 성격이 포악하고, 수법이 너무나 잔인했기에 지금까지 수배된 해적 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으로 현상금이 책정되었다. 이 현상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용병이 그리드에게 도전했으며, 이 여성 용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악마에게 도전한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자비의 ‘자’ 자도 없던 그리드는 자신에게 덤빈 용병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돼지고기처럼 토막을 내고, 바다에 내던져 버렸다.
지금은 성격이 좀 바뀌어서 막 죽이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건 여자일 때다. 남자는 가차 없이 죽이고, 여자는 병사를 잉태하고, 모유를 착취할 모체로 이용당한다.
여성 용병 파티에도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잡히자마자 바로 참수당했다. 그리고 여성 용병을 포함한 3명의 여성은 모체로 전락할 운명이다.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 용병은 경기장에 있으며, 이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진짜 창이 아닌, 끝에 아주 무거운 솜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 솜을 보자기로 싼 연습용 창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왜, 왜 한 대도 안 맞는 거야!"
여성 용병은 용감하게 싸웠다. 자신과 파티원이 이 지옥 같은 라미드 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눈앞에 있는 여전사를 쓰러뜨리려고 악착같이 덤볐다. 자신이 가진 창술을 총동원해서 여전사를 몰아붙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괴수도 아닌데, 무슨 움직임이 빠른 거야…."
힘을 너무 많이 써버렸기에 여성 용병은 지금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끊임없이 적의 공격에 당했기에 전신에 피멍이 들지 않는 곳도 없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고통이 엄습하는 걸 보면 갈비뼈에도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용병과 싸우는 전사는 어떠한가?
"아직도 할 거냐?"
흑청색 머리에 푸른색 눈동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전사, 테리스는 여성을 향해 물었다. 그리드의 스승인 그녀는 철제 갑옷을 입은 여성 용병과 달리 평소에 훈련하던 옷을 입고 있었다. 색이 짙은 검은색 옷과 바지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으나, 여성과 달리 다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지친 기색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보일 정도로 테리스와 용병 사이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포기하겠다면 그만둘게. 어때, 포기할래?" "웃기지 마! 누가 포기할 것 같아!"
테리스의 제안을 여성 용병은 단칼에 거절했다.
"여기에 있으면 무슨 꼴을 당하는지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창을 놓을 것 같냐? 잔말 말고 어서 덤벼!"
본래 여성 용병은 파티원과 함께 배를 타고 제국 영토에 잠입하려고 했다. 라미드 섬을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려고 했다. 라미드 섬에 제국 함대가 정박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멀리 돌아가는 게 현명하니까.
하지만, 이미 로세움 용병들이 라미드 섬을 우회해서 온다는 걸 강림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성 용병 일행이 가는 길목에 함선들을 배치해 놓은 상태였으며, 그 함선들에 여성 용병 일행은 걸리고 말았다.
이후 남자 동료들을 잃은 직후 남은 여성 용병 일행은 라미드 섬에서 끌려왔다.
끌려와서 여성 용병이 본 것은,
-우끕, 우끕, 우끕, 우끕!
-푸끕, 푸끕, 푸끕, 푸끕!
-후끕, 후끕, 후끕, 후끕!
생지옥 그 자체였다.
'소식은 들었지만, 그 라미드 섬이 이렇게 몰락할 줄이야.'
라미드 섬은 테리스와 같은 혈족들이 사는 동네였다. 자신들을 전사의 후예라고 자칭하던 이들은 우수한 용병들을 양성했으며, 어느 전장이든 눈부신 전과를 일궈냈다. 이러한 사실을 용병왕도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라미드 섬을 편입해서 혈족을 자신의 휘하로 삼으려고 했다.
그 섬은 지금 둥지가 되었다.
대악마가 만들어낸 갈색 촉수에 뒤덮인 고기 둥지가 되었다.
섬에 살던 모든 혈족은 물론이요, 네치아 왕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용병들 전원 둥지에 갇히고 말았다.
갇히게 된 이들은,
-우끄윽, 우끄으읍, 우끄으으읍!
-푸끄윽, 푸끄으읍, 푸끄으으읍!
-후끄윽, 후끄으읍, 후끄으으읍!
촉수에 결박당한 채 끊임없는 능욕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끕, 우끕, 우끕, 우끕!
-푸끕, 푸끕, 푸끕, 푸끕!
-후끕, 후끕, 후끕, 후끕!
여성들의 입에는 촉수가 박혀 있었다. 식도까지 침범한 굵은 촉수는 피스톤 운동을 끊임없이 반복했으며, 정해진 시간이 될 때마다 악마의 정액을 사출했다. 모체가 된 여성들에게 있어 이 역겨운 정액이 그들의 유일한 식사 거리였다.
-우끄급, 우끄그급, 우끄그그급!
-푸끄급, 푸끄그급, 푸끄그그급!
-후끄급, 후끄그급, 후끄그그급!
여성들의 가슴에는 촉수가 착유기처럼 부착되어 있었다. 부착된 촉수는 끊임없이 가슴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으며, 반복할 때마다 유두에서 모유가 뿜어져 나왔다. 강제로 짜낸 모유는 갈색 고기로 이루어진 통에 담아졌다. 통에는 보온 능력이 있기에 언제든 병사들의 식량으로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우끙, 우끙, 우끙, 우끄응!
-푸끙, 푸끙, 푸끙, 푸끄응!
-후끙, 후끙, 후끙, 후끄응!
여성들의 보지에도 촉수가 박혀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먹는 것처럼 촉수는 끊임없이 왕복 운동을 하며 여성들의 음부를 농락했다. 정해진 시간이 될 때마다 촉수는 여성들의 자궁에 정액을 사출했다. 자궁에 새로운 생명이 자리 잡을 때까지, 새 생명이 태어날 시기가 될 때까지 촉수는 끊임없이 여성들을 범했다.
-우끄으윽, 으끄으윽, 으끄으으읍!
-푸끄윽, 푸끄으윽, 푸끄으으읍!
-후끄윽, 후끄으윽, 후끄으으읍!
그렇게 만삭이 된 여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출산했고, 태어난 아기들은 촉수가 받아 양육실로 옮겼다. 갈색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고치에서 가둬 육성된다.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아기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제국의 충실한 병사가 되어 있을 거다.
-후끕, 후끕, 후끕, 후끕!
-푸끕, 푸끕, 푸끕, 푸끕!
-우끕, 우끕, 우끕, 우끕!
항문에도 촉수가 박혀 있었다. 이 구멍에 박힌 촉수 여성들의 배설물을 받아먹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받아먹은 배설물은 전부 둥지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이렇게 둥지에 갇힌 여성들은 모체로 쓰이고 있다. 끊임없이 정액을 먹고, 끊임없이 아이를 잉태하고, 끊임없이 모유를 짜낸다.
이 광경을 봤으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하긴, 그런 말을 하는 게 정상이지."
여성 용병의 말을 테리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곳에 갇혀서 가축이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왜 악마의 편이 되었지?” “그야 패배했으니까.”
테리스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패배했고, 조교 당했고, 굴복했다. 이유는 그뿐이야.” “그런 이유로 이 정신 나간 짓에 협력한다는 거야? 전사의 명예를 운운하던 녀석들이 완전히 타락했네.” “그래, 타락했지.”
테리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타락했기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지금 자신과 여성 용병이 서 있는 경기장을 가리키며 테리스는 말했다.
“전사들이 마지막 명예를 걸고 싸울 장소를 만들었어. 어차피 지옥에 떨어질 거라면 유감없이 싸운 끝에 떨어지는 게 낫다고 봤지.”
로세움 왕국에 존재하는 그 경기장을 참고해서 테리스는 둥지 내부에 경기장을 만들었다. 최후를 맞이할 전사들의 마지막 명예를 기리는 싸움을 벌일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것이 테리스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였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끝까지 갈 거면 최선을 다해서 덤벼. 덤벼서 나를 쓰러뜨린다면 너도, 너의 동료들도 다 풀어줄 테니까.”
이 경기장의 규칙은 오직 하나. 둘 중 한 사람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될 때까지 싸우는 것. 만약 테리스가 이기면 패배자는 그대로 모체가 되고, 반대로 테리스가 패배하면 도전자는 섬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테리스를 이긴 자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 어서 덤벼.”
실력은 테리스가 압도적이다. 괴수로 각성한 이후 신체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이 괴수로 각성한 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테리스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여성 용병 역시 지금까지 도전한 수많은 전사와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결말이 뻔히 정해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승부의 연속이었으나, 테리스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모욕을 주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질 게 뻔한 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덤비는 전사들을 테리스는 비웃지 않았다.
여성 용병이 끝까지 싸우려고 하자, 조롱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전력으로 덤벼라. 이쪽도 전력으로 갈 테니." "…."
여성 용병은 눈동자를 옆쪽으로 돌렸다.
자신을 따르던 파티원 두 명이 있었다. 둘 다 포박된 상태로 이곳을 보고 있었다. 다들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부디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성 용병을 응원하고 있었다.
'질 수 없어.'
여성 용병은 창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그리드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역병으로 취급된다는 말은 들었다. 한 번 녀석에게 당한 자는 영원히 녀석의 편에 서니까. 아마 돌아가도 자신들은 그런 취급을 받을 거다.
그래도 돌아간다. 무조건 돌아간다. 여기서 영원히 갇힐 바에야 차라리 돌아가서 죽는 게 낫다.
그러니 이기자, 무조건 이기자!
각오를 다진 여성 용병은 테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찌르기에 들어갔다.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창 찌르기. 수많은 창날로 이루어진 해일이 여전사를 향해 덮쳐온다.
그 해일을 테리스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목검을 든 오른손을 들 뿐. 들어서 그대로 휘둘렀다.
휘두름과 동시에 해일은 절단되었고,
용병의 창도 절단되었다.
“…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용병은 순간 멍해졌고,
“하, 아하하….”
이내 곧 현실을 깨닫고 말았다.
“이 괴물 같은 녀석이….”
자신의 마지막 일격이 고작 칼질 한방에 당하다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격차가 심하다고 여겼지만, 발악조차 막히다니.
그래도 포기해선 안 된다. 이대로 쓰러져선….
그 순간, 용병의 시야로 목검이 쇄도했고,
무언가 딱딱한 것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용병은 의식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