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0 - 310화- 항복 선언, 그 결과는?
"우끅? 우끄읍, 우끄으읍, 우끄으으윽!"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났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스피어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푸끅, 푸끄윽, 푸끄으윽, 푸끄으으읍!"
어째서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촉수에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남색 머리의 여자, 아르웬의 행동에 스피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르웬, 이 여자가 왜 이러지?’
아르웬을 스피어는 만난 적은 없지만, 바다 건너 소문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대악마 그리드의 출현으로 멸망의 갈림길에 선 네치아 왕국의 마지막 희망. 대악마에게 가족을 잃은 복수귀이며, 악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뭐든지 바칠 수 있는 여자. 복수를 위해 나라에서도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철선을 확보하고, 미치광이 영주가 만든 괴물들을 확보하고,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는 선택지를 과감히 고른 여자.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났을 때 꼬투리를 잡힐 일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복수를 위해서 뭐든지 한 여자. 그걸 알기에 제1 왕녀가 왕국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전부 그녀에게 몰아줬다는 걸 스피어는 들었다.
그리고, 회색 머리 엘프로 강제로 개조당한 이후에 아르웬이 패배했다는 소식도 스피어는 들었다. 그리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뭉친 왕국 병사들이 하루 만에 전멸했다는 소식은 스피어를 충격에 빠뜨리고도 남았다. 생존자들은 예외 없이 악마의 노리개로 전락했고, 아르웬은 그리드에게 대항한 수장인만큼 악마에게 직접 고문을 받는 처지임을 스피어는 들었다.
그래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싸우려고 노력하는 여자라고 들었다.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끝까지 악마에게 항복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문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항복이란 말을 끝끝내 입에 담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게 강인한 여자가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우끕, 우끄읍, 우끄으읍, 우끄으으읍!"
어째서 자신에게 정액을 먹이는 건가?
"하아, 하아, 하아…하우으읍!"
어째서 더러운 정액으로 이루어진 수면에 머리를 박고,
"쮸읍, 쮸읍, 쮸읍, 쮸읍…."
어째서 볼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정액을 입에 담고,
"하우읍, 후읍, 후읍, 후으읍!"
어째서 그 정액을 자신에게 먹이는 걸까? 무슨 이유로? 하기 싫다고 울부짖던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스피어는 이유를 따지고 싶었으나, 할 수가 없었다.
"후끕, 후끕, 후끕, 후끕!"
질문하기도 전에 아르웬이 먼저 행동하니까. 1초도 안 된 사이에 정액을 머금고, 정액을 먹이는 행위를 쉬질 않고 반복하니까. 코앞에 호랑이라도 나타난 건지 번개 같은 속도로 정액을 계속 먹이고 있었다.
"그, 그만, 그…우으으윽?"
이렇게 반복 행위를 쉴 틈 없이 하니 스피어는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으며,
"토, 토할 것 같아. 그, 그만해, 그…우으윽?"
더는 삼킬 수 없다, 이젠 한계다고 소리치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정액을 계속 먹으면 배가 터져 죽을 거다! 끊임없는 아르웬의 정액 먹이기에 스피어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당연히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걸 알고 있다 해도 공포에 휩싸인 이상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그만해, 그만, 그만!"
공포심이 원동력이 된 걸까? 자신을 감싼 아르웬의 팔을 스피어는 풀어냈다. 그리고 바로 손으로 아르웬을 밀어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아르웬은 검은 고기 벽에 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아르웬의 입에서 정액이 허공에 붕 떠올랐고, 스피어의 얼굴에 쏟아졌다.
“으….”
얼굴에 묻은 정액을 스피어는 손으로 닦아냈다. 닦아내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뭐야, 원래대로 돌아온 거야?"
순간 당황한 아르웬이었으나, 이내 곧 스피어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대로 미쳐버린 줄 알았는데…아직 멀쩡하나 보네요." "미쳤다고, 내가?" "기억나지 않아요?"
아르웬은 물었다.
"좋다, 싫다 반복해서 꽥꽥 소리를 질렀잖아요, 기억 안 나요?" "…아."
드디어 스피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랐다.
"나, 난. 그, 그러니까…."
모든 걸 떠올리자 스피어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던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광인이 되었다니. 만약 키스로도 깨어나지 못했다면 스피어는 다른 인물이 되었을 거다.
"미, 미안해. 내, 내가 정신이 나가버려서…." "됐습니다. 어차피 상황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아르웬은 딱 잘라 말했다.
사실 그녀도 스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자기 자신도 정신줄을 놓아서 원수와 그 따까리들에게 그만두라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애원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스피어가 제정신을 차린 것 역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아르웬은 스피어를 보고 명령을 내렸다.
"잡담은 그만하고, 이제 무너지세요. 그리드의 노예라고 인정하세요." "너, 지금 무슨 소리를…."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세요."
스피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아르웬은 설명했다.
"당신이 그 악마에게 굴복하겠다고 선언을 해야 우리 둘 다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천장을 보세요."
그 말에 스피어는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
"왜 정액이 천장에서…."
천장에 나 있는 수많은 구멍을 통해 정액이 쏟아지고 있는 걸 스피어는 보았다. 그 정액으로 인해 아르웬과 같이 갇혀 있는 이 작은 공간이 정액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공기가 희박해졌는지 숨 쉬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아마 그리드 녀석이 준비한 거겠죠. 제가 당신을 타락시키지 않으면 둘 다 죽일 목적으로." “….” “놈에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이 무너지면 이 미친 짓을 멈출지도 몰라요. 녀석은 사악하지만, 약속은 지키는 놈이니까.” “하하….”
겨우 상황을 파악한 스피어는 허탈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이 빌어먹을 엘프섬에서 도망치기 위해 버텨왔는데, 이딴 게 결말이라고?”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다. 악착같이 버티고, 버틴 끝에 드디어 도망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잡히고 왕국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린 여자에게 강간당하는 처지라 해도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다 헛된 일이었다. 다 무의미한 일이었다. 결말은 이미 정해졌고, 그 결말을 향해 달려갔을 뿐이었다. 배드 엔딩에서 벗어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정해진 길로만 계속 달려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피어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허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도 다른 여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나 봐.”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정신병자가 되는 거였는데….”
이곳에 끌려온 한 여자에게 이런 말을 문득 들은 적이 있었다. . 악마는 그렇게 저항하는 여자를 괴롭히는 걸 즐긴다고. 그래서 스피어와 같이 자존심이 남은 여자가 있는지 눈여겨본다고. 그렇게 눈여겨본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 걸 즐긴다고. 그러니, 악마에게 계속 저항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고. 지옥이니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자고. 모든 걸 다 잊고 녀석의 노리개로 살자고. 그러면 최소한 생존은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이 미쳐버린 세상의 진리다. 그 진리에 거역하는 자는 더 큰 고통이 따를 뿐.
스피어는 그 진리를 거부했고, 거부한 결과 이 꼴이 되고 말았다.
“저기, 너는 언제까지 저항할 거지?”
스피어는 물었다.
“왕국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렸으니 마지막까지 저항할 거니, 응?” “저는….”
아르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그렇구나.”
못했지만, 절망이 담긴 아르웬의 눈빛을 보고 스피어는 깨달았다. 깨달았기에, 그녀 역시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럼, 더는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지.”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스피어는 소리쳤다.
“야 이 망할 새꺄! 나 항복한다!”
쩌렁쩌렁 소리가 울리니 아르웬은 눈을 찌푸렸다.
스피어는 계속 말했다.
“네놈 뜻대로 따라주겠다. 노예가 되겠다고! 씨받이가 되는 걸 인정한다! 그러니 어서 이 미친 짓을 멈춰 개새끼야!” “….”
항복 선언이 아니라, 완전히 선전포고 아닙니까? 누가 봐도 항복한다는 걸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미친놈이 제대로 들어주기는 할까? 아르웬이 그런 의문이 들던 순간이었다.
[다 들린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들은 아르웬과 스피어는 바로 표정이 구겨졌다.
자신들을 이 망할 공간에 넣은 장본인, 그리드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리드는 대답했다.
[오답이다.]
“…예?” “그게 무슨….”
오답이라는 말에 스피어와 아르웬은 순간 멍해졌다. 그리드는 이어서 말했다.
[내가 바라는 그림이 아니라서 오답. 그냥 놔두고 보려 했는데, 안 되겠다. 내 방식대로 간다.]
“자, 잠깐 그게 무슨 소….”
스피어가 따지려 했으나,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우으윽?”
갑자기 천장에서 내려온 커다란 촉수가 스피어의 머리를 삼켜버렸다.
“스피어…우윽?”
아르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 천장에서 내려온 커다란 촉수에 머리가 삼켜지고 말았다. 빠져나오려고 두 사람은 바둥거렸으나, 목까지 삼켜버린 촉수를 떼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상태로 몇 초가 지난 뒤.
두 사람이 갇힌 공간은 정액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