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9 - 279화- 수용소로 향하는 길
"템플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든 섬을 요새화하기로 결정을 내렸어."
광란의 파티를 끝낸 이후 강림은 바로 템플 왕국의 침공에 대비했다.
"마침 잔당 세력이 남긴 요새 중 멀쩡하게 남은 게 좀 있더라. 그래서 공사하는데 수고를 좀 덜었지."
침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템플 왕국에서 정찰선을 보냈다. 해안 경계를 맡은 카르디안의 보고에 따르면 이리스와 페르포네가 떠난 이후로도 최소 서너 척의 정찰선이 나타났다고 한다. 수십 척에 달하는 철선 함대를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라고 여겼는지 더는 접근하지 않고 물러섰다고 한다.
물러섰지만,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한 번 이빨을 드러낸 이상, 어떻게든 씹어먹으려고 할 거다. 괴수를 쓰러뜨리기 위한 기사왕의 비책이 대체 무엇인지는 현시점에선 알 수 없으나, 지금 나대는 걸 보면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대비한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템플 왕국의 국경선과 맞대고 있는 모든 섬을 요새화한다.
이 섬들은 전부 네치아 왕국 잔당 세력이 점거하던 곳이었다. 디자이어 제국과의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는지 잔당 세력은 섬 하나, 하나를 철옹성으로 만들었다. 어찌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강림이 이끈 괴수 군단에 의해 잔당 세력이 점거한 모든 섬이 철저하게 초토화가 되었음에도 멀쩡하게 남은 요새들이 있을 정도였다.
강림은 그 잔당 세력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모래 모형>이란 유물이 도난당해 더는 무(無)에서 유(有)로 창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선 적이 남긴 것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강림은 강철 군단을 동원했다.
"인부들로 내 아들을 동원할 생각이야.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내 핏덩이들만 한 것은 없으니까."
자신의 피를 잇고,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아들들에게 요새를 지으라고 강림은 명령을 내렸다. 성벽을 쌓고, 대포와 같이 방어 시설들을 설치하는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황제의 명령에 장기 말들은 묵묵히 따랐다.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기억은 물론이요, 감정까지 전부 거세당했는지 어찌 반항할 수 있겠는가? 팔다리가 부러져도, 과로로 쓰러져도,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도 이들은 황제의 명령을 완수할 때까지 일할 거다.
그리고 희생당한 수만큼 보충할 수단도 강림은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수용소를 세울 거야."
요새 구축과 더불어 포로들을 관리할 수용소를 강림은 만들 계획이었다.
"병사를 찍어내기 위한 시설도 세울 거고."
작은 핏덩이들을 장성한 장기 말로 가공하는 시설 역시 강림은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걸 만들어내는데 누구누구를 희생시킬지 강림은 이미 점찍어놨다.
"이번에 잡은 포로 수백 명이랑, 잔당 세력에 가담한 자들을 수용소에 이주시킬 거야. 이들을 가축으로 써먹을 거고."
이번 잔당 토벌전에서 끈질기게 저항했던 네치아 왕국 잔당 세력 병사들. 그리고 그런 왕국군 편에 선 백성들. 이들을 산 제물로 쓴다. 여체라는 몸뚱이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몸뚱이로 제국을 위해 씨받이로 살게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무작정 죽여서 피바다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을 거다.
원수인 악마의 새끼들을 죽을 때까지 낳아야 하기에 죽음보다 더 가혹한 처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아트리아에게 모든 걸 맡길 생각이야."
이 모든 계획을 관리할 총책임자로 강림은 자신의 비서인 아트리아를 임명할 생각이었다.
"아트리아에겐 큰일을 맡길 생각이거든. 이건 그러기 위한 발판이야."
이미 뒤풀이 파티에서 강림은 자신의 비서에게 약속한 바가 있었다.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고. 결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시무룩해진 너에게 템플 왕국을 정복할 기회를 주겠다고. 지원은 다 해줄 테니 템플 왕국을 멸망시키고, 기사왕을 생포해서 자신에게 바치라고. 강림은 그렇게 약속했고, 아트리아는 그 약속을 반드시 시키겠다고 맹세했다.
따라서 이 임명은 아트리아를 위한 일이었다.
"요새를 만들어서 후방을 튼튼하게 만들고, 병력을 양성해서 정복할 힘을 기른다. 전부 아트리아 혼자서 해낼 거야. 나는 그저, 뒤에서 미뤄주기만 할 뿐이라고."
달성해야 할 목표를 주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준다. 이 모든 것을 아트리아 혼자서 해낼 거다. 엘프섬을 잘 관리했던 것만큼 이번 일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자신의 후계자인 아트리아가 성공할 거라고 강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말이야, 그 용병왕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더라."
상대해야 할 적은 템플 왕국만이 아니다.
템플 왕국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 네치아 왕국의 북서쪽 국경선에 맞대고 있는 로세움 왕국도 호시탐탐 망국이 된 네치아 왕국 영토를 노리고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강림의 스승인 테리스가 고향 라미드 섬으로 갔다. 만약 로세움 왕국이 침공을 개시한다면 십중팔구 라미드 섬을 노릴 거니까.
그럴 거라고 예상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로세움 왕국의 군주, 용병왕은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데도 너무 수상해."
낌새는 없으나, 폭풍전야였다.
"스텔라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니 뭔가 꾸미고 있는 건 확실한데 말이야."
현재 괴도 아르바를 잡기 위해 로세움 왕국에 잠입한 스텔라가 강림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직 괴도 아르바를 잡지 못했지만, 중요한 정보가 편지에 적혀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로세움 왕국 수도로 다수의 모험가가 집결하는 중.
-그 숫자는 현재 200명. 더 늘어나는 중.
"왜 모험가들이 집결하는지 너는 알겠니, 아르웬?"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
강림의 질문에 아르웬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보나 마나 널 죽이려고 모이는 거겠지,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어?" "틀린 말은 아니네." "흐윽?"
강림은 왼손으로 잡고 있던 사슬을 끌어당겼다. 쇠사슬은 아르웬의 목에 달린 쇠고랑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강림이 쇠사슬을 끌어당기자마자 네 발로 걷고 있던 아르웬도 덩달아 들어 올려졌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아르웬을 끌어올린 강림은,
"후으윽?"
바로 입술을 훔쳤다. 작게 벌린 입 안으로 강림은 곧장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노예의 혀를 붙잡고, 쪽쪽 빨아먹었다. 빨아먹으면서 오른손으로 아르웬의 젖가슴을 거칠게 주물렀다.
"흐끕, 흐끄응, 흐끄으읍, 흐끄으으으읍!"
당장이라도 강림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아르웬이었으나,
"후이잉, 히이이이, 이흐으으응…."
이내 곧 표정이 풀렸다. 풀린 채로 입을 벌렸고, 원수의 혀를 맞이했다. 본진에 침투한 원수의 혀는 내부를 자신의 침으로 덧칠했다. 교접한 두 입술 사이에 진한 타액이 흘러내릴 때까지 아르웬은 강림의 입술을 빠는 걸 멈추지 않았고,
강림 역시 멈추지 않았다.
"확실히, 모험가 녀석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물불 가리지 않겠지." "푸하! 하아, 하아, 하아…."
한껏 노예의 입술을 즐긴 강림은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고, 간신히 풀려난 아르웬은 가쁘게 숨을 골랐다. 손톱자국이 난 양 가슴에서 모유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아르웬은 충격을 받았다.
'나, 또….'
또다시 가버렸다. 또다시 녀석에게 농락당하는 것만으로도 가버렸다. 가버리는 바람에 허벅지를 타고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절정을 해버린 거다. 그것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조리 다 앗아간 원수에 의해서.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아르웬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거다.
'빌어먹을….'
개조당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당하든 가버리도록 이 육신을 개조당했기에 비참한 꼴을 당하는 거다. 만약 개조당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버린 것에 기뻐하지도 않았을 거다.
이런 굴욕을 당한 것에 아르웬은 진심으로 분노했으나,
이를 되돌릴 힘은 그녀에게 없었다.
그걸 잘 알기에, 아르웬은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언니….'
지금 두 사람은 뭐 하고 있을까? 타락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이다.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멀쩡히 있어야만 한다. 멀쩡히 있지 못하면 가족을 구하는 것조차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견뎌내야 하는데….
자신이 그걸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정말로 이 악마에게 굴복할까 아르웬은 두려웠다.
"내가 놈들의 본부를 날려버렸으니까."
그런 아르웬의 한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강림은 자기 할 말만 했다.
"길드 본부를 날려버려서 모험가들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지. 화가 난 모험가들이 날 노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못 할 거라고 봤지. 뒤에서 미뤄줄 사람이 없으니까."
모험가들의 고향은 길드. 길드에선 수많은 의뢰가 들어오며, 모험가들은 그것들을 해결하며 먹고 산다. 수입이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선 안성맞춤의 일자리였다.
그 일자리를 강림이 날려버렸다. 페르포네가 다스리던 아이스 섬을 침공했을 때, 그 섬에 있던 길드 본부도 사이좋게 날려버렸다. 아이스 섬 방위를 위해 소집된 모험가들은 그 자리에서 녹아내렸고, 생존자는 전부 가축이 되었다.
의뢰를 제공하던 본부가 사라졌기에 모험가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실업자가 되었기에 더는 자신에게 대들지 못할 거라고 강림은 그리 여겼다. 복수하고 싶어도 뒤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모험가들은 당장 어찌하지 못할 거다. 강림은 그렇게 여겼으나,
“근데, 있는 모양인가 봐.”
아니었다.
"역시 길드장이란 자가 배후일지도."
길드에는 길드장이라 부르는 자가 존재한다. 길드라는 조직의 최고 정점에 오른 자이며, 좀 과하게 비유하자면 모험가들의 왕이다. 강림은 길드 본부를 부숴버렸을 때 길드장 역시 사이좋게 갈려 나갔을 거라고 여겼으나,
-아뇨, 길드장은 오지도 않았어요. 다른 모험가들을 소집하러 외부에 있었어요.
페르포네가 부정했다.
즉, 한창 제국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에 아이스 섬이 기습당했고, 그 결과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낙동강 오리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복수하려고 용병왕과 손을 잡은 걸지도 모르겠네."
자신의 모든 걸 앗아간 강림에게 복수하기 위해 용병왕과 손을 잡았을 거다. 손을 잡았기에 모험가들이 로세움 수도에 집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가 있으니 믿고 도박에 끼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 거다.
뭐, 실패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고 모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쪽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긴 하는데….'
템플 왕국과 마찬가지로 로세움 왕국도 괴수를 맞상대할 수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수단이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뿐. 답답하지만, 답을 알 방도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침공에 대비하고, 침공하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뿐.
'계속 키워야지.'
꾸준히 병력을 증가시킨다. 증가시키고 선수를 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때가 되면 강림은 몸소 전장에 나설 작정이었다.
물론 그 전에,
'이 녀석도 얼른 무너졌으면 좋겠네. 어서 써먹고 싶어.'
자신의 손에 붙들린 아르웬을 무너뜨리는 게 우선이었지만 말이다.
"자, 어서 가자꾸나." "윽? 자, 잡아당기지 마!"
다시 땅바닥에 아르웬을 눕힌 강림은 걸어갔다. 손에 쥔 쇠사슬을 끌어당겼고, 아르웬은 그대로 끌려갔다. 끌려가면서 흙먼지가 흩날려도 강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 곧 시작될 조교를 생각하면 몸에 흙이 묻는 것은 그저 따위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너의 부하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네. 너는 안 궁금하니?" "마, 망할 자식…."
결전에서 패배해 포로로 붙잡힌 왕국군이 갇혀 있는 수용소에 두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