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6 - 246화- 즉흥적인 계획은 언제나 들키는 법
아버지 저는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영원히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영원히 당신을 위한 씨받이가 되겠습니다.
영원히 당신을 위한 가축이 되겠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아버지 그리드를 위한 암퇘지가 되겠나이다!
"아아아악!"
아르웬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빌어먹을.”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남색 단발머리의 아가씨는 몸을 일으켰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이빨을 으득, 갈았다.
“뭐냐고, 그 꿈은….”
지독한 꿈이었다. 원수인 그리드에게 충성 서약하는 악몽이라니. 헤벌쭉 웃으면서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에 아르웬은 구역질이 날 뻔했다.
하지만 더 최악인 것은,
“….”
현실도 악몽이라는 것이다.
“언제 또 여기로 옮겨진 거야?”
이곳은 알현실이다. 그리드가 왕국 토벌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서 뒤풀이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는 명분으로 수백 명의 여자를 겁탈했으며, 임신시키고 출산시키는 짓을 무한 반복했다.
그걸 하루 만에 다 해냈다. 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여기겠으나, 사실이었다.
당장 아르웬도 그리드에게 겁탈당한 인물 중 한 명이니까.
"으, 냄새…."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냄새에 아르웬은 눈살을 찌푸렸다. 악취의 근원지는 바닥에 있었다.
섹스하면서 여자들이 흘린 애액, 섹스하면서 토해낸 정액, 섹스하면서 짜낸 모유, 그리고 실금한 것까지 등 온갖 잡것이 섞인 거대한 호수가 알현실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그 웅덩이에 다리가 잠긴 채로 자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르웬은 너무나 불쾌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불쾌한 것은,
'왜 내가 언니 곁에 누워있는 거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못한다는 거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못한 채 헤실거리며 웃고 있는 언니 곁에 아르웬은 누워있었다.
누워있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르웬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난 분명….’
분명 그리드에게 강간당했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르웬이 떠올려보려고 노력해도 누가 일부러 가위질한 듯 화면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뭔가 당했던 것 같은데….'
알 수 없지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좋아요, 너무 좋아요!
광기에 빠져 웃는 여자의 목소리. 자신의 목소리를 닮아서 아르웬은 너무나 소름이 돋았다.
-라아아아아….
감미로운 노랫소리도 들렸다. 언니의 목소리를 복제한 노랫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아버지와 섹스를….
"아…."
드디어 아르웬은 깨달았다.
"그래, 맞아. 나는, 나는…."
세뇌당했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떠올리고 말았다.
"나는, 이 망할 녀석을…."
마치 세상의 종말을 본 것 같은 얼굴로 아르웬은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냐…."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남자 곁에는 수십 명의 여성이 잠들어 있었다. 다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를 부둥키며 자고 있었다. 만삭의 여성들과 발기한 성기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는 남자가 맨바닥에 누워있는 기괴한 조합.
이런 조합을 만들어낸 남자, 그리드에게 아르웬은 이리 말했다.
'녀석을 아버지라고 여겼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세뇌하고, 언니를 타락시키고, 영지민들을 노예로 삼은 녀석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녀석이다. 평생 용서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 원수를 아버지라고 여겼다. 진심으로 친애하는 마음으로 피도 섞이지 않은 이 악마를 아버지라고 여겼다. 진짜 아버지인 한스를 잊어버리고 녀석을 아버지라고 취급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자신의 국부를 바쳤다. 어서 먹으라고, 먹어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아버지의 꿈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아이를 왕창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빌면서 아버지, 아니 그리드와 몸을 섞었다. 한정 끝도 없이 쏟아지는 정액을 무조건 받았고, 그 정액으로 임신하고, 출산했다. 이를 반복했다. 끊임없이 반복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아르웬은 진한 사랑을,
아니, 사랑을 가장한 강간을 무한 반복 당했다.
"으아아아, 아아아아…."
아르웬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공포에 빠진 사람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운 걸 목격한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나는…."
자신이 원해서 한 게 아니다. 원해서 그 망할 자식을 아버지라고 부른 게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한스다. 자신이 존경하던 아버지는 오직 한스 뿐이다. 그리드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녀석의 계략에 빠졌기 때문이다. 빠져버렸기에 생긴 일이다. 절대로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으나 여전히 머릿속에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어서 해주세요.
황홀해하는 목소리로 부탁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하앙, 하앙, 하앙! 네, 좋습니다. 주인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아요!
쾌락에 빠져 울부짖는 자신의 목소리가.
-평생 당신을 위해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 주인님의 꿈을 위해 절 마음껏 부려 먹어주세요!
스스로 노예임을 자처하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듯이 소리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그리드의 가축이 되어서 기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르웬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르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에는 충분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아아아!"
자신이 원해서 한 말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아르웬이었으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아니야, 아니란…말이야."
만삭이 된 배는 결코 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나는, 나는…." "뭐가 아니라는 거야?" "…!"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아르웬은 화들짝 놀랐다.
'깨, 깨어났어?'
그리드다. 그리드가 갑자기 입을 연 것이다. 그것도 천장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강간하려는 걸 거라고 여긴 아르웬은 바로 뒷걸음질을 쳤다.
"망할 년, 이제야 사죄하냐? 빌어먹을 년, 넌 항상 그래요."
마치 누군가의 머리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그리드는 중얼거렸다.
"오냐, 사과를 받아주마. 받아줄 테니 내 노예가 되어라."
계속 중얼거렸다.
"도망치지 마. 너는 이제 평생 내 아이만 낳아야 하니까. 네놈이 총애하던 후배도 마찬가지고…."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누구를 향해 욕하고 있는 거지? 지금 꿈속에서 강림이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두 여자를 겁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르웬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각오하라고, 밤은 여전히 깊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리드는 다시 잠들었다. 뻗었던 팔도 바닥에 내려졌다.
그리고 그대로 끝. 강림이 다시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자, 잠꼬대였어?"
무슨 잠꼬대를 요란하게 하는 거야? 자신이 착각했음을 안 아르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문득, 아르웬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녀석은 자고 있다. 수백 명 이상의 여자를 혼자서 다 먹느라 지친 건지 좀처럼 일어날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잠꼬대를 요란하게 했으나 그뿐, 코를 요란하게 골며 잘 뿐이었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르게 자는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지쳐서 깊게 잠들어 있는 녀석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죽이자.'
아르웬은 한 걸음씩, 발소리를 죽이며 그리드를 향해 다가갔다. 끈적끈적한 웅덩이를 밟는 느낌이 매우 싫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아르웬은 조심스럽게 강림의 목덜미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두꺼운 수탉의 목을 비트는 것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악마라도 급소가 제압당하면 별수 없을 거다.
'단숨에 끝내야 해.'
목을 조르는 순간 깨어날 거다.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두 손을 부러뜨리겠지.
그러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온 힘을 다해서 녀석의 목을 분질러 버려야 한다. 분지르지 못하면 적어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여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반드시 모두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좋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잘 해낼 수 있다고 되뇌며 아르웬이 목을 잡으려던 그 순간,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어디서 나타난 팔이 아르웬의 손을 붙잡았다. 붙잡고 뒤로 확 잡아챘다.
"아악?" "지금 뭘 하는 거지, 아르웬?"
보라색 머리의 여자다. 아르웬과 마찬가지로 만삭인 이 여인은 아르웬을 추궁했다. 붉은 눈동자는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일어났어?" "조금 전에 일어났지."
당황하는 아르웬을 향해 아트리아는 대답했다.
"소란스러워서 뭔가 싶어서 일어났는데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아직 정신 못 차렸지?" "빌어먹을."
마지막 기회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아르웬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야, 아트리아?"
이때, 은발 머리의 여인이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만삭이었다. 눈을 비비며 정면을 바라본 여인, 이리스는 아트리아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이 미친년이 주인님을 교살하려고 했어." "교살?" "그걸 내가 막은 거고." "…."
이리스는 아무 말 없이 아르웬을 쳐다봤다. 아트리아와 달리 살기 같은 것은 없었다.
너무나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냥 포기하면 좋을 것을."
이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그리 매를 버는 거냐? 해도 의미 없다고." "다, 당신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아르웬은 물었다.
"저 악마에게 당하는 게 그리도 좋아? 가축 취급당해도 좋냐고!" "당연히 좋지."
이리스는 바로 대답했다.
"좋으니까 주인님에게 안기는 거 아니겠어?" "미, 미쳤어…." "그래, 우린 미쳤지."
이리스 말고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르웬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더벅머리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만삭이었다.
검은 머리의 여자, 탈리아는 대답했다.
"미쳤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 아니겠어?" "당신들…." "무슨 일인지 대충은 알 것 같네."
어째서 아트리아에게 아르웬이 붙잡혀 있는지 탈리아는 단숨에 깨달았다. 그래서 아트리아와 이리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찌할 거야? 주인님 깨워서 먹으라고 부탁할까?" "흐음…."
곰곰이 생각하던 아트리아는 문득, 바닥에 있는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바라본 이후 아트리아는 대답했다.
"여기서 고문하자."
그렇게 대답하며 아트리아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에게 애걸복걸하게 만들어 버리자."
그리고 잠시 뒤,
"싫어, 싫어, 하지 마…후끕, 후끕, 후끄으으윽!"
아르웬의 절규가 알현실에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