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3 - 223화- 기생충 작전
[이, 이게 뭐야?]
아르웬은 지금 두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지금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 어째서 파, 팔이 녹아내리고 있는 거지?]
살점이 하나씩, 흐물흐물한 슬라임이 되어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살점들은 수면에 떨어지고, 수면에 떨어진 살점들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를 내며 아래로 가라앉았다. 뼈마저 전부 녹아내리자 6개의 팔은 축 늘어졌고, 이내 곧 썩은 열매처럼 툭툭 떨어졌다.
[아, 안 돼….]
어떻게든 팔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아르웬이었으나, 헛수고였다. 수면으로 떨어진 팔은 이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떨어진 팔을 주우려 했던 팔들도 똑같이 떨어져 나갔다.
말릴 새도 없이 아르웬은 6개의 팔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 어떻게…왜…난 분명 뱀을 먹고 강해졌는데….]
자신은 망할 뱀 자식을 먹었다. 뱀을 먹고 힘을 회복했다. 절단된 두 팔이 재생되었고, 상처도 아물었으며, 덩치도 다시 커졌다. 전력으로 그리드를 때려눕힐 수 있게 되었다. 회복된 힘으로 아르웬은 그리드와의 질긴 악연을 끊을 작정이었다.
그랬는데, 이게 무엇인가? 왜 팔들이 떨어져 나가는 건가? 그리드 새끼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아르웬의 경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 안 돼. 여, 여기서 녹아내리면….]
몸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신을 덮은 철갑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철갑이 떨어진 뒤에는 살점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몸통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마치 산성 액을 뒤집어쓴 것처럼 초거대 괴물은 형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르웬이 녹아내리는 모습에 강림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날 죽일 줄 알았는데….]
양팔은 잃어버렸지, 전신도 언제든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웬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강림은 아르웬에게 죽을 거라고 여겼다.
그리 여겼기에, 설마 아르웬이 저렇게 자멸하는 결말을 맞이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건 대체….]
간신히 남은 한쪽 날개로 몸을 일으킨 스텔라도 자멸하고 있는 아르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아르웬은 절규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복수의 끝을 달성할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가왔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냐. 드디어 이 망할 악마 새끼를 죽일 기회가 왔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뱀을 먹고 강해졌으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지, 왜 느닷없이 녹아내….
'…잠깐.'
순간, 아르웬은 생각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설마….'
자신은 뱀을 먹었다. 날뛰지 못하게 머리를 뜯어서 먹었다. 머리가 사라진 몸통은 축 늘어졌고, 아르웬은 그 몸통도 먹어 치웠다. 완전히 죽였기에 먹어도 문제없다고 봤다.
근데 그 뱀이 아직 살아있다면? 살아서 이 사태를 일으킨 거라면? 내부에서 독을 주입해 이 사태를 촉발한 거라면? 아르웬은 그런 결론에 도달했고,
-후후후, 드디어 깨달았구나.
음흉한 여자의 목소리가 아르웬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르웬은 알고 있었다.
'너, 넌 뱀?'
-뱀이 아니야. 페르포네라고. 앞으로 함께 살 사이인데 이름 정도는 기억하는 게 예의 아니니?
독사 페르포네. 아르웬에게 잡아먹힌 페르포네가 멀쩡한 상태로 아르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 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넌 분명히….'
-잡아먹혔지.
페르포네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그대로 먹혔다면 나는 꼼짝없이 네놈의 동력원으로 쓰였을 거야. 더벅머리가 없었다면 진짜로 그리되었을 거고.
'더벅머리?'
-직접 체험해보면 누구인지 알 거야.
'그 무슨….'
그 순간,
[…!]
아르웬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아아아….]
뭔가 튀어나오려 한다. 나오려고 전신을 두들기고 있다. 너무나 아파서 아르웬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끝내,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그리고,
-우드드득!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전신에서 검은색 촉수가 튀어나왔다.
[뭐?]
왜 갑자기 촉수? 왜 몸에서 촉수가 튀어나오는 거지? 아르웬은 경악했고, 이를 지켜보던 강림과 스텔라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 무슨….]
-기생충 작전이야.
[…!]
당황하는 아르웬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르포네가 아닌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무너지는 몸을 어떻게든 지탱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아르웬을 보며 여자는 조소했다.
-어때? 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지? 내가 당했던 걸 그대로 돌려주니 정말 통쾌하네.
'너, 넌, 누구야?'
-탈리아.
여자, 탈리아는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네놈이 쓰러뜨렸던 촉수 괴물이야.
●●●
'날 아르웬 몸속에 넣어줘.'
아르웬에게 붙잡혀 몸이 산산조각이 났던 탈리아는 살아 있었다. 동력원이 무사했기에 어떻게든 흩어진 자신의 몸을 회수할 수 있었다. 다 회수하지 못했기에 간신히 동력원을 감싸는 크기로 몸을 키우는 게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탈리아는 바로 아르웬에게 복수할 준비에 들어갔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철옹성인 아르웬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탈리아는 고민했고,
고민 끝에 기생충 작전을 떠올렸다. 이 작전을 위해 페르포네에게 도움을 구했고, 페르포네는 이에 응했다.
작전은 간단하다.
1. 아르웬의 몸속으로 탈리아가 진입한다. 2. 진입해서 아르웬의 동력실을 차지한다. 3. 차지한 상태에서 서서히 아르웬의 몸을 잠식한다.
도중에 페르포네가 잡아먹히고, 그로 인해 동력실에 대량의 제물들이 생기는 참사가 발생했다. 제물이 생긴 아르웬은 더욱 강해졌고, 강해진 힘으로 그리드를 몰아붙였다.
탈리아는 이 상황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페르포네에게 독을 주입하라고 했어.
제물이 될뻔한 페르포네를 구해낸 탈리아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아르웬을 중독시키라고. 일부라도 좋으니 괴수의 힘을 발현해 녀석에게 치명적인 독을 주입하라고. 아르웬이 자신의 몸속에 적이 활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그러니 움직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호소에 따라 페르포네는 아르웬의 몸에 독을 주입했다.
덩치가 너무 컸기에 효과가 발동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으나, 결국은 성공했다.
-멍청한 아르웬. 그러게, 뱀을 왜 생으로 먹어? 독사는 생으로 먹어선 안 된다는 거 부모한테 안 배웠니?
[너, 너, 너어어어!]
탈리아의 조롱에 아르웬은 크게 분노했다.
[죽여버릴 거다. 죽여버릴 거야!]
-어떻게? 팔을 다 잃어버린 주제에? 아, 다 녹아내렸으니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죽여버릴 테다. 당장 죽여버릴 테다!]
-여기선 아무도 죽지 않아.
분노하는 아르웬을 향해 탈리아는 반박했다.
-나도, 너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 다 죽지 않아. 단지,
이때, 아르웬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무언가가 자신과 충돌했기 때문이었음을 아르웬은 깨달았다.
속살을 뜯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너는 빼앗길 뿐이지.
아르웬의 시선은 바로 아래로 향했다.
[뭐가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검은색 괴물, 강림이었다. 두 팔을 잃어버린 강림은 남은 두 다리를 이용해 아르웬에게 접근했다. 다 녹아내린 몸에 달라붙은 강림은 입을 벌리고, 물었다. 슬라임이 되어버린 살덩어리를 입에 문 상태로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잘 써먹을게, 탈리아!]
입을 통해 신선한 마기가 흡수된다. 흡수된 마기는 쩍쩍 갈라진 갑주를 이어붙여 줬다. 찢어진 근육들도 이어붙여 줬고, 뜯어진 혈관들도 다시 이어붙여 줬으며,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뼈도 마찬가지로 다시 이어붙여졌다.
팔이 뜯겨 나간 부위에서도 뼈가 생기기 시작했다. 팔의 형태가 완성될 때까지 뼈는 자라났고, 자라난 뼈를 중심으로 살덩어리가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살덩어리는 강림의 소중한 두 팔로 다시 살아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 빌어먹을….]
아르웬은 허약해지고 덩치가 줄어들어 갔다. 줄어들어 감과 동시에 몸이 녹아내리는 속도 역시 빨라졌다. 이대로 가면 패배는 확정이다.
[웃기지 마.]
당연히 아르웬은 이를 인정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웃기지 마! 여기서 끝날 것 같아?]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 간신히 가족들의 원수를 갚을 기회가 찾아왔다. 이 악마 새끼를 죽이고 원래 일상으로 돌아갈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고지가 코앞인데 어찌 여기서 실패할 수 있단 말인가.
[너만큼은, 너만큼은!]
아르웬은 강림을 향해 입을 벌렸다.
[너만큼은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
크게 벌린 입에서 마력이 모여든다. 독에 중독되고, 촉수가 몸을 잠식하고, 힘까지 빼앗긴 상태임에도 아르웬은 죽을힘을 다해 마력을 모았다.
-어딜!
이때, 목에서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촉수는 아르웬의 머리를 휘감았다. 그 상태로 촉수는 옭아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아르웬의 마지막 발악을 막기 위해 탈리아는 있는 힘껏 그녀의 머리를 조였다. 이대로 유지가 된다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여기겠지만,
[아아아아악!]
복수심으로 가득 찬 아르웬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아르웬은 괴성을 지르며 턱을 억지로 벌렸다. 머리를 휘감고 있던 촉수들은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이런, 그리드!
그렇게 방해마저 물리친 아르웬이 강림을 향해 고주파를 발사하려는 순간,
-콰가가가강!
갑자기 아르웬의 턱이 폭발했다.
[어?]
폭발과 함께 괴수의 턱이 떨어져 나갔다. 최후의 수단이었던 고주파 역시 소멸하고 말았다. 난데없는 공격에 아르웬은 물론이요, 그곳에 있던 모두 순간 멍해졌다.
[무, 무슨 이, 일이….]
아르웬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함선 4척이 있었다. 그 네 척을 지키는 거대한 자칼 수인도 있었다. 거대한 대포들이 하나씩 갑판 위에 있었으며, 포구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네 척의 배 중 거대한 기함이 있었으며,
그 기함에는 아르웬과 똑같은 남색 머리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본 아르웬은 허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 언니….]
아르웬의 언니, 카르디안이 갑판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