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4 - 214화- 촉수와 기사, 쓰러지다
[이, 이 녀석 왜 갑자기 이래?]
예상치 못한 아르웬의 변화에 탈리아는 크게 기겁했다.
'왜 몸에서 마기가 넘쳐흐르는 거지?'
지금 아르웬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양은 탈리아가 직접 눈으로 봐도 경악할 수준이다. 검은색 마기는 아르웬의 전신을 감쌌다. 순식간에 아르웬은 검은색 안개로 이루어진 알 속에 갇혀 버렸고, 아르웬의 몸을 구속하던 탈리아의 촉수들은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서, 설마 타이처럼 변하는 건가?]
아직 제국이 세워지기 전.
호랑이족 수장 타이는 자기 자신이 괴수가 되다는 최후의 도박을 벌였다.
이후 괴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타이는 설화에 의해 강제로 흑광이 투여되었다. 흑광이 투여된 타이는 전보다 더 강력한 호랑이 괴물이 되었으며, 그 힘으로 여우섬을 반쯤 초토화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그리드가 괴수로 변하는 데 실패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졌을 거다.
만약 지금 이 상황이 그때랑 똑같다면? 그때의 타이처럼 아르웬도 변하는 거라면 어찌해야 할까?
'이, 일단 다른 얘들한테도 알려야겠어. 그리드에게도….'
흑광을 먹고 흉악해진 타이를 그리드는 단신으로 제압했다.
그리고 탈리아에겐 그리드가 하사한 괴수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힘은 아까 아르웬을 제압할 정도로 충분하다.
이 힘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제아무리 아르웬이 강해져서 나타난다고 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탈리아는 했으나, 이내 곧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 뭔가 위험해.'
딱히 근거는 없었다. 단지, 느낌만 있을 뿐.
저 녀석은 지금 위험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타이를 따위로 만들 정도로 강대하고도 위험한 녀석으로 변모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양의 흑광을 투여했길래 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떨리게 만드는 걸까? 여기서 혼자서 맞붙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러니 그리드와 동료들을 부르자. 혼자서 상대하기 버겁지만, 괴수 여러 마리가 총출동하면….
갑자기 거대한 손이 나타난 그때였다.
[…!]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알 속에서, 거대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당황한 탈리아는 즉시 촉수를 전개했다. 끝이 전부 날카롭게 다듬어진 수많은 촉수 다발이 손을 향해 날아갔다. 촉수 다발은 손바닥을 뚫고 손등 너머까지 관통했다.
이 정도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게 정상이나,
손은 오히려 움켜쥐었다.
[뭐?]
촉수를 움켜쥔 채로 마구 손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아아아악!]
대롱대롱 매달린 형국이 되어버린 탈리아는 이리저리 패대기쳐대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바닷속이라 여기저기 부딪히는 일은 없었으나, 탈리아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데는 충분했다.
'초, 촉수를 어서 회, 회수해야 해!'
이대로 휘말려선 안 된다. 탈리아는 촉수를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손은 더욱 억세게 주먹을 쥐었다. 촉수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은 상태에서 손은 더욱 힘차게 움직였다.
'비, 빌어먹을!'
그냥 전력으로 도주할 것을. 왜 반격한다고 촉수를 전개해버린 걸까?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에 탈리아는 후회했으나, 후회한다고 도망칠 길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거대한 손은 계속 탈리아를 갖고 놀다가,
놓아주었다. 손에 박힌 촉수들도 스르르 빠져나올 수 있었다.
'푸, 풀어줬어?'
간신히 풀려난 탈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쉬면서도 검은색 마기로 이루어진 알을 주시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검은색 마기로 이루어진 알은 아까보다 수십 배 이상으로 커져 있었다.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탈리아가 그 의문을 품은 순간, 아르웬을 덮고 있던 마기가 흩어졌다.
거대한 괴수의 입이 탈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무, 뭐야 이건….]
눈에 들어온 것은 날카로운 상어 이빨로 이루어진 거대한 입이었다. 입 다음에는 온몸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안광을 빛내는 커다란 자주색 눈동자가 탈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머리 다음으로 몸통이 드러났다. 몸통 역시 전보다 더욱 비대해졌으며, 두 개의 팔은 좌우로 각각 3개, 총 6개로 늘어났다. 하반신인 뱀 꼬리도 전보다 더욱 굵고 길어졌다. 남색이었던 전신은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색으로 변했다.
아르웬이 거대화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탈리아는 크게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아르웬이 다량의 흑광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제1 왕녀 에일로이를 심문하면서 알아냈다고 이리스가 말해줬다. 어쩌면 아르웬은 그 흑광을 이용해 자신을 강화하는 데 사용할지 모른다고 다들 그리 생각했다.
처음에 그 추측이 틀렸다고 탈리아는 그리 생각했다. 첫 충돌 했을 때 아르웬은 이상하리만큼 불안해 보였고, 결국 탈리아에게 붙잡히는 굴욕을 맛보고 말았다. 도저히 강화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 흑광을 먹다가 탈이 난 거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탈리아는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아르웬은 강화에 성공했다. 성공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덩치가 태산처럼 커질 리 없을 거다.
[우으으으….]
거대한 입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스산한 목소리에 탈리아는 순간, 얼어붙었다.
[으아아아….]
아르웬은 말없이 탈리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아아아아아악!]
주먹을 휘둘렀다.
[꺄아아악!]
피할 새도 없이 정통으로 주먹을 맞은 탈리아는 저 멀리 날아갔다.
아니, 날아갈 뻔했다.
[윽?]
저 멀리 날아갈 뻔한 탈리아를 아르웬이 붙잡았다. 붙잡은 채로 손을 수면 위로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림과 동시에 물기둥이 크게 솟구쳐올랐다.
그렇게 들어 올린 상태에서 아르웬은 손에 힘을 주었고,
-콰직!
검은색 촉수 괴물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
[탈리아!]
그 광경을 지켜본 이리스는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저, 저 녀석은….]
거대한 쥐가오리 괴물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섬 하나는 거뜬히 엎어버릴 정도의 크기에 이리스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설마, 강화에 성공한 건가?]
현재 이리스는 거대한 거인, 은색 갑옷으로 무장한 거인 기사로 변해 있었다. 앞장서서 1번 섬을 공격한 이리스는 검기를 연신 휘두르며 왕국군을 궤멸시켰다. 섬 내부에 숨어 있는 지휘부까지 제압하는 데 성공하면서 1번 섬 공략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다 끝나고 포로들을 배로 끌고 가려는 찰나에, 이변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은색 기사 옆에 서 있는 보라색 괴물, 아트리아는 이리스의 말에 긍정했다. 딱정벌레처럼 전신이 보라색 갑주로 뒤덮인 괴물의 시선은 쥐가오리 괴물을 향해 있었다.
아트리아의 붉은색 눈동자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탈리아를 이곳에 합류시켰어야 했는데….]
이리스는 후회했다.
본래는 탈리아도 1번 섬 공략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아르웬이 네가 있는 곳에 있어. 녀석을 제압해.
그럴 예정이었으나, 아르웬이 괴수로 변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간 걸 이리스는 목격했다. 그래서 탈리아에게 아르웬을 제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가능하면 생포해서 데려오라고 했다.
그랬는데, 저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을 줄이야.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탈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이리스는 너무나 후회되었다. 촉수라서 재생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리스도 알고 있으나, 저렇게 박살이 난 상태에서 과연 그 재생력이 소용이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탈리아의 죽음에 애도할 시간은 없었다.
[찾…았…다.]
이리스와 아트리아를 향해 아르웬은 시선을 돌렸다. 명백히 적의로 가득 찬 목소리가 거대한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원수, 어머니의 원수, 언니의 원수, 모두의 원수….]
죽여야 할 녀석들이 저곳에 있다. 자신의 소중한 장병들을 다 죽이고 섬을 장악한 간사한 녀석들이 저곳에 있다.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더는 빼앗기지 않겠다. 빼앗아 주겠다. 자신의 소중한 걸 앗아간 것처럼 자신도 앗아가 버리겠다.
영원히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 아르웬은 이리스와 아트리아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벌린 입을 향해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고, 주변 바다가 격하게 진동했다.
[다들 내 뒤로 피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음을 깨달은 이리스는 정면에 나섰다. 오른손에 든 방패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내리꽂음과 동시에 거대한 장벽이 형성되었다.
[죽어라아아아아!]
장벽이 형성됨과 동시에 아르웬의 입에서 고주파가 발포되었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고주파가 바다를 가르고, 이리스가 만든 장벽에 충돌했다.
파괴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 망할….]
그저, 뚫렸을 뿐이다. 장벽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장벽이 지키던 섬 절반도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강철 군단은 물론이요, 포로들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패를 쥐고 있어야 하던 이리스의 오른팔도 사라졌다. 어깻죽지까지 절단된 면에서 검은색 피가 울컥 토해냈다.
[이렇게 힘의 격차가 클 줄….]
이리스는 그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
이리스의 시야로 거대한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도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아르웬이 섬 코앞까지 당도한 거다. 이리스는 방어하기 위해 검을 세로 방향으로 들었고,
[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1번 섬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바다 아래로 이리스는 떨어졌다.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고, 그 뒤로는 잠잠해졌다.
[이리스!]
동료가 순식간에 당해버리자 옆에 있던 아트리아도 경악했다. 수 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리스를 날려버리다니.
당장이라도 이리스를 구하러 가고 싶었으나, 아트리아는 할 수 없었다.
[다음은 네놈이다.]
아르웬의 다음 목표로 자신이 정해졌으니까.
[으….]
예상치 못한 변수에 아트리아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