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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207화 (208/344)

Chapter 207 - 207화- 12군단, 전멸하다

“티아스, 네치아 왕국을 도우세요.”

성국을 지키는 무력 집단은 십자군이다. 총 12개의 군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황이 임명한 단장들이 군단을 통솔한다.

교황은 제12 군단 단장인 티아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왕국을 도와 디자이어 제국을 무너뜨리세요.”

네치아 왕국과 협력해 디자이어 제국의 야망을 저지해라. 교황의 명령에 따라 티아스는 제국이 추적할 수 없도록 왕국군이 성국 영토에서 재정비할 수 있게 배려해줬다.

그리고, 최근에 이런 명령을 티아스에게 내렸다.

“만약 왕국군이 더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철수하세요.”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는 거냐고 티아스는 물었다.

디자이어 제국이 장차 성국을 위협할 주적이 될 거라는 건 명백하다. 진작에 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했는데 성국이라도 가만히 놔둘 것 같나? 그러니 왕국군을 최대한 도와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조력해야 하지 않은가? 어째서 싸워보기도 전에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 거냐며 티아스는 따졌고,

그런 식으로 티아스는 따졌고,

“못 이길 게 뻔해요.”

교황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괴수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게 증명된 이상, 왕국군은 패배할 겁니다.”

제국에서 괴수를 전략 병기로 사용한다는 말에 교황은 믿지 않았다. 신화 속에 나오는 존재를 어찌 해적 나부랭이 따위가 사용할 수 있겠냐. 사실이라면 사이트 수녀에게도 연락이 왔을 터. 하지만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짓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판단을 내렸던 교황은 그 판단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제국은 괴수를 병기로 써먹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수가 늘어났죠.”

아르웬이 보내준 자료를 통해 교황은 괴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리드가 저희가 모시는 신과 닮은 건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요.”

카리타스 교단이 떠받는 신의 모습으로 그리드가 변신한다. 어째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교황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교황이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 있었다.

“사이트 수녀가 절 배신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아르웬과의 정보 교환을 통해서야 교황은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이트 수녀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이트 수녀와 함께 제국에 파견되었던 성직자들도 마찬가지. 제국의 내부 사정을 알기 위해 교류하는 척하면서 첩자 노릇을 하라고 보냈던 이들이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

그 말을 들은 티아스는 당장 이단 심문관들을 파견해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다 숨었어요.”

하지만, 교황은 고개를 저었다.

“사이트 수녀를 비롯한 제국에 파견된 성직자들은 귀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과 관련된 자들도 몸을 숨겼고요.”

마치 짜맞추기라고 한 듯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고위급 사제 가문들도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숨어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걸까? 빨리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것을. 측근인 사이트 수녀만 믿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교황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티아스 단장은 제 말에 따라주세요.”

내부 배신자 건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교황은 그리 말했고, 티아스에겐 자신의 요구 사항을 지킬 것을 부탁했다.

“분명 제국은 괴수들을 동원할 겁니다. 동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즉시 철수하세요. 뒷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알았죠?”

그 말을 듣고도 티아스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괴수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건 아르웬을 통해 들었으나, 그렇다고 물러서야 하나? 어차피 상대해야 할 적이라면 한 번 맞붙어봐야 하지 않겠나? 맞붙어보고 앞으로의 방침을 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티아스는 비겁하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자 티아스는 용감하게 맞서 싸웠고,

왜 교황이 그런 말을 했는지 타이스는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

-배, 배가 녹아내린다! 전원 배를 버려라!

-버리면 어디로 도망갑니까? 구명정도 다 녹았는데!

-아, 안 돼, 모, 몸이…아아, 아아아아악!

형제자매의 비명이 들려온다. 거대한 뱀이 흩뿌린 독액에 철선 하나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 안에 탔던 병사들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제, 젠장! 포탄을 있는 대로 퍼부어라!

-아, 안 됩니다! 함포가 전부 망가져서….

-이, 이런 머, 먹힌다!

복수하기 위해 달려든 철선이 있었다. 거대한 초록색 뱀은 철선을 휘감고, 힘을 주었다. 철선은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렸고, 뱀은 그걸 삼켰다. 탈출하지 못하고 고철 덩어리에 갇힌 병사들도 사이좋게 괴물의 위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 하고 있냐! 얼른 쏴, 얼른 쏘라고! 이대로 죽….

겁에 질린 형제자매들을 다그치며 싸우라고 독촉하던 대장이 있었다. 그 대장이 타고 있던 함선은 괴물 뱀이 휘두른 꼬리에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말았다. 수장당한 이들을 제외한 극소수의 생존자는 부서진 배의 파편을 의지한 채 수면 위로 올라왔으나,

바로 뱀에게 먹혀버리고 말았다.

“20 번대 대장 치, 침묵….”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대장이 탄 함선마저 침몰했다는 보고가 함교에 있는 승무원 입에서 흘러나왔다.

“티, 티아스 다, 단장님. 이, 이제 우리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승무원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 이대로 주, 죽어야 합니까?” “….”

티아스 단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긴장된 얼굴로 12군단을 유린(蹂躪)한 괴수를 노려볼 뿐이었다.

“망할….”

제국의 기습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전방에 앞세운 트루퍼 무리가 순식간에 몰살당했고, 뒤이어 전투에 돌입하던 네치아 왕국 함대는 갑자기 바닷속에서 솟구친 촉수 더미에 절반가량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12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섬 해역에서 거대한 뱀이 나타났다. 초록색 비늘로 이루어진 거대한 독사였다. 티아스는 즉시 모든 대장에게 뱀을 향해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티아스가 탄 함선을 제외한 모두 침묵했다. 거대한 뱀에 맞설 수 있는 강철 군함은 이제 한 척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고작 한 마리다. 아무리 괴수가 대단하다고는 해도, 고작 한 마리가 철선으로 무장한 신의 함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괴수에 대항하기 위한 수백 발 이상의 포탄이 준비되었고, 마법사 부대도 준비했다. 교황은 괴수가 나타나면 바로 도주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나, 티아스는 따르기 싫었다. 자신들의 적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선택을 티아스는 후회했다.

차라리 후퇴했으면. 바로 섬에 있는 병력까지 전부 태워서 도주했으면. 아니, 처음부터 도망칠 준비를 했다면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 것을.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형제자매들이 괴물의 먹이가 된 현실에 티아스는 눈을 감고 싶었다.

“다, 단장님! 저길 보십시오!”

한 승무원이 다급하게 오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티아스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

12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섬에 제국 함대가 접근하는 모습이 티아스의 눈에 들어왔다. 총 합해서 10척. 무슨 목적으로 섬에 상륙하려 하는지 불 보듯 뻔했다.

‘12군단을 전멸시킬 작정인가?’

어쩌면 제국은 자신들을 건들지 않을 거라고 티아스 그리 생각했다.

자신들을 건드는 것은 곧 성국에 대한 선전포고요, 전면전을 벌인다고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다. 왕국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제국이 과연 성국이라는 강대국까지 건들 자신이 있을까? 괴수라는 결전 병기가 있다고 해도 미친 짓을 과연 저지를까? 티아스는 일이 싱겁게 끝나게 될지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국은 성국까지도 공격할 작정이다. 그러기 위한 발판으로 제12 군단을 이 자리에서 몰살시킬 작정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국 영토에 침입해서 12군단을 건드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 테니까.

“하, 항복합시다. 단장님.”

승무원 중 한 명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저 악귀들을 쓰러뜨릴 수 없어요.” “….”

평소와 같았다면 무슨 약해빠진 소리를 하고 있냐고 윽박질렀을 거다. 그런 소리를 할 시간이 있다면 검을 휘두르라고, 활을 더 쏘라고, 마법을 더 난사하라고 다그쳤을 거다.

그래야 하나, 티아스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아무리 다그쳐도 승리가 보이질 않는데 어찌 험한 소리를 내뱉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대로 괴물의 먹이가 되는 것 말곤 답이 없단 말인가?

“아직 방도는 있다.”

아니, 아직 쓸 카드는 남아 있었다. 교황이 티아스에게 준 최후의 카드가. 결심을 굳힌 티아스는 함교 밖으로 나갔다.

"다, 단장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다들 힘을 합쳐도 이기지 못한 괴물을 혼자서 어찌 감당하시려고? 경악한 승무원들이 만류했으나, 티아스는 듣지 않았다. 흔들거리는 갑판 위에 선 티아스는 허리춤에 단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검은색 약물이 든 약병을 꺼내 들었다.

이 약물의 정체는 흑광이었다.

-이것은 사제들이 비밀리에 개발한 흑광입니다. 괴수가 될 수 있는 비약이죠.

제국이 괴수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 직후, 교황은 흑광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내린 끝에 완성한 시제품을 티아스가 받게 되었다.

-만약 교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약을 쓰세요.

-죽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된다면 당신은 신이 될 수 있어요.

성공할 확률은 낮다. 써도 시체 하나만 늘어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성공한다면, 남은 형제자매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사용했어야만 했는데….’

티아스는 후회했으나,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하다못해 남은 사람들이라도 살려야 한다.

'신이시여, 제발 저를 도와주소서.'

저 악귀를 멸할 힘을 주옵소서. 제발 형제자매를 살릴 힘을 주옵소서. 그럴 수 있다면 이 몸을 바치겠나이다. 각오를 마친 티아스는 약병을 열려는 그 순간,

"…어?"

갑자기 몸이 붕 떠지는 감각에 휘말렸다. 시야가 반전되었고, 손에 들고 있던 약병도 허공에 떠올랐다.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잘 먹겠습니다.]

거대한 뱀, 페르포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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