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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206화 (207/344)

Chapter 206 - 206화- 기습에 성공한 탈리아

[너희는 노예다.]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원칙이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라.]

트루퍼 무리의 머릿속엔 명령어가 입력되어 있었다.

[주인을 위협하는 적은 모조리 다 섬멸하라.]

[주인을 위해 목숨을 다 바쳐라.]

[주인을 위해 죽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라.]

어째서 이런 명령이 심어있는 건지, 왜 이런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건지 트루퍼 무리는 몰랐다.

아는 것이라곤 그저 따라야 한다는 사실 하나뿐. 그 사실에 의문을 품는 트루퍼 개체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이상하다고 여겨 무리에서 벗어나는 개체 역시 한 마리도 없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의구심을 품고도 남겠으나, 트루퍼 무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문할 뿐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해야 하는가?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어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은 주인을 위해 태어난 존재요, 주인을 위한 창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어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단 말인가? 주인이 죽으라면 죽는 것이 노예의 사명이 아닌가?

그러니 따르자. 복종하자. 목숨을 바치자. 주인님이 없었다면 자신들 역시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 그 사실을 마음속 깊숙이 새기며 주인을 위해 봉사하자.

설령 주인이 바뀌었다 해도 말이다. 새로운 주인인 아르웬의 명령으로 전방으로 나선 트루퍼 무리는 적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모 개체들은 다 사망하고 어린 개체들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오늘부터 내가 너희들의 새로운 주인이다.]

부모 개체들이 옛 주인의 명에 따라 별장에 나타난 침입자들을 격퇴하기 위해 나섰다. 나섰지만, 새끼들은 안전한 해역에 놔두고 갔다. 주인의 명은 절대적이지만, 아직 싸울 능력이 한참 부족한 자식들을 사지로 내보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부모 개체들은 새끼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별장으로 향했으며,

전원 몰살당했고, 이용당했다.

체내에 있던 마석은 철선 제조 시설을 돌리는 새로운 동력원으로 가공되었고, 육신은 디자이어 제국군을 위한 식량으로 전락했으며, 뼈는 예술품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다. 옛 주인의 명에 따라 침입자를 격퇴하러 갔던 부모들은 결국 가축처럼 도살당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자신들은 온순한 고래들이었으나, 뒤틀린 욕망으로 가득 찬 한 영주에 의해 병기로 개조당했다는 사실을. 오직 병기로 써먹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명령어가 입력되었다는 사실을 부모 개체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자식들은 전부 아르웬에게 생포되었다.

[다들 내 말에 복종해라. 반항하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

당연히도 반항하는 새끼들은 한 마리도 없었다.

보호해줄 부모들은 다 죽었고, 명령을 내려줄 옛 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면 새로운 주인을 모시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옛 주인은 인간이고, 새 주인도 인간이니 따르라면 따르는 게 좋지 않을까?

아둔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트루퍼 새끼들은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여자가 새 주인이라고 떠드는 것에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따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안도했기에 그들은 명령에 복종했다.

자유롭게 바다를 누빌 마지막 기회를 어리석게도 차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차버렸는데도 후회하는 개체는 한 마리도 없었다.

당연한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니까.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부모들을 통해 배웠기에 새끼들은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품지 않았기에 겁도 없이 전방에 나설 수 있었다.

[녀석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주체 없이 발포해라.]

새 주인인 아르웬은 트루퍼 새끼들에게 그리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최대한 끌어들인 뒤에 포격해라. 내 말, 알아들었지?]

적이 뭉쳐있을 때 일제 포격을 가해라. 그러면 적은 공포에 빠질 거다. 공포에 빠지면 함대가 움직일 거다. 함대를 지원하며 제국의 함대를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라.

그 명령대로 트루퍼 새끼들은 가만히 있었다. 적들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다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잠수부가 이곳에 있었다면 바닷속에 군대처럼 줄지어 서 있는 고래 무리를 보고 크게 기겁했을 거다.

“““….”””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응시한다. 오직 고요함만이 전장을 지배했다. 고요함 속에서 트루퍼 새끼들은 전방을 향해 눈을 떼질 않았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

갑자기 흐물흐물한 무언가가 트루퍼 무리 눈앞에 나타났다.

미역이다.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미역이 뭉친 덩어리가 전장 한복판에 나타났다.

어째서 미역 뭉치가 이곳에 나타난 걸까? 파도에 휩쓸린 걸까? 하지만 이곳에는 미역이 자라나지 않을 텐데. 누가 보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데 당연할 테지만, 트루퍼들은 아니었다.

다들 눈빛을 반짝거리며 미역 뭉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들 이리 생각했다.

먹이다. 바다 밑으로 잠수하면 항상 먹는 음식이다. 항상 새 주인이 주는 사료도 맛있지만, 미역만큼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 오랜만에 보는 특산품에 트루퍼 무리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한 마리가 자리에서 이탈했다. 입을 크게 벌려 미역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미역을 뜯어내기 위해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한 마리가 다가와 미역을 물었다.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다가와 미역을 물었다.

뒤이어 다른 한 마리가,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뒤이어 한 마리가 다가왔다. 다가와서 미역을 있는 힘껏 물었다.

자리를 지켜야 하는 트루퍼 무리는 눈앞에 나타난 먹잇감에 달라붙는 형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상하리만큼 미역 줄기가 두껍고, 질겨서 삼키는 게 어려우나, 트루퍼 무리는 씹는 걸 멈추질 않았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잘 가렴.]

피로 물들어진 물기둥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

[휴, 간 떨어질 뻔했네.]

거대한 미역 뭉치, 아니 수많은 검은 촉수로 이루어진 덩어리에서 안도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탈리아. 촉수 군집은 탈리아가 변신한 괴수의 형태였다. 탈리아는 자신이 만들어낸 풍경을 주시했다.

[이놈들이 멍청해서 다행이야.]

바닷속은 검붉은 피로 물들어져 있었다. 피로 물들어진 바닷속은 트루퍼 무리였던 살점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일부는 깍두기처럼 조각나지 않았으나, 안에 있는 내용물을 다 드러낸 상태로 바닥에 가라앉았다.

전부 탈리아가 저지른 짓이다. 미역이라 착각한 트루퍼 무리가 전부 자신에게 달라붙은 그 순간, 촉수를 전개했다. 전개된 촉수들에 의해 트루퍼 무리는 문자 그대로 토막이 나버렸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이런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나, 트루퍼는 짐승이었다. 짐승이었기에 본능에 몸을 맡겼고,

그 본능에 의해 부모들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걸로 1차 작전은 끝난 거 맞겠지?]

진격을 방해하는 트루퍼 무리를 제거해라. 이 중요한 임무를 강림은 탈리아에게 맡겼다.

-저, 저기 나도 나가야 한다고? 나, 여우섬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당연히도 탈리아는 크게 기겁했다.

-저, 저기, 전 여, 연구 주임인데요? 전투병이 아닙니다만.

세이렌 섬 정복에 나서기는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트리아와 스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전투력은 0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그 중요한 임무를 어찌 할 수 있겠나? 차라리 다른 인물에게 맡기는 게 더 좋지 않겠나?

그런 식으로 탈리아는 항의했고,

-호꼬옥, 호꼬오오옥? 아, 알았어! 그만 징징거릴게. 할게, 한다고오오오!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연구 주임을 강림은 친히 조교 했다. 작전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강림은 사정없이 허리를 놀려댔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탈리아는 단독 임무에 나섰고,

보기 좋게 트루퍼 무리를 몰살시킬 수 있었다.

‘진짜로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천하의 강림을 패배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붙인 괴물들이었다. 그런 괴물들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앞선 탈리아였으나, 자신이 너무 겁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줄 알았기에 그리드가 자신에게 이 일을 맡긴 게 아닐까?

‘녀석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네.’

네치아 왕국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문으로 연결된 다섯 개의 섬을 지키기 위해 장사진을 펼치는 모습을 탈리아는 밑에서 볼 수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그리고, 어디선가 괴수의 울음이 들려온다.

-마, 맙소사, 여긴 성국 영토인데,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 건가?

-전원 포격하라. 저 뱀 녀석에게 신의 철퇴가 무엇인지 보여줘라!

-물러서지 마라! 대오를 갖춰라! 도망치는 놈은 즉결 처분이다!

소리의 근원지는 성국 영토. 그곳에 주둔 중인 제12 군단이 괴수와 싸우고 있다. 자기 영토 안에 있으니 안전할 거라고 여긴 모양이나, 유감스럽게도 헛다리를 짚었다.

왕국군뿐만 아니라 12군단도 박살 내는 것도 주된 목표 중 하나였으니까.

‘좋아 나도 움직여야지.’

작전에 성공했다면 이리스, 아트리아와 함께 1번으로 지정된 섬을 공격하라. 탈리아는 그리드에게 그런 지시를 받았다.

'그전에….'

탈리아는 전방을 주시했다.

‘배를 못 쓰게 만들어야지.’

도와주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도와주자. 배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왕국군이라도 속수무책으로 털릴 수밖에 없을 거다. 결론을 내린 탈리아는 왕국 함대를 향해 촉수를 전개했다. 수면 위로도 보이지 않았기에 왕국군 그 누구도 배 밑으로 촉수 더미들이 접근하는 걸 눈치채질 못했다.

왕국 함대를 충분히 집어삼킬 정도로 넓게 촉수들을 전개한 탈리아는 읊조렸다,

[솟아라.]

그 말과 동시에,

-콰가가가가강!

수많은 촉수가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솟구쳐오른 함선들은 전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타고 있던 병사들도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수면 위는 배의 잔해들과 시신 조각들로 넘쳐났다.

복수를 위해 아르웬이 피땀을 흘려 모은 함대 절반이 그 자리에서 몰살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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